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가 참 예쁘네요." 작은 목소리의 손님이 수줍은 눈길을 보내며 가게 로 들어왔다. 손에는 옆집 서점의 봉투가 들려 있다. 알록달록한 소품을 둘러보던 손님이 선반에 줄지어 선 천 인형들을 가리켰다.
"여기에는 그림책 주인공이 많네요?" "제가 직접 그렸어요. 자녀에게 선 물하거나 서가에 두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서요."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내게 말을 건넸다. "사장님 목소리가 듣기 좋네요. 이상한 부탁 같지만 책을 직접 읽어 주실 수 있을 까요?" 꽤 진지한 부탁에 웃음이 나왔다. "어머, 그래요? 그럼 그림책 하나 읽어 드릴까요?" 가게 한편의 자리를 권하니 손님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책장에 서 빨간색 표지의 《무릎 딱지》를 골랐다. "어젯밤에 엄마가……." 엄마가 갑작스레 병으로 떠나 아빠와 남겨진 소 년의 이야기였다. 소년은 슬픔을 꿋꿋이 버텨 낸다. 코끝이 찡해지는 대 목에 이르자 손님의 눈도 젖어 들었다. "너무 슬펐나요?" "엄마 생각이 나서요. 다음에 또 읽어 주실 수 있나 요?" "언제든 오세요. 그땐 재밌는 책으로 읽어 드릴게요." 소담한 동네 책방 옆에 가게를 연 지 4년이 되어 가다 보니 간혹 이런 날 이 있다. 때로는 시 한 편이나 명화 이야기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는 손님도, 다음엔 사춘기 아이와 같이 오겠다는 손님도 만났다. 잡화점에서 책을 읽어 달라는 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공간이 주는 특 별함은 무엇일까? 사람이 머물다 가기에 적절한 온기가 있는 것일까?’ 단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손님들 덕 분에 내 마음도 따스해진다. 이곳이 단순한 잡화점이 아닌 마음에 오래 도록 온기를 전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윤미경 | 서양화가, 진달래상회 대표 멍멍이 고객님
‘뭐지, 이 옹졸한 초록 덩어리는?'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정체불명의 작은 덩어리 하나가 기공소로 배달되 었다. 분명 보철물 제작을 위한 인상재(치과에서 입안 구조를 복제할 때 쓰는 재료)일 텐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치과 기공사로 일하는 동안 이런 인상재는 처음 보았다. '이런 구강구조 라니, 학회에 보고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 옆에 놓인 의뢰서를 읽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강아지 보철물 의뢰드립니다. 금속 크라운으로 제작해 주 세요. 감사합니다. - △△ 동물병원" 강아지 이빨이었다니! 동물도 사람처럼 보철물을 사용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으면서도 상황이 재 밌어 기공사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강아지 전용 보철물 만들어 본 사람?" "오잉? 뭔 소리야?" "왜? 누가 만들었대?"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나는 함박웃음을 짓고 강아지를 위한 송곳니 보철물을 만들었다. 작디작 은 것을 완성하기 위해 거북목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일반 보철물 을 제작할 때와 과정은 같았지만 보철물을 낄 대상이 귀여운 동물이라 생각하니 매일 하는 일인데도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강아지 보철물이라니. 너무 귀엽잖아!' 몇 시간에 걸쳐 강아지 보철물을 완성했다. 반짝반짝 윤을 내는 것도 잊 지 않았다. 기공사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강아지 보철물이었다. "멍멍이 고객님! 제가 만든 보철물 잘 쓰고 있나요? 앞으로 딱딱한 음식은 조심히 씹도록 해요!" 지민채 | 치과기공사,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