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맥추절
출애굽기 23:14-17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지키는 기념일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부부의 결혼기념일, 남편의 생일, 아내의 생일, 부모님의 생신 그리고 자녀들의 생일은 거의 매년마다 지킬 것입니다. 매 년마다 지키는 기념일이 있고 그 외 인생의 특별한 날을 정하여 지키는 기념일도 있습니다. 60년을 맞이하면서 지키는 회갑이 있고요, 70년을 맞이하면서 지키는 칠순이 있고, 결혼 50주년을 기념하여 지키는 금혼식도 있습니다. 어떤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는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비단 가정의 화목과 행복의 비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도 절기를 지키는 모습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억하며 주일을 잘 지키고, 주님이 고난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며 금요기도회를 지키고, 그리고 각종 절기를 지킬 때 우리들의 신앙이 잘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일 년에 세 번씩 내게 보이라고 명령하면서 무교병의 절기, 맥추절의 절기, 그리고 수장절의 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절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절기입니다. 무교병의 절기는 다른 말로 유월절의 절기를 말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해방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맥추절의 절기는 일 년 중에 첫 번째로 수확한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고, 수장절은 일 년 중 마지막에 수확하여 겨울동안 먹고 살 것을 저장한 후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러한 절기를 지킬 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농경사회가 지나가면서 맥추절의 의미가 점차 잊혀져가고 있지만 그러나 맥추절은 아직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반년 동안 여기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이 맥추감사 절기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진심으로 드려지는 감사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맥추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또한 17절에서는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 절기를 지키라’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너희들끼리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이나 가족들끼리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서 지키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절기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있었고 이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세 가지 힘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나의 힘입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내가 힘쓰지 않고는 어떤 일이든지 이룰 수 없습니다. 내가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나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되고 누군가 주위에서 도와주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이룰 수 있습니다. 농사를 어떻게 자기 혼자 지을 수 있습니까? 농약을 만들고 씨앗을 만들고 비료를 만든 사람들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농부가 노력을 해도, 옆에서 주위 사람들이 도와줘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절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에게 제사를 드렸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모든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모든 절기를 그것이 개인적인 절기이든, 가정적인 절기이든, 국가적인 절기이든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하나님 앞에서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을 지킬 때도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남녀가운데 우리 두 사람을 이렇게 부부로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인도하시고 가정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이렇게 귀한 자녀들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혼식에 했던 서약을 회고하면서 정말 그 서약대로 잘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한 번 서로의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결혼기념일을 지킨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겠습니까? 너무 기뻐하셔서 큰 은혜를 허락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는 것은 이 모든 배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절기를 지키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풍성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줄 압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자세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을 모습인 줄 믿습니다. 오늘 드려지는 맥추감사주일의 절기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감사로 드려지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드려질 때 여기에는 모두가 함께 동참해야 합니다.
17절에 보면,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모든 남자가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남자만 하나님께 나아와 절기를 지키고 여자와 어린이는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명기 16장에도 절기를 지키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자는 나오지 말고 남자만 나오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모든 백성을 대표하는 남자는 다 와서 지켜야 한다.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와서 이러한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다는 것이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그대로 우리는 모두가 하나같이 맥추절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할 줄 믿습니다. ‘네 모든 남자’가운데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 년 동안 농사를 피농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만큼 농사를 잘 짓지 못해서 속상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지나온 반년동안을 감사하는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도 똑같습니다. 지난 반년을 감사하자고 하는데 그런데 나는 별로 감사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반 년 너무나 고전했던 시기라 돌이켜 보기도 싫습니다.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당했던 시기입니다. 아무리 감사하려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아도 별로 감사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서도 네 모든 남자는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좋은 환경 속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언제나 행해져야 합니다. 농사를 잘 지었을 경우는 물론 감사해야 합니다만 그러나 농사를 잘 짓지 못한 경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 반년이 축복의 세월이었던 아니면 인고의 세월이었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역경 속에서의 감사가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맥추절의 감사를 드리는 자는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15절 하반절에 보면 하나님은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는 자에게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6장 10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자들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스승님을 찾아갈 때 빈손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선물을 준비해서 가지고 갈 것입니다. 부모님께는 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선물을 마련하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의 당연한 자세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여 드려야 한다고 하면 또 돈 이야기야 하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믿으신다면 하나님께 정성을 다한 예물을 준비하여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감사는 언제나 무엇인가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은 감사는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표현이 말이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감사는 표현되어야 그것이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표현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언제나 표현된 사랑을 허락하십니다. 그 사랑의 최고의 표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된 사랑에 우리도 감사예물을 통하여 표현된 감사들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절기를 지킬 때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34장 24절에 보면 세 가지의 축복의 약속을 해 주고 있는데요,
먼저는,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활약할 당시에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스라엘이 농사를 지어 놓으면 그 곡식을 빼앗기 위해 메뚜기 떼 같이 몰려와서 농사지은 것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기드온도 포도주 틀에서 몰래 탈곡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빼앗기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을, 네 대적을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대적을 쫓아내실 때 더 많은 열매가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이방의 대적, 병충해의 대적, 폭풍의 대적, 도적의 대적을 쫓아내실 줄 믿습니다.
둘째는, 네 지경을 넓히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미 농사라고 하는 것은 혼자서 지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꼭 있어야 하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도움의 지경이 여러분 어떻게 이루어지고 넓혀지겠습니까? 이웃에게 감사할 때 도움의 지경이 넓혀집니다. 감사하는 자를 더 도와주는 것이지 자기혼자 다 한 것 같이 교만한 자를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욱 충만하게 임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네 지경을 넓혀 주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면 정말 기회는 이 때다 하고 땅을 노릴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의 삶을, 건강을, 사업을, 자녀들을, 직장을, 일터를,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 믿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 절기는 분명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절기이지 무엇을 바라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감사하는 자에게는 이런 축복을 허락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내가 감사할 때 자녀들이 축복을 받습니다. 미국이 오늘 이렇게 축복을 받는 것은 그들의 선조들의 감사의 씨앗이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감신대 학장을 지내셨던 윤성범 목사의 제자 한 사람이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교회를 개척하면서 주의 일을 했지만 교회는 크게 성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부인은 자궁암 말기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목회를 하는데 교회도 잘 안되고 거기다가 이런 어려움이 임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 들일수가 없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이 목사님이 스승이신 윤성범 목사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신세를 하소연하면서 대들듯이 따졌습니다. 그때 윤 목사님이 아무것도 쓰여 지지 않은 노트 한 권을 가져오면서 그 제자 목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노트를 부인에게 갖다 주고 그 노트에다 감사할 일을 쭉 적어보라는 것입니다. 이 노트를 받아든 목사도, 부인도 도저히 말 같지 않는 요구에 기록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입니다. 며칠 후 부인이 마지못해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지나온 삶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조건을 한 가지 두 가지 적어가다 보니까 어느새 한 페이지가 채워집니다. 두 페이지가 채워집니다. 한 페이지를 채울 때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사랑하셨고 이렇게 축복해 주셨음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흐릅니다. 노트가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하게 됩니다. 이 목사부부는 정말 자신들은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막상 기록을 하고 보니까 너무나 많은 감사의 조건이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부인이 이제 생각을 바꾸어 지금까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도 마지막 다하지 못한 감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너무 감사했다고, 너무 고마웠다고, 당신들 때문에 너무 행복했다고 인사를 합니다. 내가 하지 못할 것을 대신해서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전도를 하려고 기도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전도를 하려고 했는데 당신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가 먼저 하나님 나라에 가지만 바라기는 꼭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전도를 합니다. 이러한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감동을 하고 감격을 하고 함께 울면서 꼭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다하지 못한 것을 제가 꼭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불평불만을 그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때 그 사모님의 암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치료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감사를 드린 그 사모님을 주님이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축복의 씨앗입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