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도래했습니다 2022 임인년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 그리고 무엇보다 성불하십시오.. 🙏🙏🙏 ※ 최근 들어 이 글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게 되었는데요 경우에 따라서는 젊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게 용어를 요즘식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른들은 이해하시고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ㅡ♡♡ [선문염송] 중에서.. (122편) 20220207 [영가현각 대사가 조계에 가서 석장을 짚고, 병을 들고 6조를 세 바퀴 도니, 六조가 말호대 "사문은 三천 가지 위의(威儀)와 八만 가지 미세한 행을 갖추어야 되거늘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대단한 거만을 부리는가?" 하였다. 영가가 대답호대 "나고 죽는 일이 중대하고 무상은 빠릅니다" 하니, 六조가 다시 묻되 "그러면 어째서 생멸 없음을 체득하여 무상치 않는 도리를 깨닫지 않는고?" 하였다. 이에 영가가 사뢰되 "체득함에는 생멸이 없고 깨달음에는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 하니, 六조가 말하대 "그렇다. 옳은 말이다. " 하니, 영가가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이어 떠나려 하니, 六조가 말호대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였다. 영가가 말호대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거늘 빠름이 있겠습니까?" 하니, 六조가 묻되 "움직이지 않는 줄은 아는가?" 하였다. 영가가 대답호대 "스님 스스로가 분별을 내십니다." 하니, 六조가 말호대 "그대는 생멸 없는 이치를 매우 잘 아는구나" 하였다. 영가가 말호대 "생멸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하니, 六조가 말호대 "뜻이 없으면 누가 분별을 하는고?" 하였다. 영가가 대답하대 "분별도 뜻이 아닙니다." 하니, 六조가 말호대 "옳은 말이다" 하였다.] . . ㅡ♡♡ .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 오늘 내용도 참으로 본성 자리를 잘 표현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이번 내용 같은 경우는 첫 구절에 해당하는 [병을 들고 6조를 세 바퀴 도니]라는 문구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요 그래서 글이 좀 늦었습니다. '병을 들고 육조를 찾아갔다'라는 내용 중에서 [병] 자가 무슨 뜻으로 되어있는지 궁금해서인데요. 여러분들도 이상하지 않았나요 무슨 [병?]을 말하는 것인지? 그래서 원본을 찾아보았는데요 [振錫携鉼]라는 글자 안에 병(鉼)이라는 글자가 있었는데 이 글자의 뜻은 [철판] [쇠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거든요? 현각이 쇠붙이를 들고 있었다? 물병이나 술병도 아니고? 이것이 이상했던 것이죠. 그렇잖아요 현각이 무슨 조폭도 아니고 아무려면 술병이나 쇠붙이 같은 흉기를 들고서 혜능을 찾아갔다는 것이? 그것도 당대에 최고로 손꼽히는 선지식인에게 인가(認可)을 받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이 이런 흉기 같은 것을 들고 간다?라는 것이요? 옛 글들을 볼 때에는 이런 물건 등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 등을 표현할 때 글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대라 꽃이나 구름 같은 물건이나 형체로 사람의 마음을 표현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 보려고 자료들을 찾아보았는데요 대부분은 해석 없이 그냥 [병]으로 기입해 두었거나 일부는 현각이 물병이나 술병을 들고 있었다는 분들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궁중 악기로 쓰는 철판으로 만든 편종(編鐘)이라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그래서 저도 그런가 보다 했지요. 그런데 아무리 좋게 해석을 해도 현각이 물병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요 그러면 왜 물병 할 때 그 병(甁) 자라는 글자를 쓰지 않고 쇠붙이를 뜻하는 병(鉼) 자를 썼을까? 그리고 진짜로 철판 같은 쇠붙이를 현각이 들고 있었다면 어떤 마음으로 들고 있었는지가 나와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내용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저로서는 의문이 들 수박에 없었던 건데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며칠을 거쳐서 모든 자료들을 찾아보았는데요. 이럴 때 제 경우는 지금 혜능이 살았던 시대가 당나라 초기 때 사람이니까 그 당시에 병(鉼) 자라는 한문을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제 방법인데요. 제 경우는 공부도 할 겸 주로 중국 사이트인 바이두나 대학 도서관 등의 사이트를 뒤져본답니다. 그래도 미심쩍으면 중국에서 학교 다닐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한문학 교수 형에게 중국 카톡으로 물어보는 형식인데요. 이번에도 그렇게 해서 알아냈지요. 그랬더니 그 교수는 저에게 중국식 카톡으로 사진과 함께 그 당시의 자료들을 보내왔는데요. 병(鉼) 자라는 글자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똑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었더라고요.^^ 병(鉼) 자라는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 중국 사람들이 주로 명절에 노인들에게 선물을 하는 월병(月餠)이라는 간식거리였답니다. 중국 간자체로는 (月饼)이라고 하는데요 (饼) 자라는 글자에서 앞에 있는 (金) 자가 (饣)로 간자화 된 것이랍니다. 해석은 [떡: 병]이라는 뜻이고요. 그러니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로 제 경우는 선문염송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배경 등이 나오면 제 나름대로 보는 기준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는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보다는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를 저는 많이 보는 편이랍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마음 법이기 때문에 그런 건데요. 그리고 그 시대의 문화와 그들이 처해진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 등을 보고 그들이 방편을 어떻게 펼치는지 등을 저도 보고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응용해 보기도 하는 편이랍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도 현각은 어떤 마음으로 혜능을 대하고 있는지 또 혜능은 어떤 마음으로 현각을 대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방편으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지 등을 같이 보고 배워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본문 첫 구절에 나오는 [현각이 지팡이를 짚고 병을 들고 6조를 세 바퀴 도니]라는 뜻은 중국의 장례문화랍니다.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사람이 죽으면 시체의 몸과 얼굴에 화장(化粧)을 시켜서 관에 넣어 얼굴만 내놓은 상태에서 관을 중앙에 놓고 가족이나 친객들이 망자가 누워 있는 관 주의를 지팡이를 짚고 향이나 꽃등을 들고 그 주의를 빙빙 돌면서 곡을 하거나 염불을 하는 장례문화가 중국식 장례문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도 옛날에는 장례를 치를 때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면서 나무로 된 지팡이를 짚었음) 요새 중국 장례문화는 향이나 꽃을 들고 관 주의를 돌지만 옛날에는 돈이나 현각처럼 음식 등을 손에 들고 또는 하늘에 돈을 뿌리거나 또는 불에 태우면서 관 주의를 돌았답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이렇게 장례를 치르는 곳이 많고요 그러나 돈은 가짜 돈을 태운답니다^^) 그리고 절에서 탑돌리들 많이 하시잖아요? 이것도 같은 뜻이랍니다 왜냐하면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고인돌이나 탑을 세웠거든요. 그런데 절에 있는 탑은 모양이 거의 일정하잖아요? 그 모양 안에도 아주 깊은 뜻이 있답니다. 지면상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요. 이렇게 오늘 내용은 현각이 병(鉼/월병)을 들고 혜능의 주의를 세바퀴 돌면서 접근을 하고 있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답니다. 한 마디로 말해 현각은 지금 혜능을 죽은 사람 취급을 하면서 접근하고 있는 장면이랍니다. 그런데 지금 혜능은 이런 행동에 화는커녕 오히려 엄청 대견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이 지금 현각이 혜능에게 [선문]을 하고 있는 장면인데요? 재미로 왜 이것이 선문이 되는지 잠시 여러분들도 10분 정도 참구해 보시면서 각자가 마음속으로 [선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왜? 산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선문]이 되고, 왜? 자신에게 죽은 사람 취급을 하면서 접근해 오는 상대를 대견해 했을까요? 요즘도 이러한 행동은 상당히 도발적인 행동이고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는데요 당시에는 더 그랬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앉아 있는데 어떤 젊은이가 바로 앞에 와서 향을 피우면서 큰 절을 두 번 올리고 있다면 여러분 들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 아마 모르기는 해도 엄청 화를 내겠지요? 그러나 혜능은 지금 엄청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 경우라면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대단한 거만을 부리는고?" 라기보다는 "하하하하하! 어디서 이렇게 큰 대덕이 왔는고?"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지금 현각은 대단한 도력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바로 이 부분이 행동으로 하는 현각의 [선문]인데요. 부처님이 꽃 한 송이를 들고 가섭에게 선문을 하는 것과 같답니다. 가섭도 부처님의 그런 행동을 보고 미소를 짓지 않던가요? 같은 뜻이랍니다. 그리고 현각의 이런 행동에는 혜능에 대한 아주 깊은 존경과 높임이 서려 있답니다. 다들 10분 정도 참구를 해보셨겠지요? 그럼 [선답]을 해보겠습니다. ^^ 그 이유는 현각은 지금 '혜능의 몸(육식/六識)은 지금 죽어 있다'라는 뜻으로 이런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생들 입장에서는 큰 욕이 되겠지만 선사(禪師)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칭찬과 인사는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육식과 육근이 모두 죽어있는 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두가 소멸되었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최고의 경지인 멸성제(滅聖諦)이기도 하고요. 지금 현각은 혜능에게 [당신은 멸성을 이룬 사람이랍니다]라고 행동으로 그 뜻을 보인 것이랍니다. 이 내용은 장자(莊子) 2편 [제물론]에서 오상아(吾喪我)라는 내용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남곽(南郭)에 자기(子綦)라는 도인과 안성자유(顔成子游)라는 제자와의 선문답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답니다. (제자 자유 왈) "어쩐 일이십니까? 스승님 몸은 꼭 마른 고목과 같고 마음은 꼭 죽은 재처럼 하고 계시니..?" 이 말은 왜 죽은 사람처럼 하고 있느냐는 뜻인데 스승이나 노인들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요.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나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내 마음속에 박혀있는 모든 깃대들을 쓰러뜨리는 일입니다.' 나의 생각, 집착, 고집, 아집, 주관 등이 모두 깃대들로 표현한 것이고요. 그러면 지금처럼 우리들도 분명히 부처님에게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스승 자기 왈) "훌륭하구나, 그런 것을 묻다니 지금 나는 내 몸을 잃었다 너는 이 뜻을 아느냐?"라는 뜻과 같답니다. (몸을 잃었다는 뜻은 몸이 죽었다는 뜻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뜻이랍니다. 도인들에게는 아주 큰 칭찬이랍니다. 이 시기는 장자는 혜능보다 천년 전에 사람으로 혜능 당시에는 이미 지금 같은 내용들은 보편화되어 있었던 시기랍니다. 당연히 이때 사람들은 글줄께 나 읽은 사람들은 이런 내용들을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 글들을 볼 때에는 지금이 아닌 당시를 보아야 한답니다) (오상아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blog.naver.com/yk60park/221701776760 그래서 혜능 같은 선사에게는 현각의 이런 행동은 더없이 큰 칭찬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혜능 또한 이런 내용을 알아듣고 점잖게 시치미를 뚝 떼고 젊은 현각을 응대하고 있는 내용이 오늘 내용의 시작이랍니다. (선문답을 잘하려면 이러한 부분을 잘 잡아낼 줄 알아야 함. 자기에게 죽은 사람 취급한다고 성질부터 내면 선문답 자체가 이루어질 수가 없음) 참고로 이 두 분의 나이 차이는 27세나 나는데요. 영가현가 (665~713) 육조혜능 (638~713) 자료를 찾다 보니까 공교롭게도 두스님의 사망연도가 같았는데요. 이 당시에 이 정도의 나이 차이면 거의 할아버지 뻘 이랍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에는 보통 10대나 늦어도 20대 초반에는 결혼들을 했었고 평균 수명도 현각처럼 40대에서 50대가 고작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사들 쪽에서는 이미 이름이 드높았던 혜능에게 그것도 이름도 없는 한 젊은 중이 찾아와서 월병을 손에 들고 혜능의 주의를 빙빙 돌면서 죽은 사람 취급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그 당시 문화로서는 요즘 말로 하면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경우랍니다. (현각은 겁이 사라졌다는 뜻) 왜냐하면 만약에 혜능이 현각의 이런 선문을 못 알아듣고 화를 내는 상황이었다면 그 당시 중국 문화로는 혜능은 그렇다 쳐도 그의 제자들이 현각을 가만두지 않았을 그런 시대라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의 중국 문화는 불교뿐만이 아니라 이런 경우에는 죽고 죽이는 일들이 흔했었기 때문에 그런데요. 참고로 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당나라 초기를 약간 벗어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더욱 그랬답니다. 특히 이 당시의 불가(佛家)에서는 계율(戒律)이 엄청 엄중했던 시기라 조금만 계율에 벗어나도 심하면 죽임도 당하는 그런 시기였는데요. 윗 사람을 공경하고 잘 따르는 것 또한 계율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그것도 당대에 최고 어른으로 손 꼽혔던 혜능을 앞에 놓고 이름도 없는 젊은 중이 찾아와서 혜능을 죽은 사람 취급을 하면서 그의 주위를 돈다는 것은 아주 큰 조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라 그렇습니다. 만약에 혜능이 이 내용을 못 알아차렸다면 혜능은 그렇다 해도 아마 모르기는 해도 현각이 돌아가는 길에 혜능의 제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거나 최소한 불구가 될 정도로 얻어맞았을 그런 상황이랍니다.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와는 많이 다름, 이쪽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심하게 욕을 하면 밤새도록 괴로워하다가 상대를 너무 쉽게 죽이는 편임, 그래서 우리는 우발 살인이 많지만 이들은 계획 살인이 많음, 혜능 당시에는 더 했음) 오죽하면 혜능(慧能)도 대 선배인 신수(神秀)를 제치고 스승인 홍인(弘忍)에게 가사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괘씸죄로 그의 제자들에게 죽임을 당할뻔했을까요. 혜능도 가까스로 남쪽으로 도망을 가 십 년 가까이를 다른 절에서 숨어 지내다 혜능을 따르던 사람들과 남선종(南禪宗)을 일으켜 세웠을 정도로 당시의 불교문화는 살벌했답니다. 그리고 선종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이지만 혜능 앞전에는 달마대사도 제자들의 질투심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경우인데요. <혜능 선사에 관한 만화인데요 재미로 보시지요.^^>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pgS8V0GN0cc 아무튼 이쪽 동내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불교 쪽뿐만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졌답니다. 이런 배경에서 현각은 지금 겁도 없이 혜능에게 도발을 하는 장면인데요. 도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혜능 또한 점잖게 대덕(大德)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예의를 갖추어 선문답(禪問答)을 서로 나누고 있는 장면이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그런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시고 오늘 내용을 보시면 좋을 뜻한데요. 오늘 내용들만 보아도 두 분 모두 도력(마음의 힘)들이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이러한 도력(마음의 힘)을 배워야 한답니다. 여러분들도 나중에 선문답을 직접 해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수준 높은 분들을 만나기란 좀처럼 어렵거든요. 아무튼 이러한 면들이 모두 도력(마음의 힘)에 속하는 것들인데요.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선문답이란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시험하는 것이지 말이나 글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선문답 같은 곳에 치중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로지 마음만 잘 닦아 내면 되니까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요.^^ 아무리 선문답을 또박 또박 잘 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마음 상태가 엉망진창이면 모두 꽝인 것을요. 지금 현각이 나이 많은 혜능에게 죽은 사람 취급하면서 시험해 보는 것 또한 혜능의 마음(도력)을 보기 위함이랍니다. (벌써 지면을 너무 많이 썼네요 내용이 길어서 나머지 해설은 갈호 안에 쓰겠습니다.) ★ 조계에 가서 석장(지팡이)을 짚고, 병을 들고 6조를 세 바퀴 도니 (여기서 말하는 조계(曹溪)란 조계종(曹溪宗) 할 때에 그 조계인데요. 혜능이 법을 전하고 종파를 일으킨 중국 광동성 지방의 지명(地名)이랍니다. 그리고 '석장'이란 지팡이를 말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병(鉼)이란 선물용인 월병(큰 약과)을 말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현각의 이런 행동은 행동으로 하는 선문(禪問)이랍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지금 현각은 한 번에 두 가지의 선문을 동시에 같이 하고 있는 모습이 아주 돋보이는 장면인데요. 하나는 죽음을 놓고 행동으로 존경과 칭찬을 올리는 선문이고 하나는 상대의 마음을 찔러보는 것이랍니다. 어떤 경우는 선문 안에 또 선문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요 나중에 그런 내용이 나오면 그때 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무튼 혜능은 지금 현각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받아들이면서 역으로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 "사문은 三천 가지 위의(威儀)와 八만 가지 미세한 행을 갖추어야 되거늘 대덕(大德)은 어디서 왔기에 대단한 거만을 부리는가?" (이 내용은 요즘식으로 쉽게 말하면 "수행자란 무릇 위의(威儀) 즉 위험 있는 거동 또는 법도, 법식과 계율과 겸손 등을 갖추어야 하거늘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 건방을 떨고 있느냐?"라고 되묻는 내용이랍니다. 뒤에 내용으로 보아 혜능은 지금 현각의 선문을 잘 알고는 있지만 상대의 선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어른으로서 역으로 야단을 치듯 현각의 마음 상태를 확인해 보고 있는 것이지요. ※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선문답이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 그렇답니다) 그러고는 현각의 답변이 아주 걸작인데요.. ^^ ★ "나고 죽는 일이 중대하고 무상은 빠릅니다" (현각 또한 혜능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으로 하는 선문을 혹시 혜능이 못 알아들었는가 싶어 다시 말로 선문을 하고 있는 장면인데요 이 말의 뜻은 [생사 해탈] 즉 나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고, [무상(無常)] 즉 인연이 다하면 빨리 소멸되는 법인데.. 쉽게 말해 '죽음은 빨리 다가오는 법인데'라는 뜻이랍니다. 죽기 전에 빨리 생사 해탈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행동으로 죽은 사람 취급 한 선문과 같은 뜻이랍니다. 한편으로는 인사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선문을 하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저도 자주 쓰는 방법인데요. 제대로 답을 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선문 중에 하나랍니다. 오늘 내용처럼 선문이 겹겹이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혜능은 "어? 이 친구 봐라.." 하면서 현각의 공부 정도가 잘 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점잖게 다시 이렇게 묻고 있답니다. ★ "그러면 어째서 생멸 없음을 체득하여 무상치 않는 도리를 깨닫지 않는고?" (이 말의 뜻은 "그런데 너는 그걸 아는 놈이 어째서 생사 해탈은 하지 않는고?라고 되묻는 거랍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현각이 계속 본성 자리만 이야기하니까 속된 말로 "그래!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빨리 증득하고 해탈하는 방법이 뭐냐 고?.."라고 하는 소리랍니다^^) 그랬더니 현각의 대답이 또 걸작입니다. ★ "체득함에는 생멸이 없고 깨달음에는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 (참으로 멋진 표현인데요. 이 말의 뜻은 "증득함에는 태어나고 죽는 것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나고 죽는 일이 없는데 무슨 증득하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느냐?"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증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 거기에 무슨 '빠르다' '느리다' 할 것이 있겠느냐?"라는 뜻이랍니다. 여러분들도 깨닫고 보면 이 내용은 참으로 옳은 말인데요. 왜 그러냐 하면 본성은 그야말로 완전한 공(空)이거든요. 그리고 늘 그 자리에 거(居) 하는 것이랍니다. 거기에 무슨 증득할 것이 있고, 죽고 사는 것이 있고, 깨닫는다 못 깨닫는다가 있고, 빠르고 느리다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이것을 깨우쳐야 한답니다.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는데요. 그 방법이란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버리는 일인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전에 방편으로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수행을 하는 거랍니다. 마음이 딱딱하면 땅에서 잡초를 뽑기가 어렵듯이 마음의 것들도 뽑아내기가 어렵거든요. 이것이 부처님이 설한 이승과 삼승의 내용이고 목적은 일불승을 이루기 위함이랍니다.) 이 정도 되면 혜능도 현각에게 인가를 안 해줄 수 없는 그런 경우인데요. ★ "그렇다. 오른 말이다." 하면서 현각의 수준을 알아보고 바로 인가(認可)를 해주는 내용이랍니다. 이 정도 되면 인가를 안해 줄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마음 상태나 공부 상태가 모두 완벽하거든요.이 정도 되는 젊은 사람이 자신에게 인가를 받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라면 어느 선사라도 너무 기뻐서 금방 보내기가 아쉬운 마음이 들 건데요. 왜냐하면 이 정도 되는 그릇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나중에라도 서로가 다시 만나 법담을 나누는 일이 생긴다면 너무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를 건데요. 오죽하면 "주장자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만은 그만큼 선사들끼리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답니다. 반대로 답답한 소리만 하는 경우에는 부처님처럼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보게 된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도 아직은 현각이 젊어서 그런지 곧 떠나려 하는 장면인데요. 어떻게 보면 현각 입장에는 인가를 받았으면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기질에 따라 다르지만 더 앉아 있어봐야 좋을 것이 없거든요 노인들의 특성상 자꾸 선문답을 하자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내용이나 말투로 봐서는 현각이 많이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느낌도 드는데요. 마음 그릇의 크기는 혜능이 높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어쨌든 현각은 지금 자리를 빨리 떠나려고 하는데요. ★ 영가가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이어 떠나려 하니, ★ 六조가 말호대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였다. ("왜 빨리 가려고 하는가?") 여기서부터는 인가를 한 상태라 선문답이라기보다는 선담(禪 談)으로 들어가는 경우라 한꺼번에 쓰겠습니다. ^^ ★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거늘 빠름이 있겠습니까?" 하니, 六조가 묻되 "움직이지 않는 줄은 아는가?" 하였다. 영가가 대답호대 "스님 스스로가 분별을 내십니다." 하니, 六조가 말호대 "그대는 생멸 없는 이치를 매우 잘 아는구나" 하였다. 영가가 말호대 "생멸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하니, 六조가 말호대 "뜻이 없으면 누가 분별을 하는고?" 하였다. 영가가 대답하대 " 분별도 뜻이 아닙니다." 하니, 六조가 말호대 "옳은 말이다" 하였다. (아직은 젊은 혈기가 느껴지는 현각의 답변이지만 혜능은 속으로 이런 현각의 모습을 보면서 엄청 대견해 하고 있는 마음이 엿보이는데요. 혹자들은 이 대목을 현각과 혜능의 승패를 논하기도 하는데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눈높이이고요. 이 두 스님의 선문답 내용은 참으로 수준 높고 훈훈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는 모습들이 많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선문답을 할 때에는 상대가 누구든 아무리 제자라 해도 선 앞에서는 상대를 굴복 시키려 하거나 이기려 하는 그런 마음을 써서는 안된답니다. 설령 아무리 불법을 모르는 초보자가 찾아와 상담을 청하더라도 늘 예의를 갖추고 '여례의 방에서' '여례의 옷을 입고' '여례의 자리에 앉아서 하객을 맞는다면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하게 찾아올 건데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인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지금의 어른들이 어렸을 때처럼 가정이나 학교에서 예의범절과 도덕과 법도 등을 깊게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에 선사들이 따듯한 마음과 법도로 젊은이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대한다면 왜 젊은 학자들이 안 오겠습니까? 그렇잖아도 마음이 점점 더 복잡한 세상으로 빠져들고 있는데요. 아마 모르긴 해도 요즘처럼 각박하고 척박한 시대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마음을 동경하고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옛날보다 많을 것으로 저는 보고 있는데요. 부처님 법은 마음 법이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이나 선사들은 중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잡아줘야 할 것입니다. 마음 법을 공부하는 전문가들이 대중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못 잡는 데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모든 불자들은 오늘 혜능의 말처럼 거만하고 딱딱한 마음은 이제는 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중을 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중들을 대한다면 틀림없이 얼마 안 가서 절 안에는 예전처럼 사람들로 부쩍거릴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처럼 모든 말씀을 한문으로 시작해서 한문으로 끝을 내거나 거만한 자세로 대중들을 대한다면 점점 더 대중들은 떠나갈 것이고요. 왜냐하면 오늘의 아이들이 내일에는 모두가 어른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ㅡ (재미로 저는 이번 설날에는 연령대 별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세배를 받으면서 세뱃돈 대신 아래에 있는 오늘 내용의 한문식 표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한 단어씩 맞추는 사람에게 오천 원씩 주겠다 하고 시험을 해보았는데요. 결과가 어땠을까요? 여러분들도 재미로 해보시지요? ^^) <振錫擭鉼> 영가(永嘉) 현각대사(*玄覺大師)가 조계에 이르러 석장(錫)을 떨치고 병을 가지고 조(祖)를 세 번 돌았다. 조(祖)가 이르되 무릇 사문(沙門)이란 자는 3천 위의와 8만 세행(*三千威儀八萬細行)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大德)은 어느 지방으로부터 왔기에 큰 아만을 내는가. 스님이 가로되 생사(生死)의 일이 크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합니다. 조가 가로되 어찌하여 무생(無生)을 체취(體取; 體得)하고 무속(無速)을 요득(了得)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체취하니 곧 무생이며 요득하니 본래 신속(迅速)이 없더이다. 조가 가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스님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참례(參禮)하고 수유(須臾)에 고별을 고했다. 조가 가로되 도리어 너무 신속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아니거늘 어찌 신속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누가 움직이지 않음임을 아는가. 스님이 가로되 인자(仁者; 상대방의 경칭)가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조가 가로되 네가 심(甚)히 무생(無生)의 뜻을 얻었다. 가로되 무생이거늘 어찌 뜻(意)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무의(無意)이거늘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가로되 분별하여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조가 감탄하며 가로되 선재, 선재로다. 하였다. (여러분들은 위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셨나요? 이런 식으로 법문을 하면 누가 갈까요? ^^) ㅡ 참고로 한문에 관한 내용을 잠깐 말씀드리고 끝을 내겠습니다 단어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는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라도 한문 글자를 전혀 다른 글자로 쓰는 경우도 있고요 같은 글자라 해도 표현을 전혀 다르게 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요. 예를 들어 서양(西洋) 사람 할 때 중국은 서복 (옷) 우리는 양복 중국은 서화 (구두) 우리는 양화 중국은 서인 (서양 사람) 우리는 양인 하는 식이 문제랍니다. 우리들끼리 쓸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중국으로 가거나 중국 쪽 글들이 우리 쪽으로 왔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은 좀 덜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언어란 굳어지기 때문에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고 표현 또한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인데요. 특히 불교 경전은 거의가 속 마음에 대한 내용들이라 눈에 보이는 것들도 이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표현들은 어떨까? 싶은데요. 이렇게 빠꿔서 썼는 이유는 자존심 같은 그런 건데요. 우리로선 좀 슬픈 일인데요 중국에서 한문이 들어올 때 너희들 글을 쓰긴 쓰되 우리 식으로 바꿔서 쓰겠다 이거지요. 우리는 우리 식으로 글자를 골라서 쓰겠다 이것입니다. 이러니 중국과 우리가 같은 한문을 쓰더라도 어려운 것이랍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선문염송]도 그렇고요. 우리 식에 익숙한 한문을 중국식으로 표현한 한문으로 해석하기가 때로는 어려운 경우랍니다. 이런 부분의 글자들을 찾아보면 알게 모르게 무척 많고요 불경도 마찬가지랍니다. 만약에 중국에 가서 한국 사람이 한문 글자로 중국인들에게 "저기? 양복점이 어디지요?" 하고 묻는다면 못 알아듣는답니다 "서복점이 어디지요?" 하고 물어야 알아듣지요. 그래서 한문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중국식 표현을 모르면 엉뚱하게 해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ㅡ 아래의 내용은 자료를 찾다가 [바이두]에서 찾아낸 자료인데요 거기에는 [鉼] 是一个汉语常用汉字,读音bǐng,最早见于商代甲骨文时代。基本含义为金饼;引申含义为像饼的东西。有关常用组词为鉼刀等 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대충 해석해 보면 [鉼]자는 갑골문자에서 나온 글자인데 발음은 (bǐng)으로 일반적으로 금빵(金饼)이라고 해석을 한다]라고 되어 있었는데요. 금빵(金饼)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엄청 귀하고 비싼 음식이었나 봅니다. 저도 많이 먹어본 음식인데요 모양은 약과와 비슷하고 크기는 약과에 네 배 정도? 입감은 뻑뻑하고 밀도가 아주 높은 편이고요 맛은 아주 달답니다. 가격은 회사마다 다른데요 싼 것도 있지만 유명 상품은 호빵만 한 것이 한 개에 우리 돈으로 보통은 만원 이상에서 십만 원 이상 하는 것들도 많답니다. 엄청 비싼 쪽이지요. 혜능 당시에는 단 음식이 귀했던 시기라 아주 비싼 간식거리였고요 오죽하면 금빵(金饼)이라는 별칭까지 붙었을까요. 현각은 지금 이렇게 귀하고 비싼 선물을 들고 혜능을 찾아갔는데 우리는 술병이다 물병이다 쇠붙이다 하면서 해석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한문을 해석할 때에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데요.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도 이러한데 경전 속 내용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정확히 해석하고 따라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오차가 있을 수 있을까 한 번쯤은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명을 하다 보니까 본문 내용이 너무 길었네요. 뒤에 글들은 되도록 짧게 하겠습니다.) . . ㅡ♡♡ . . (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ㅡ 이번 질문 내용은 제가 운영하고 있는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 카페에 들어온 질문 내용인데요. 단순한 질문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 오늘 올려보려 했으나 카톡 공간이 좁아서 한 번에 안 올라가네요. 그래서 다음 편에 올려들겠습니다. ㅠ" , (질문 내용) 깨어있는 것은 의식을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입니까? (답변 내용) 다음 편에서~ . . ㅡ♡ . . (3) 초보자 내용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부처님 내용이랍니다.♡ 어려운 용어들은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니 초보자분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답니다. 오늘도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내용 중 고성제(苦聖諦)를 끝내고 집성제(集聖諦)의 수행 방법인데요. 사성제의 전체 내용을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고(苦)·집(集)·멸(滅)·도(道)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네 가지의 수행 방법은 해탈로 가는 수행 순서를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고(苦)와 집(集)은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멸(滅)은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도(道)는 이 모두를 성공시킨 후 [팔정도]나 [바라밀]등을 기준으로 행하면서 후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간화선도 이 사성제를 응용해 중국인들에게 맞게 수행 방법이 개발된 것이라 말씀드렸답니다. 사성제를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1) 고통과 괴로움(즐거움도 포함) 등을 깨어서 알아차려보아라, (2)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원인을 알아차려보아라, (3) 마음에 것들은 욕망의 완전한 소멸이며, 버림이고, 포기이고,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이며, 초연함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들고 있지 말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4) 도(道)는 깨닫고 증득을 했으면 [팔정도]나 [바라밀] 등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지금은 이러한 것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열심히 나와 내 마음과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일에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열심히 깨어서 알아차려보시고요.. (고와 집)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수행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답니다.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1)(2)랍니다. (1)과(2)가 숙달된 분들은 (3)으로 들어가시면 된답니다, (3)을 이루신 분들은 (4)는 한결 수월하게 이루어 나갈 수 있답니다. 그러나 바로 (3)과 (4)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건데요. 그러나 (3)은 바로 해보시는 것은 의미가 있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생에 수행을 오래도록 하셨던 분들은 가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바로 (4)를 통해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왜냐하면 (4)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팔정도 등을 기준으로 오후 공부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 (1)과 (2)를 하라는 이유는 예를 들어 비유를 하자면 마른 땅에 박힌 잡초를 뽑을 때에는 물을 주고 갈아엎어야 잡초가 잘 뽑히고 곡식을 심기가 좋은 것과 같답니다. 고(苦)의 알아차림을 통해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저도 이것을 거쳤답니다.) 그러면 한결 수월하게 멸(滅)을 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1)(2)를 거치지 않고도 (3)이 되시는 분들은 바로 (4)로 들어가십시오. 참고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고통이란 즐거움과 행복도 포함이 된답니다. 한번 즐거움을 맛보면 대부분이 또 그 즐거움을 맛보려고 다시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 안에 엄청난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밖에서만 즐거움과 행복함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했던 방법은 이렇게 네 가지의 순서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인데요. 말만 어렵지 마음먹고 실제로 해보면 쉽답니다. 다만 방법을 모르고 하거나 하고자 하는 의욕과 성의가 없으면 정말로 힘만 들고 어렵지요. (수행자들 중 이런 분들이 정말로 많음) 간화선도 사성제의 수행 방법을 그대로 응용한 수행 방법이랍니다. 고(苦)는 화두로 대신한 것이고, 집(集)은 의단(疑團)을 말하는 것이고, 멸(滅)은 화두 타파를 이르는 것이고, 도(道)는 도인의 길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들도 오늘 내용을 잘 듣고 부처님 식으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나의 몸을 포함해 마음 밖의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먼저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겠습니다.^^♡ (※) 들으실 때 각자가 본인들 마음과 연관시켜서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한결 이해하시기 좋고 어쩌면 중간에 깨달으시는 분들도 나올 수 있답니다.(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ㅡ (이러한 것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란 뜻이랍니다..) 대념처경.15법념처 E4성제 2집성제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 집성제 (저번 주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ㅡ (해석은 갈호 안에 넣겠습니다.^^) 12:12~ ★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시각 대상에 대한 생각의 유지가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눈으로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들어오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혹을 받아 즐거워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뜻) ★ 소리에 대한 생각의 유지가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귀로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들어오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혹을 받아 즐거워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뜻) ★ 향기에 대한 생각의 유지가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코로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들어오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혹을 받아 즐거워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뜻) ★ 맛에 대한 생각의 유지가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입으로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들어오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혹을 받아 즐거워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뜻) ★ 몸의 접촉에 대한 생각의 유지가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몸/피부를 통해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들어오거나 접촉을 하게 되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혹을 받아 즐거워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뜻) ★ 마음(의지, 의욕, 욕망, 집착, 같은 것)의 대상에 대한 생각의 유지가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마음에 이러한 것들이 비치게 되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혹을 받아 즐거워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뜻이고 결국은 그것이 불타는 의욕과 의지로 바뀌어 내 마음은 화택으로 바뀌게 되고 행동으로 옮겨지거나 마음이 불타거나 한다는 뜻) ~13:30 ※이러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질 때 알아차리라는 뜻※ . . ㅡ♡♡ . . (4)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네 분을 위해 신설된 글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ㅡ (해석은 갈호 안에 넣겠습니다.^^) ★ 법은 공성(空性) 가운데에 집약되어 있고 무상(無相)으로 나타나며 무원(無願)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성은 공(비어있다)이라는 뜻이고, 어떤 형체나 형태가 없다는 뜻이고, 무엇을 원하는 것도 없다는 뜻이랍니다) ★ 분별함도 없고 부정하여 물리치는 일도 없습니다. (본성은 '이거다' '저거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등의 분별심이 없고, 싫다고 물리치는 일도 없다는 뜻이랍니다) ★ 버리는 일도 없고 내세우는 일도 없으며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본성은 버릴 수도 내세울 수도 태어나고 죽는 일도 없다는 뜻이랍니다) ★ 돌아가야 할 곳도 없고 눈, 귀, 코, 혀, 몸, 의지로 도달하는 범주도 훌쩍 넘어섭니다. (본성은 어떤 곳(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몸의 기능들을 모두 뛰어넘는 뜻이랍니다. 즉 몸과 본성은 전혀 다르다는 뜻) ★ 높아지는 일도 없고 낮아지는 일도 없으며 가만히 멈춘 채 모든 움직임을 떠나 있습니다. (맞습니다. 본성은 항상 부동(不動) 즉 움직이지 않습니다 늘 그 자리에 거(居) 하지요) ★ 대덕 목련이시여, 이러한 법을 설할 때 과연 어떻게 해야 법답다 하겠습니까? 법을 설한다는 것은 정작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증광(增廣) 시켜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내용인데요. 본성이란 [공]이기 때문에 설명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말이랍니다, 비유를 하자면 허공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 이거지요) ★ 법문 듣는 사람들 역시 증광되어진 것을 듣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 또한 부풀려진 것을 듣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말이랍니다.) ★ 대덕이시여, 증광(부풀려서) 된 말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법을 설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으며 이해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허깨비로 나타난 남자가 허깨비인 남자에게 법을 설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쉽게 말해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자신이 직접 보면 알 수가 있다"라는 말이랍니다. -진실-) ★ 이와 같은 점에 유의하여 법을 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대는 먼저 사람들의 근기(근본이 되는 힘, 능력)를 잘 헤아려야만 합니다. 지혜의 눈으로 능히 꿰뚫어 보고 대비 심을 일으키며 대승을 찬탄하고 부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저 법의 말씀을 환히 깨달아 삼보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대는 법을 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연꽃이 피신 분들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뜻이랍니다) ★ 세존이시여, 당시 그가 이와 같이 설법하는 것을 듣고 무리 가운데에서 8백 명이나 되는 거사들이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대해 크게 발심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저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기에 저는 저 고매하신 분(유마거사)의 문병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46:44 . . ㅡ♡. . (6)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이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 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일곱 현녀가 시다림을 지나가다 현녀가 시체를 가리키면서 말하대 "시체는 여기에 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하니, 다른 현녀가 "무슨 말이요?" 하니, 모든 현녀가 자세히 보고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제석이 이에 감동하여 꽃을 뿌리면서 말하대 "거룩하신 아가씨 들이여,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제가 목숨이 다하도록 공급 하겠습니다." 하니, 현녀가 "우리 집에는 네 가지 일과 일곱 가지 보물이 모두 구족 하지만 오직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뿌리 없는 나무 한 구루요. 둘째는 음지와 양지가 없는 땅 한 조각이요. 셋째는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산 골짜기 한 곳입니다." 하였다 이에 제석이 대답하대 "요구하는 온갖 것은 모두 나에게 있으나. 이 세 가지 물건 만은 나에게 진실로 없습니다." 하니, 현녀가 "이런 것이 없으면 어찌 남을 구제 한다 하리요." 하였다. 이에 제석이 현녀 들과 함께 부처님께 가서 이 사실을 사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교시가야 나의 제자들 중에 큰 아라한들도 이 이치를 알 수 없고 오직 큰 보살이라야 이 이치를 아느니라." 하였다.] (선답) 여러분 들도 이번 [선문]을 참구해 보셨나요? ^^ 만약에 저에게 [선답]을 해보시라 한다면 저는.. 첫 번째 답에는 (에취"~) 두 번째 답에도 (에취"~) 세 번째 답에도 (에취"~) 할 것입니다. 여기서 (에취"~)는 기침하는 소리랍니다. ^^ (보충 설명) 오늘은 현녀들이 이렇게 세 가지를 구해달라 했는데요. (1) 뿌리 없는 나무 한 구루 (2) 음지와 양지가 없는 땅 한 조각 (3) 아무리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산 골짜기 지금 이 내용이 본성(불성/성령/마음) 자리를 표현한 내용이랍니다. 그런데 제가 왜 기침소리를 냈을까요? (1) 소리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2) 소리에는 음지나 양지도 없지요. (3) 그리고 마음 소리에는 메아리가 없답니다. 그래서 선사들이 손뼉을 치거나 주장자를 바닥에 치는 것이랍니다. 기침이라는 글자나 손뼉이라는 글자나 주장자 치는 소리에 의식이 끌려가면 제대로 된 [선답]은 할 수가 없답니다. 모든 의식은 [마음]에 가 있어야 한답니다. 그리고 모든 [선문]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마음을 모르면 [선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랍니다. ~♡~ 다음 주 [선문]은 한 번에 카톡에 안 들어가서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 . . ㅡ♡ . . (7) 다음 주 선문염송 뜻을 아시는 분들은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ㅡ [선문염송] 중에서.. (123편) 20220222 江月 [영가의 중도가에 말호대 "강 위에 달 밝고 솔 사이 바람 많으니 긴긴 밤 맑은 하늘 아래 무엇을 할꼬? 불성과 계주 마음 자리에 새겼고,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에 옷이로다" 하였다.] ㅡ 참으로 멋진 표현이 나왔네요. 뜻을 아시는 분들은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 , |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댓글0추천해요0 스크랩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