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ts Cornelis Escher(1898-1972)
기하학적 원리와 수학적 개념을 토대로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된 내적이미지를 표현한 네덜란드의 판화가·화가이다. 평면의 규칙적 분할을 통한 무한한 공간과 그 속의 원과 회전체 등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다룬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하다. 그는 교묘한 수학적 계산에 따라 작품 활동을 했는데, 특히 '이상한 고리 (뫼비우스의 띠)'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다. 미국의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 태터 (Dou glas Hofstadter)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다룬 『 괴델, 에셔, 바흐 』라는 책에서 에셔의 '이상한 고리',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 바흐의 ' 무한히 상하는 카논'을 함께 묶어 '영원한 황금실'이라 불렀다.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라 불리는 평면의 규칙적 분할은 일정한 형태의 타일을 사용해서 겹치지도 않고 틈을 남기 지도 않으면서 바닥을 완전하게 덮는 배열방식을 의미한다. 통상 이 공간분할에 사용되는 대상은 바닥에 까는 타일과 같은 정다각형이나 그에 준하는 도형들이다. 그러나 에셔는 수학적 도형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상적 형태들의 공간분할에 더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그는 "변태"(metamorphoses)-어떤 형태가 다른 형태와 얽혀 서서히 변해가면서 심지어는 2차원 평면을 벗어나는 2차원 형태들-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특별한 기쁨을 느꼈다.
에셔(M.C.Escher) 그는 1898년 6월 17일 네덜란드의 프리슬란트주 레이우아르던에서 토목기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픽아트에 관심을 가졌으며 1919∼1922년에는 하를럼 건축공예학교에서 판화제작 기술을 배웠다. 초기에는 풍경화가로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전원풍경을 주로 그렸다.
1936년 에스파냐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궁전을 방문한 뒤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궁전의 벽과 마루를 장식한 타일의 모자이크에 심취하여 예술적 관심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기하학적 원리에 따른 환상을 자세히 그린 특이한 작풍을 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물고기·새·동물 등을 반복적으로 대칭배열하여 전체 패턴을 구성하였다.
1944년 무렵부터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띤 그의 작품은 3차원적 구성을 2차원적으로 표현해 사실과 상징, 시각적 환영, 시각과 개념의 관계 등을 다루어 실제경험으로는 모순된 것에 합리적 느낌을 나타냈다. 공간착시와 불가능한 장면의 사실적 묘사, 정다면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었으며, 판화작품에서는 수학적 개념이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주변에 있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자기의 상상에 기본을 두고 내적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공간, 공간 속의 원과 회전체 등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었다. 주요 작품에 《반사되는 공을 든 손 Hand with Reflecting Globe》(1935),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Ascending and Descending》(1960), 《폭포 Waterfall》(1961) 등의 석판화가 있다.
Castrovalva (Abruzzi),1930, Lithograph
1920년대 남부 이탈리아 거주 시절 제작한 현지 건축물과 풍경에 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 좁은 시골 길 가장자리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아브루치의 풍경 전망을 에셔답지 않게 최대한 충실히 재현하려 한 초기 목판화이다. 그럼에도 뭔가 기괴한 분위기를 에셔 특유의 조망도 속에 은은히 풍기고 있다.
거울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Mirror)
1934, Lithograph, 39.4 x 28.7 cm
거울이나 물방울 또는 유리구슬에 비친 반영상은 에셔가 즐겨 그리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거울 속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공상을 해본 적이 있을 거다. 그럼 왜 그가 이 테마를 좋아했는지 알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위대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덧없는 그림자라는 예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저 유리 구슬에 비친 상처럼. 플라톤도 그랬고, 니체 자신도 그랬다. 어쨋든 거울 속의 세계와 현실. 에셔는 종종 이 두 세계를 하나로 결합하곤 했는데, 그건 아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첫번째 주제 '여러 세계를 넘나듦'과 세번째 주제 '거울에 비춘 상'을 결합시켰다.
Hell, (copy after a scene by Hieronymous Bosch), 1935, Lithograph, 25.1 x 21.4 cm
낮과 밤 (Day and Night), 1938, Woodcut in black and gray, printed from two blocks,
초기 목판화 중 가장 걸출하다 평가받는 이 작품에서 에셔는 모자이크 양식과 형태심리학의 모티브를 적절히 구현하고 있다. 네델란드풍 마을 사이에 있는 직사각형 밭은 점차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거위의 실루엣으로 교묘하게 바뀌고, 검은 거위는 왼쪽으로 하얀 거위는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형상을 이룬다.
또 왼쪽에서는 흰 실루엣이 융합하며 낮의 하늘을, 오른쪽에서는 검은 실루엣이 용해되며 밤의 배경을 형성해 '거울 이미지'를 보이며 서로에게 흘러든다. 한편 하얀 거위 무리가 지각될 때 검은 거위 무리들은 배경 역할을 하게 되어 인지되지 않는다. 명도와 명암 대비를 절묘하게 구사하여 형태심리학적 효과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물고기와 새 (Sky and Water II 1938) Woodcut
에셔는 바다를 헤엄치던 물고기가 어느 새 하늘을 나는 새로 변형되는 것을 보여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다"라는 자신의 사상관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펼친다.
Fish, 1942 Woodcut on textile
말씀, 1942
변형이란 하나의 형태가 점차 모습을 바꿔 다른 형태가 되는 걸 말한다. 이 작품을 보면 두가지 변형이 있다. 먼저 중심에 있는 커다란 삼각형이 세방향으로 뻗어나가 결국 새와 물고기와 개구리로 변한다. 간단한 기하학적 도형이 복잡한 유기적 형태로 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피타고라스적 세계 창조의 관념일 거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테두리에 있는 이 세 종류의 피조물들은 테두리를 돌면서 서로 모습을 바꾼다. 새는 물고기로, 물고기는 개구리로, 개구리는 다시 새로 말이다. 피타고라스파의 신비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플라톤은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고 한다.
도마뱀 (Reptiles), 1943 Lithograph
<도마뱀>에서 알 수 있는 에셔의 가장 중요한 열쇠말은 ‘여러 공간을 넘나듦’이다. 도마뱀은 현실 속의 도화지와 책 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이내 다시 도화지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물론 이는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누구나 상상해낼 수 있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3차원 입체공간과 2차원 평면공간 사이의 괴리감을 없애는 상상력은 에셔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3차원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는 입체 공간임을 잘 알고 있다.
3차원의 모태는 2차원이고, 다시 그 뿌리는 1차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에셔가 인과관계에 대한, 다시 말해 3차원의 원인을 2차원과 1차원에서 찾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이 이리도 완벽하게 공간 개념을 구현해낼 수 있었을까? 논리학의 개념을 배제하고 <도마뱀>을 감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남, 1944
이 그림 '만남'은 이 주제 (여러 세계를 넘나듦)의 변형이다. 단, 여기엔 하나의 차원이 더 있다. 뒤의 배경을 보면 무(無)에서 인물들이 탄생하고 있다.
Diploma Tijdelijke Academie, 1945, Woodcut, fourth state, 34.2 x 24 cm
Eye, 1946, Mezzotint, Third state (upper left), Fourth state (lower left), Sixth state (upper right), Seventh and final state (lower right), 31.9 x 31.7 cm
높고 낮음 (Up and Down), 1947
Lithograph, 50.3 x 20.5 cm
이 작품의 상단에서 우리는 야자수가 서있는 마을 광장을 3층 높이에서 내려다 보고, 하단에서는 동일 광경을 1층의 시각에서 보게 된다. 지상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바닥에 있는 것과 동일한 타일이 천장에도 붙어있음을 감지한다.
중앙부분을 좀 더 확대적으로 보면 오른쪽 집이 보여주는 시각적 모순을 알게 된다. 소년이 앉아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상의 바닥에 닿지만, 창문을 보면 다시 집의 맨꼭대기 층에 있게 되는 역설이다.
또 다른 세상 (Another World), 1947
이 작품은 수평면과 수직면이 모종의 상대적 관계를 보여주는 '평면 기능의 상대성'이라는 주제 시리즈의 첫번째이다. 벽에 있는 아치형 창문으로 세가지 다른 풍경이 보이고, 위쪽 창문을 통해서는 가파른 땅바닥의 모습이 나타난다. 중앙 창문으로는 눈높이의 지평선을 보고, 아래쪽 창문으로는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이처럼 한 시점에서는 바닥이, 다른 시점에서는 천장이 되는 각면의 상대적 기능을 이용하여 심연과 지평선, 하늘을 결합하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에셔는 절묘하게 통합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는 손 (Drawing Hands), 1948
Lithograph, 28.2 x 33.2 cm
이 그림은 미국의 더글라스 홉스테더가 자신의 베스터셀러 '괴델, 에셔, 바하'(1979)에서 3인의 천재가 추구한 '영원한 황금실'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에셔적 순환고리를 설명하는 데 인용한 작품이다. 홉스태더는 여기에 나타난 두 손을 그리는 에셔의 실제 손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자신을 언급하는 주체와 객체가 뒤섞여 나타나는 '무한역행'의 순환 패러독스를 보인다고 했다. 이 점에서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 진중권은 이 그림의 원형은 이상한 순환고리의 일종인 '뫼비우스의 띠'라고 단언한다.
Sun and Moon, 1948, Woodcut printed from four blocks, 25.1 x 27 cm
별 (Stars), 1948
온갖 종류의 정다면체들이 별처럼 공중에 떠다니고 중심에 3개의 정팔면체가 결합한 구성물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2마리의 카멜레온이 들어앉아 죽은 세계에 생명의 기운이 깃들게 한다. 카멜레온이 선택된 이유를 에셔는 이 짐승의 발과 꼬리가 공간 속을 선회하는 정팔면체의 뼈대를 잡고 있기에 가장 최선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 작품은 별이라는 목판화이다. 이것은 정8면체, 정4면체, 정육면체를 중첩시켜서 만든 입방체이다. 만일 에셔가 수학적 형태들만을 그렸다면 우리는 아마 그나 그의 작품들에 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다변체안에 카멜레온을 집어넣는 장난기로 우리의 허를 찌른다. 그는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습관적인 지각의 세계에 충격을 주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도록 도발한다. 이것이 수학자들로 하여금 에셔의 작품들에 경탄해 마지 않게 하는 한 요소이다. 바로 그러한 지각적 새로움이 모든 위대한 수학적 발견들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Puddle, 1952 Woodcut in three colors
상대성 (Relativity), 1953 Woodcut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바닥과 계단에서 서로 교차하며 걷고 있는데 이는 3개의 중력이 서로 교차작용함을 나타낸다. 이들은 각기 다른 세계에 속하기에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 한쪽의 사람에게 바닥인 것이 다른쪽에서는 벽으로 변모되는 상대성의 개념을 통해 에셔는 중력까지도 무시되는 새로운 유희를 보여준다.
3개의 세계 (Three Worlds), 1955 Lithograph
거울이나 물방울, 유리구슬에 비친 반영상은 에셔가 즐겨 다루는 주제 중 하나다. 여기에서는 이를 통해 3개의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나뭇잎이 떠있는 수면이 나무가 서있는 물 바깥과 물고기가 헤엄치는 물 속을 동시에 비춤으로서 2개의 공간이 하나로 통하게 된다.
볼록형과 오목형, 1955
그림 우측 상단에 깃발 하나가 다리 아래 걸려 있다. 깃발 속 3개의 다이어몬드는 정육면체의 형태를 보이는데 보는 방식에 따라 왼쪽 또는 오른쪽이 그늘진 3개의 정육면체로 지각된다. 이러한 오목과 볼록의 역전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그림 전체를 왼쪽에서부터 3등분하면 왼쪽과 오른쪽 부분은 서로 반대쪽 면을 보여주는 실제처럼 여겨진다. 반면 중앙 부분은 전체적으로 불확실한데, 바닥은 천장으로 내부는 외부로 볼록면은 오목면으로 보여지는 동시적 시각성 때문이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3개의 집 또는 예배당에서 왼쪽은 바깥, 오른쪽은 안쪽에서 본 시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중간 부분 플룻을 부는 두명의 소년을 쳐다보면 헷갈리게 된다.
예배당의 십자지붕을 내려다보며 플룻을 부는 왼쪽 소년은 창문을 내려가 지붕을 건너 집앞 어두운 땅바닥으로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오른쪽 소년의 경우 왼쪽 소년에게서 지붕이었던 것이 머리 위 천장으로 되었고, 그의 아래는 바닥이 아니라 발을 내딛으면 바로 추락하는 심연인 것이다.
유대의 끈 (Bond of Union), 1956 Lithograph
3차원성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소재로서 사용한 나선형 띠로 에셔는 인간관계의 따뜻한 유대감을 표현했다. 이 그림속의 두 남녀는 에셔 부인과 그 자신이다. 둥둥 떠다니는 공들은 무한한 시공간을 상징하며 액체는 생명을 포함하여 무엇이든 변치않게 영원히 보존하는 불멸의 묘약 같아 보인다.
명성을 얻기 전 30년간 궁핍한 시절을 함께 한 반려자에 대한 에셔 나름의 고마움과 애정의 표출이 잔잔하게 배여있는 훈훈한 작품이다.
첫댓글 오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