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장에는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엘, 오난, 셀라 세 아들을 낳습니다.
창세기 27장 46절에는 리브가가 에서의 이방 며느리들 때문에 "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족보를 이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 수아와 결혼을 해서 아들 셋을 낳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 여인이 그저 쉽게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이방의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올 수 있는 경우는 믿음으로 순수 혈통을 획득해야만 되는 일입니다.
룻도 그랬고 기생 라합도 그랬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 사이에 세 아들을 낳았고, 이들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다말은 가나안 사람으로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엘이 죽고, 오난도 하나님 앞에서 악하므로 죽고,
다말은 믿음으로 순수 혈통을 획득하며 예수님의 족보로 들어옵니다.
유다로 인해 베레스와 세라를 낳습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사람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혈통을 이어 가십니다.
(마1:3-6, 16)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타난 이 다섯명의 여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수혈통을 획득하며 성경에 이름을 기록하게 됩니다.
계대 결혼 제도, 고엘 사상
계대 결혼 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는 모세의 율법으로 계시되기 전부터 이미 족장들의 삶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명령)의 형태로 존재해 왔다. 그 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으로 모세를 통해 선포되었다(신 25:5~10).
계대 결혼 제도에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죽은 자의 후손을 잇기 위해 대신 동침하는 행위이며, 다른 하나는 대신 동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고엘)이다. 계대 결혼의 두 가지 의미는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토지 제도 속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즉 가난한 친족을 위해 그 토지를 대신 사 주는 행위와 그 토지를 대신 사 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고엘)이 그것이다(룻 4장).
이처럼 계대 결혼 제도와 토지 제도에는 죽은 자를 대신해 동침해야 할 의무를 가진 자와 희년이 될 때까지 가난한 친족을 위해 대신 토지를 매입해 줘야 할 의무를 가진 자가 언급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을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부른다.
구약 원문에 언급되는 고엘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친족, 기업 무를 자, 구속자, 구속주 또는 대속자 등으로 나타난다.5 고엘의 의무와 역할은 구약 본문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모두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 곧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에 대한 그림자요, 모형이다.
예를 들면, 다말과 동침해 아들을 낳아주는 유다(창 38장), 룻과 결혼해 아들을 낳는 의무를 가진 보아스(룻 4장), 조카 하나멜의 밭을 대신 사 주는 예레미야(렘 32장) 등이 모두 고엘이다.
가난한 친족을 위해 대신 땅을 사 주는 기업 무를 자와 죽은 형제를 위해 대신 동침해 아들을 낳아 주는 구약 시대의 고엘 제도는 후손을 보존하고 가난한 친족을 보호하여 대를 잇게 하는 당시 사회법인 동시에 영적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모형이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 곧 대속적 죽음인 것이다.
고엘 사상은 계대 결혼 제도와 토지 제도 외에도 짐승의 피가 대신 뿌려지는 제사 제도 및 여호와 하나님을 구속자 또는 구속주로 부르는 하나님의 호칭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예표 및 모형으로 구약 본문 전체에 걸쳐 포괄적으로 나타난다. 본래 계대 결혼은 언약의 특성상 창조 언약인 결혼 제도와 더불어 구속 언약인 아담의 후손 언약과 함께 경건한 후손을 이 땅에 남기시려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연속선상에 있는 제도다(창 3:15).
계대 결혼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언약적 사건은 유기적이며 점진적이다. 유다 가정에서 행해진 계대 결혼은 성경의 역사 속에서 유기적이며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 제도를 통해 이 땅에 후손을 남기시는 창조 질서를 마련하셨으며, 또한 후손이 끊기는 가문이 없도록 하기 위해 계대 결혼 제도를 선민들에게 계시하셨다.
다시 말해, 계대 결혼 제도 속에 담겨 있는 구속자의 의미 곧 고엘 사상은 마침내 그리스도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에서 성취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는 마지막 고엘이다. 창세기 38장의 계대 결혼 즉 죽은 자의 후손을 잇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이 제도는 친족으로 하여금 죽은 남자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과 홀로된 여인을 보호하는 것 등의 사회적 의미가 있다. 동시에 언약적으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계보(족보)의 흐름과 우리 주님의 대속적 죽음을 보여 주는 모형적 의미가 더 크다. 그러므로 족장 야곱의 후손들도 계대 결혼의 사회적 풍습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라(창 38:8)
창세기 38장의 내용은 유다의 말과 행동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설명된다. 그 이유는 유다의 말과 행동에 신명기 25장의 계대 결혼 제도가 그대로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다의 말과 행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창세기 38장의 유다 가정의 계대 결혼 이야기는 일종의 문학적 구조와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긴장과 반전 속에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 된다.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에게 세 아들 곧 엘, 오난, 셀라가 있었다. 유다는 장남 엘을 위해 이방 여인 다말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엘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때 유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둘째 아들 오난을 향해 계대 결혼의 의무를 이행하라고 말했다.
유다의 명령을 보자.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 38:9)
모세의 율법으로 성문화된 계대 결혼 속에 내재된 하나님의 명령을 잘 보여 준다(신 25:5~10). 유다는 죽은 자의 씨(후손)를 보존하기 위해 가까운 형제로 하여금 죽은 자의 아내와 동침(결혼)하도록 규정한 하나님의 계시인 계대 결혼의 의무와 권리로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와의 동침을 요구한 것이다. 결국 유다가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와의 동침을 요구하는 모습은 당시의 성적 타락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족장 시대에 이미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계대 결혼에 근거한 명령이었다.
계대 결혼의 의무와 권리에 따라 오난은 죽은 형의 아내 곧 형수와의 동침을 시도했다. 그러나 오난은 형수와의 동침에서 고의적으로 형수의 몸 밖에 사정(射精)해 버렸다. 그 이유는 계대 결혼 제도 아래서 자신과 형수와의 동침을 통해 태어나는 첫 아들은 자신의 씨(후손)가 되지 않고 죽은 형의 씨(후손)가 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일부러 바닥에 사정해 버린 오난의 행동은 하나님의 계시인 계대 결혼 제도에 불순종하는 결과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악을 저지른 오난을 죽이셨다. 하나님의 편에서 보는 오난의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계시) 곧 계대 결혼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계대 결혼의 이행은 죽은 형제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족장 시대의 사회법인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음을 선언 받은 것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손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에게 죽음이 왔듯이, 오난의 불순종은 그의 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결국 오난의 죽음은 당시의 계대 결혼 제도가 반드시 그들의 삶 속에 실천돼야 할 하나님의 계시임을 분명하게 선언한 셈이다. 고엘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오난의 불순종의 결과는 그의 죽음으로 끝났으며, 유다 가정의 고엘의 의무는 유다의 셋째 아들 셀라에게로 넘어 갔다.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창 38: 11)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이 계대 결혼에 불순종한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임을 당한 사실을 알고 몹시 두려워했다. 그리고 유다는 그의 마지막 아들 셀라마저 그의 형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할까 염려한 나머지 며느리 다말을 불러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 가 있으라고 말했다. 이것은 유다가 셋째 아들 셀라의 죽음을 염려하여 며느리 다말과의 동침을 막으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창 38:11, 26). 실제로 유다는 아들 셀라가 장성하였으나 며느리 다말과의 동침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후에도 계속 며느리 다말을 친정에 머물도록 했다(창 38:14).
이런 유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인 계대 결혼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시도로 드러나 훗날 자신의 행동이 며느리 다말의 행위에 비해 옳지 않은 일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요인이 되었다(창 38:26).
이처럼 유다는 장성한 셀라가 다말과 동침할 수 있는 기회(계대 결혼)를 박탈함으로써 셀라로 하여금 고엘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 후 유다 가정의 고엘 곧 후손을 남기기 위해 대신 다말과 동침해 줄 사람은 셀라 다음으로 없는 듯 보였지만, 사실 시아버지 유다가 셀라 다음 차례의 고엘이었다. 따라서 다말은 비록 유다가 시아버지일지라도 계대 결혼의 순서상 그가 자신과 동침할 수밖에 없는 고엘이라는 사실 때문에 양털 깎는 시기를 이용해 유다에게 몰래 접근했던 것이다.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창 38:16)
남편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함으로 죽임을 당했고 시동생 오난마저도 계대 결혼에 대한 불순종의 대가로 죽임을 당한 후,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의 권고에 따라 유다의 마지막 아들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 가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말은 셀라가 장성하였으나 시아버지 유다가 자신과 셀라와의 동침할 기회를 일부러 주지 않음을 알고 다른 기회를 찾고 있었다. 여기서 다말이 찾고 있는 기회는 유다 가정에서 자신과 동침할 수 있는 셀라 다음으로 고엘과의 만남이었다.
셀라가 장성했으나 시아버지 유다의 의도적인 방해로 자신과의 동침이 허락되지 않음으로써 고엘로서 셀라의 의무와 권리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이제 유다 가문에서 다말 자신과 동침할 수 있는 사람(고엘)은 계대 결혼의 순서상 셀라 다음으로 시아버지 유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의 동침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다말이 유다와의 동침을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주신 계대 결혼의 순서에 따라 합법적으로 유다로 하여금 고엘의 의무를 이행하게 하는 것이다. 비록 유다는 후에 다말인 줄 모르고 그녀와 동침했으나 유다는 자신이 먼저 다말과의 동침을 요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계대 결혼에 따른 고엘의 의무를 이행한 것이 되었다(창 38:16).
마침내 유다와의 동침 기회를 찾던 다말에게 기회가 왔다. 양털 깎는 시기가 이른 것이다. 족장 시대의 양털 깎는 시기에는 남자들이 모두 일정 기간 가정을 떠나 양떼가 있는 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다말의 입장에서 유다에게 접근하기 훨씬 쉬웠을 것이다. 유다가 집을 떠나 딤나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은 다말은 친정에서 생활할 때 입는 과부의 의복을 벗어 버리고 창녀처럼 변장한 후 시아버지 유다가 올라간 딤나로 달려갔다. 그리고 시아버지 유다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면박을 하고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있었다(창 38:14).
이런 다말의 행위는 대가를 받고 몸을 파는 창녀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계대 결혼의 순서에 따라 자신과의 동침할 기회를 유다에게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다로 하여금 고엘로서의 의무를 다 하도록 지혜롭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유다는 아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몹시 외로운 처지였음으로 딤나 길 옆 에나임 문 곁에 앉아 있던 다말을 창녀로 인식하고 동침할 것을 요구했다.
동침을 요구하는 유다의 말에 다말은 염소 새끼와 바꾼다는 증거물로 유다가 갖고 있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먼저 요구했다. 다말이 요구한 유다의 물건들은 후에 사형 선고를 받은 다말이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증거물로 사용했다. 다말은 유다와 동침한 후 잉태했고 다시 친정으로 가서 창녀의 의복을 벗어 던지고 과부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시아버지 유다에게 일부러 접근해 동침한 후 잉태한 며느리 다말의 행위는 창녀의 행위로서 비난 받아야 마땅한가? 그뿐 아니라, 시아버지와 동침한 그 자체만으로 다말의 행위는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인 행위로 매도돼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다말의 유다에게 접근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주어진 계대 결혼의 순서에 따른 옳은(의로운) 행위였다(창 38:26).
이처럼 구약 본문은 인간의 윤리나 도덕적 접근을 통해 이해되는 인간의 편집물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아래 영적 시각으로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산물이다.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창 38:24)
유다가 다말과 동침한 후 석 달이 지났을 때 다말의 임신 소식이 유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다말은 과부로서 다른 남자와 행음해 임신했다는 오해를 받고 고소를 당했다. 사람들이 다말의 임신 사실을 간음으로 추정하고 그녀를 시아버지인 유다에게 고소한 것은 당시 유다가 한 가문의 족장으로서 사법권과 행정권을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다는 재판관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급히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즉 당시 재관관인 유다는 고소당한 다말을 자세히 심문(審問)하지도 않고 그녀를 끌어내 불사르라고 성급히 사형 선고를 내렸다.
유다의 판결은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를 유혹해 동침했다는 이유에서 내려진 것이 아니라, 자기 가문의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행음해 임신한 것으로 오해하고 다말을 화형에 처하도록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때 다말은 사람들에 의해 화형 집행 장소로 끌려가면서 시아버지 유다를 향해 외쳤다. “이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인해 내가 임신했습니다. 당신은 제발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
유다는 다말이 내미는 자신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고 며느리의 화형 집행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다말을 향해 그는 나보다 옳다고 고백한다. 다말이 증거물로 가져간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는 다말과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증거물이 된 것이다. 다말이 내민 증거물들은 왜 다말의 생명을 살렸는가? 그것들은 당시 재판관인 유다의 판결과 사형 선고가 잘못임을 가르쳐 주는 증거물이었다.
나아가 그것들은 다말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유다의 씨이며 동시에 다말과 유다와의 동침은 간음이 아니라 유다 가문의 정상적인 계대 결혼의 순서에 따라 이뤄진 사실임을 말하는 증거물이었다. 결국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침해 임신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오히려 화형을 면할 수 있었다.
유다가 다말과 동침한 것은 유다 가문에 있어서 계대 결혼의 순서상 지극히 합당한 일이었고 엉겁결에 유다는 고엘로서 의무를 성공적으로 다말에게 행한 것이 되었다. 만약 다말이 유다가 다른 남자와 동침해 잉태했다면 그녀는 간음한 것이 되어 당시 사회법으로 화형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신의 시아버지라 할지라도 계대 결혼 순서상 셀라 다음으로 자신과 동침해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유다(고엘)임을 알고 다말은 변장한 후 유다에게 접근해 동침하고 유다의 통치권의 상징인 증거물들(도장, 끈, 지팡이)을 가져갔던 것이다. 다말은 너무나 지혜로운 여인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생명을 내걸었던 의로운 여인이었다. 다말은 메시아의 계보(족보)에 오르는 거룩한 여인들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창 38:26)
마침내 유다는 자신을 유혹해 동침한 후 잉태한 다말을 향해 그는 나보다 옳도다(창 38:26)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한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그녀는 나보다 더 의롭다’(yNiM,mi hq;d]x;, 차데카 밈멘니)이다. 다말은 자칫 화형에 처해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의 계시인 계대 결혼에 순종해 유다 가문의 씨(후손)를 남겼다는 의미에서 의로운 여인이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계대 결혼에 순종하는 것보다 아들 셀라의 죽음을 더 염려하면서 홀로 된 며느리 다말에게 동침할 자격자인 셀라를 고엘로 주지 않은 유다 자신의 행위를, 후손을 남기기 위해 계대 결혼의 순서에 따라 유다 자신에게까지 접근한 다말의 행위와 비교할 때 다말의 행위가 지극히 합당하고 옳은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다말이 제시한 증거물들을 보고 자신의 잘못된 사형 선고를 철회하고 다말의 생명을 살렸으며 다말의 행동은 자신보다 의롭다고 외친 것이다.
마침내 재판 과정에서 유다와 다말의 동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나 그것은 오히려 계대 결혼 제도에서 지극히 합당한 다말의 의로운 행위로 인정되었다. 그녀는 유다 가문의 씨를 보존했고, 언약의 후손을 이었다. 유다의 입에서 나온 다말의 의로움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계대 결혼에 순종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결단을 내리고 자신과 동침을 시도한 그녀의 순종과 믿음을 가리킨다.
동시에 셀라의 죽음을 염려한 나머지 셀라를 다말의 고엘로 주지 않을 만큼 계대 결혼에 순종하지 못한 자신의 연약한 믿음을 질타하는 의미도 유다의 고백 속에 담겨 있다. 어떠한 형태의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세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성숙한 의로움이다. 다말은 족장 시대에 살았던 한 평범한 여인이었으며 자신의 어려운 환경과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계시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의로운 성도였다.
창세기 38장에 유다의 가정 이야기 가운데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과의 동침 사건이 선택적으로 기록되었다. 또 유다와 다말의 동침 사건으로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후손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창세기 38장은 그리스도의 계보가 요셉에게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유다에게로 이어짐을 보여주기 위해 요셉의 이야기 중간에 긴급히 배열돼 있다. 또한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의 동침 사건은 단순한 성윤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후에 모세의 율법으로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성취된 계대 결혼 제도의 고엘 사상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한 여인의 의로운 삶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과의 동침 사건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계대 결혼에 순종한 다말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 메시아의 혈통적 계보가 야곱에게서 유다로 이어짐을 보여주는 언약적 사건이다. 야곱에게서 유다에게로 이어진 메시아의 계보는 유다에서 다시 베레스로, 베레스에서 보아스로, 보아스에서 다윗으로 이어지고 다윗의 후손으로 그리스도 예수가 탄생한다(룻 4장, 마 1장). 창세기 38장의 유다는 후에 야곱의 축복을 통해 메시아의 계보를 이루는 축복으로 선언된다(창 49장).
야곱의 종말론적 축복 속에 유다는 형제의 찬송이 될 것이고, 또 홀(笏)이 유다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실로가 오실 때까지 그 왕권이 유지될 것이라12고 했다 여기서 홀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메시아의 왕적 사역을 의미하며 실로는 열방들을 복종시키고 찬양 받을 한 사람 곧 메시아를 의미한다. 이것은 유다의 후손과 유다 왕국을 통해 메시아가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은 훗날 메시아의 초림에서 성취되었고 종말론적으로 메시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 백마 탄 통치자가 철장(홀)을 가지고 최고의 통치자로서, 만왕의 왕으로서 이 세상에 강림하실 것이다(단 7장, 계 19장).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의 계대 결혼 사건 및 창세기 49장의 유다에 대한 예언적 축복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에 대한 그림자이다. 동시에 계대 결혼 속의 고엘 사상은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성취되는 모형이다.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의 동침 사건인 계대 결혼 속에는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루는 언약의 흐름과 고엘로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 곧 대신 죽으시는 십자가의 죽음이 모형과 예표로 담겨 있다. 즉 죽은 자를 대신해 동침(결혼)함으로써 후손을 남기는 계대 결혼의 ‘죽은 자를 대신하는 행위’는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는 행위’의 앞선 모형이며 동시에 후손을 남기기 위한 계대 결혼은 결국 여자의 후손(창 3:15) 곧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 계보(족보)를 이룬다.
구약 본문에 나타나는 모든 경우의 계대 결혼과 그 제도 속에 내재된 대속자(구속자)로서 고엘 및 고엘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모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