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것은?
부부라는 나무, 자라지 않는 나이테
김영순 씨와 김복돌 씨의 만남, 시작은 참으로 별거 아니었다.
아니지, 별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 둘이 살을 맞대며 아들과 딸을 낳고 알콩달콩 산 지 27년째.
알콩달콩하기만 한 삶은 아니었지만 부부가 나이를 먹고,
그만큼 자녀들의 나이가 찰수록 부부의 성숙도도 함께 높아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말이 쉽지 나이도 먹었고, 일도 할 만큼 했으니
서로 아웅다웅하던 세월 모두 잊고 화도 삭일 겸 오붓하게 여행이라도 다니며
좀 더 아기자기한 인생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도 잠시.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생활을 낱낱이 까발리는 회고록이
서로의 인질이라도 되는 양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늙었는데?’,
‘그럼 나는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희생한 것 아냐?’라며 복수하겠노라고 결심까지 한다.
자녀에게는 보이기 차마 부끄러운 모습일 뿐 아니라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약한 과거를 돌아보면 정말로 못. 할. 노릇이다.
‘우리 결혼했어요’라고라고…?
M본부에서 절찬리에 방영되다 지금은 한풀 꺾인
<우리 결혼했어요+(하트까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이렇더라.
“일등 신랑감, 신붓감으로 손꼽히는 연예인들의 좌충우돌 가상 결혼생활이 시작된다!”라는데,
과연 누굴 위한 프로그램일까 싶었다.
축약해서 ‘우결’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형 리얼리티 쇼치고는 어느 정도 붐을 얻긴 했다.
K본부의 <사랑과 전쟁>이 결혼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건 이야기로 재구성한 드라마지 쇼는 아니니까.
제작진 입장에서도 사실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출연자들에게서 20년 차 묵은지 부부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 아냐?’라고….
그러면 다시 이렇게 되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왜 책임감 부분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거지?”라고.
누구나 알렉스처럼 자기 아내의 발을 씻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TV를 끄는 순간 다시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아, 여자였구나’, ‘아, 남자였구나’라는 아쉬운(?) 현실만 깨닫게 되니
‘부부’라는 허울 안에서 신인 연예인들의 PR만 하다가 끝난 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엄마나 아빠들의 발칙한 판타지를 재현해
서로의 아내와 남편을 바꿔봤던 케이블 본부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좀 더 리얼한 부부 다큐였다.
여전히 책임감은 없는데, 싸우고 물어뜯고 툭탁거린다.
그럼 어떻게 할까? 팔짱 끼고 앉아 <우·이>(=우리 이혼했어요) 차기작을 기대하면 되는 건가?
대한민국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일의 현실성
어쨌든 결혼생활은 장난도 꿈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12만~14만 쌍의 부부가 헤어지고 하루 평균 3백42쌍의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한다.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 중 미국은 51%, 스웨덴 48%에 이어
한국의 이혼율이 47. 4%로 세계 3위를 차지했다는 통계 결과도 발표됐다.
케이블 본부의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남편들이 익명으로 설문 혹은 투표를 하는데
그 결과들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다.
아내 친구들 중에서 내 아내가 가장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88%),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아내에게 비밀로 할 것이다(89%) 정도만으로도 기가 찬데,
아내와의 섹스 혹은 스킨십 도중에 다른 여자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도 98%.
그렇다면 대한민국 남편들이 절대 뿌리치지 못하는 유혹 1위는 뭘까?
결혼만 하면 처가의 재산을 모두 내게 물려준다는 데릴사위의 유혹(42%),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살며 놀고 싶다(58%)고 답한 거라고 하니
붙어 있던 정마저 떨어져 나갈 노릇이다.
‘우리 부부는 권태기다’라고 답한 30~40대 부부의 수가 88%나 된다니
위 대답은 그냥 애교 정도인 걸까?
19금 응답 중에서 남편들이 아내에게 쓴 가장 굴욕적인 각서 1위는
‘한 번만 더 바람피우면 거기를 잘라버리겠다’였다.
외도 문제 역시 심심찮게 등장하는 부부 사이의 큰 문제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아내들에게
“왜 저 인간하고 살고 계신가요?” 묻기도 뭣하고, 묻는다면 우린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어떤 마음가짐 혹은 어떤 비장한 결의가 있어야
참고, 조율하고, 부대끼며 부부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부부라는 이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부부라는 이름, 평생의 동반자였다가도 순식간에 적이 되어버린다.
이혼율 세계 3위? 환경이 이런데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든 부부든 둘이서 호흡,
아니 팀워크를 맞춰 사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옆집, 앞집 부부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부부들 속사정이야 부부밖에 모르는 건데, 위안다운 참 위안을 우리가 찾을 수 있기나 한 걸까?
결혼생활은 판타지나 소꿉장난도, 쇼도 아닌 현실이다.
가사와 육아, 경제력과 자녀 교육, 성격 차이, 부부간의 섹스 문제 등 부부이기 때문에
함께 겪고 또 겪어야만 하는 부분이 때론 고문이 됐다가
부부 사이를 위태롭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동화도 부부가 된 이후의 삶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어쨌든 과정을 보면 부부는 일평생 격렬하게 사랑하고 격렬하게 싸우며 살아간다.
평생에 몇 고비를 넘어야 진짜 부부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어렵기만 한 것이 부부의 결혼생활 아니던가?
부부가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삶의 고비들은 가정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자들이 진정한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진짜 부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그 길을 ‘부부’라고 명명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어떤 정의나 공식 따위가 아니라면 그 길을 걸어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가다 힘들면? 그땐 또 잠깐 쉬면 된다.
애초부터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도,
늦게 온다고 당신 간 빼갈 자라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