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dmitory.com/issue/375393752
https://www.nytimes.com/2025/07/28/opinion/smartphones-literacy-inequality-democracy.html
1980년대, 부모님은 나를 영국의 한 발도르프 학교(대안학교의 한 종류)에 보냈다.
당시 학교는 아이들의 TV 시청을 말리고, 대신 독서와 체험 학습, 야외 활동을 강조했다.
그때는 그런 규제가 답답했지만, 어쩌면 그들은 무언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TV를 거의 보지 않고 책을 많이 읽는다.
하지만 학창 시절 이후, 훨씬 교활하고 매혹적인 기술인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이 세상을 장악했다.
이제는 몇 분이라도 집중하려면 휴대폰을 서랍이나 다른 방에 치워둬야만 한다.
약 100년 전 지능 검사가 발명된 이래, 국제 IQ 점수는 '플린 효과'라 불리며 꾸준히 상승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의 지적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난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다수 OECD 국가에서
성인의 글 읽고 쓰는 능력이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하락세가 뚜렷했다.
아이들의 문해력 또한 마찬가지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존 번-머독은 이를 '탈문자(post-literate)' 문화의 부상과 연결한다.
빽빽한 글 대신 이미지와 숏폼 영상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다른 연구는 스마트폰 사용과 청소년의 ADHD 증상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했고,
이제 미국 성인 4명 중 1명은 자신이 ADHD일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학생들의 독서 능력이 떨어지자 학교와 대학에서는 책 한 권을 통째로 읽히는 과제를 점점 줄이고 있다.
2023년, 미국인 절반 가까이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기술이 우리의 집중력뿐 아니라 읽고 추론하는 능력까지 바꾸고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현상이 또 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선뜻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정크푸드 문제를 떠올리면 쉽다.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초가공식품이 넘쳐나면서,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할 여유가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거대한 격차가 생겼다.
서구 선진국에서 비만이 빈곤과 깊은 관련을 맺게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생각하지 않음'의 문제 역시 계급을 따라 흐를까 두렵다.
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때로는 힘든 훈련이 필요하다.
문해력 학자 매리언 울프의 설명처럼,
깊이 있는 독서 능력을 갖추는 과정은 말 그대로 뇌를 개조하는 일이다.
어휘력이 늘고, 뇌 활동이 분석적 사고를 담당하는 좌뇌 중심으로 바뀌며,
집중력과 논리적 추론 능력이 단련된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표현의 자유, 현대 과학, 자유 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이 꽃필 수 있었다.
반면 디지털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사고 습관은 전혀 다르다.
생산성 전문가 칼 뉴포트는 저서 '딥 워크'에서 디지털 세상이 어떻게 우리의 주의를 흩뜨리는지 보여준다.
온갖 알림과 요구가 끊임없이 우리의 집중력을 뺏기 위해 경쟁한다.
소셜 미디어는 중독적으로 설계됐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깊은 사유보다 순간적인 자극에 반응하도록 길들여진다.
그 결과, 우리는 글을 읽더라도
건성으로 훑어보거나 단편적인 정보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 데 익숙해진다.
점점 읽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는 끝없이 흥미로운 짧은 영상을 제공한다.
여기에 온갖 밈, 가짜 뉴스,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 적대적인 허위 정보,
그리고 AI가 쏟아내는 저질 콘텐츠까지 뒤섞인다.
이는 마치 우리 뇌를 정크푸드 코너에 던져 놓은 것과 같아서,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
정크푸드를 멀리하듯 디지털 미디어도 건강하게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듯,
디지털 미디어의 인지적 해악 역시 사회경제적 하위 계층에 집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과거부터 문해력과 빈곤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이제는 가난한 아이들이 부유한 아이들보다 스크린을 보는 시간이 더 길다.
2019년 한 연구를 보면, 연소득 3만 5천 달러 미만 가정의 10대들은
10만 달러(약 1억3500만원) 초과 가정의 또래보다 하루 평균 2시간 더 스크린을 봤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 2시간 이상 오락용으로 스크린을 보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기억력, 정보 처리 속도, 주의력, 언어 능력 등이 모두 뒤처졌다.
솔직히 말해, 인지적으로 건강한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
더 쉽고 자극적인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깊이 있는 독서는 머지않아 소수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될지 모른다.
이미 엘리트, 종교 단체, 보수주의자들은 기술 사용에 스스로 고삐를 죄고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에서는 250개가 넘는 고전 교육 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들 중 다수는 기독교계 학교로, 긴 호흡으로 고전을 읽는 것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는다.
보수 싱크탱크 연구원이 쓴 '테크 엑시트: 스마트폰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는 실용 가이드' 같은 책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보수주의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빌 게이츠나 에반 스피겔 같은 기술 업계 거물들도 자녀의 스크린 사용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어떤 부모는 '휴대폰 사용 금지' 계약을 맺는 보모를 고용하고,
기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여기서 계급의 단면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고전 학교는 비싼 학비를 내야 한다.
한 발도르프 학교의 경우, 자녀를 스마트폰의 해악에서 지키려면
초등 과정에만 연간 3만 4천 달러(약 4700만 원)가 든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많은 주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공정한 운동장을 만드는 조치다.
하지만 이런 규칙이 가정은 물론이고, 소규모 사립학교와 거대한 공립학교에서
똑같은 강도로 지켜질 것이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실리콘밸리 너머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도파민 단식'이라는 이름으로
소셜 미디어 같은 디지털 자극을 의도적으로 끊으며 자기 계발에 힘쓴다.
이처럼 인지 능력을 지키려는 금욕적인 노력은 아직 부유층에 집중된 소수의 문화다.
하지만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어른이 되면서,
우리 사회의 문화적 계층화는 더욱 극명해질 전망이다.
한쪽에는 집중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의식적으로 계발하는 소수의 집단이,
다른 한쪽에는 사실상 글을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거대한 대중이 존재할 것이다.
이런 미래가 완전히 현실이 되면 어떻게 될까.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잃은 유권자는 진영 논리에 쉽게 갇히고, 이성보다 감성에 휘둘리며,
사실이나 역사적 기록에 무관심해진다.
합리적 주장 대신 분위기에 휩쓸려 허황된 믿음이나 기괴한 음모론에 빠져들 것이다.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면, 서구 사회가 이미 이 길에 얼마나 깊이 들어섰는지 보여주는 신호다
이런 대중은 영악한 선동가들에게 부패를 위한 최적의 토양을 제공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책을 바꾸려는 소수의 권력자들은,
대중이 따분하고 복잡한 정책을 들여다볼 집중력이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득을 챙길 것이다.
이제 대중이 원하는 것은 치밀한 조사가 아니라, 상대를 조롱하는 짧은 영상 하나다.
지배 계급은 대중의 이성적 능력 저하에 실용적으로 적응할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형식은 유지하되,
핵심 정책은 변덕스럽고 조종하기 쉬운 시민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놓는 식으로 말이다.
결코 반가운 미래가 아니지만, 우리의 '디지털 세대' 청년들은 무관심해 보인다.
여러 국제 여론조사에서 Z세대의 민주주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대중을 소외시키고 정책과 여론의 격차를 이용해 이득을 볼 기회는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에만 주어지지 않는다.
이 '탈문자' 세계는 엘리트의 언어와 저급한 밈(meme)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선동가에게 유리하다.
진실성보다는 자신감 넘치는 인물, 뛰어난 소셜 미디어 감각을 지닌 권력자에게 유리하다.
돈도, 힘도, 자신을 대변해 줄 사람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세상이다.
*해링턴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다.
온라인 매체 '언허드(UnHerd)'의 기고 편집자이며,
저서로는 '진보에 반대하는 페미니즘'과 출간을 앞둔 '왕과 군중'이 있다.
첫댓글 이거 되게 공감함
ㅇ진짜그런듯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세계가 7년만에 현실이 됨… 가난한 사람은 하루 종일 가상세계에서 광고를 봐야하는 시대 그 누구도 낭만과 활자를 추구하지 않음
생산해내는 정보만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기 힘들겠지.. 긴 호흡으로 책을 읽고 자기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고 경험한 바와 추구하는 바와 성찰한 바를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하라라 아니ㅠ 그냥 이런 좋은 글 꼼꼼히 읽어보니까 도파민 튀는 정보만 찾을 뿐 내 삶에서 나와 세상에 유익한 게 뭐가 있을지 찾지 않는 나를 반성했어.. 독후감 쓰고 싶은데 잘 안 써ㅠㅠ 평상시 글 쓰는 걸 잘 못하는데 대신 좋은 글은 열심히 읽으려고 해ㅜㅠ 그리고 이 글은 진짜 좋은 글이야! 모두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난할수록 자주 미디어와 디지털기기를 접하지않으면 기기 사용법과 최신정보로부터 멀어지니까 문제임...
부유하면 사적으로 시간과 돈을 들여서 테크를 배우면 되고 최신정보야 이미 주변인들이 다 물어다 줄거고...
2
저렴한 정크푸드 패스트푸드만 먹는 사람들이 비만율 높아진 거랑 똑같네 ㅠ
오
저런 현상은 독서율 낮은 남성들 사이에서 훨씬 가속화될 거고 , 그결과 이준석이 대선까지 나온거겠지^^ 상식적이지 않고 자극적인걸로만 판단하는거
ㅁㅈ 나도 요즘 거의 안보는듯
아 이런글 보면 핸드폰 끊어야되는데..
ㅣ맞아 휴대폰 보는 시간 줄이고 긴 글도 읽고 책도 보고 해야 해ㅠㅠ
공감된다 생각 많아지네...또 책 읽는 애들은 그런 깊이 있는 대화가 비슷한 책 읽고 사유하는 애들끼리 될테니 그게 또 무리가 되고...
이거 근데 양극화 존나존나존나 심한거 같음 진짜 심하다는 말로는 모자랄정도로 심하던데
수능특강 국어 지문에 현대철학 나와서 진짜 존나 심하게 놀람.... 베르그송 이런거X 사변적 실재론 이런거 나옴...;;... 동시대 철학사조....;;.... 그니까 이걸 지금 수능 문제로 푼다는거지...?
좋은 글 너무너무 고마워.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진짜 삶이 힘들고 바쁘면 더 즉각적인 도파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 백수여도 회피 차원에서 도파민 중독이 되기도 하고... 이런 격차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대화도 힘들듯
좋은 글 고마워! 지우지 말아주라!!
좋은 글 고마워.
도파민 단식!!!!!
좋은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