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종교
https://www.youtube.com/watch?v=blJxi6jjGoo 이경철
https://cafe.daum.net/rnjstlgur/9oZC/540 권시혁
방금 이학권 성도님으로부터 소개받은 하나임 교회 성도 이경철입니다. 만나서 우선 반갑습니다. 이 시간 제가 성도님들과 함께 나눌 주제는 성경과 종교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더 많이 알아서도 아니고 또 지식을 전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원컨대 이 나눔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증거되고 있는 성경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서 쓴 책인지 그리고 또 종교는 무엇인지 이걸 같이 한번 고민해 봤으면 하기는 바람입니다.
자 그러면 먼저 성경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은 오묘한 계시를 담고 있다는 오해 때문에 많은 이상한 해석이 나오고 또 더불어 많은 이단을 낳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00:57
성경은 오묘한 계시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말씀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롬1:20절을 보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시면 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모든 만물 속에는 하나님도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도 분명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이렇게 오묘한 계시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 쓰여진 책일까요? 01:50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경은 종교와 싸우기 위해서 쓰여진 책입니다. 구약의 중심이 선지서인데 선지서에 흐르는 중심 내용은 종교를 버리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삶으로 돌이키라고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02:13
그 선지서의 시작을 이사야서로 하는데 이사야서를 열자마자 하나님의 백성 유다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그 이유가 사1:11-14 너희의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짐승의 기름과 피에 질렸다. 아무 진심 없이 내 마당만 밟는다. 내가 언제 요구했느냐? 헛된 제사 다시 드리지 말라. 분향 월삭 안식일 대회 모두 가증스럽다. 내 마음이 싫고 무거워 곤비하다.
한마디로 줄이면 종교 인제 그만 해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또 예레미야 선지자께서는 렘7:4-5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아라.” 하나님의 임재 절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 흘리지 아니하여야” 그래야 성전이지.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종교 생활만 하지 더불어 살기는 다 깨어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았다. 하면서 단절되고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또 선지서의 중심이 호세아서인데 호세아서의 중심이 호6:3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입니다. 04:04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여호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인데 호6:6 보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종교 관두고 하나님을 안다면 한 형제·자매로 살아야지 하는 말씀입니다.
또 미가서 6장 6절을 보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할까 1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에 열매를 드릴까?
1년 된 송아지 그 당시로는 대개 큰 번제물이었습니다. 1년 된 송아지 천천의 숫양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 심지어 맏아들까지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내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내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윤리적이긴 하지만 그냥 윤리적인 것이 아닌 더불어 살기의 윤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05:33
스가랴서는 귀화한 후에 선포된 말씀인데 슥7:5-6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의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금식이라고 하면 종교 행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마저도 너 스스로를 위해서 했지, 나 나의 뜻을 섬기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06:07
그래서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 가면 말2:10 우리는 한 할아버지를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한 아버지 한 형제자매로 살아야지 그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째 헛된 종교 행위만 하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사역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사역의 중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보면 사역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또한 종교를 폐하고 긍휼의 삶을 회복하는 데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과 12장 7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말씀은 호세아서 6장 6절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07:00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의인은 구원이 필요 없습니다. 의인이니까요?
그래서 종교인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착각합니다. 하나님 믿고 주일성수하고 연보 드리고 나름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사니깐요.
마12:7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호6:6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래서 빌2:12절 같은 말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이런 말씀을 종교인들이 들으면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미 믿었다. 고백했고 그것으로 구원받았다 했는데 뭘 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룹니까?
예수님은 종교를 폐하고 긍휼의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의 사역에 2개 큰 기둥을 세우셨습니다. 첫 번째가 안식일 법 폐지입니다.
안식일 법을 폐지했다는 표현보단 안식의 본질을 회복하신 거죠. 막2:27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말씀 하나로 안식일 법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예수님은 정결례 법을 폐지하셨습니다. 정결의 본질을 회복시키신 거죠. 08:33
마15: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 그래서 종교의 위선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는 무섭게 퍼부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이 흔히들 말하는 종교 장인데 이 23장에만 7번이나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라고 반복하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마6:1절에 보니 사람에게 보이려고 산상수훈의 중심입니다. 그들 앞에서 너의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종교 행위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09:27
마23: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니 마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그래서 총결론을 보면 마23:35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사도 공동체의 증언입니다. 이것이 스테반과 바울의 증거를 통해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데 행7:46 스테반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다윗이 원한 건 야곱의 집이며 이스라엘 전체가 야곱의 열두지파이고 열두 아들이기 때문에 정작 다윗이 원한 건 이스라엘이 한 가족 되어서 그 가족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설 수 있게 준비해 달라고 한 것인데
행7: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했습니다.
건물 하나 뚝딱 지어놓고 그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고 했으니, 세상에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10:56
그래서 행7: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품을 수 있겠습니까? 갈4:9 보면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천박한 초등학문이 무엇일까요? 보시는 것처럼 10절에 바로 나옵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네 종교입니다.
골2:16을 보니 “먹고 마시는 것과” 정결례법이죠.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정결례법 안식일 법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절대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골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어찌하여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그러면 종교는 무엇인지 왜 문제가 되는지 함께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교는 조직 제도 교리 법이 절대 필수입니다. 그것 없이 종교가 형성되지는 않습니다. 이학권 성도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닙니다. 12:45
하지만 반드시 파워 게임화 되겠고 세력 다툼화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영상을 하나 보겠습니다. 성 바돌로매 축제일에 학살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1572년 8월 24일 심야에 성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해서 7일간 프랑스의 개신교도들을 위그넛이라고 불러요.
위그넛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쳐 죽이고 2개월 동안 숨은 자들을 발본색원해서 처단했어요. 7만 명이 죽었어요. 그 기간에 그랬더니, 성직자들은 축하 행진했어요. 이교도들을 죽였다고.
그다음에 바디칸에서는 이 기념 메달을 만들고 기념 벽화를 걸었어요. 인 더 네임 오브 갇 종교재판소라는 게 13세기에 생겼어요. 약 400년 이상 컨틴이 됐어요. 13:42
그런데 종교 재판은 절차가 비밀이고 밀고자도 비밀이고 모든 고문이 어떤 고문도 가능해요. 왜냐 그러면 이게 악령이 들렸으니까. 그리고 그 재산은 교회와 밀고자가 분배했어요. 그런데 밀고자는 누군지 절대로 알 수가 없어요. 여러분 짐작이 가겠지만, 이쪽으로 밥 머니 이교도 다른 종교 개신교 리얼리포드 페이트 그 재산 차지하는 거예요. 30년 전쟁 인간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에요. 개신교와 캐돌릭이 싸운 전쟁이에요. 14:41
시작은 이제 보헤미아에 페르디난트 2세가 개신교를 탄압했어요. 그러니까 그 개신교도들이 항쟁으로 페르디난트 2세를 쫓아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스페인 가서 그때는 스페인이 최고 강국이니까. 스페인의 군대를 데리고 와서 개신교를 박멸하고 그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했어요. 왜요 스페인 군대에게 돈 줘야 되니까.
애초 모든 게 돈이었으니 30년 전쟁 시작할 때 보헤미아 인구가 400만인데 끝났을 때 75만 남았어. 독일 인구가 3천만이었는데. 1200만 남았어요. 마틴 루트가 종교 개혁을 선언한 비텐버르그는 40만의 인구가 있었는데, 4만 8천 명이 남았어요. 15:27
우리 추수감사절 지났지요. 추수감사절마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셔서 감사해서 어쩌고 다들 그러죠. 그러나 모르는 건지 말을 안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완파노악의 그 마사소의 추장 완파노악 부족이 이 청교도들이 새들 다운하는 것을 도와줬죠. 그 사람들 없었으면 다 죽었죠.
그런데 그 사람들 도움 때문에 겨울 지나고 50 몇 명이 남았죠. 그래서 추수감사절이 되었을 때 이 마사소의 추장이 사슴 5마리와 칠면조 수십 마리 그다음에 옥수수 뭐 과일 이렇게 갖고 와서 축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백인들이 완파노아 부족은 자기들을 도와주니까 거기서 훔칠 수는 없고 다른 부족들의 식량을 훔쳤습니다. 16:22
그러니까 1622년에 다른 부족들이 연합해서 완판우악 부족을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공격이라는 건 우리 식의 공격이 아니에요. 그 당시 원주민들은 전쟁했습니다. 전쟁했는데 칼이나 사람 죽이는 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대개 봉이고 봉 끝에도 이렇게 천을 씌워서 전쟁하다가 한 사람만 피를 흘려도 중간 중단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완파노악 부족이 이 백인들을 도와주니까 백인들을 도와주되 우리한테 이렇게 못된 짓 못 하게 하도록 혼을 내려고 하는 것이었죠. 그 얘기를 완파노악의 마사스 부장이 이제 백인들에게 얘기했어요. 청교도들에게 17:13
청교도 2인자였던 스탠디쉬가 괜찮다. 우리가 해결하겠다고 거기를 공격하는 4개 부족의 족장과 대표들을 초청했습니다. 평화조약을 맺자고 그래서 왔을 때 청년들 무장시켜서 다 죽여버렸습니다.
청교도 그러면 뭐 기독교 신앙의 거의 모델로 잡지 않나요? 청교도들이 이 땅에 들어올 때 아메리카 원주민 남북 중미 다 합쳐서 1억 5천만이 여기 살았습니다. 1억 4천 뭐 거의 1억 5천만이 살았습니다. 300년 후에 25만 명 남았습니다. 기독교는 히틀러의 600만 학살을 정지할 수 없습니다. 18:11
아직도 회개 안 하고 있잖아요. 이런 것 다. 쉬쉬하고. 우리는 추수감사절이라고 할 때 이 아메리칸 네이티브 페더레이션 원주민 연합은 그 감사절 1시에 모여서 데이 오브 모닝 애도의 날로 오늘까지 지키고 앞으로도 지킬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려면 제가 여기 일주일 동안 계속해도 그 얘기들을 다 할 수 없습니다. The trail of tears (눈물 젖은 길) 제7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 전에 이제 원주민들은 동부 지역에서 살지 못하고 체로키가 있는 스모키 마운틴 에리어에서 살도록 조약을 맺었습니다. 19:09
그 땅 전체를 체로키 부족뿐만 아니라 체로키 부족이 제일 큰 부족이었고 네이티브 부족들이 살도록 이렇게 허락하고 법적으로 조인까지 다 했습니다. 그런데 스모키 마운틴에서 금광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고, 조지아 덜라너에서 금맥이 발견되었어요. 그리고 1829년 원주민 소년이 자연 금괴 그러니까 그냥 땅에서 파낸 금괴를 들고 있다가 백인에게 팔았어요.
그 후에 백인들이 중무장하고 거기에 들어와서 자기들이 정부의 관리라고 사칭하면서 그 지역의 원주민들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 쫓아내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이 앤드류 잭슨이 1830년에 인디언 추방법을 만들어요. 이게 법으로 이때까지 보장해준 땅이잖아요. 20:06
그걸 추방법을 만들어서 추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앤드류 잭슨은 호스 슈 전투에서 이 호스 슈 전투라고 하는 게 원주민을 박멸해 버리는 일루미네이한 그런 전투였어요. 그래서 체로키 머스코지 세미놀 차가소 촉토 이 5개 부족에서 10만 명이 지금의 오클라호마라고 불리우는 미시시피 건너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을 포기한다고 사인을 안 하지요. 그러니까 회유하고 협박하고 심지어 강한 데는 대표를 죽이고 가짜 대표를 세우고 술 마약 먹이고 그렇게 해도 안 되면 강제로 이주시켰어요. 길에서 추위와 질병과 기아로 수도 없이 죽었어요.
체로키는 1만 6천 명이 출발했는데 6천 명이 중간에서 죽었습니다. 6천 명이 그 마을을 통과할 때 백인들이 길 양궁 옆에 서서 째려보고 심지어 통행료까지 받았어요. 2009년 12월에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으로 그들에게 사죄하는 결의를 했습니다. 21:21
인디언 부족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 공격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궤적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들은 지능, 산업 도적적 습간 그리고 개선의 열망도 없습니다. -엔드류 잭슨 대통령.-
이 나라에 거주하는 인디언 부족들은 사나운 야만인이었다. 그들 나라를 소유하게 하는 것은 그 ᄂᆞ라를 광야로 남겨두는 것이다. -존 마샬 대법원장-
위대한 미국 신화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황야(광야)로 뵤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 아무도 빼앗기지 않은 땅, 광야, 이곳에 와서 번성하고, 그전에 이미 사람과 문명이 있었음을 편리하게 잊어버린 땅.
처음에는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우리는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느릅나무 껍질을 먹었고, 많은 사람이 병들고 죽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성공적으로 국경의 경계를 늘려 나가면서 그들은 그 땅을 취하고 번영시키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라고 믿을 뿐 아니라, 그들을 그곳에서 그렇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미국은 대서양에서부터 태평양으로 세력을 확장해 가는 대륙 국가이며 이민의 물결이 올 때마다 인디언 부족들은 땅을 얻기 위해 협정같은 것을 맺어가며 점점 더 국경을 넓혀가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로 부풀려진 “명백한 운명”이라 생각하는 힘은 사람들을 모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북미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미국인들의 생각뿐 아니라, 인디언들은 문명과 진보라는 장벽을 헤쳐나가겠다는 생각이 그들을 결집시켰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고, 정부가 그 땅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려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싸웠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든 이 싸움은 모두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감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지켜야 했고, 나의 자녀들이 살아남길 원했습니다. 그러려면 이 강제 이주를 참아야 했습니다.
많은 부족들이 부족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인디언 강제이주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떤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요?
수십년을 거친 후 인디언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땅을 포기해야 했고, 집, 들판과 숲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함께 살아가고 또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 삶의 방식을 다 포기해야 했습니다. 인디언들에게 대대로 살던 땅을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이었고, 인명 손실 또한 그랬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체로키 부족의 “눈물 젖은 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이주길에도 그같은 폭력과 불의와 짓밟힘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걸어야했습니다. 내 동생 죠는 겨우 4살이었습니다. 그당시 8살 밖에 안 된 나는 많이 걸을 수 없었던 동생을 안고 걸어야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동생 때문이라도 버텨야 했습니다.
그들이 동생을 죽일까 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너무 커서 안기 버거운 아기들을 죽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길가에 떨어지거나 총에 맞아 살해되어 길에 남겨졌습니다.
인디언 강제 이주는 수백만 명의 인디언들을 생존시키기에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식민지 개척자들이 도착하기 전 살았던 수백만 명의 인디언들이 19세기 말에는 오직 25만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지른 종교의 만행들 그 예가 어찌 지금 보신 영상뿐이겠습니까? 영상에서 보셨듯이 종교의 핵심적인 문제는 보지 못하는데 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보고 있으니까, 안다고 하니깐 바꿀 필요가 없죠.
지금 기독교의 현실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이 종이 한장의 가치보다 못 한 그런 구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26:42
니고데모가 예수께 와서,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물으니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구원을 받으려면 봄이 먼저 열려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의 봄인가요? 하나님 나라의 봄이죠. 즉 겉과 평면이 아닌 본질 세계의 봄이 열려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본질 세계를 보지 못하는, 즉 겉과 평면의 삶만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보이기가 전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러면 보이기는 무엇으로 하나요? 네 돈으로 합니다. 27:38
돈으로 온갖 보일 것들을 만들죠. 집, 차 명예 권력 그래서 돈은 이 평면적 세계의 맘대로의 도구입니다. 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종교 또한 돈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힌두교 불교 천주교 기독교 어느 종교를 망라하고 돈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이죠. 마음대로 할수록 더욱더 종이 됩니다. 마약 하는 사람이 마약하고 싶을 때마다 마약을 하게 된다면 더욱더 마약의 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게으름도 마찬가지죠 게으름을 피우면 피울수록 그 게으름에서 헤어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자유할수록 절제할 수 있습니다. 28:33
exercise 엑서사이즈를 하면 할수록 엑서사이즈를 절제함으로 자유할 수 있으니깐요.
돈의 종이 되어버린 기독교가 또 한 가지 소유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전락입니다. 하나님이 그 중심에 서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이 세상 누구도 이 세상 어떤 조직도 하나님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온 인류와 우주를 위한 말씀을 기독교 경전화 시켰고 또 생명을 장성케 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말씀을 기독교 종교 생활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29:21
한 아버지 앞에 더불어 살기의 말씀을 온 인류가 한 아버지 아래 한 가족으로 사는 말씀을 교회당 다니기 하는 말씀으로 전락시켜 놓았습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하나님의 성품이 없습니다. 거짓되고 이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또한 모릅니다. 예배조차도 가짜로 들으니깐요. 그래서 하나님의 누림이 없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종교인 | 하나님의 성품 없음 | 거짓-이기적 | No | 자녀 |
하나님 임재 모름 | 예배도 가짜 | 관계 | ||
하나님 누림 없음 | 안식이 없음 | 구원 |
종교인은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고 하나님과 관계도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는 신앙의 사촌이 아닙니다. 말씀을 정리하고 마감하려 합니다. 30:14
이학권 성도가 말씀 전해주신 것처럼 종교는 악인을 없애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종교라는 그릇에 본질을 회복할 시간이 됐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결론 | not | 종교는 악이다. 없애자. X |
종교심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 ||
but | 본질 회복의 시간 O |
종교는 종교심은 인간에게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경건해지기도 하고 또 엄숙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도화되고 율법화 되기 시작하면 지금의 기독교처럼 추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가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똑같은 세계입니다. 31:04
그러므로, 이 현상을 살고 있는 우리 육체 몸을 잠시 잊고 사는 우리의 삶의 목적은 육체를 벗고 본질의 나 영원한 나를 가꾸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나를 가꾸는 것에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는 말씀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이 대화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가장 맑은 거울이 되어서 나를 비춰주고 나의 진실을 직면하게 도와줍니다. 그 직면은 진실을 원하는 2~3사람이 함께 나눌 때 훨씬 쉽고 용기 있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기도해 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라안선
진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