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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알바트로스
제54차 정기합평회
(2023. 8. 17.)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목욕탕 풍경 | 이숙희 | 김정래 |
2 | 불면의 밤 | 이시언 | 김정실 |
3 | 누룽지 | 채정순 | 김현지 |
4 | 생우우환 사우안락 | 이미란 | 노아영 |
5 | 즐겨찾기 | 최선화 | 백금태 |
6 | 리우, 추락하지 않는다 | 오수미 | 변미순 |
7 | 애도 | 김아가다 | 서소희 |
8 | 버려진 양심 | 노아영 | 안연미 |
목욕탕 풍경 / 이숙희
[1]
1. 물 좋기도 소문난 온천이 있다. 약알카리성 온천수여서 지친 심신을 달래거나 건조해진 피부를 진정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다행히 집 부근이라 가끔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2. 온천 가는 새벽길은 벚꽃이 만개했다. 이토록 긴 가뭄에도 묵묵히 꽃을 피워 낸 자연의 숭고함에 경외감마저 든다. 벚꽃으로 터널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신의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3. 목욕탕에는 두어 명의 손님이 내는 물소리만 요란할 뿐, 자리는 거의 비어있다. 대충 비누칠로 몸을 씻어낸 후 건물 뒤편으로 나간다. 산자락에 위치한 노천 욕탕은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엄마의 자궁이 연상되는 곳이다.
4. 인공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냉탕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탕, 큰 돌로 쌓아 유황을 풀어놓은 동굴탕까지 갖추어진 노천탕이다. 가끔 그곳에 안개라도 낀 날에는 마치 선녀들이 놀다 갈 것만 같다.
5. 뜨거운 물 속으로 서서히 몸을 담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다. 켜켜이 쌓여있는 묵은 피로들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여러 종류의 사우나실도 있지만, 나는 유독 노천탕을 즐기는 편이다. 그 이유는 낮과 밤이 있고 삶과 죽음이 있듯 열정과 냉정을 동시에 경험하기 때문이다.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따끈함과 얼굴을 스쳐 가는 차가운 공기의 신선함. 특히 뜨거운 물 속에 앉아 한겨울의 함박눈을 맞거나 부슬부슬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열정과 냉정은 절정을 이루기도 한다.
6. 산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바람결에 벚꽃 나무의 꽃잎이 우수수 눈처럼 흩날린다. 떨어진 꽃잎들은 물 위에 또 다른 꽃밭을 만든다. 아름다운 꽃밭에서 목만 밖으로 쏙 내놓은 채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 순간만큼은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온갖 꽃잎과 약초를 넣어 목욕했다던 화청지의 양귀비도 부럽지 않은 시간이다.
7.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뜬다. 시선이 숲과 하늘 사이를 오가는 순간, 동굴탕 위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알몸을 훔쳐본 저 괘씸한 다람쥐. 쫓는 시늉을 해봐도 꼼짝 않고 제자리에 있다. 훔쳐본 대상이 한낱 미물인 다람쥐일지라도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후다닥 실내로 뛰어들어간다.
8. 여자목욕탕을 훔쳐본 저놈을 성추행범으로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2]
1. 저녁 무렵의 목욕탕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등산을 마친 후 목욕을 하고 귀가하려는지 사람들이 꽤 많이 붐볐다. 구석진 곳에 자리 하나가 빈듯했지만, 두 사람이 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동네 시장에서 쉽게 마주칠 법한 평범한 중년 부인들이었다.
2. “자리 있습니까?” 나의 말에 그중 한 명이 흘깃 쳐다보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목욕용품들을 치워 자리를 비웠다.
3. 사람들의 북적대는 소리와 물소리에도 그들의 대화는 내게 까지 들려왔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말은 누군가에 대한 인신공격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대화를 쉴새 없이 이어가면서 옆자리의 나를 힐끔힐끔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귓속말로 주고받았다. 옆자리는 의식 않고 큰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갑자기 귓속말로 하는 걸로 봐서 혹시 내 말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스스로 생각해봐도 내 몸매는 자신 있게 드러낼 처지가 아니다. 태어나서부터 '그놈 참 밉상이네'라는 소리보다 '그놈 크다' 라는 소리를 들어온 터라, 몸매라면 늘 주눅이 들었었다.
5. 그들의 귓속말이 이어질수록 내 몸매를 두고 얘기하는 것 같아 은근히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몸매는 어떤가. 그들 역시 잘 관리된 늘씬한 몸매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잇살이 켜켜이 쌓여 두리뭉실한 배와 처진 가슴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6.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힐끔대며 귓속말을 할 때는 분노 게이지가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언제 당신 얘기를 했냐'고 되려 따진다면 나만 우스운 꼴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는 빈자리가 없어 옮길 수도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문득 유화법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목욕탕에 갈 때는 몸에 끼고 있던 패물은 빼놓고 가기 마련인데 볼에 심술이 묻어나는 여인의 목과 팔목에는 굵직한 금붙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7. “아주머니는 인생을 참 잘 사셨나 봐요?”
“왜요?” 드디어 귓속말은 끊어지고, 나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눈길도 정지되었다.
“목걸이가 참 이쁘네요. 가정에 얼마나 헌신하고 잘 사셨으면 그토록 굵은 목걸이와 팔찌를 하나요? 요즘 금값이 엄청 비싸던데......”
“이뻐요? 환갑 때 딸들이 해 준건데.” 여인은 엷은 미소를 띠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8. 목욕을 다 마친 다른 여인은 먼저 밖으로 나가고 목걸이를 한 여인은 나가려고 일어서다 내게 말했다.
“등 밀어드릴까요?”
이제 막 들어와서 아직 몸이 불지 않았다며 사양했다. 나의 헛말에 그 여인도 헛말일지 참말일지 모를 호의를 건네왔다. 썩 어울리지 않는 미소로 다정히 인사를 한 후 까치발로 사뿐사뿐 걸어나가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3]
1. 목욕을 거의 다 마쳐갈 무렵이었다. 옆자리에 팔순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몸속에 지방이라고는 하나 없는 깡마른 체구였다. 목욕 의자와 세숫대야를 비누칠하여 씻어내더니 의자 위에 수건을 깔고 앉았다. 꽤 깐깐한 성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묻지도 않았는데도 사는 동네를 말하며 오는데 힘들었다고 했다.
2. “그렇게 멀리서 오셨어요?”
“가뭄이 심해 동네 목욕탕은 문을 열지 않아서 마다하는 영감 근근이 데불고 오느라 혼났소”
3. 입구 쪽에 앉아 내게 비눗물이 튀길세라 조심하는 할머니의 몸짓은 작고도 섬세했다. 비누 거품이 내가 앉은 쪽으로 거슬러오기라도 하면 손으로 바닥을 훑어 내리기도 하고 수건으로 닦아내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는 평생 양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사셨을 거라 짐작했다.
4. 나의 공감 섞인 화답에 할머니는 '자식 키워 성공시켜놓으면 뭐하냐'를 서두로 집안 내력을 줄줄이 엮어내었다. 애지중지 키워 기대 가득했던 아들을 유학 보냈더니 느닷없이 노랑머리 손녀를 낳아 왔다고 했다. 저들만 이민 가서 잘살면 될 텐데 작년에는 제 여동생 식구들까지 데려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5. 젊어 한가락 했던 영감도 이젠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어 집 지키는 귀신이 되었다며 살아가는 낙이 없다고도 했다. 멀리 있는 자식들은 영감 할마이 죽어도 모를 거라는 신세 한탄에 어떤 연민 같은 것이 느껴졌다.
6. “할머니, 저는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등 밀어드리고 갈게요”
“아니요. 세신사에게 부탁했더니 밥 먹고 와서 해준다네요”
7. 몸을 헹구고 용품을 챙겨 나오려는데 할머니는 자리에 없었다. 사우나에 갔으려니 생각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굼뜬 걸음으로 조심스레 나를 따라 왔다.
8. “아줌마! 탈의실 75번인데 나중에 계산할 테니 바나나우유 하나 주소”
한사코 사양해도 할머니는 우유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고마워서 그러는구먼. 고마워서. 늙는 것도 서러운데 늙으니 누가 말을 걸기를 하나. 받아 주기를 하나”
9. 내 손에 쥐어진 우유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의 흔적이다. 삶에 쫓겨 미처 돌아보지 못했을 동안 내 부모가 저러했을 것이고, 후일 나 역시 외로움의 강에서 허우적댈지도 모를 일이다.
10. 돌아서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외로움의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불면의 밤 / 이시언
1. 잠도 전염 된다면 한잠에 빠졌을 시각이다. 뒤척거리다 새벽 두시를 넘기고 있다. 최근 들어 뜬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있어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으나 잠은 멀찍이 달아난다.
2. 남편은 머리가 닿자마자 코를 곤다. 밤에 들리는 코골이는 신경이 쓰인다. 그의 등을 맞대고 가만히 누워 있으려 해도 소리가 점점 커져 참기 어렵다. 올봄에 독립한 큰 아들 침대가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어 베개를 안고 일어난다.
3. 암막 커튼이 내려진 안방은 칠흑같이 어둡다. 가재미눈을 뜨면 잘 보이려나 애를 쓰도 보이는 게 없다. 다리를 뻗는데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찧는다. 남편이 깰라 목으로 올라오는 비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눈감고도 훤한 방인데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눈물이 핑 돈다.
4. 조용한 아들 침대에 누워도 이내 잠들지 못한다. 낮에는 예사로 여기던 소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린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시계 바늘 똑딱이는 소리, 창으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에 머릿속이 말똥해 진다. 귀를 닫으려고 휴지를 말아 귓구멍을 막는다. 하지만 눈은 말똥해지고 생각들은 이어진다.
5. 결혼하고 시댁에서 맞이하는 첫 추석이었다. 차례 준비를 끝내고 저녁 설거지 까지 마쳤지만 꿀잠을 청할 형편은 아니었다. 고향친구 모임에 간 남편이 자정이 가까워도 들어오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는 남자라 걱정이라고 하자 어머님은 마을 안에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6. 쪽마루를 사이에 두고 어머님은 안방에 나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님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전등불을 껐다. 나는 남편이 들어와야 잠이 올 것 같아 전등불을 꺼지 않았다. 건넌방의 불빛이 마루를 지나 안방 문살에 희미하게 비쳤다. 어두워야 단잠을 청하는 어머님은 이마에 닿은 불빛이 못마땅하신지 흠흠 소리를 내셨다. 불편한 숨결이 안방을 벗어나 건넌방에 누운 내 귓속에 파고들었다. 무슨 뜻인지 눈치 챈 나는 마지못해 전등을 껐다. 방안은 먹물을 끼얹은 것처럼 어두웠다. 간간이 동네 개가 잠꼬대처럼 울다가 멈추다 했지만 그마저도 잦아든 한밤이었다.
7. 나도 자야했다. 그러나 잠들지 못했다. 어머님이 행여나 감기라도 들까봐 느지막이 건넌방 아궁이에 나무둥치를 넣었는데 이것이 타들어가면서 방바닥이 점점 뜨거워졌다. 달구어진 구들은 방을 가마솥으로 만들었다. 아랫목에 깔아 놓은 요를 윗목으로 옮겨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궁여지책으로 이불을 요위에 포개었다. 한층 두터워진 요위에 누워도 이마와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8. 방문을 활짝 열었다. 찬 공기를 마시자 살 것 같았다. 문지방에 머리를 얹고 누웠는데 대문이 흔들렸다. 남편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기다려도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발걸음이 없었다. 밀면 쉽게 열릴 텐데, 잠겼나 싶어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내려갔다. 누구세요 물어도 인기척이 없었다. 바람의 장난인가. 실망하여 돌아서는데 마당가에 서있는 감나무 위에 누가 올라가 있었다.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무 위에서 춤을 추었다. 너무 무서워서 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었다. 급하게 방문을 닫고 고리를 걸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은 달달 떨렸다.
9. 잠시 시간이 흘렀다.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귀신이 어디 있어, 달빛 어린 나무를 보고 착각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방문을 빼 꼼이 열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허연 옷자락이 나부꼈다. 자그마한 덩치의 여자였다. 한참 인기리에 방송되던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소복을 입은 한 많은 여인이 보름달에만 다니는 서릿발 같은 한…….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얼른 방문을 당겼다.
10. 그때부터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내 머릿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춤을 추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방금 본 광경이 더 또렷이 각인 되었다. 나는 공포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쳤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세마리……. 얼마 헤아리지도 않았는데 집중력이 무너져 포기했다. 바깥 동정을 살피느라 곤두선 두 귀가 방해꾼 이었다.
11. 쉭. 쉭. 쉭. 사각 사각. 음침하고 묵직한 움직임이 연상되는 소리가 마당에서 들렸다. 저 소리의 정체는 뭐지. 여인이 움직이는 소리인가.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하고 흉측한 소리였다. 마치 공포영화의 배경으로 나옴직한 소리라 머리카락이 쭈볏섰다. 나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 혼이 나갈 정도였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은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12. 한참 지났을까. 동이 트는지 창호지 문이 희뿌예졌다. 대문을 밀고 마당으로 뚜벅뚜벅 걸어온 발걸음이 툇마루에 발을 디뎠다. 문구멍으로 내다보았다. 남편이었다. 친구들과 술 한 잔하고 놀다가 깜박 잠이 들었단다. 미안한 표정으로 늘어놓는 남편의 변명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잔소리를 애써 삼키고 그냥 헛웃음만 밷았다.
13. 혼돈의 밤을 보낸 나와 달리 마당은 평화로웠다. 그래서 놀랐었다. 밤새 쉭쉭 사각거리던 정체는 어디로 사라졌지. 내가 악몽을 꾸었나. 그리고 감나무에 올라간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감나무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긴 꼬리를 펄렁이는 가오리연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때서야 명절을 맞아 시골에 내려온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며 놀던 생각이 났다. 들판을 뛰어 다니던 아이중 하나가 집에 돌아오다 연이 나뭇가지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14. 충혈된 눈으로 감나무만 보고 있는 나를 어머님이 빤히 보셨다. 민망해서 고개를 숙이는데 마당이 다 헤집어졌다. 올록볼록 한 게 성한 곳이 없었다. 어머님은 땅강아지들이 온 마당 흙을 긁어 놓았다고 하셨다. 밤새 기이한 소리를 냈던 놈이었다. 조그만 벌레에 온갖 상상력을 입혀 확대 해석한 나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으로 상황을 판단한다는 게 얼마나 왜곡된지 알았다. 삶속에 숨은 비밀은 가슴으로 느끼고 공감할 때 보인다.
15. 새벽이 밝아 온다. 졸립다.
누룽지 / 채정순
큼큼, 무슨 냄새가 난다. 깜박했던 마음이 먼저 놀라 벌떡 일어난다. 손을 뻗어 가스 불을 끄고 솥뚜껑을 연다. 단내가 확 올라온다. 하얀 쌀밥이 되기는커녕 누룽지가 솥전까지 차올랐다.
밥을 푸고 나니 의외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룽지를 박박 긁는다. 김을 따라 나오는 구수한 냄새가 입맛을 홀린다. 누룽지를 긁어 오롯이 뭉쳐 한입 먹는다. 고들하고 딱딱하지만 씹을수록 감칠맛이 두터워진다. 구수한 맛을 따라가니 지나온 나의 어설픈 이력이 어른거린다.
자랄 때 농번기가 돌아오면 부모를 돕는다고 밥을 지었다. 아궁이로 불을 때어서 했는데 설기가 일쑤였다. 솥에서 김이 나면 꺼서 뜸들일 시간을 주고 다시 지펴서 자작자작 소리가 날 때까지 때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는 괜찮았다.
주부가 되면서 반세기 동안 숱하게 밥을 지어왔다. 결혼해서 처음에는 연탄불을 사용했다. 가정용 연탄에 밥을 하려면 옹솥이 제격이다. 연탄불에는 밥을 안쳐 끓어서 넘쳐도 불을 줄이지를 못한다. 자연 많이 눌어붙어 누룽지가 생긴다. 신혼 때는 상에 올리기가 무안했다. 선밥, 고두밥, 진밥, 삼층밥까지 내었지만 시아버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얼마 자나지 않아 연탄집게를 비스듬히 아궁이에 얹어놓는 요령이 생겼다. 어느 정도 밥에 물이 걷어지면 뚜껑을 덮어 뜸 들일 줄도 알았다.
불을 조절하기 쉬운 석유곤로에 이어 가스랜지가 선을 보였다. 그 등에 업혀 전기밥솥도 주방 한곳을 차지했다. 밥에 대한 걱정과 힘은 줄었지만 그 마저 조심스러웠다. 남편 출장으로 꼭두새벽에 조반이 되기 위해 타임을 맞춰 놓았다가 허탕을 쳤다. 애들이 장난치면서 스위치를 꺼 버렸다. 물에 퉁퉁 불을 쌀이 무슨 소용인가. 알전구의 빛을 하찮게 만드는 남편의 눈빛에 짓 눌러 죽을 번한 날이었다. 차차 노하우가 생기면서 밥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느 연장이나 어떤 불을 사용해도 밥만큼은 자신 있다 큰소리 쳤는데 깜빡하다니,
하긴, 삶이 마음대로 지어지던가, 짓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셋째 딸이라 옷이나 학용품을 언니들 것을 물러 받아썼다. 방도 언니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내 멋대로 하지 못했다. 입시공부하다 병으로 쓰려져 내 한 몸 챙기기가 버거워 꿈과 이상은 그림의 떡이 되었다. 오래 사귄 신랑감을 부모에게 소개했다가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중매로 한 결혼, 홀시아버지 봉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찍 직장을 그만 둔 남편으로 나의 병이 재발되어 웃음까지 잃었다. 그 와중에도 세월은 흘러 자식들이 제 앞가림을 하면서 내 자장을 벗어났다. 그 자리에 허락 없이 찾아온 빈둥지증후군으로 흐늘거리다 수필을 썼다. 여려 경험들만 푸서 빼내듯 마구 쏟아내었더니 문학성이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어느 새 시간의 열차는 나를 고희란 역에 데려다 놓았다. 종착역이 가까우니 지나온 삶의 여정이 절로 돌아 보인다. 나의 인생은 밥일까 누룽지 일까, 어릴 때 박속같던 피부가 병치레가 길다보니 참외꽃으로 변했다. 영양부족에 헤어날 수 없는 탓이리라. 몸도 부드럽고 재발랐는데 이 역시 막대처럼 뻣뻣해지고 둔해졌다. 감성마저 무말랭이 꼴이니 희고 쫀득한 밥은 아니다. 노랗고 딱딱한 누룽지다.
인생의 뒤안길에 서서보니 누룽지의 삶도 괜찮지 싶다. 누룽지는 남의 속을 풀어주는 존재다. 딱딱한 식감은 꼭꼭 씹게 되니 턱 운동 반복으로 뇌세포가 활발히 움직여 기억력이 좋아져서 학업능력은 물론 치매 예방도 된다. 숭늉과 함께 먹는 구수한 누룽지 밥은 입맛을 깔끔하게 한다. 마지막에 마시는 숭늉은 얼마나 개운한가.
누룽지 같이 말랐지만, 나도 영 실패한 인생은 아닌 것 같다. 힘들게 살은 만큼 주위의 어려움에 마음이 기울여졌다. 교회의 단체에 들어서 오래도록 봉사 활동을 다녔다. 쪽방 노인들에게 음식과 청소를 해주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정 얘기도 들어 주고 공감도 해 준다. 노인들은 속을 터놓아서 시원하다고 했다. 남의 속을 풀어주는 행위가 바로 누룽지 효능 같지 않은가,
오늘 점심은 누룽지탕을 끓이기로 한다. 솥에 붓는 물은 죽처럼 누룽지의 다섯 배를 부었다. 불을 켜자 얼마 지나지 않아 노릇하던 덩이에서 갈색 물이 번져 나온다. 주걱으로 젖는데 구수한 냄새가 피워 오른다.
생우우환 사우안락 生于憂患 死于安樂 / 이미란
보이스카우트 잼버리라는 단어가 매스컴을 달구고 있다. 전 세계에서 4천 3백 명이라는 대군단의 청소년들이 참가하였다. 대규모의 국제적 행사다. 우선 행사 준비의 미숙함이 문제를 일으켰다.
야단스럽게 시시비비를 논하는 사람들이 과연 이 행사의 기본 취지는 알고 하는 소린지 의심스럽다. 해충에 물린 자국을 보이고 행사 진행의 미숙함을 까발리기보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겨나가는 생우우환 정신을 키워서 참가한 청소년들의 미래에 거름이 되게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정신을 훈련하기 위해 실시하는 대회다.
고생하는 것이 싫은 대원이든지, 고생시키는 것이 싫은 부모들이었다면 비싼 참가비를 내면서 함께 하지 않아야 했다. 행사를 주최한 지도자나 대원들이 참가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폭염과 해충에 대비한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참석하지 않았을까.
강원도 고성을 제치고 새만금을 개최지로 따간 전라북도가 받은 지원금은 천문학적이었다. 일천억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행사를 준비하고, 모든 사태에 대비하여야 했지만 안일하게 준비한 주최 측은 당연히 벌을 받아 마땅하다. 제사보다는 제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평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 아들 둘이도 학생 때 여름의 절정기에 세계 청소년 잼버리에 참가했었다. 큰아이는 스웨덴과 일본, 작은아이는 네덜란드와 대만에서의 청소년 잼버리에 대원으로 가고, 봉사자로도 두 번씩 참가하였다. 심지어 대만에서의 잼버리는 47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여 잘 치루고 왔다. 당연히 온열 환자도 생기고 해충에게 물려 고생도 하고 야영 캠프생활이 불편했으며 부모로서 많은 참가비도 담당했었다.
이러한 경험이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보탬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온실 속의 화초로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이기는 극기 훈련이 이 잼버리 대회의 취지 목표일 것이다.
생우우환 사우안락 生于憂患 死于安樂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분발하여 극복하려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는 뜻으로 맹자의 말이다. 맹자의 가르침은 인간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등 동물의 세계에도 같이 적용됨을 아래 예에서 알 수 있다.
미국의 수산업자水産業者가 동부에서 잡은 활어活魚를 서부로 가져가 팔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옮길 때 활어 대부분이 죽는 것이었다.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고, 수온을 잘 맞추어도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수산업자는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어항에 고기의 천적天敵인 메기를 같이 넣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동부에서 서부로 옮겼는데도 활어가 죽지 않고 활기차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메기가 물고기를 긴장시켜 스스로 분발했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례를 보면 천적天敵이 있는 동물들은 스스로 각성함으로써 점점 강해지고 웬만한 공격은 스스로 이겨내는 능력이 길러짐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생우우환, 즉 '우환을 극복하면 분발하여 잘살게 된다.'라는 의미다.
이와 반대되는 사례는 프랑스의 삶은 개구리 요리다. 이 요리는 손님이 앉아 있는 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방법이다. 이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맨 처음 냄비 속에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부어둔다. 그러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이 아주 기분 좋은 듯이 가만히 엎드려 있다. 그러면 이때부터 매우 약한 불로 물을 데우기 시작한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서서히 가열하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잠을 자면서 죽어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우안락死于安樂 즉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무기력해져서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죽음에 이른다.'라는 의미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기후가 따뜻하여 사계절 내내 먹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 그래서 먹을 것을 저장해 두는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연히 게으른 성격이 굳어졌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여름과 가을철에 열심히 노력하여 곡식을 저장해 두어야만 겨울을 날 수 있기에 자연적으로 부지런한 성격이 되었다. 그런 생활습성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만든 바탕이 된 것이다. 생우우환의 정신자세로 살아온 덕분이다.
그런데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사우안락의 분위기로 우리 사회가 변모해 가고 있다. 힘든 일은 싫어하고, 노력은 적게 하면서 보수는 많이 받으려 하고,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사회가 무상복지, 포퓨리즘이 만연되고부터 국민의 근로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마치 개구리가 냄비 속에서 요리 당하는 그것처럼 만들고 있다.
이번 야영에 참석한 아이들 대부분이 고생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자란 아이들 같았다. 잼버리에 참석을 위해 몇 년 동안에 걸쳐 추운 겨울, 더운 여름의 힘든 시기에 여러 번 야영 캠프 훈련을 마친 후 참석한 우리 손자는 “엄청 힘들었고 모기에 많이 물렸지만 좋았어요.”라는 대답을 한 후 며칠을 죽은 듯이 쓰러져 잤다.
손자는 모기 침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라 준비를 나름대로 해갔지만, 종아리와 팔이 울긋불긋 퉁퉁 부어있다. 가슴이 아프다. 이 아이가 참가비 몇 백만 원이나 부담하고, 이렇게 고생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고 북돋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고 우리 손자 고생했다. 잘 견디고 왔다. 역시 너는 잘할 줄 알았다.”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의 삶은 늘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시련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실패의 핑계 구실로 삼을 따름이다. 그 지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미리 훈련하고 대비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것이 나라에서도 많은 돈을 투자하고 부모들도 많은 회비를 부담하고, 청소년 본인들도 귀한 시간과 몸의 고생을 하면서 이루기 위해 잼버리를 개최하는 이유다.
잼버리 주최 측에서 준비한 좋은 프로그램은 호캉스(호텔에서 하는 바캉스)처럼 안락한 호텔 같은 생활에 침샘을 자극하는 맛난 음식들일까. 여당과 야당의 정치권들이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보태어 냄비에 콩 볶는 소리처럼 떠들고 있다.
우리 기성세대는 자기 입장에서보다는 힘든 야영 생활을 견뎌온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해 주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면 좋겠다. 그들이 생우우환 사후안락처럼 살아가면서 다가올 시련의 파고를 넘는 데 이번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17.2)
즐겨찾기 / 최선화
1. 퇴근길이었다. 현관문 앞에 라면 상자 보다 큰 택배 박스로 인해서다. 그것도 네 개씩이나 말이다. 현관문 보다 높게 쌓인 박스를 보고는 층을 잘못 눌렀나 했다. 그것도 잠시, 후배의 근무처로 과자를 보냈던 기억이 나 동상이 되고 말았다.
2. 집안으로 후다닥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도대체 저 물건이 왜 우리 집으로 와 간을 서늘하게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급하게 설치느라 구매 사이트의 비번과 아이디를 잘못 입력해 수정에 수정을 한 뒤에야 접속할 수 있었다.
3. 판매자는 배달을 끝냈다며 만족도를 묻고 있었다. 엉뚱한 곳으로 보내놓고 만족도라니 약 올리려고 작정한 건가. 뻔뻔하게 일을 저질러놓고 마음에 드냐가 무어라 말인가라며 군지렁군지렁 했다. 잘못 배달된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연거푸 클릭을 하며 원인을 찾아드는데 목에서 쐐한 기운이 올라왔다.
4. 토끼 눈으로 주문한 내용을 확인하는데 할 말을 잃었다. 틀림없이 후배의 직장으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다. 아무리 눈을 닦고 봐도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던 집주소로 배달을 시킨 게 아닌가. 확인을 하고 나니 속이 끓어 올랐다.
5. 세상에나 손가락이 엉뚱한 일을 할 때 눈은 어디 갔다 왔는지. 두 개나 달린 눈도 부족해서 잘난 척 끼고 있던 안경은 그 순간 또 무슨 짓을 했다는 말인가. 혼자 주저리주저리 하는데 쌓여 있던 박스의 높이 보다 몇 곱절이나 긴 한숨이 나왔다. 실은 업체에서 잘못했기를 바랐건만 보기 좋게 뒷통수를 맞은 셈이다.
6. 할 수 없이 갖고 있다가 직접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지만 말이 쉽지 뭐 그리 대단한 물건이라고 한 차 싣고 오간다는 말일꼬.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다 박스를 집 안 구석구석에 쟁여 넣었다. 언제까지 공동으로 사용하는 통로를 점령할 수는 없어서다.
7. 그 후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 이틀이 몇 달이 되어 가고 있는데 문제가 또 생겼다. 무심코 어느 박스 하나를 여는데 속이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가 손을 댔다는 말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남편이다. 아마도 한가할 때 마다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이 했던 모양이다.
8. 무슨 생각으로 상자에 손을 댔냐며 남편을 몰아붙였다. 남편은 비록 과자 박스에 손을 댄 건 맞지만 하잘 것 없는 과자로 인한 폭탄세례에 난감해 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무슨 물건을 보낼 것인지 시장 조사하는데 들었던 시간과 고민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목소리에 힘을 과하게 실었던건 맞다.
9. 생각해보면 남편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셈이다. 후배가 박스를 열면서 한번 웃으라는 의미로 보낸건데 화살시위가 잘못 나가도 엄청 잘못 나가 집안에 냉기류가 흐르게 하고 말았다.
10. 예전에는 필요할 때 마다 인터넷 쇼핑몰을 헤매고 다녔었다. 즐겨찾기라는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안 뒤에는 나름의 큰 방을 만들어 두고 성씨가 같은 것 끼리 모으고 있다. 생각해보니 활용한지 제법 되었다. 요즘은 지정할 때 분류를 잘 하려고 노력한다. 잘못 모아놓으면 안하는 것 보다 못한 경우도 있어서다.
11. 즐겨찾기는 주소나 마음에 드는 상품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찾아서 콕 누르기만 하면 되니 편하다. 시간 절약도 절약이지만 평소 신뢰가 쌓인 곳을 이용하다 보면 물건의 질도 속을 일이 없으니 만족스럽다. 그러다보니 아날로그 세대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디지털 세상을 이용하고 있다.
12. 이렇게 문화의 이기를 활용하는데 있어서도 신중해야 할 일은 있다. 최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손과 발이 바쁜 것도 부족해 머리까지 아프지 않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 비록 처음에는 낯선 방법과 마주해야 하는 게 껄끄럽거나 한 번 더 신경을 써야하는 절차가 있지만 못할 일만은 아니리라.
13. 우리들 삶도 그렇다. 절대적으로 내가 옳다는 강박관념에 파묻혀 살기 보다는 언제든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내줄 수 있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오늘까지 철칙이었던 지식과 지혜도 한순간의 첨단 기기나 이론에 의해서 새로운 물줄기가 생기고 지침서가 나오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니까 생활속에 녹아 있는 즐겨찾기 매뉴얼도 매한가지다. 끝까지 점검하거나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14. 과자가 이젠 한 박스 남아 있다. 그렇게 난리를 치던 나까지 뻔질나게 드나들어서다.
리우, 추락하지않는다 / 오수미
1)우리 집 묘생 1년 차 리우가 날았다. 내 키보다 큰 캣타워에서 거리가 1m가량 떨어진 천정 높이의 에어컨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며칠 동안 가만히 바라보더니 해냈다. 오르기까지 준비 동작이 있었다. 캣타워를 차근차근 오르내리며 거리와 높이를 가늠하고 각을 쟀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양이 도움닫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날았다.
2)녀석의 몸짓이 귀엽고 신기했지만 너무 높아 떨어지지는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녀석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우리의 움직임이 녀석에겐 재미였다. 수 분간 머물더니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쫙 펴며 하품을 하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다시 깊이와 거리를 가늠하고 에어컨 지붕에서 캣타워로 점프하고는 계단을 내려와 제자리로 왔다. 내 걱정과는 달리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추락하지 않았다.
3)우리는 엘리베이터 세상에 산다. 대구 83타워도 두바이 부르즈 할라파도 잽싸게 감아올렸다가 한 번에 풀어놓는다. 고속으로 오르는 것이 몸에 배었다. 계단을 밟아가는 것은 시간과 노력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금보다는 투자를 한다.
4)코로나 시기 때 단기간에 나스닥에 오른 주식을 샀다. 저축 중이던 적금을 해지했다. 한방에 수년을 접어 일확천금을 노렸다.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와있는 택배를 보며 빠른 배송만큼 주가는 상승할 줄 알았다.
5)나는 지금 추락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엘리베이터에 갇혀 덜컹거리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오르기 위해 정확한 계산을 하고 적당히 즐기다 안전하게 착지하는 녀석을 보며 욕심부린 나를 돌이켜본다.
5)리우는 막내가 자는 2층 침대를 오른다. 폭이 좁은 사다리 계단이 경사지게 놓여있다. 녀석은 막내가 오르내리는 걸 보고 방법을 터득했다. 사람이 두 손과 두 발로 오르는 모양과 똑같이 사다리를 탄다.
6)그러나 내려올 때는 다르다. 막내는 오르던 방향을 반대로 해서 같은 모양새로 내려오지만 리우는 침대 위에서 깊이를 가늠한다. 사다리의 계단은 네 발 짐승이 내려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책장으로 껑충 뛰었다. 책장 위에서 또 한 번 아래를 살폈다. 아래에 놓여있던 여행용 가방으로 조심스레 착지했다. 주변에 놓아둔 반려동물 계단을 찾았다. 계단을 차례로 밟고 내려왔다. 자기의 경우에 맞게 오를 때와 내릴 때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신중히 행동하는 녀석이 대견하다.
7)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속담은 옛날 사람들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티끌 모아봤자 티끌이 아닐까 싶다. 여기저기 인생 한방에 대박을 이야기하는데 혼자 수순을 지켜간다고 한들 누가 알아주며 오히려 우습게 보이는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추락을 하고 있는 지금도 어쩌지 못하는 이유다.
8)세상을 탓하지는 않겠다. 그저 리우의 각 잡힌 행동에서 내 삶을 돌아볼 뿐이다. 추락하지 않는 방법은 오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올라 적당히 즐기고 더 신중하게 내려온다는 것이 아닐까!
애도 / 김아가다
1, 살던 집이 물에 잠겨 피난 나온 모양이다. 비가 오면 땅 밖으로 나와 있는 지렁이를 많이 보게 된다. 기다랗고 굵은 지렁이가 햇볕을 등에 지고 꿈틀거린다.
2, 지렁이는 농경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물이다. 징그럽기야 뱀만큼이야 할까. 생긴 모양이 징그럽지만 지구 토양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땅을 들쑤시고 뒤집어엎으며 흙을 부드럽게 하고, 썩은 나뭇잎이나 동물의 똥 등 유기물을 섭취한 배설물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렁이의 생태는 토양의 순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땅속에 살아야 할 미물이 사는 곳을 벗어나면 바로 죽음이 아니던가.
3,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시골 성당 마당에 마사토가 깔려있어서다. 지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섰다. 한 발짝 디디다가 깜짝 놀라 그대로 멈췄다. 온몸에 굵은 모래를 더덕더덕 바르고 오체투지에 몰입한 지렁이가 눈에 띄어서다. 저걸 어쩌나, 연민이 생겨 안타까웠다. 물기 없는 햇볕에 말라 죽을 것은 뻔한 일인데 어쩌자고 바깥세상에 나왔을까.
4, 애잔한 마음이 들어서 기도하는 노인을 불렀다.
“어르신 커단 지렁이가 모래에 뒹굴면서 마당에 있어요.”
“우짜라꼬.”
“살려주세요.”
“거참, 자연의 순리인 거라!”
억수로 재수 없는 여자로 생각했는지 헛기침 두어 번 하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노인은 가버렸다.
5, 삶의 궤도를 이탈한 지렁이다. 잠깐의 실수로 삶의 노선을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미물 본능의 촉수이리라. 수돗가에 새파란 이끼가 촉촉한 쪽으로 배밀이를 하고 있다. 땅속처럼 폭신한 흙이 아닌 굵은 모래사막을 헤쳐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매끄럽고 반들거리던 표피가 건조해서 고들고들 말랐다. 그런데도 불고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을 향한 오체투지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어디서 왔는지 개미 떼가 바글거리며 지렁이를 향해 달려든다.
6, 눈뜨고 구경만 할 수가 없다. 그래, 너를 구원해 주마. 물을 한 바가지 떠서 지렁이 몸에 퍼부었다. 이번에는 물난리를 만난 개미들이 혼비백산하더니 꼬물거리며 해산했다. 더러는 물 폭탄을 맞아 하직한 놈도 있고. 저질러 놓고 보니 잔인한 내가 속물같이 여겨지고 선과 악의 이중성에 스스로 경악하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 용서하소서. 가뭄과 홍수의 대립을 바라보며 신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을 꿈꾸며 저 너머 세상에 도전한 지렁이, 틈새를 이용해 식량을 챙기러 달려드는 개미 떼. 피조물의 생존 법칙을 신은 그렇게 지으셨는가 보다.
7, 구원의 물로 용트림하던 지렁이가 몸에 붙은 모래를 다 씻어냈다. 자세를 정비하고 휴식을 취한 놈은 또 도전을 시작했다. 몸에 물기가 있으면 땅속으로 들어갈 일이지, 무엇을 얻고자 고난의 행군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잇속을 챙기고자 끊임없이 달라붙는 개미 떼는 또 무엇인고. 먹이사슬은 자연의 순환 고리. 먹고 먹히고, 그리 살라고 피조물에 생명을 허락한 창조주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바이지만,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불편하다.
8, 촉촉하고 새파란 이끼가 자부룩한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토룡이라 일컫는 지렁이가 생명을 반납했다. 떨어진 나뭇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한 번 꿈틀거리더니 고요하다. 최선을 다해 살다가 자연에 순응하는 장렬하고 숭고한 주검 앞에서 애도를 표한다. 나는 오늘 지렁이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미물과 인간의 유기적인 삶,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 상념에 빠진다.
9, 고원지대인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장天葬을 지낸다고 한다. 자연은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그들의 수 천 년 장례문화. 의례가 시작되고 기도를 마치면 천장사들이 망자의 살을 발라내고 토막 내어 언덕위에 올린다. 라마승이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를 불면 피 냄새를 맡은 독수리가 몰려와서 사체를 먹어 치운다. 티베트에서 독수리를 신성시 하는 이유는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고 조상들의 살과 피,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10, 티베트의 장례문화 천장이 미물의 세계에서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보았다. 토룡 선생 문상을 온 모양이다. 개미 군단이 줄을 지어 도착했다. 큰 개미가 절단하고 작은 개미들이 영차영차 분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잔칫집처럼 와글거린다. 자연계에 또 다른 삶이 새로 시작되고.
버려진 양심 / 노아영
청소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스팔트 바닥을 뒤덮은 담배꽁초가 마치 눈이 온 듯하다.
도로공사를 하기 전에는 회색 시멘트바닥이라 쓰레기들이 이처럼 눈에 띄지는 않았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포장을 다시하면서 아스팔트가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 바닥이 거칠어 빗자루 질도 쉽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한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한 손에 쓰레기봉투를 들고 흩어진 콩알을 줍듯 하나하나 꽁초를 주워 담았다.
우리 집 맞은편의 새로 지은 아파트 앞에는 담배꽁초를 무단으로 버리면 범칙금을 부여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주변에 공사도 끝난 시기인데 누가 이렇게 많이 버렸을까’
알고 보니 새로운 입주민 중에 애연가와 근처 사무실 직원들이 하루에 몇 차례나 구름과자를 즐긴 흔적들이다.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사람의 발길이 적은 으쓱한 곳을 아지터로 삼는 습관이 있다.
우리 집은 건물의 구조가 가게 출입구의 정반대 쪽에 대문이 있다. 대문 쪽에는 차를 주차를 할 수 있는 빈공간이 제법 넓다.
가게 문으로만 왔다 갔다 하니 대문 쪽의 소식을 잘 모른다. 가끔씩 큰 물건을 들이거나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을 전할 때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대문을 연다. 우리 집 대문과 맞은편 상가의 주차장이 있는 이곳이 그들에겐 최적의 장소로 만만한 것이다. 주변학교의 청소년들도 상가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거나 여학생과 포옹을 하며 키스신을 찍는 것도 종종 목격을 했다.
며칠에 한 번씩 대문 쪽을 살펴보면 담배꽁초는 눈이 온듯하고, 빈담배갑과 음료수병, 차량에서 버린 듯한 쓰레기 봉지까지 널브러져 있다. 사람들의 심리가 지저분 한곳에 쓰레기를 더 보태는것에는 미안함이 없고 익숙하다.
며칠만 안 치워도 쓰레기가 수북해 지나는 사람들이 보면 집주인이 아주 게으른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쓰레기통을 하나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지만 그 또한 유쾌한 명답은 아니었다.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마침 빈 공간에 주차를 하고 나오는 아저씨가 보였다.
‘저기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 주차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분이 많아...’하고 얘기를 꺼내는데 그분은 내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내한테는 그런 말 할 필요 없어요’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단호하게 말을 자르는 것은 자신은 아니라는 강한 부정이다.
내가 이렇게 청소하며 힘들다하는 하소연 좀 하려다가 오히려 큰 죄인이 되었다.
어줍잖게 말을 꺼냈다가 한마디로 본전도 못 찾고 낭패를 본 셈이다.
에어컨 실외기 옆에 빈담배갑과 파란색 커피 캔이 여러 개 쌓여있다. 청소를 하면서 맞은편 상가 뜨락에 앉은 남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모회사의 똑같은 커피 캔을 들고 있다. 담배와 커피로 휴식을 끝낸 듯한 남자는 캔을 버리지 못하고 손에 든 채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캔 쓰레기가 하나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큼직한 종이에 ‘싸가지 없는 인간들아, 제발 쓰레기 좀 버리지 마라’하고 써서 우리 집 대문에 붙여 놓고 싶지만 세상이 무섭다. 감정기복이 심해 정상을 벗어난 사람이 많으니 적반하장으로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이내 접는다.
‘주차혜택 누리는 감사함도 모르고 쓰레기나 버리는 인간들아, 내가 어디 니네들 쓰레기 치우려 태어난 사람이냐‘ 하고 욕이라도 실컷하고 싶지만 한마디도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하고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다. 아예 체념을 하고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책무처럼 생각해 버리는 게 차라리 편하다.
나의 불만을 들은 남편은 동사무소에 가서 상황을 전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란다. 청소하기가 더 버거워질 때 그렇게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
요즘 여름휴가철이라 고속도로휴게소마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몸살을 앓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모두가 모범시민이고 문화인인데 보는 이가 주시하지 않는 장소에서는 남이 하니까 덩달아 위반을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가정집 음식쓰레기와 가전폐기물, 애완동물 사체까지 버린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분리하지 않고 엉망으로 버리니 그것을 분리하는 환경미화원은 과중업무에 시달리고 아예 검은색 봉지는 풀어보기가 겁이 난다고 하신다.
버리는 손 따로 있고 치우는 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버려진 양심으로 여러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만 그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손톱만치도 미안함을 모르는 그들에게 상대의 입장을 한번쯤 헤아려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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