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글쓰기책쓰기 - (604) 글쓰기 그 이상의 글쓰기 - ③ 전공이 뭐예요?/ 글쓰기 고수 김연준

[화룡이(이창모)]

글쓰기 그 이상의 글쓰기

네이버블로그/ [23년 11월] 전공이 뭐예요? 아.. 저도 모르겠어요..

③ 전공이 뭐예요?

“전공이 뭐예요?”

처음 만났을 때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더 이상 이런 질문이 통할 리 없다.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는 분들만 봐도 그렇다. 전공과 상관없이 글을 배워보고 싶다고 나를 찾아온다. 전공도 참 다양하다. 컴퓨터공학, 통계학, 간호학, 체육, 실용음악, 역사학, 연극영화학… 처음에는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활용해 참신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무색할 만큼 훌륭한 글이 많았다. 특히 한 학생은 유독 자신의 전공 분야를 녹여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컴퓨터공학과 뇌인지과학을 공부한 자신의 배경을 활용해 SF 소설을 쓰기도 했다. 아래는 학생의 작품 「제페토」의 일부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이었다. 몸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그대로였다. 머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간호사가 손거울을 내밀었다. 거울을 보니 머리는 짧게 밀려 있었고 붕대로 드레싱된 상태였다. 붕대 속 머리는 바늘로 꿰맨 자국이 선명했다. 그리고 정수리 쪽에는 바늘 형태로 된 전극이 뇌의 운동영역 주위에 삽입돼 있었다. 삽입된 전극 위로 전극 커넥터가 연결돼 있었다. 진호가 봐도 사이보그 인간 같았다. 다시 그 박사가 찾아왔다.

“진호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어요. 저희가 진호 씨를 위해 IBM2022이라는 컴퓨터를 제작해보았습니다. 전극을 통해 뇌파를 읽어들여서 외부 장치나 로봇팔을 움직이도록 계산해서 값을 출력하는 시스템이에요. 이곳에 접속 가능하시겠어요?”

진호가 본 IBM2022 컴퓨터는 컴퓨터 본체가 2단으로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라는 것이 특징이었고, 바퀴 달린 카트 위에 위치해 있었다. 일반 컴퓨터처럼 가장 위에는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진호는 정신을 집중해 머릿속으로 컴퓨터 커서를 조종하는 생각을 했다. 컴퓨터에서는 진호의 뇌파가 샘플링돼 숫자로 기록됐다. 기록된 뇌파는 랜선을 통해 광속으로 이동하여 IBM2022 컴퓨터의 계산부로 전해졌다. 계산부에서 딥러닝 알고리즘이 작동돼 뇌파를 100밀리초마다 해독했다. 해독 결과값으로 x, y좌표 2차원 벡터를 출력했다. 출력된 벡터를 통해 움직인 커서는 진호가 의도한 방향과 같았다. 스스로 입을 움직일 수 없어 콧줄로 밥을 먹어야 하는 진호에게는 큰 선물과 같았다.

“잘 하시네요. 역시 운동신경이 남다르시다보니 컴퓨터 커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군요.” 박사가 뿌듯해 하며 바라보았다.

“그럼 슝크를 이용해서 제가 가져온 커피를 집으실 수 있겠어요?”

진호는 처음에는 미숙했지만 슝크를 자신의 팔처럼 생각하며 조종했다. 뇌의 운동영역에서 기록된 움직임을 상상하는 뇌파가 IBM2022의 계산부에서 3차원 x,y,z 벡터로 해독됐다. 해독 결과는 진호가 의도한 대로 움직였다. 커피에 가까지 갔을 때 슝크의 손이 움직여 커피를 잡을 수 있었다. 박사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 학생은 특유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으로 뇌인지과학과 관련된 주제를 다뤘다.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줄거리 속에 설명을 적절히 녹여내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방식은 독특하고 참신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사서로 일하던 학생이 있었다. 그녀가 써온 작품의 제목 역시 「사서」였다. 학생은 자신이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기도 하고 사서로 일하고 있어서 작품을 써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줄거리는 이렇다.

설립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 은서는 진상 손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중에는 항상 보존서고에 있는 책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손님이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보존서고에서 사람이 쓰러지고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돈다. 여러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면서 다른 사서도 모두 보존서고에 내려가는 걸 꺼려 한다. 알고 보니 이런 소문을 퍼뜨렸던 사람은 다름아닌 사서 은서였다. 진상 손님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은 자신이 문예창작과를 나오지 않았는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곤 한다. 하지만 비전공자들이 오히려 할 말이 많다. 전공 분야와 글쓰기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퍼토」를 쓴 학생이나 「사서」를 쓴 학생처럼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얻은 지식과 통찰력을 글쓰기에 활용하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하지 못한 흥미로운 방식으로 주제를 다룰 수 있다.

글쓰기는 각자의 관심사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다. 그래서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이 학생처럼 자신의 전공 분야와 글쓰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글쓰기로 자신이 가진 세상을 다른 이에게 나누기를 기대한다. < ‘잘 쓰겠습니다, 일탈 강사 김연준이 들려주는 솔직담백 글쓰기 라이프(김연준, 서교출판사, 2024.)’에서 옮겨 적음. (2024. 6.15. 화룡이) >

[의초 이정석]

저도 졸업장이 4개이니
전공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시간에 따라
변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룡이(이창모)]

다양한 전공을 가지신 의초 시인님!
모든 작품들 속에 그 다양한 전공의 경험들이
자랑스럽게 녹아들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