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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民畵)와 장식병풍(裝飾屛風)
김홍남 / 국립민속박물관장
문방도 / 국립고궁박물관
• 문방도(文房圖)
문방도에는 문인들이 늘 가까이 하는 책을 비롯하여 문방구(文房具), 고동기(古銅器) 등의 완상물(玩賞物 )과 길상적 의미를 갖고 있는 서상물(瑞祥物)을 그렸다.
01. 책 : 예로부터 책을 가까이 하면 온갖 삿된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오늘날 『서경(書經)』으로 불리우는 중국의『상서(尙書)』가 관직이름의 하나인 ‘상서(尙書)’와 같다고 하여 책은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는 것을 상징한다.
02. 문방구류 : 벼루, 먹, 붓과 같은 문방구류에 종이를 포함한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선비들이 늘 가까이 하는 것들이었다. 서책과 고동품과 더불어 함께 그려져 책과 문방을 가까이하는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03. 두루마리 : 불교의 팔보문(八寶文)의 하나인 두루마리는 불교 경전을 표현한 것이었으나 점차 행운과 배움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문인들이 가까이 해야하는 글씨와 그림은 의미하는 것으로 풍이하기도 한다.
04. 보병에 꽂은 공작깃털과 산호 : 공작새는 아름다움과 위엄을 상징하는 새이다. “영정휘황(翎頂輝煌)이라 하여 청나라의 관복제도에 의하면 일품관(一品官) 모자위에 공작새의 꼬리털과 산호 테두리를 하였다. 이로부터 공작깃털과 산호는 최고의 관직과 지위를 상징한다.
05. 고동기 : 제사의례에 사용된 향로 등의 의식용구이다. 중국 북송 때 금석학(金石學)이 크게 일어나 고동기와 같은 의식용구들에 대한 연구가 문인들 사이에 유행하였다. 이들은 고동기를 연구 할 뿐 아니라 이를 수집하고 완상하는 것을 취미로 하여 문방도의 소재로 그려지게 되었다.
06. 도자기 : 제사의례용구인 중(尊)과 주자(注子) 모양으로 만들어진 도자기이다. 문인들의 고동기에 대한 관심이 청완기물로 확대되어 청동기형을 모방한 도자기들이 중국 각지의 요(窯)에서 제작되었다. 표면에 빙열(氷裂)이 있는 가요(哥窯)나 홍, 청등의 색을 특징으로 하는 낭용(郎窯) 도자기들이 완상물로 사랑받으면서 문방도의 소재로 그려지게 되었다.
07. 복숭아 : 복숭아는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중국 한나라의『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는 곤륜산에는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복숭아(仙桃)가 열린다.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蟠桃園)의 복숭아나무는 가지가 사방 3천리까지 뻗어나가며 3천년만에 꽃이피고 다시 3천년만에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한 개라도 먹으면 1만 8천살까지 살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복숭아가 장수를 상징하게 되었다.
08. 석류 : 중국 북제(北齊)때 연종(延宗)이 이조수(李祖收)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훗날 황제가 다른 이를 총애하자 왕비의 어머니인 송씨가 두 개의 석류를 황제에게 바쳤다. 이조수가 그 뜻을 말하기를 ‘석류는 껍질속에 알갱이가 많은 과일입니다. 왕께서 새로 혼인을 하시었으므로 왕비의 어머니가 그 자손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친것이라 생각됩니다.’하였다는 고사로부터 석류가 자손이 많기를 바라는 의미로 여겨졌다.
09. 수박 : 서역에서 온 과일이라 하여 서과(西瓜)라 부른다. 과(瓜)계열의 식물들은 매우 여러종류인데, 씨가 많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자손이 많음(多子)을 상징한다. 또한 대개 넝쿨식물로 길게 늘어진 넝쿨에 크고 작은 열매들이 달리는 형상이어서 자손의 이어짐이 오래도록 영원 하라는 자손만대의 뜻을 지닌다.
10. 귤 : 귤은 옛날 황제가 제사를 지낼 때 재물로 썼던 과일이며, 주나라 목왕(穆王)이 요지(瑤池)에서 서왕모(西王母)에게 주었다고 하는 과일이다. 귤중지락(橘中之樂)이라 하여 귤을 둘로 조개었더니 그 안에서 두 노인이 세상모르게 바둑을 두면서 즐기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귤의 풍미는 선계의 맛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또 큰귤(大橘)은 중국식 발음으로 대길(大吉)과 동음으로 대길을 의미한다.
11. 영지 : 영초(靈草)라고도 한다.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하여 불로초(不老草)라고도 불리며, 십장생의 하나로 곱힌다.
12. 소과 : 오이, 가지, 참외 같은 채소와 씨가 많아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또한 대개 넝쿨식물로 길게 늘어진 넝쿨에 크고 작은 열매들이 달리는 형상이어서 자손의 이어빔이 오래도록 영원 하라는 자손만대의 뜻을 지닌다.
13. 수선화 : 수선화(水仙花)는 일년 가운데 춘절 전에 꽃이 피어 신년에 꽃을 감상할 수 있으며, 수선이 핀 모양을 보고 일년의 운수를 점치기도 한다. 또한 수선화의 ‘선(仙)’이 신선(神仙)의 ‘선(仙)’과 같아 신선을 의미한다. 모란과 함께 구성하여 부귀를 누리며 신선처럼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14. 화병에 연꽃 : 연꽃은 예로부터 꽃 중의 군자라고하여, 순결과 탈속(脫俗)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연꽃의 연(蓮)은 연생(連生, 연이어 태어난다.)의 연(連)과 발음이 같고, 연밥의 씨앗은 열매 즉 자손을 상징하여 연꽃과 연밥을 ‘연생귀자(連生貴子, 귀한 자손을 연이어 본다)’로 풀이한다. 또한 연꽃은 꽃과 열매(연밥)가 동시에 열리므로 빠른 시기에 자손을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15. 화병에 모란꽃 : 풍성한 자태로 꽃 중의 왕으로 불리며, 부귀를 상징한다. 모란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피면 복이 온다고 믿었다. 화병에 꽃은 모란은 화병을 보병으로 해석하여 집안이 평안하고 부귀를 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6. 화병에 살구꽃 : 살구꽃은 급제화(及第花)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 과거는 매년 음력 2월에 실시되었는데, 이 때가 바로 살구꽃이 만발하는 계절이다. 또 중국에서는 과거에 급제한 선비에게 천자가 살구꽃 아래서 향연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어 살구꽃은 관계(官界) 등용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7. 화병에 매화 :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들의 꽃이라고 하였다. 추운 겨울철에 홀로 피어 고고한 자태를 보이는데, 그 모습을 역경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버리지 않는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18. 호병에 국화 :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 국화는 황화(黃花)라고도 한다. 여름을 지나 초목들이 시드는 가을에 홀로 피어나 바람과 이슬을 견디어 내기 때문에 은거처사(隱居處士)의 절개를 가진 꽃으로 비유된다.
• 산수도(山水圖)
민화 산수도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문인 산수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변형되거나 단순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화제에 언급 되거나 내포되어 있는 요소들에서 유추하여 장면을 읽는다.
01. 장안사(長安寺) :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內金剛面) 금강산 장경봉(長慶峰) 아래에 있다. 삼국시대 창건되었는데 이후 여러번 소실과 중건을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다가 한국전쟁 때 완전히 없어졌다. 금강산 4대사찰중 하나이며, 금강산 유람시에는 반드시 들렸던 대 사찰로 많은 유람기에 등장한다. 내금강을 흘러나온 금강천과 이 개천을 가로 지르는 무지개다리 형식의 만천교(萬川橋), 이층누각형식의 장안사 정문인 산영루(山暎樓) 등이 실물과 유사하게 묘사되었다.
02. 명경대(明鏡臺), 업경대(業鏡臺) : 명경대는 사람의 마음속을 비쳐 죄의 유무를 가려낸다는 거울에 비유된 바위이다. 배석대에 올라가 명경대를 향하여 꿇어앉으면 저승의 재판관들인 십왕과 판관이 명경대를 보고 극락과 지옥으로 가는 판결을 내린다고 한다. 업경대는 불교에서 지옥에 있다는 죄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죽어서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이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면 생전에 지은 선약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 죄의 경중을 판가름하고,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고 한다.
망군대(望君臺) : 백천동에서 서쪽으로 갈리는 백탑동(百塔洞)을 따라 올라간 곳에 있는 전망대(展望臺)이다. 수십 길 암벽 위에 있어 금강산중에서 제일가는 전망대로 꼽히며, 꼭대기 평평하여 이곳에 올라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데, 망군
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비로봉을 비롯한 내금강의 모습은 일품으로 꼽힌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 금강전도(金剛全圖) / 국보 제217호
04. 표훈사(表訓寺) : 내금강 백천동 계곡 서쪽 기슭에 신라시대 창던된 사찰이다. 창건 당시 20여 채의 건물로 이루어졌던 표훈사는 한국전쟁 때 상당 부분 없어졌지만 금강산 4대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찰이다. 사찰 주변의 소나무, 잣나무 숲이 유명한다. 그림에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05. 정양사(正陽寺) : 내금강 벽천동 계곡에 있는 사찰로 금강산의 정맥(正脈)에 있어 정양사라 하였으며 금강산 4대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백제 때 창건된 사찰로 고려 태조가 중창한 뒤로 사세가 커졌다. 이 절 뒤에 있는 봉우리인 방광대(放光臺)에서 고려 태조가 법기보살(法起菩薩)의 현신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절을 했다는 고개[拜岾]가 남아있다. 진경풍의 산수도에 의하면 정양사는 ‘ㅁ’자 형태였던 것으로 보이나, 실제에 비해 간략하게 그렸다.
06. 삼불암(三佛庵) : 삼불암은 장안사에서 표훈사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부처바위로, ‘문(門)바위’라고도 한다. 삼각뿔 모양의 거대한 바위의 한 쪽면에는 석가ㆍ아미타ㆍ미륵의 세 부처가 입상을, 다른 한쪽면에는 60구으 화불(化佛)과 두 보살이 새겨져있다. 이 불상들은 장안사 나옹(懶翁)스님과 표훈사 김동(金同) 거사의 다툼을 가르기 위한 내기로 새겨진 것으로, 앞쪽의 삼불을 새긴 나용 조사가 이겨 김동이 금강산을 떠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실제로는 입상(立像)인 세 부처를 좌상으로 표현하였고, 새겨져 있지 않은 연꽃도 표현하여 부처임을 강조하였다.
07. 만폭동(滿瀑洞) : 만폭동은 내금강의 상봉인 비로봉 중향성(中香城)일대의 여러 갈래 계곡물이 합쳐지는 계곡이다. 아홉 개의 폭포와 흑룡담ㆍ벽하담ㆍ분설담ㆍ진주담ㆍ구담ㆍ선담ㆍ화용담 등 담(潭)들이 이어져 만폭동(滿瀑洞)이란 이름이 붙었다. 층층이 이어지는 폭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08. 보덕암(普德庵) : 내금강 만폭동 분설담의 오른쪽 절벽에 철기둥으로 바쳐 매달아 놓은 듯 서 있는 암자이다. 고구려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이후 조선시대에 중건되었다. 보덕굴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에서 마음씨 착한 보덕각시가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전설이 있다.
09. 묘길상(妙吉祥) : 만폭동(萬瀑洞)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이다. 고려 말기에 묘길상 암자를 중창한 나옹(懶翁)이 직접 새겼다는 설이 있는 좌불상으로 본래 연화대좌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그림에서 연화를 그려 넣어 불상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10. 비로봉(毘盧峰) : 금강산 봉우리 중 제일 높은 봉우리로 장안사, 명경대, 표훈사, 정양사, 마의태자묘 등 금강산의 주요 명소들이 이 봉우리의 아래에 있다.
11. 온정령(溫井嶺) : 공성군과 금강군, 내금강과 외금강을 연결하는 고개길이다. 고갯길의 구비가 무려 1백6개나 되어 매우 가파르지만 주변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12. 구룡담(九龍潭) : 구룡폭포를 타고 내려온 물이 고이는 못이다. 구룡폭포는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암봉들 사이의 긴 계곡을 지나 커다란 목표를 이루는 장관이 구룡담에 떨어지는 물기둥의 모습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13. 유점사(楡岾寺) : 금강산 4대 사찰가운데 하나이다. 신라 유리왕 23년에 창건된 사찰로 고려 때 민지(閔漬)가 쓴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 유래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왕실의 도움을 받아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 인도에서 조성된 53불이 전해져 유점사를 지었다고 하는 창건설화가 전한다. 일제강점기때 31본산 중의 하나로 많은 사진자료가 남아 있다.
14. 신계산(神溪寺) : 외금강 온정리(溫井里)에서 옥류동(玉流洞)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사찰로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한 때 11개의 전각을 거느릴 정도로 큰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근현대까지 명승들을 배출하였으며, 절 주변에 울창한 숲이 유명한다.
15. 옥류동(玉流洞) : 옥류동이라는 이름은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옥구슬을 굴리는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류폭포에서 물줄기가 떨어져 옥류담에 고이는데, 옥류담은 금강산의 담(潭)가운데 가장 크다.
16. 금강문(金剛門) : 금강문은 본래 불교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는 문으로 흔히 인왕상이라 불리는 두명의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어 인왕문이라고도 한다. 금강산의 많은 유적들이 불교와 관련이 있는데 금강산에는 모두 8개의 금강문이 있다.
17. 만물상(萬物相) : 금강산의 가장 대표적인 경승이다. 지질변화로 생긴 바위에 기둥들이 스님의 모습 같기도 하고, 동물 모양 같기도 한 천태만상의 모양으로 우뚝우뚝 솟아 만물상이라 부른다.
18. 은선대(隱仙臺) : 금강산 효운동에 있는 이름난 전망대이다. 바위 정상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가 있어 자연적으로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일출봉, 월출봉, 장군봉, 채하봉, 집선봉 등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와 금강산에서 주변 경치를 구경하는데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19. 십이폭포(十二瀑布) : 금강산 4대 폭포 중에서 가장 긴 폭포이다. 벼랑에서 12개의 층을 따라 꺾여 내리는 ‘십이폭포’는 규모가 커서 맞은 편 벼랑 위의 은선대나 불정대 아니면 잘 볼 수 없다. 십이폭포의 단풍 풍경이 유명하다.
20. 총석정(叢石亭) : 강원도 통천에 있는 정자이다. 현무암 기둥이 다발처럼 묶여 있어서 총석(叢石)이라 부르는데, 신라시대 화랑 4명이 풍류를 즐겼다는 사선대(四仙臺)가 유명하다. 원래 총석정(叢石亭)은 이곳의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바위위에 세운 정자를 이르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주변 일대를 통칭하게 되었다. 이 주변에서는 이곳을 통천금강이라 부른다.
21. 청간정(淸澗亭) :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동해바다가 접해있는 절벽위에 있는 정자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달뜨는 모습이 유명하여, 많은 예술작풍의 소재가 되었다.
22. 경포대(鏡浦臺) : 강릉 서쪽 언덕 위에 있다.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고하여 경포호라 부른다. 경포대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하는데, 하늘에 있는 달, 출렁이는 호수 물결에 춤추는 달, 파도에 반사되어 어른거리는 달, 위에서 벗과 나누어 마시는 술잔 속의 달, 벗(님)의 눈동자에 깃든 달이 그것이다.
23. 삼일포(三日浦) : 강원도 고성 외금강 입구에 있는 호수이다. 호수 주위의 봉우리 풍경이 수면에 비쳐 아름다운 곳이다. 신라시대에 영랑(永郞)ㆍ술랑(述郞)ㆍ남석랑(南石郞)ㆍ안상랑(安祥郞) 등 사국선(四國仙)이 뱃놀이를 절경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고해서 삼일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24. 죽서루(竹西樓) : 고려 13세기 이전에 창건되었다. 근처에 대나무 밭이 있고 그 밭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동팔경 명소가 모두 바닷가에 있으나 죽서루만 안쪽에 위치해 있다.
25. 낙산사(落山寺) : 강원도 양양(襄陽郡)에 있으며, 낙산사(落山寺)는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인도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의 이름에서 따온 바닷가 동굴에 관음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의상(義湘)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자 이곳까지 찾아와 계시를 받고 지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주위경관이 빼어나고 동쪽 멀리 떠오르는 아침 해, 저녁 달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26. 망양정(望洋亭) :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정자로 조선조 숙종(肅宗)이 관동팔경의 그림을 보고 이곳이 가장 좋다고 하여 친히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글씨를 써 보내였다고 한다.
27. 월송정(越松亭) :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 중기와 일제강점기에 중건하였다. 월송정은 신라의 호수이다. 호수 주위의 봉우리 풍경이 수면에 비쳐 아름다운 곳이다. 신라시대에 영랑(永郞)ㆍ술랑(述郞)ㆍ남석랑(南石郞)ㆍ안상랑(安祥郞)이라는 네 화랑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달을 즐겼다해서 월송정이라고했다는 설과 월국(越國)에서 소나무를 가져다 심었다하여 월송이라고했다는 설이 있다. 정자 주변의 해송 숲과 동해바다를 보는 풍경이 유명하다.
• 윤리문자도(倫理文字圖)
윤리문자도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즉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 나라와 군신에 충성, 사람간의 믿음, 예의, 의리, 청렴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몸가짐의 의미로 각각의 고사(故事)를 상징하는 내용을 그렸다.
01. 잉어 : 왕상이 얼음을 깨고 잉어를 얻다[王祥得鯉, 王祥氷鯉, 王祥鯉魚, 王祥叩氷]. 중국 진(晉)나라 사람 왕상(王祥)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그의 병든 계모가 엄동설한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왕상이 도 끼로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잉어를 잡으려 하자, 얼음이 깨지면서 잉어가 튀어 올라 이를 잡아 어머님께 드렸다는 고사를 배경으로 문자도에서 잉어는 왕상의 효행을 의미한다.
문자도 효(孝)
02. 죽순ㆍ대나무 : 맹종이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하다[孟宗泣竹, 孟宗雪筍, 孟宗孟宗]. 중국 오(吳)나라 사람 맹종(孟宗)의 늙은 어머니가 한겨울에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맹종이 죽순을 구하러 다녔으나 구하기 어려워 대나무밭에 며칠 눈물을 흘리며 울었는데,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죽순이 돋아나 어머니께 드렸다. 이러한 고사를 배경으로 문자도에서 죽순, 대나무는 맹종의 효행을 의미한다.
03. 부채 : 황향이 부채질로써 베개를 시원하게 하다[黃香扇枕]. 중국 한(漢)나라사람 황향(黃香)은 효성이 지극하여 더울 때는 부모가 누워계시는 베개에 항상 부채질을 하고, 추울 때는 자신의 체온으로 부모를 안아 따뜻하게 해드렸다. 이 고사를 배경으로 부채는 황향의 효행을 의미한다.
04. 거문고 : 순임금이 거문고 타다[大舜彈琴]. 중국 고대 오황(五皇) 가운데 한명인 순임금은 어려서 눈먼 아버지와 계모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부모를 정성껏 모셨다. 장성해서 집을 떠나 역산(曆山)에서 황무지를 개간하는 등 두루 경험을 하였고, 하는 일마다 모두 잘 하여 백성들이 따랐다. 이러한 순임금은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그에게 천하를 물려주었던 요임금이 그의 딸 이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시집보낼 때 준 오현금(五弦琴)을 잘 탔다. 거문고는 순임금의 효심을 의미한다.
05. 귤 : 육적이 귤을 품다[陸績懷橘, 陸氏橘]. 중국 한(漢)나라 사람 육적(陸績)은 귀한 귤을 얻었으나 먹지 않고 품속에 감추었다. 하직인사를 할 때 귤이 품에서 떨어졌다. 귤을 몰래 감춘 이유를 묻자 귀한 귤을 혼자 먹을 수 없어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어서였다고 대답하였다. 문자도에서 귤은 이러한 육적의 부모섬기는 마음을 의미한다.
안동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06. 산앵두나무 : 산앵두나무[常棣]는 줄기가 길어 꽃이 아래로 늘어지면서 꽃받침이 서로 함께 모여 꽃을 핀 모양이 매우 화사한데, 이러한 모양이 형제간의 서로 모여 도우며 사는 우애있는 모습에 비유된다.
07. 할미새 : 할미새는 걸어갈 때 꼬리를 흔들고, 날아갈 때는 울기를 끊이지 않는데 호들갑스러운 이 모양을 급한 일을 당하면 바끄게 움직여 서로 도우며 사는 형제의 우애있는 모습에 비유한다. ‘悌’자에 등장하는 상체와 할미새가 형제간의 우애에 비유되는 것은『시경(詩經)』「소아(小雅), 상체편(常棣篇)」에 나오는 글에서 연유한다. ‘환하게 빛 넘치는 산앵두꽃 피었네 / 세상 사람중에서 형제 같음 또 없네 / 들의 할미새 호들갑 떨 듯 형제 어려움 급히 구하네 / 아무리 좋은 벗 있어도 그럴 때 탄식만 하리 / 집마다 화목하여서 처자들 즐거우려면 / 형제의 도리 생각해보게 / 그게 앞섬을 알게되리.’
08. 잉어ㆍ용 : 잉어가 용이되다[魚變成龍, 登龍門]. 중국 황하(黃河) 상류의 용문협곡(龍門峽谷)에는 해마다 봄이되면 잉어들이 모여 급류를 다투어 뛰어 오르는데, 이때 성공적으로 협곡을 통과하면 용이 된다고 하는 설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선비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을 비유하여 과거급제를 상징하는데, 충(忠)자는 높은 관직에 올라 나라에 충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09. 새우ㆍ조개 : 화합하고 서로 기뻐한다.[蝦蛤相賀]. 새우의 ‘하(蝦)’는 ‘화(和)’와 발음이 유사하고 대합의 ‘합(蛤)’이 ‘합(合)’과 발음이 같은데서 연유하여 화합의 의미를 갖는다. 새우와 조개를 잉어가 용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의 좌우에 배치하여 군신(君臣)이 화합하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새우와 조개가 딱딱한 껍질에 싸여있는 갑각류(甲殼類)이기 때문에 십간(十干)중의 첫째인 ‘갑(甲)’에 비유하여 ‘최고’의 뜻을 부여하고 딱딱한 껍질에 ‘굳은 지조’의 뜻을 부여하여 최고의 굳은 지조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10. 새우ㆍ대나무 : 대나무는 곧은 절개를 의미하며, 새우는 딱딱한 껍질에 싸여 있어 굳은 충절을 의미한다. ‘충(忠 )’자에는 선비의 굳은 절개를 대나무와 껍질에 싸여있는 새우가 용을 대신하여 그려지기도 한다.
11. 청조 : 중국 도대의 설화인 서왕모(西王母) 설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로 얼굴은 사람, 몸은 새의 형상을 가졌다. 서왕모가 등장하는 곳에 항상 청조가 먼저 와서 서왕모의 출현을 알린다. 한(漢)나라 뭬(武帝)의 궁전에 청조가 나타나자 동방삭(東方朔)이 이를 보고 ‘서왕모가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입에 물거나 목에 걸고 있는 형태로 그려진다. ‘신(信)’자에서 청조가 물고 있는 편지는 사람간의 말과 언약을 의미하며, 사람간의 말과 언약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人言爲信]는 의미를 갖는다.
12. 춘궁 : 청조가 나타나 서왕모가 한 무제의 춘궁에 온다는 소식을 전한다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3. 흰기러기 : 중국 한(漢)나라 소무(蘇武)라는 사람이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었는데 이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기러기를 통하여 상림원(上林苑)에 알렸다고 하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상림원에 알리는 편지를 입에 물고 있거나 발목에 묶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14. 거북이 : 중국 하(夏)나라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이의 등에 글이 쓰여 있었는데 이것을 기본으로 우(禹)왕이 요순이래 정치대법을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가지법[九疇]’을 말하였다.[河圖洛書] 그 가운데 여섯 번째 예용삼덕(乂用三德)의 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이 예(禮)의 기본이라고 하여 거북이가 ‘禮’의 상징물로 등장한다. 거북이의 드에 지고 있는 것은 구조가 실려 있는 『서경(書經)』(주서, 周書)을 표현한 것이다.
15. 행단과 책 : 분홍꽃이 핀 살구나무와 책은 공자(孔子)가 행단(杏亶)에서 제자들에게 예를 강론하였다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6. 물수리 연꽃 : 부부간의 ‘의(義)’를 상징한다. 『시경』「주남(周南)ㆍ관저(關雎)」시에 ‘물가에서 물수리 한 쌍이 울고, 어여쁜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네’라는 내용에서 물수리를 남녀 또는 부부간의 좋은 인연과 ‘의(義)’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물수리는 연못가에 날아들므로 연꽃과 함께 그린다.
17. 복숭아나무 :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桃園] 아래에서 의형제를 맺으며 결의(結義)하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18. 게 : 한천의 담계는 나가고 물러날 때를 안다. [廉溪寒泉 前進後退] 염계(廉溪)는 중국 송대의 성리학자 주돈이(朱敦頣)의 홀로 그가 살던 곳의 개울에서 따왔다. 주돈이는 청렴하여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나아감과 물러남에 절도가 있어 후세에 모범이 되었다. 이와 같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상황에 따라 전진후퇴를 반복하면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서 자유롭게 전진후퇴를 반복하면서 먹이를 찾는 게[蟹]의 모습을 그린다.
19. 봉황 : 봉황은 살아있는 벌레는 먹지 않으며, 모여 살지 않고, 어지럽게 날지 않으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배가 고파도 조[粟]를 먹지 않는다. 봉황의 이러한 곧고 절도 있는 성품이 아무리 없어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자신의 도리를 지키는 청렴한 모습이라 하여 ‘염(廉)’자의 상징물로 등장한다.
20. 소나무 : 고향으로 돌아와 국화를 돌보다[栗里松菊] 중국 송(宋)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13년간의 관직생활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고향으로 돌아와 국화와 소나무를 돌보며 은둔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소나무는 이처럼 세상에 욕심없이 살아가는 도연명의 생활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국화를 표현한 것도 있으며, 도연명이 뜰 앞에 수양버들을 다섯 그루를 심고 호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한 것에서 버드나무를 그린 경우도 있다.
21. 울림석 : 울림에서 돌아올 때 배에 돌을 싣다[鬱林載石] 중국 오(吳)나라 육적(陸績)은 울림(鬱林)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나 돌아올 때 가진 물건이 거의 없어 그를 태운 배가 무게를 잡지 못할 정도로 강을 건널 수 없자 돌을 실어 가까스로 건넜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에서 연유해서 울림석(鬱林石)은 퇴직할 때 아무 재물도 모은 것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청렴한 관직생활을 상징한다.
22. 수양산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은(殷)나라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죽은 뒤 형제가 서로 왕위를 양보하고 나라를 떠났다. 그 무렵 무왕(武王)이 아버지 상중에 전쟁을 일으켜 은나라를 치고 주(周)왕조를 세웠다. 형제는 이러한 행위가 인의(仁義)를 거스른 것이라 하여 무왕을 섬기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서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생을 마쳤다. 이후 백이숙제는 부끄러움을 아는 청절(淸節)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졌으며, 그들이 살던 수양산을 그려 백이숙제의 절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23. 달ㆍ매화 : 백이숙제가 옳지 않은 행동에 부끄러움을 알고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숨어 살면서 달과 매화 같은 자연을 벗삼아 일생을 보냈는데[水陽梅月 夷齊淸節], 이처럼 지조를 지키기 위해 자연은일 하는 생활을 달과 매화로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달에는 대개 두꺼비나 계수나무아래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가 표현되는데 이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아난 월신(月神) 항아(姮娥)의 전설이 접목되어 함께 표현된 것이다.
24. 충절비 누각 : ‘지조를 지키며 수양산에서 은둔생활로 일생을 마친 백이숙제의 뜻을 충절비로 상징적으로 나타내었으며, 누각이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비석에는 ’百世淸風 夷齊之碑‘라는 비명(碑銘)이 쓰여 진다.
•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고사(故事)에 나오는 인물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대개 『오륜행실도』에 나오는 인물들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나 속세를 떠나 자연에 은둔하는 처사들과 관련된 고사들이 그려진다.
01. 환영이 무덤을 만들다[桓榮奔葬] : 한나라 환영이라는 사람이 주희(朱熹)을 섬겨 상서(尙書)를 배웠는데, 주희가 죽자 환영이 흙을 져 날라 무덤을 만들어 사생(師生)간의 도리를 극진히 하였다는『오륜행실도』부록편에 나오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02. 유곤이 병을 낫게 하다[庾袞守病] : 진나라 유곤이라는 사람에게 여러 형제가 있었는데, 마을에 열병이 크게 돌아 두형이 죽고 큰형마저 병이 들었다. 그러자 부모와 형제들이 병이 옮을까 두려워하다 피해갔는데, 유곤이 홀로 형을 보살펴 형의 병이 나았다는 형제애를 그린 것이다.
03. 군량이 처를 내쫓다[君良斥妻] : 군량은 4대가 한집에서 살았다. 마을에 흉년이 들자 그의 아내가 까마귀를 서로 싸우게 하고 이를 보며 어려운 상황에서 함께 살면 다투게 된다고 꼬여 종친간에 따로 살도록 하였다. 그러나 까마귀를 서로 다투게 한 것이 아내의 계략임을 알고 군량의 아내를 내쫓고 종친간에 다시 모여 화목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04. 서회가 친구의 면책을 탄원하다[徐晦不負] : 당나라 사람 서회는 친구 양빙(陽憑)이 귀양을 가게 되자 다른 친구들은 죄에 함께 엮일까 두려워해서 멀리 했던 것과 달리 혼자서 양빙의 귀양길을 전송하고 그의 죄없음을 탄원하였다는 친구간의 우정을 그린 것이다.
05. 제상이 충성을 받치다[堤上忠烈] :『삼국사기』에 나오는 충신 박제상의 일화를 그린 것이다. 신라 눌지왕은 고구려와 왜(倭)에 볼모로 잡혀갔던 두 동생을 몹시 보고 싶어 했다. 박제상은 임금의 명에 의해 고구려에 들어가 왕의 동생 복호를 구해냈다. 그 다음 왜에 건너가 또 다른 동생 미사흔을 구해 냈으나 박제상은 왜에 잡혀 왜 왕의 신하가 될 것을 강요당하다 죽임을 당하였다. 박제상이 눌지왕의 둘째 동생을 구해 배에 태워 보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06. 왕씨가 제비를 감동시키다[王氏感燕] : 왕씨는 송나라 위경유의 처인데 나이 16세에 경유가 죽으니 부모가 개가시키려하자 왕씨 귀를 (잘라)버리고 맹서하며 지아비 무덤 앞에 나무 수백그루를 심었다. 그 중에 잣나무가 갑자기 서로 연리(蓮理)되었다가 한 해만에 다시 나뉘어 진 곳의 창 위에 제비를 길들였는데, 제비들이 늘 쌍으로 다니다가 홀현히 암제기가 외로이 날아 다니니 왕씨가 제비 발에 실을 매어 보냈는데, 다음에 다시 돌아왔다.
07. 흙다리에서 신을 바치다[泥橋納履] : 한고조 유방을 도와 초(楚)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장량(張良)이 흙다리에서 황석공(黃石公)이 던진 신발을 주워 바치고 태공망(太公望)의 병서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다.
08. 허유가 영천에서 귀를 씻다[許由耳洗] : 중국 고대에 속세를 떠나 은둔하는 대표적인 두 사람 허유(許由)와 소부(巢夫)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요(堯)임금이 자리를 물려줄 사람을 찾다가 허유(許由)라는 은둔하는 고사(高士)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나라를 맡아달라고 하자 허유는 이를 거절하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 하여 영천(潁川)으로 달려가 귀를 씻었다. 그때 마침 소부(巢夫)가 말에게 물을 먹이러 나왔다가 귀를 씻는 까닭을 듣고 더럽혀진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먹이지 못하겠다하고 떠나 버렸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귀를 씻는 허유와 소에게 물을 먹이러 온 소부를 그렸다.
09. 상산의 신선이 된 네노인[商山四皓] : 중국 섬서성(陝西省) 상현(商縣) 동쪽에 있는 상산(商山)에는 진(秦)나라 말기에 난을 피하여 은거한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각리선생(角里先生) 네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이 장생(長生)의 신약 자지초(紫芝草)를 캐 먹고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네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10. 위수에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渭水釣魚] : 강태공은 중국 은(殷)나라 말 주(周)나라 초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자신이 활약할 때를 기다리며 위수(渭水)에서 낚시로 세월을 보내었다. 주나라의 문왕(文王)은 태공(太公)이 현자(賢者)임을 알아보고,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 칭하고 군사(軍師)로 맞아들였다. 강태공은 주나라가 은나라를 명망시킬 때 큰 공을 세워 제후(齊侯)로 봉해졌으며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문왕의 사신이 위수에서 낚시하고 있는 강태공을 찾아 간 장면을 그린 것이다.
11. 신통력을 지닌 은거 신선 장과노 : 당나라의 도술사였던 장과노(張果老)이다. 원래 이름은 장과(張果)인데 나이가 많다 하여 장과노로 불렀다. 장과노는 중조산(中條山)에 은거 하면서 (汾)과 진(晉) 사이를 왕래하였다 하는데, 하루에 수백리를 다녔으며 쉴때는 나귀를 종이처럼 접어서 갓 상자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당나라 현종의 그의 기이한 술법에 탄복하여 옥진 공주를 시집보내고자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산속으로 돌아갔다. 장과노는 신통력을 지닌 신선이면서 속세를 떠나 은거 하면서 취흥에 젖은 선비에 비유한다.
12. 은둔 처사 도연명 :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도연명이 관직을 그만두고 속세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지었다는 귀거래사에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쉬며,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본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시를 배경으로 은둔처사인 도연명을 그린 것이다.
13. 행화촌(杏花村) : 행화촌(杏花村)은 산동성 분양현의 마을로 남북조시대부터 신천수로 빚은 술이 유명하였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에 언급되면서 행화촌은 술집을 뜻하기도 하며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찾는 마을, 살구꽃 피는 평화로운 마을을 뜻하게 되었다. ‘청명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淸明時節雨紛紛) / 길손의 마을을 흔들어 놓는데(路上行人欲斷魂散) / 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問酒家何處有) / 손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牧童遙指杏花村)’
14. 백파주(百坡舟) : 사람들을 실은 배가 사찰이 있는 강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그렸는데, 소동파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고사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15. 오류촌(五柳村) : 동진(東晋)ㆍ송(宋)나라의 도연명은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이시기에 지은 것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심정을 적은 글이다. 그는 집 옆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자신의 호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하였다. 오류촌은 도연명이 거처하던 마을로서 속세를 떠난 은둔처를 의미한다.
16. 한산사(寒山寺) : 양(梁)나라때 창건된 절로 당나라 기인(奇人) 승려인 한산(寒山)과 그의 동료인 습득(拾得)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산은 시인으로 3백여수의 시를 남겼으며, 이후 유명한 시인들이 이 절을 찾아 시를 남겼다. 그중 장계(張繼)의 시 ‘풍교야박(楓橋夜泊)’으로 한산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 江楓漁火對愁眠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17. 강산사립옹(江山蓑笠翁) : 강태공을 그린 것으로, 강산사립옹((江山蓑笠翁)은 강태공을 말한다. 강태공은 중국 은(殷)나라 말 주(周)나라 초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자신이 활약할 때를 기다리며 위수(渭水)에서 낚시로 세월을 보내었다[渭水釣魚] 주나라의 문왕(문왕(文王)은 태공(太公)이 현자(賢者)임을 알아보고,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 칭하고 군사(軍師)로 맞아들였다. 강태공을 군사로 삼기위해 문왕이 사람을 보낸 장면이다.
18. 복숭아 밭에서 결의를 맺는다[桃園結義] :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의기투합하여 장비의 집 후원 복숭아밭에서 소와 말을 잡아놓고 향을 불사르며 의형제의 결의를 맺었다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19. 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군을 물리치다 : 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는 장면이다. 조운이 조조군에 잡혀간 유비의 부인과 아들을 구하러가자 이를 쫓아간 장비가 장판교에서 대군이 있는 것처럼 꾸미고 조조군과 맞딱뜨렸다. 천하를 뒤흔드는 듯 고함을 지르자 조조의 군대가 놀라 달아났다. 조조 옆에 있던 하후걸이 고함에 놀라 말에서 굴러떨어지고, 갑옷을 벗어던지고 투구를 떨어뜨린 자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20. 관운장이 먼길을 떠나다[關雲長千里獨行] : 조조가 유비를 공격하여 유비는 달아나고 관우는 조조에게 잡히게 된다. 조조는 관우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극진히 대접하나 끝내 관우는 조조를 마다하고 유비를 찾아 길을 떠난다. 이때 조조가 성 밖 파릉교까지 나가 관우를 배웅하였는데, 장료를 시켜 옷을 선물하니 관우가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청룡언월도로 받는 장면을 그렸다.
21.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다[三顧草廬] : 조조는 관도에서 원소를 물리친 유비를 공격하고, 유비는 조조에게 쫓기어 형주(荊州)에게 몸을 맡기게 된다. 유비는 조조에게 패한 것이 참모의 부재하고 판단하여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에게 제갈 량을 추천받았다. 유비는 장비, 관우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으로 갔는데,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간 세 장수를 그렸다.
22. 동탁 토벌군이 관을 칠 때 세 영웅이 여포와 싸우다 : 동탁이 낙양의 실권을 쥐고, 황제의 폐립을 강행한다. 정원(丁原)은 이를 반대하여 낙양으로 가서 동탁(董卓)과 싸우는데, 이때 여포는 정원과 함께 싸우다가 동탁에게 적토마를 얻고 배신하여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심복이 된다. 동탁이 왕을 폐립하고 대신 진류왕을 세워 전횡하자 조조를 비롯한 동탁 토벌군이 일어난다. 동탁은 여포 등과 함께 직접 오로관에서 토벌군들과 싸움을 벌이는데, 여포가 많은 토벌군들을 멸하였다. 이 때 토벌군 가운데 유비, 장비, 관우 삼형제가 차례로 여포와 대결하다 여포가 쫓겨 달아나고, 관우, 장비, 관우가 여포를 추격하는 장면을 그렸다.
23. 채양을 죽여 의심을 풀다 : 관우가 유비의 두 부인을 데리고 조조로부터 탈출해 장비가 지키고 있는 고성으로 간다. 이때 관우의 뒤에는 조조의 병사들이 뒤쫓고 있었다. 관우가 조조에게 의탁해 변심했다고 생각한 장비는 자신이 세 번 북을 칠 동안 조조의 병사 채양을 죽여 의심을 풀라고 하였고, 이에 관우는 채양을 죽여 의심을 푼다. 이때 장비가 북을 치고 관우가 채양을 공격하는 장면을 그렸다.
24. 성진이 팔선녀와 석교에서 희롱하다 : 중국 당나라 때 남악 형산(衡山) 연화봉에 서역(西域)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참석한다. 이에 육관대사는 제자 성진을 보내 용왕에게 사례하도록 했는데, 성진은 불교의 오계(五戒) 중 주계(酒戒)를 깨뜨리고 용왕의 술대접을 받고 돌아오다 형산 선녀 위부인의 팔선녀와 석교(石橋)에서 만나 희롱한다. 선방(禪房)에 돌아온 성진은 팔선녀의 미모에도 도취되어 불문(佛門)의 적막함에 희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영화를 원하다가 팔선녀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추방된다. 성진이 석교에서 팔선녀와 마주치는 장면이다.
25. 진채봉을 만나다 : 인간세상에서 성진은 회남 수주현 양처사(梁處士)의 아들 양소유로 태어난다. 소유는 15세가 되어 과거를 보러 나귀를 타고 삼척 서동(書童)을 데리고 길을 떠나 화주 화음현에 도착한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한 작은 누각에서 춘흥을 이기지 못하여 버들을 비스듬히 잡고 「양류사(楊柳詞)」를 지어 읊으니 누각에서 낮잠자던 어사의 딸 진채봉이 이를 듣고 베개를 밀치고 옥난간에 비껴서서 보다가 양생과 눈이 마주친다. 이에 진채봉이 시를 지어 화답하고 서로 마음을 주고 인연을 맺고는 혼인을 약속한다. 양소유가 양류사를 읊는 소리에 누각에서 내다보는 진채봉의 모습을 그렸다.
26. 계섬월을 만나다 : 남전산에 들어가 난을 피한 양생이 다시 과거를 보러 올라간다. 낙양에 이르러 황룡이 굽이를 편 듯한 모양의 천진교(天津橋)가에 한 누각이 있어 단천은 찬란하고 난간은 층층하였다. 금안장을 한 좋은 말들이 좌우에 매어 있고 누각의 비단 장막을 가운데 온갖 풍류 소리가들려 가보니 선비들이 기생들을 데리고 연회를 베푸는데, 양생은 이 연회에 참석하여 계섬월을 만난다. 연회에서 글짓기 놀이에 이긴 양생은 계섬월과 인연을 맺게 된다. 기생들과 선비들이 어우러져 연회를 하고 있는데 양생을 쫓아 자리를 뜨고 있는 계섬의 모습을 그렸다.
27. 정경패를 만나다 : 춘명관 두연사가 양생의 베필로 정사도집 딸을 소개하자 직접 보고자 하였다. 정사도의 부인과 그의 딸이 거문고를 좋아하고 음을 잘 안다고 하여 양생이 여장을 하고 들어가 거문고를 켠다. 양생은 그 길로 과거에 급제하고 한림학사가 되어 다시 정사도의 집을 찾아가자 정사도가 자신의 딸과 혼인을 청하고 양생이 이를 받아들여 정경패와 혼인을 언약한다. 양생이 정사도의 집에 여장하고 들어가 가문고를 켜는 장면이다.
28. 장녀랑(春雲)과 인연을 맺다 : 정경패가 사촌 정십삼과 모의하여 시비 춘운으로 하여금 양생을 먼저 모시게 하여 종남산(終南山) 자작봉(紫閣峯)에 작은 방을 짓고 양생을 유인한다. 양생 혼자 종남산을 거닐다 시냇가 선도에 이끌려 선녀가 사는 방으로 안내된다. 이곳에서 차와 과일과 자하주(紫霞酒)를 대접받고 선녀와 인연을 맺고는 돌아온다. 다음날 정양과 다시 그곳을 찾았으나, 후에 이 일이 정사도와 그 딸이 양생을 위로하기 위함임을 알게 되고 장녀랑의 혼은 정경패의 시비 추운이었음도 알게 된다. 양생이 시냇가를 따라 선녀의 방으로 안내되는 모습과 기다리는 선녀와 양생에게 대접할 차와 과일을 들고 있는 선동을 그렸다.
29. 난양을 만나다 : 황태후에게 사랑하는 딸 난양 공주가 있었다. 서역국(西域國)에서 진상한 백옥 퉁소를 아무도 소리 내지 못하다가 공주가 꿈에서 선녀에게 베워 퉁소를 부니 그때마다 청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 태후는 늘 난양을 신선 같은 사람에게 시집보내리라 하였다. 양생이 하루는 한림원서 난간에 기대어 달을 구경하는데, 아름다운 퉁소소리가 들렸다. 이를 듣고 양생도 백옥 통소를 내어 한 곡조를 부니 청학과 백학이 공중에서 내려와 뜰에서 춤을 추었는데, 바로 공주의 퉁소소리에 춤추던 학이었다. 이에 태후는 양생을 부마로 삼고자 하였다. 퉁소를 불고 있는 난양과 양소유, 그 소리에 춤추고 있는 학을 그렸다.
30. 심요연을 만나다 : 양소유가 변방에 들어온 토번(吐藩)병사를 평정하고 토번 땅에 들어가 오십여 성(城)을 항복받았다. 적절산 아래에 군사를 머물게 하고 촛불을 밝히고 병서를 보는데 문득 팔척 비수를 든 여자가 공중에서 내려와 상서의 머리를 베러 왔다고 하였다. 이에 큰 베포로 대하자 그 여자가 자신은 양주사람 심요연으로 한 도사가 자신이 토번에서 양상서를 구하고 연분을 맺을 것이라 하였다고 말하고 인연을 맺는다. 공중에서 심요연이 비수를 들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렸다.
31. 월왕이 연회를 열다 : 양소유가 대승상 위국공이 된 후 승상부 창기(娼妓)를 동부와 서부를 만들어, 동부 사백은 섬월이 가르치고 서부 서백 인은 경흥이 가르쳤다. 풍류를 좋아하는 월왕이 무창(武昌)의 명기(名妓) 만옥연을 얻어두고 승상의 창기들과 겨루기를 제안하고 잔치를 벌였다. 월왕과 승상은 말도 자랑하고 활 쏘는 법도 시험하여 서로 칭찬하다가 장막 밖의 무사들이 활 쏘고 말 달리는 것을 보고 미인들이 말타고 활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자 경홍이 활을 배워 활을 쏘고 심요연은 검술을, 백능파는 비파를 탔는데 모두 잘하였다. 이들이 활쏘고 검술을 하고 비파는 타는 장면을 그렸다.
• 화조도(花鳥圖)
화조도에 등장하는 새와 꽃, 식물들은 주로 생태학적 특성이나 이름에서 연관된 의미로 그려진다. 새의 경우 암수가 서로 사이가 좋다고 알려진 것들이 그려지고 함게 그려진 꽃이나 식물과 연관해서 다산이나, 화목 등의 의미를 갖는다. 생긴 모스이나 깃털 색 등은 사실적이지 않은 것들이 많다.
01 기러기 : ‘안(雁)’이라 쓰고 옹계(翁鷄)ㆍ홍안(鴻雁)이라고도 한다. 혼례에 기러기를 쓰는데, 기러기가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오고 봄이 되면 북쪽으로 가는 것을 음양에 순응하기 때문이라 해석하여 남겨가 음양에 따르며 살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기러기는 날 때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답하여 예의가 있으며,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앟으니 절개가 있다고 하여 암수 서로간에 신의가 깊고 부부가 백년해로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갈대와 같이 그려지는 기러기는 갈대(蘆), 기러기(雁)자가 노(老), 안(安)과 발음이 같아 노년으 평안 즉 부부가 늙어서 까지 평안하게 산다는 뜻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화조도(花鳥圖)
02. 원양 : 원양의 수컷(鴛)과 암것(鴦)을 합쳐 불러 원앙이라 한다. 중국 진(晋)나라 최표의 「고금주(古今注)」에는 ‘원앙이 암컷과 수컷이 서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 마리가 사라지면 남은 한 마리는 제짝을 그리다가 죽고 만다. 그래서 원앙을 필조(匹鳥), 즉 베필새라 한다’고 나와 있다. 원앙의 이러한 습성 때문에 금슬 좋은 부부를 원앙에 비유한다. 또한 부부가 금슬이 좋으니, 귀한 자식이 태어나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03. 금계 : 금계는 비단꿩을 말하는 것으로 준의(鷷鸃)라고도 하는데, 한자 획가운데 의(義)자가 들어가서 군신유의(君臣有義)를 의미하여, 봉황과 비슷하게 생겨서 때로 임금을 상징하기도 한다. 깃털 색에 오방색(五方色)이 다 들어있다 하여 어덕(五德)을 갖추었다고 이야기 된다.
04. 비둘기 : 비둘기는 정해진 짝이 있어 무리지어 살아도 잡스럽지 않으며, 헤어지거나 죽는 경우가 아니면 짝을 바꾸는 법이 없다고 하여 금슬이 좋은 새이다. 또한 비둘기의 종류 가운데 머리 윗부분이 흰 비둘기의 모양에서 연상하여 백두해로(白頭偕老) 즉 부부가 검은 머리가 희게 되도록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
05. 수대조 : 수대조(綏帶鳥)의 수(綏)는 수(壽)와 동음이며, 인수(印綬)의 수(綏)라는 의미도 지닌다. 대(帶)는 고관의 의복에 하는 옥대(玉帶)를 의미하여 부귀를 의미하여, 대(代)와 동음 동성으로 만대의 ‘대’와 의미가 통하기 때문에 부귀만수(富貴萬壽)를 의미한다.
06. 앵무새(鸚鵡) : 암수가 서로 좋은 금슬을 보여주는 생태적인 특성은 없다. 다만『삼국유사』「흥덕왕과 앵무새」란 글에서는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이 앵무새 한 쌍을 가지고 왔는데, 암놈이 죽자 수놈이 슬피울었다. 이에 그 앞에 거울을 걸어주니 수놈이 짝인가 싶어 쪼아대다가 아닌 것을 알고 슬피울다 죽었다는 내용이다.
07. 꿩(鷳) : 꿩은 새장에 가두어 길들일 수 없는 새이다. 이러한 특성에서 선비가 높은 사람을 찾아 갈 때 폐백으로 꿩을 주었다. 즉 임금님은 선비를 손아귀에 넣고 함부로 할 수 없으며, 선비는 임금을 보필하되 굳은 지조를 지켜 길들여지지 않도록 한다는 뜻에서 예(禮)를 상징한다.
08. 동박새 : 동박새는 눈가 테두리에 흰실로 수놓은 것처럼 동그란 무늬가 있어 수안(繡眼)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비나 벌이 없는 겨울철에 매화나 동백의 꽃가루를 옮겨다 주어 열매를 맺게 하는 새이다. 또한 동박새는 매화 가지에 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겨울의 계절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09. 봉황 : 수컷(鳳)과 암컷(凰)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고대 중국 전설속에 상상의 어질고 현명한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새이다.『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봉황은 닭처럼 생겼지만 오색의 깃털 무늬를 지니고 울음소리는 오음을 내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의 열매만을 먹고 산다는 상서로운 새로서, 덕(德)ㆍ의(義)ㆍ예(禮)ㆍ인(仁)ㆍ신(信)을 골고루 갖춰 군왕을 상징하기도 하며, 암수가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하여 새끼들과 함께 그려 화목한 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10. 공작 : ‘공작은 모습이 단정하고, 목소리가 맑으며, 걸음걸이가 조심스럽고, 때를 알아 행동하며, 먹고 마시는데 절도를 알며, 분수를 지켜 만족하며, 나뉘어 흩어지지 않으며, 음란하지 않으며, 갓다가 되돌아올 줄 아는 아홉 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아름다움과 위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공작의 꼬리깃털을 내리기도 하였다.
11. 백로 : 백로(白鷺)는 연꽃이나 부용꽃과 함께 그려져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백로 한 마리와 연밥이 있은 연꽃은 ‘일로연과(一鷺蓮果)’라 하여 같은 발음의 ‘일로연과(一路連科)’ 즉 한번에 연달아 초시와 복시의 과거 시험에 급제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부용화의 ‘용화’는 중국 발음으로 ‘영화(榮華)’와 같아 ‘一路榮華)’ 즉 내내 영화롭게 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또한 생김새로 인하여 ‘백두해로(白頭偕老)’, 즉 흰머리 될 때까지 해로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12. 물총새 : 비취빛의 깃털 때문에 비취새(翠碧鳥)로 불리기도 한다. 여름철새이고 연못이나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새여서 주로 연꽃이나 부들과 함께 등장한다. 물고기를 입에 물거나 연밥을 쪼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연밥이 ‘다산’을 의미하므로 물총새가 연밥을 쪼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깃털의 색이 아름다워 문학작품에도 많이 등장한다.
13. 꾀꼬리 : 암수가 함께 생활한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 암수가 사이좋게 노니는 것을 읊은 <황조가(黃鳥歌)>가 전한다. 모습이 아름다운 데다가 울음소리가 맑고 다양해서 예로부터 시나 그림의 소재로 애용되었다.
14. 까지 : 까치는 희작(喜鵲)이라하여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으로 알려져 있다. 까치는 대개 희조(喜鳥)라고 하여 새벽에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 기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까치 두 마리를 그린 그림은 부부가 해로하여 기쁨을 누리다는 뜻이 된다.
15. 매 : 매 응(鷹)자는 영웅의 영(英)자와 중국어 발음이 같아 영웅을 의미한다. 또한 매는 알을 품고 있는 새나 새끼 밴 짐승은 공격하지 않아 의로운 성품을 지닌 새로 묘사된다.
16. 학 : 학(鶴)은 천년이상 산다고 하여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를 의미한다. 사철 푸른 소나무와 함께 그려 오래도록 푸르름(長壽)을 나타내며, 축(祝)과 중국어 음이 같은 내나무(竹)와 함께 그려지면서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가 된다. 두 마리 학은 부부가 해로하여 오래오래 살라는 동춘(同春)을 의미하며, 또한 진흙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하고 고고한 선비를 상징하기도 한다.
17. 닭 : 닭은 힘찬 울음으로 어둠을 밝힌다 해서 벽사(辟邪)의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수탉이 우는 것, 즉 공명(功名)과 같이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과 함께 그려 공명부귀를 의미하며, 중국어로 장닭(大鷄)은 대길(大吉), 집(室)은 바위(石)와 발음이 같아 닭이 바위에 올라가서 우는 그림은 실상대길(室上大吉) 즉, 집안번창을 의미한다.
18. 제비 : 제비는 봄을 알리는 철새이다. 귀소성이 강해서 이듬해에도 잊지 않고 찾아준다고 하여 신의 있는 새로 여겨진다. 지붕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다주는 제비부부의 모습은 화목한 가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곽분양행락도의 그림은 백자천손을 누리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중국 당나라 사람 곽자의(郭子儀)의 성공적인 삶을 소재로 그린 것이다.
01. 곽자의 : 곽자의 오량관을 쓴 모습으로 높은 벼슬을 상징하는 그나 앉은 평상의 왼쪽에는 쌓여있는 책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선비들이 즐겨던 고동품을 그려 넣어 이상적인 선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02. 곽자의 부인 : 화려한 의상을 입고 옆의 누각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는 부인의 모습이다. 닭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데, 닭과 병아리를 함께 그려 다자다손을 상징한다.
03. 8명의 아들과 7인의 사위 : 곽자의의 좌우에 서서 연화를 지켜보는 왼쪽에 8명의 아들과 오른쪽의 7명의 사위들은 모두 관복을 입은 모습으로 자손번창을 보여준다.
04. 오량관을 바치는 사람들 : 양관(梁冠)은 문무백관들이 국가적 경사나 제사를 지낼 때 조복과 함께 착용하던 관이다. 금찰이 되어 있어서 금관이라고도 부르는데, 앞에 있는 줄의 수로 계급을 구분하는데 줄이 5개라서 오량관(五梁冠)이라고 한다. 오량관과 홀을 곽자의에게 바쳐 고관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하였다.
05. 상서로운 동물들 : 고관들에게 공작의 깃털을 하사하던 풍습에서 공작은 높은 관직을 의미한다. 학과 사슴은 천수를 누린 곽자의와 같은 장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06. 바둑 두는 사람들 : 셋 또는 네 명의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치가 열리는 마당을 뒤로하고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인데,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약초를 캐어먹고 신선이 되었다는 상산의 네노인(商山四晧)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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