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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에 드리는 저의 추억여요
해마다 5월이 오면 나이 일흔 중반을 넘긴 이날까지 가슴을 후빈답니다
스스로 계절의 여왕임을 만천하에 알리듯 내리쬐는 햇빛은 눈부시고 연두 빛 신록은 싱그러우며, 갖가지 꽃들에서 실려 오는 봄 냄새가 황홀하기만 한 5월입니다.
시인 하이네는 '이렇듯 아름다운 시절에 사랑에 눈을뜨고 그 마음을
참지 못해 사랑을 고백했노라'고 ‘계절의
女王’으로 불리는 5월을 노래했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릴 적 선생님이 들려주신 여러 가지 가르치심 가운데 나이 일흔 중반이 되도록 잊혀 지지 않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가슴 뭉클 한 사연들이 저를 매질하며 가슴을 후빈답니다.
1. 우선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얽힌 전설이 떠오릅니다.
늙으신 할머니가 옷장에서 내려트린 이불에 짓눌리어 어린손자가 질식했지만 할머니는 손자가 죽은 줄을 모르고 이불 속에서 자는 줄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밭에서 일하다 들어온 며느리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아이가 질식사한 사실보다는 늙으신 시어머니가 아시면 놀라실까 두려워 태연하게 죽은 애를 들쳐 업고 남편이 일하는 들로 나가 남편에게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가 병이라도 나시어 자리에 눕게 되면 돌아가신다.”고 설득하며 대책을 숙의합니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아내의 말에 ‘할머니가 떨어트린 이불에 눌려 죽는 나약한 놈은 일찍 죽어야 한다. 고 소리치며 핏덩이 어린 것의 뺨을 때리자 죽었던 아이가 살아났다는 전설을 제가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오.
2. 또 다른 전설은 우리고향 충청도 어느 고을에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전쟁으로 일찍 남편 잃어 젊은 나이에 홀로 된 며느리가 역시 홀로되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시아버지는 끼니 때 마다 '삶은 달걀'을 무척 좋아하셨답니다.
여름날 비에 젖은 보릿짚 피워 차린 시아버지 점심밥상 들고 부엌문을 넘어서다 달걀이 마당에 떨어지자 며느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흙 묻은 달걀을 덥석 입에 넣어 침으로 흙을 닦아 시아버지께 올렸다는 ‘삶은 달걀에 얽인 사연’도 어릴 적 선생님이 들려주신 말씀으로 5월이 오면 어김없이 되살아난답니다.
3. 제가 송파문화원에 재직당시 송파구 거여고을에서 내려오는 다른 내용의 일화입니다만 핵가족 시대의 젊은이들을 깨우치기에 아픈 채찍으로 와 닿는 전설입니다.
아들 3형제를 키워 장가보낸 늙은 내외 댁에서 추석명절 전야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어느 댁이나 논밭에서 수확하는 농작물이 고작이니 그해 추석에 가장 관심 있는 음식은 밭 밑 콩으로 빚은 두부였습니다.
밭 밑 콩이란 다른 농작물 자라는 가장자리에 덤으로 키워 수확한 콩을 말합니다.
늙은 아버지는 맷돌에 풋콩 갈아 두부 만들기 전에 콩국에 소금 부어 생기는 순두부를 특별히 좋아하셨답니다.
명절 전날 맷돌 돌려 두부를 만드는 며느리들은 모두 자기 남편에게 방금 만든 두부를 먹이느라 시끌벅적 이지만 순두부 좋아하시는 사랑방의 시아버지는 이제나 저제나 순두부가 들어올까 기다렸지만 누구도 나타나질 않습니다.
날이 저물 때쯤에야 손자 녀석 데리고 옆집 갔던 마나님이 들어오시어 순두부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드렸는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죽일 것들!” 하면서 부랴부랴 손수 순두부 한 그릇 만들어 남편에게 드립니다.
순두부 그릇을 받아든 늙은 남편이 밖을 향하여 “야 이놈들아! 나도 마누라가 있는 몸이다”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송파구 문화재위원이신 연세 높으신 어른께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며 들려주신 가슴 떨리는 이야기입니다.
4. 몇 해 전 '스승의 날' 즈음에 저의 집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처럼 가족모두가 일찍 집에 들어와 함께 저녁밥을 먹고 TV를 보는 중에 마침 비행학생 관련 뉴스가 나오자 남자고등학교 교사인 큰 애가 자기 엄마와 뭔가를 소곤거리기에 귀를 기울였더니 다음과 같은 대화였습니다. 공부시간에 학생들 표정이 약간 지쳐 보이기에 아이들을 향해 “너희들 공부하기 지칠 테지만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한 뒤에 월급 타거든 선생 찾아와 술 좀 사라”고 했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정색을 하며 ‘뭘 기다릴 것 있습니까, 지금도 아는 술집 많으니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어요’ 하면서 ‘지금 당장 나가자’고 조르는 통에 혼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딱딱한 교실에서 학과공부 하다가 가끔은 선생과 제자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분위기조정을 위한 유머로 여겨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자식이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듣자니 문득 50년대 초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한테 회초리를 맞으며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이 없지만 옆자리 친구의 공책에 낙서한 잘못을 저지른 나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내리치던 선생님이 잠시 멈추시더니 “너희들!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잎의 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설명하라”며 근엄한 표정을 보이자 두려운 마음으로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고개 숙인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대나무 잎에 눈이 많이 쌓여서 그 눈이 밤사이 얼면 대나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휘었다가 마침내 부러진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눈 쌓인 대나무가 부러지지 않게 하려면 대나무 밭에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대나무 아래를 두들겨서 눈을 털어 줘야하듯이 내가 너를 때리는 것은 네가 부러지지 않도록 바로잡아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를 맞던 나를 포함해 우리 반 친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집 뒤에 대나무가 많았던 저에게는 그 때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잎의 눈'이라는 살점 떨리는 경고의 가르침은 60년도 훨씬 더 지난 이 5월에 다시 되살아 가슴을 후빈답니다.
우리를 그렇게 깨우쳤던 그 선생님은 아직 살아계신지, 저승에라도 가셨는지 가슴 울컥 그리워지는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부모님의 지나온 역사를 경시(輕視)
하고 핵가족시대에 만족감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불효인 저 자신을 매질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