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머니의 백일동산
이은봉
1.
삼신할머니들이 또 모여서 놀고 있어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삼신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어요.
삐용삐용 타닥, 타닥, 삐이이….
“아아아, 안돼. 이런 끝나고 말았잖아. 아무래도 아이템을 더 구해와야 하나 봐.”
신세대라며 게임 실력을 자랑하던 삼신할머니입니다.
“언제까지 우린 쪽머리를 해야 해. 우리도 인간들처럼 멋있게 풀어헤쳐 보자고. 그리고 한복도 개량 한복으로 입어 보고.”
머리를 풀고 이리저리 꼬아보는 삼신할머니입니다.
입술에 여러 립스틱을 발라보던 할머니가 막내 삼신할머니에게 말했어요.
“막내 너희 둘, 이리 와 봐. 어떤 색이 가장 예쁜 것 같아? 어라, 너희 둘 뭣 하고 있는 거야?”
막내 삼신할머니 둘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거울을 떨어뜨렸어요.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거울이었어요.
“저, 인간세계를 보고 있었어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집이 어디인가….”
우물쭈물 말을 더듬거리는 막내 삼신할머니들에게 언니 삼신할머니가 한숨 쉬며 말했어요.
“다 쓸데없는 일이야. 어서 이리 와.”
막내 삼신할머니들이 무서워 엉거주춤 일어설 때였어요. 고막이 터질 듯한 큰 소리가 터졌어요.
“다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하늘나라 회의에 다녀오는 왕 삼신할머니였어요. 왕 삼신할머니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화가 잔뜩 나 있었어요. 하늘나라에서 삼신할머니들이 제대로 일을 안 해서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핀잔을 잔뜩 듣고 왔거든요. 삼신할머니들은 고개를 푹 숙였어요. 그러다가 게임에 푹 빠진 삼신할머니가 입을 삐죽였어요.
“뭐 하긴요, 놀고 있는 거지요.”
한 번 입을 열자 다른 할머니들도 웅성거렸어요.
“맞아요. 우리에겐 할 일이 없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아이를 달라고 하지 않아요.”
“의사가 다 하는데 뭐. 주사기로 뭐 인공수정인가 뭔가.”
삼신할머니들의 불만이 와글와글 터져 나왔어요. 왕 삼신할머니의 눈이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저, 그런데요. 어렵지만 찾아보면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삼신할머니들의 맨 뒤에 있는 막내 삼신할머니들이었어요.
“그래, 막내야. 말해 봐라.”
“병원에 계속 다녀도 아이가 안 생기는 부부도 있고요. 또 우리 일이 딱 ‘점지’만은 아니잖아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출산 그리고 백일까지는 돌봐 주어야 하잖아요.”
“맞아요. 우리가 백일동산을 예쁘게 가꾸는데 너무 소홀해서 아기들도 찾아오지 않아요. 이렇게 꽃이 피지 않으면 벌 나비도 찾아오지 않고요. 예쁜 꽃에 벌 나비들이 찾아와야 아기들 씨가 생기잖아요.”
“그래 맞는 말이다. 어휴, 나이 먹은 할망구들이 나잇값도 못 하고 있으니 이거야 어디 원. 내 다시 하늘나라에 다녀올 테니 그때까지 제대로 일들 해. 백일동산도 예쁘게 꾸며놓고 알았지?”
왕 삼신할머니는 사라졌어요. 삼신할머니들의 무서운 눈빛이 막내 둘에게 쏟아졌어요.
“어디서 이게 잘난 척을 해. 너희 둘이 다 알아서 해 알았어?”
삼신할머니들은 깔깔거리며 또다시 재미있는 일에 빠졌어요.
2.
막내 삼신할머니 둘은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어요.
“어쩔 수 없지. 우리 둘이라도 예쁜 백일동산을 다시 만드는 거야. 그래서 기다리는 아이, 준비하는 아이, 태어난 후 백일까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거야. 어때?”
“좋아, 얼른 백일동산부터 만들자. 아기들로 가득 차면 얼마나 좋을까?”
막내 삼신할머니들은 꽃씨를 들고 동산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바람아, 꽃씨를 우리 동산에 심어줄래?”
무지개 색깔의 바람이 솔솔 불어와 꽃씨들을 동산 여기저기에 떨어뜨렸어요. 삼신할머니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씨앗이 눈을 뜨면 새싹이 나온다네. 얼마나 좋을까.
새싹이 꽃망울을 달면 예쁜 꽃이 활짝 핀다네. 얼마나 좋을까.
벌 나비가 날아오면 꽃들이 방글방글 웃는다네. 얼마나 좋을까.
예쁜 꽃들이 열매를 맺으면 아기씨도 생긴다네. 얼마나 좋을까.”
노래가 끝나자마자 동산에 꽃이 피고 나비들이 날아오기 시작했어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나비들이 수없이 날아와 꽃에 앉았어요. 열매가 맺고 씨앗들이 날아가 다시 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백일동산은 무지개 동산이 되었어요.
그때까지도 나이 든 삼신할머니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3.
“쉿, 이것 좀 들어봐.”
막내 삼신할머니들은 인간세계를 비추는 거울을 보았어요. 젊은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집에서 부모님이 보자고 하세요. 언제 시간 돼요?”
“난,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앞으로 일 년은 정말 시간 없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만나기만 할 건데요?”
“결혼, 꼭 지금 해야만 할까?”
두 사람은 서로 토라져 등을 돌리고 말았어요. 막내 삼신할머니들은 두 주먹을 꼭 쥐었어요. 결혼을 망설이다니 그대로 두었다가는 서로 헤어질 것만 같았어요.
“우리 인간세계 두 남녀에게로 내려갑시다.”
“기왕 간 김에 행복이네도 찾아봅시다.”
막내 삼신할머니들은 구름과 바람을 타고 인간세계로 내려왔어요.
“결혼한다면 집은 어떻게 할 건데요? 우리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그래도 같이 버니까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집은 구할 수 있어요.”
“좋아요. 그럼 집은 구했다고 쳐요. 이자에 원금도 갚아야 하는데 아이는 어떻게 키워요? 그 많은 양육비를…. 차라리 아이를 안 낳는 게 현명한 일일지도 몰라요.”
며칠을 따라다녀 봐도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웠어요. 결국, 두 사람은 당분간 헤어지고 말았어요.
삼신할머니 둘은 머리를 맞댔어요. 예쁜 꿈 주머니를 들고 두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똑같이 새벽 4시에 꿈속으로 들어간 할머니들이 꿈 주머니를 펼치자 예쁜 나비들이 나왔어요. 이 시간에 꾸는 꿈이 기억이 잘 나기 때문입니다.
“하나, 둘, 셋.”
꽃밭 벤치에 두 남녀가 앉아있어요. 등을 돌린 채 서로 말도 하지 않아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왔어요. 나비 두 마리는 두 남녀를 번갈아 날아다녔어요. 머리에 앉았다, 어깨에 앉았다, 손등에 앉았다…. 등을 돌린 두 사람이 마주 보기 시작했어요. 두 마리의 나비가 날아가는 곳마다 작고 예쁜 나비들이 나타나 따라다녔어요. 나비들의 긴 입에서 톡톡톡 물방울이 두 사람의 머리에 떨어졌어요. 가장 아름다운 꽃향기에 두 사람의 추억과 사랑을 섞어 만든 것이었어요.
이튿날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했어요. 계속 통화 중이었어요. 서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지요.
“나야, 우리 오랜만에 놀러 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나도요, 할 이야기 있어요. 아주 멋있는 꿈을 꾸었어요.”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서로 부모님을 보기로 약속했어요. 삼신할머니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어요. 삼신할머니들은 백일동산으로 날아갈 준비를 했어요.
4.
“참 행복이네! 깜박 잊을 뻔했어요.”
“큰일 날 뻔했네. 행복이가 백일동산에 와서 울었잖아요. 엄마가 아프다고.”
“행복하라고 태명도 행복인데. 가봅시다.”
삼신할머니들은 기억을 더듬어 행복이네 집을 찾아갔어요. 삼신할머니들은 한숨을 푹푹 쉬고 말았어요. 얼굴이 반쪽이 된 행복이 엄마가 혼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거였어요. 오래전에 봤을 때와 똑같은 지하방, 온기 없는 집안은 찬바람이 휘휘 휘돌고 있었어요. 삼신할머니들은 행복이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어요. 따뜻한 기운이 엄마의 손으로 전해졌어요. 둥근 엄마 배도 살살 만져주었어요.
행복이 엄마가 끙 소리를 내며 잠꼬대를 합니다.
“행복이 아빠, 나 혼자 무서워요. 언제 와요?”
행복이 엄마와 아빠는 너무 젊은 나이에 외롭게 만났어요. 결혼식도 못 하고 아빠는 돈을 벌어온다며 집을 나갔어요. 몇 번 소식이 오더니 오지 않았어요. 날이 갈수록 엄마는 힘들어했어요. 몸이 너무 부어 신발도 신기 어려웠고, 한밤중에 엄마가 먹고 싶은 순대와 과일을 사다 줄 사람도 없었어요. 행복이를 생각하면 기뻤다가도 잘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 겁도 나고 불안했어요.
삼신할머니들은 행복이 엄마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행복이 엄마의 숨소리도 듣고 배 위에 귀를 갖다 대기도 했어요.
“아이고 이를 어째. 우울증에, 임신중독도 있는 것 같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
삼신할머니들은 행복이 엄마의 방을 자세하게 살펴보았어요. 행복이 엄마 머리맡에 오래된 일기장이 있었어요. 일기장 속에 밖으로 삐져나온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어요. 갈래머리 교복을 입은 소녀 둘이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어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영순이. 희망고아원’
‘아, 행복이 엄마가 고아였구나.’
삼신할머니 한 분이 사진을 들고 삼신 나라 동사무소로 쓩쓩 올라갔어요.
“동장님, 이 사진 속의 영순이, 주소 좀 주시오. 얼른.”
“곤란합니다. 개인정보 공개는 어려워요. 이곳도 인간 세상처럼 변하고 있어요.”
“아휴, 정말 잘생긴 동장님. 나를 보고 딱 한 번만 도와주세요. 행복이 엄마가 죽게 생겼어. 그러면 아이도 죽어.”
삼신할머니는 아이가 죽는다는 말을 아주 크게 했어요. 결국, 삼신할머니의 손에 영순이의 주소가 쥐어졌어요. 삼신할머니의 눈이 둥그레졌어요. 할머니가 받아 쥔 주소는 ‘희망산부인과 간호사 김영순’이었어요.
“세상에 이럴 수가? 그런데 어떻게 만나게 해 준담. 옳지!”
삼신할머니는 다시 행복이네 집으로 내려왔어요. 삼신할머니는 뱃속의 행복이를 살짝 불렀어요.
“행복아, 엄마가 병원에 가서 친구를 만나야 한단다. 오늘만 엄마 뱃속에서 좀 콩콩 뛰어줄래.”
행복이가 방긋 웃었어요. 그날 밤 유난히 움직였다가 뭉치는 행복이 때문에 견디다 못한 행복이 엄마는 119를 불렀어요. 행복이 엄마는 구급차에 실려졌어요. 구급차를 운전하는 구급요원 옆에서 삼신할머니는 끊임없이 “희망산부인과, 희망산부인과, 희망산부인과로 갑시다!”를 외쳐댔어요. 행복이 엄마의 비명소리는 점점 커졌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가까운 병원으로 갈게요. 어디가 제일 가깝지? 동아산부인과? 아니 이곳은 조금 작은 병원이니까. 검사를 받으시려면…. 오, 희망산부인과! 거기로 갈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삼신할머니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구급대원은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희망산부인과지요? 여기 아픈 산모가 곧 도착할 겁니다. 산모 이름은 ‘지경수’ 임신 7개월이라고 합니다. ”
이튿날 입원실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네 이름이 흔한 여자 이름이 아니잖니? 세상에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나도 보고 싶었어!”
입원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도란도란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어요.
“걱정하지 마. 열심히 운동하고 잘 먹고 재미있게 지내자. 그럼 건강해질 거야. 행복이 아빠 올 때까지는 내가 네 보호자야. 알았지.”
막내 삼신할머니들도 덩달아 웃었어요. 삼신할머니들은 행복이 아빠가 빨리 돌아오길 빌면서 백일동산으로 향했어요.
5.
막내 삼신할머니들은 백일동산으로 돌아오자마자 끙끙 앓고 말았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곱게 빗은 머리는 흘러내렸고 모시 치마저고리는 후줄근해졌어요.
삼신할머니들이 모여들었어요. 막내 삼신할머니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힘들게 들려주었어요. 막내 삼신할머니들은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았어요. 힘든 모습을 바라보던 삼신할머니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어요.
“막내야 수고했다. 너희들은 푹 쉬어. 이제 우리가 할 테니까.”
삼신할머니들은 내팽개쳤던 거울을 꺼내 깨끗하게 닦았어요. 인간세계를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병원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원하는 부부들을 찾아볼게.”
“나는 사랑은 하면서도 결혼을 망설이는 남녀들을 찾아볼게.”
“결혼하고서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부부들에게 태몽 꿈주머니를 풀어놓을게.”
삼신할머니들의 와글와글 신나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어요. 그사이 바람은 꽃씨들을 백일동산에 또 뿌렸어요. 무지개 색깔의 나비들도 얼마나 많이 태어났는지도 몰라요. 삼신할머니들은 나비들을 태몽 꿈주머니에 넣었어요.
“그럼 나 먼저 가요.”
게임에 빠진 삼신할머니였어요. 게임기를 집어던졌어요.
“나도 갑니다.”
립스틱을 들고 뽐내던 삼신할머니였어요. 립스틱을 내던졌어요.
삼신할머니들이 쉬지 않고 백일동산을 떠나 인간세계로 날아갔어요.
막내 할머니들은 백일동산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씨앗이 눈을 뜨면 새싹이 나온다네. 얼마나 좋을까.
새싹이 꽃망울을 달면 예쁜 꽃이 활짝 핀다네. 얼마나 좋을까.
벌 나비가 날아오면 꽃들이 방글방글 웃는다네. 얼마나 좋을까.
예쁜 꽃들이 열매를 맺으면 아기씨도 생긴다네. 얼마나 좋을까.”
얼마 후 백일동산에는 아기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점지를 받은 아이, 이제 곧 태어날 아기, 갓 태어난 아기들이 초대받은 거예요. 행복한 아기들과 삼신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백일동산에 오래도록 흘러넘쳤어요.
“아 참, 백일동산이 무엇이냐고요?”
백일동산은 이 세상에 나올 아기들이 엄마를 기다리는 곳, 태어나서 백일동안은 와서 놀고, 쉴 수 있는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