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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해 즉각 재심 개시 결정하라!
[기자회견문]
1964년 5월 6일,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 저항하다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히게 되었다. 당시 검찰과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자는 오히려 ‘피의자’가 되어 중상해죄로 6개월여간 구속되어 수사·재판을 받게 되었다. 결국, 피해자는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가해자가 받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운 형이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당시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 정당방위를 인정받겠다는 의지로 살아왔다. 사건이 발생한 지 56년이 지난 2020년 5월 6일, 피해자는 자신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였다. 피해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자신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사·사법기관의 여성폭력에 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러나 2021년,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은 공판절차에서 이루어진 검증의 방법, 감정의 내용, 법관의 언행 등이 상당히 부적절하고 피해자의 인격을 침해했을 우려가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는 ‘오늘날의 관점’이라는 단서를 달며, 성차별이 자연스레 여겨진 1960년대에 진행된 공판이었기에 지금의 잣대로 다시 판결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피해자는 “56년이 지났는데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도 못 하는 우리 사법이 후세들에게 부끄럽다”라며 즉각 항고했다.
본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2020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국민청원’에 총 18,839명이 동의했으며, 재심 개시 촉구를 위한 서명에 현재까지 36,065명의 시민이 참여하였고 서명은 지속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은 대담, 토크쇼, 캠페인, 전국 시위 등에 참가해 피해자와 연대했다. 국회의원, 변호사, 입법조사관, 교수, 경찰 등 전문가들 또한 본 사건의 문제와 여성의 방어권이 여성폭력의 맥락 속에서 고려되고 인정되어야 함을 지적해 왔다.
재심 청구를 접수한 지 2년이 다 되어감에도 대법원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88개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은 바로 지금, 대법원이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잡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대법원은 재심을 결정하고, 사법부는 피해자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여 여성폭력 피해자에게 자신을 지켜낼 권리가 있음을 사회 전체에 각인시켜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본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2023년 5월 2일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총 288개 단체)
한국여성의전화(24개 지부)
강릉여성의전화, 강화여성의전화, 광명여성의전화, 광주여성의전화, 군산여성의전화, 김포여성의전화, 김해여성의전화, 대구여성의전화, 목포여성의전화, 부산여성의전화, 부천여성의전화,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 성남여성의전화, 수원여성의전화, 시흥여성의전화, 안양여성의전화, 영광여성의전화, 울산여성의전화, 익산여성의전화, 전주여성의전화, 진해여성의전화, 창원여성의전화, 천안여성의전화, 청주여성의전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12개 기관)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한올지기,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대구여성인권센터, 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디딤, 새움터, 수원여성인권 돋음, 여성인권 티움,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인권희망 강강술래,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제주여성인권연대
여성인권실현을위한가정폭력상담소연대(19개 기관)
강릉여성의전화 부설 해솔상담소, 광명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광주여성인권상담소, 군산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김포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피어라,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 성폭력ㆍ가정폭력상담소, 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상담소,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 부설 강서양천가정폭력상담소, 성남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수원여성의전화 부설 성가정폭력 통합상담소, 시흥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ㆍ성폭력 통합상담소, 안양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ㆍ성폭력 통합상담소, 영광여성의전화 부설 영광여성상담센터, 익산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전주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파주여성민우회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함께',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해윰가족상담소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66개 기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36개 기관)
(사)기장열린상담소부설 성·가정폭력통합상담소, (사)행복나눔지원센터부설 새벽이슬장애인성폭력상담소, 가족과성건강아동청소년상담소, 강릉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거제YWCA성폭력상담소, 거창젠더폭력통합상담센터, 경남여성장애인연대부설 경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경북여성인권지원센터부설 경북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경원사회복지회부설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경주다움성폭력상담센터, 고양여성민우회부설 고양성폭력상담소, 광주성폭력상담소,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광주여성의전화부설 광주여성인권상담소, 광주여성장애인연대부설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구미여성종합상담소, 군산성폭력상담소, 군인권센터부설 군성폭력상담소, 군포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김포성폭력상담소, 김해성폭력상담소, 꿈터성폭력상담소, 나주여성상담센터, 남양주가정과성상담소, 다함께성·가정상담센터, 담양인권지원상담소, 대구여성의전화부설 여성인권상담소피어라, 대구여성장애인연대부설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대구여성통합상담소, 대전YWCA 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대전여민회부설 성폭력상담소 ‘다힘’, 대전여성장애인연대부설 대전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대천가족성통합상센터, 동구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 동대전장애인성폭력상담소, 동두천성폭력상담소, 동해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로뎀나무상담지원센터, 로뎀성폭력상담소, 무안여성상담센터, 밀양시성가족상담소, 벧엘성가족상담센터, 부산성폭력상담소부설 부산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부산여성장애인연대부설 성·가정통합상담소, 부여성폭력상담소, 부천여성의전화부설 성폭력상담소, 부천청소년성폭력상담소, 사)강원여성가족지원센터부설 춘천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사)경남여성회부설 성폭력상담소, 사)국제문화교육진흥원 영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법률구조법인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아산지부 아산가정성통합상담센터, 사)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상담소, 사)생명과마음 태안군성인권상담센터, 사)성폭력예방치료센터부설 전주성폭력상담소, 사)시흥여성의전화부설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사)울산성가족상담소지부부설 울산성폭력상담소, 사)제주여성인권연대부설 제주여성상담소, 사)진해여성의전화부설 진해성폭력상담소, 사)한마음부설 한마음상담소, 사단법인수원여성의전화부설 통합상담소, 사단법인원선복지회부설 평택성폭력상담소, 사람과평화부설 용인성폭력상담소, 사복)한국생명의전화울산지부부설 울산남구통합상담소, 삼척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새경산성폭력상담소, 서천성폭력상담소, 서초성폭력상담소, 성남여성의전화부설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성폭력예방치료센터 김제지부성폭력상담소, 성폭력예방치료센터정읍지부 성폭력상담소, 세종YWCA성인권상담센터, 속초성폭력상담소ㆍ장애인성폭력상담소, 씨알여성회부설 성폭력상담소, 아라리가족성상담소 ,안산YWCA여성과성상담소, 안양여성의전화부설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양산성가족상담소, 여수새날상담센터, 연천행복뜰상담소, 영월성폭력상담소 마음쉼터, 예산성폭력상담소, 오내친구장애인성폭력상담소, 울산장애인인권복지협회부설 울산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의정부장애인성폭력상담소, 이레성폭력상담소, 익산성폭력상담소·장애인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대구ㆍ경북지회부설 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부산지회 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인천지회 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충북·세종지회 청주성폭력상담소, 인천광역시여성단체협의회부설 가정·성폭력상담소, 인천광역시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장애인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공감부설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전남성폭력상담소, 전남여성장애인연대부설 목포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제주YWCA통합상담소, 제주특별자치도지체장애인협회부설 제주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제천성폭력상담소, 종촌종합복지센터가정ㆍ성폭력통합상담소, 진주성폭력상담소,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 창녕성·건강가정상담소, 창원여성의전화부설 창원성폭력상담소, 천안여성의전화부설 성폭력상담소,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청주YWCA여성종합상담소, 청주여성의전화부설 청주성폭력상담소, 충남성폭력상담소, 충남장애인복지정보화협회부설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충남지체장애인협회부설장애인성폭력아산상담소, 충북여성장애인연대부설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충주생명의전화부설 충주성폭력상담소, 칠곡종합상담센터,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통영YWCA성폭력상담소, 파주여성민우회부설 파주성폭력상담소‘함께’, 포천가족성상담센터, 포항여성회부설 경북여성통합상담소, 필그림가정복지통합상담소, 하남성폭력상담소, 하동성가족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위기센터,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복지상담협회부설 꿈누리장애인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한국여성장애인연합부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한사회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함께하는공동체부설 원주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함안성·가족상담소, 함평보두마상담센터, 해남성폭력상담소, 행가래로의왕가정·성상담소, 행복누리부설 목포여성상담센터, 행복만들기상담소, 홍성통합상담지원센터
전국이주여성상담소협의회(10개 기관)
강원이주여성상담소, 남서울이주여성상담소, 대구이주여성상담소, 서울이주여성센터, 인천이주여성센터 살러온, 전남이주여성상담소, 전북이주여성상담소, 제주이주여성상담소, 충남이주여성상담소, 충북이주여성상담소
경기여성단체연합, 고양성폭력상담소, 녹색당, 다른세상을향한연대, 대전여성단체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언니네트워크, 전북여성단체연합,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청주YWCA여성종합상담소, 춘천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발언문]
1. 최원진(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2013년 1.1%, 2016년 2.2%, 2019년 1.7% 전체 성범죄 대비 신고율입니다. 가해자 10명 중 3명 미만이 신고되는 셈입니다. 여기서 끝일까요? 신고된 가해자 중 57.1%, 즉 절반 이상이 기소조차 되지 않습니다.
폭행 협박이 없는 대부분의 사건이 '가해자와 사귀어서',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엔 나이가 많아서', '충분히 저항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불송치 또는 불기소됩니다. 그렇다면 가해자와 사귀지 않았고 나이가 적고, 충분히 저항한 피해자에게 수사사법기관은 정의로울까요?
적어도 59년 전, 1964년의 최말자 님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의롭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에게 죄를 묻고 처벌했습니다.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당시 국가와 사회는 피해자가 성폭력에 저항했다는 사실이 아예 없는 것처럼, 오로지 가해자의 상해 정도에 집중하고 가해자의 행위를 범죄가 아니라 가십처럼 다뤘습니다.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인 예로최말자님의 사례는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요?
여전히 성폭력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저항한 피해자에게 왜 '과도하게' 저항하여 가해자를 다치게 했냐고 묻던 59년 전의 수사사법기관은, 저항하지 못한 피해자에게는 그 자체가 성폭력 피해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처럼 피해자들을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흔히 법은 10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원칙에 대해 다시 질문합니다.
법원은 오늘 이 1명의 무고한 시민을 죄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100명의 범인을 놓친 것은 아닙니까? 경찰과 검찰은 (백 명의)가해자들의 무죄를 위해 1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든 것은 아닙니까?
법원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1.1, 2.2, 1.7 낮은 신고율이 말해주는 것은, 시민들이 성범죄에 있어 수사사법기관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말자 님은 스스로 '오래된 미래'를 바꾸기 위해 2018년 용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번번이 지난 과오를 덮기 급급했습니다. 하여 오늘 이 자리, 대법원 앞에 섰습니다.
법원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60년 전의 판결이 이 사회와 여성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신고되지 못한 사건들과 처벌하지 않은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십시오.
법원이 평소 그토록 강조하는 명예와 정의를 증명하는 길은 바로 최말자님의 재심 청구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주인공인 흑인 여성이 대학 입학을 위한 재판장에서 판사에게 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판사님 오늘 당신이 보게 될 모든 재판 중에서, 어느 판결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 중요한 판결이 될까요?'
2. 시엘(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조직은 더 그렇겠지요.
하지만 사법부는 여러 차례 많은 잘못을 바로잡아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해낸 것이겠지요.
오늘, 여기에도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피해를 입은 분이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법원은 과거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달랐었다는 이유로 잘못된 결정이 올바른 결정이 되진 않습니다.
긴 시간 고통받은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지금까지 해왔던 올바른 선택들과 마찬가지로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고 사건을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피해자가 명예를 회복함과 동시에 사법부의 불명예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3. 김현선(목포여성의전화 대표)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건이 발생한 1964년에도, ‘56년만의 미투’에 3년이 더해진 2023년 오늘도,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들었어야 할 말입니다. 강간을 시도했던 자의 잘못이다, 상대의 혀를 깨물어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피해자의 행동은 정당하다, 마땅히 내려져야 했을 판결은 피해와 가해를 뒤바꿔 피해자에게 ‘중상해죄’라는 억울한 죄명을 덧입혔습니다. 정의는 무너지고 인권과 피해 회복은 지연되었습니다.
여성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 법이 미치는 보호는 충분치 않습니다. 실제 많은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현실은 기득권 남성들이 그어 놓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법의 테두리 밖에서 현재진행중입니다.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 편견에 갇힌 사법기관은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며 여성 피해자의 말하기를 어렵게 만듭니다. 용기내 피해를 증언한 경우에도 피해 사실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며, 피해를 피해로 인정받는 일조차 쉽지 않게 합니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피해, 처벌되지 않은 가해, ‘그렇게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는 가해자 관점의 사회적 학습은 지금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는 재심 청구를 기각하며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건 당시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처하게 된 성폭력 상황과 이에 대한 대응이지, 인권의식보다 성차별 인식이 짙었던 법원의 판결이 아닙니다. 더욱이 헌법에 따라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 국가기관이 그 의무에 반하여 수사, 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짐짓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한 피해와 고통으로 오늘에 이른 피해자를 두고 할 수 있는 말도 아닙니다.
도대체, 국가의 법이 지키려는 게 무엇입니까. 무엇이어야 합니까. "사건 하나하나의 형평을 도모하고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 법이, 시대를 탓하며 잘못을 바로잡는 데 뒷짐진 법이, '법적 안정성' 운운하며 안정적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는 공동체에는 과연 누가 있고, 누가 지워져 있습니까. 당시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에 더해, 피해자에게 잘못을 돌리는 사법부의 태도에 더 큰 고통을 받았던 최말자 님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신체 침해에 방어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법의 안팎 어디에서도 안전을 기대할 수 없는 우리, 여성들이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59년 전, 1964년에 묶어두려는 재판부의 판결에, 성폭력의 피해와 불안으로 자유롭지 않은 모두의 날이 걸려 있습니다. 잘못된 판결은 언제라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보장을 위해 이 자리에 세워진 국가기관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4. 김숙희('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 대독 : 박민정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최말자 님께 보내는 연대의 말
안녕하세요.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숙희입니다.
제가 이렇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최말자 님의 한 맺힌 목소리를 다시 들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1964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가부장적 구조로 인해 성폭력 피해를 왜곡된 시선으로 보았습니다. 법은 온데간데없었고 사회는 피해자를 외면했으며 누구도 최말자 님의 아픔을 안아 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무지함 속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그 시대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여야 하는 최말자 님의 억울함은 어디서 호소해야 합니까?
2023년의 재판부는 당시 재판은 옳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2023년의 재판부는 아직도 1964년의 사회 속에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싸움에 최말자 님이 쓰러지실까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 버텨주신 최말자 님을 다시 한번 응원합니다.
제가 피해를 입은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재판부 판결이 난 날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수십 차례의 조사를 거쳤고, 마지막 희망으로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의 무죄로 끝났습니다. 이 판결은 저를 수차례 죽이는 고통이었습니다.
재판부에 간곡히 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재판에서 억울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길 바랍니다. 재판부는 억울한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재판부의 억울한 판결이 한 인간을, 한 생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과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그 재판의 한을 가지고 산다는 끔찍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디 한 인간이 억울함을 풀고 숨을 쉬며 죽을 때까지 행복이라는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최말자 님, 제가 늘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긴 싸움을 하시려면 건강을 먼저 챙기셔야 합니다. 식사 거르지 마셔요. 정신도, 몸도 건강하셔야 싸울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싸우고 이겨 내십시오. 오늘도 할머니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힘내세요!!
5. 최말자(당사자)
대한민국의 검사는 헌법을 토대로 남녀의 평등과 인간 존엄을 근본으로 삼아 죄를 구별하고 그에 대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저의 사건에서 검사는 엄연한 성폭력 피해자의 방어행위를 과잉 방어라고 하며 오히려 저를 가해자로 만들어 감옥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본 사건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라는 실로 부끄러운 변명으로 재심청구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모든 재판이 시대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저의 사건과 같은 재판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의 체계를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1967년 사건 당시, 아버지는 농사만 지을 줄 아는 무지한 농부였고, 저는 18살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이었습니다. 누구도 저를 지켜줄 수 없었고 검사의 일방적인 폭언,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에서는 수사를 통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고 무죄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러나 검사들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일부러 뺐고, 제가 고의로 멀쩡한 남자의 혀를 잘랐다며 중상해죄를 씌워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시대적인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미성년의 18세 성폭력 피해 소녀는 6개월 12일 동안 감옥에 구속되어 있었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습니다. 석방 판결을 받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으로 어두운 밤, 구속 당시 입었던 옷을 입고 아버지 뒤를 따라 들판과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전혀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은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로 저를 따라다녔고, 매일이 억울함과 분노의 시간이었습니다.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항소 역시 기각되어 할 말을 잃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대법원 역시 3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답변을 주지 않아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법부는 이 사건이 단지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부끄러운 변명이 아니라 억울한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정의로운 판단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것은 땅에 떨어진 재판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여성의전화,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입니다.
너무 긴 시간에 몸이 지치다 보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을 떠올리면서 지금 바로 잡지 못하면 이런 일이 또 되풀이될 것이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본 사건의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꾸십시오. 그래야만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며 더 이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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