이번에는 ‘케인(kane)’을 만났다. 미국의 언론 사업가로 억만장자다. 두 여인을 사랑했고, 결혼했지만, 결국엔 모두 이혼한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했기에 다른 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스스로를 위해 끊임없이 일을 벌이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언론사를 넓히는 것도, 아내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도, 집에 조각상을 들여 놓는 것도 모두 쉬지 않고 이뤄낸다. 보면서 내내 이게 실화인지 아닌지가 너무 궁금했다. 이렇게 명성을 떨친 사람인데 과연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고흐를 배우던 중에 왜 갑자기 케인을 배우게 됐을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에 케인이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홀로 외로운 삶을 살았는가보다, 그게 고흐와 비슷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 중간쯤이 되니 ‘홀로’와는 먼 삶이었다. 그의 매일이 시끌벅적해 보였다.
사는 동안 모두가 알게끔 권력과 부를 누렸지만 죽은 후에는 조용히 사라진 케인, 사는 동안에는 아무도 몰라줬지만 죽고 나서 빛을 발한 고흐. 케인은 고흐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같았던 것은 둘 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 생을 다했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두 영화를 보고 난 후였다. <loving vincent>를 보고 나서 얻은 감흥은 지금도 생생하다. 반면 <citizen kane>을 보고는 나서는 잘 떠올려 지지가 않았다. 영상미 때문일 수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를 생각하면 너무 좋은 영상미와 카메라 기법이었지만, 아무래도 흑백이고 옛날이다 보니 정서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빈센트 영화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빈센트와 케인의 인생. 두 영화 모두 도 주인공이 죽고 난 뒤 회상하며 내용을 이뤄간다. 두 사람의 인생이 영화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기억 남는 인생과, 기억 남지 않는 인생. 이 두 개의 차이인 것 같다.
케인은 어쩌면 화려하고, 어쩌면 쓸쓸한 삶을 살았지만 그 중에 나에게 와 닿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젊은 날에는 부와 명성을 누리며 살다가, 나이가 들으니 한두 명 씩 자신을 떠나가고 결국 외롭게 삶을 마감하는 것. 많이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빈센트 영화는 내게 있었던 ‘정신병 화가’라는 인식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인간 적인 삶을 살아 나에게 오는 감동이 컸다. 인생 자체가 주는 감흥이 영화에 고스라니 담겼기에, 기억 남는 영화와 기억 남지 않는 영화가 나뉜 것 같다.
그럼에도 케인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고, 나에게는 안쓰러운 이 인생을 살았다면 애도를 표하고 싶다. 알맹이가 없어 보이는 삶이였기에 안쓰러웠는데, 그 이유가 ‘로즈버드’를 잊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랑 받지 못하고 부모님과도, 마을과도 썰매와도 헤어져야 했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이 스스로도 모르게 상처가 되어 자신만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