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급문장수업 - (535) 열에 아홉은 틀리는 말 – ⑨ 음식 맛에 관련된 말/ 스포츠경향 편집국장 엄민용

[화룡이(이창모)]

열에 아홉은 틀리는 말

티스토리/ [순우리말] 맛과 관련된 순우리말

⑨ 음식 맛에 관련된 말

∇ 우리말을 알면 음식이 더 맛있어진다

요즘은 한마디로 ‘맛집 광풍’ 시대입니다. 이 방송 저 방송 앞을 다퉈 맛있는 먹거리를 소개합니다. ‘맛장수’(아무런 멋이나 재미없이 싱거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사투리로 쓰이던 ‘맛집’이 이제는 “맛있기로 유명한 음식집”을 뜻하는 말로 두루 쓰이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립국어원도 최근에 “음식의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음식집”을 ‘맛집’으로 써도 된다고 인정해 주었답니다.

그런데요. 그런 ‘맛집 방송’을 보다 보면 잘못 쓰는 ‘음식’ 또는 ‘음식 재료’ 이름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정말 ‘입맛 뚝 떨어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말을 잘못 쓰는 일이 흔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말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유래를 알지 못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흔히 ‘돈나물’이나 ‘돗나물’로 쓰는 반찬거리는 돌 틈에서 잘 자라니까 ‘돌나물’이 바른 말이고, 포장마차 등에서 안줏거리로 인기가 좋은 ‘오돌뼈’ 역시 이것을 씹을 때 ‘오도독’ 하는 소리가 나니 ‘오도독뼈’가 바른말이랍니다.

이렇게 우리의 음식들은 대부분 참 재미난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유래를 알면 바른말을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의 문화와 역사도 알게 됩니다. 그야말로 말을 알면 세상이 더 넓게 보이는 거죠.

우리나라 대표 음식 중 하나인 ‘깍두기’에도 재미난 유래, 기가 막힌 우리의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깍두기’는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가 궁중 종친 회식 때 내놓아 호평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 하는데요. 당시 종친 어르신들이 “어떻게 만들었느냐”라고 묻자 “평소 남는 무를 ‘깍둑깍둑’ 썰어 버무렸더니 맛이 있어서 이번에 내놓게 됐습니다”라고 해 ‘깍두기’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이때 지금의 ‘깍두기’를 한자로 음차해서 ‘각독기(刻毒氣)’라 했는데, 그 의미는 말 그대로 “독기를 없앤다”입니다. 무가 가진 해독성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죠.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도 무를 정말 좋아했다고 합니다. 영조는 성격이 깐깐한 탓에 평소 소화불량에 시달렸는데, 무를 먹으며 배앓이를 이겨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0대였지만 그는 82세까지 장수를 하지요.

이렇게 우리 몸에 좋은 ‘무’를 ‘무우’ 또는 ‘무수’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은데요. ‘무우’와 ‘무수’는 모두 바른말이 아닙니다. 또 “무청째로 김치를 담그는, 뿌리가 잔 무”를 ‘알타리무’라고 부르는 일이 많은데, 이는 ‘총각무’가 바른말이고요.

참, 많은 분이 맛있게 먹는 ‘도루묵’에도 재미난 유래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생선은 조선 제14대 왕 선조와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란을 가다 ‘묵’이라는 생선을 먹게 됐다고 합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동안 배고팠다가 먹었으니 당연히 맛있었겠죠. 그래서 선조가 “이 맛있는 물고기에게 ‘묵’이란 이름은 너무 촌스러워 격에 맞지 않는다”라며 그 자리에서 ‘은어’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란이 끝나고 궁궐에 돌아와 옛날을 생각하며 ‘은어’를 찾았는데, 이번에는 아주 맛없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배가 부르니 당연히 그러했겠죠. 그러나 선조는 그 자리에서 “도로 묵이라고 하라”고 일렀고, 그 ‘도로 묵’이 ‘도루묵’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런 유래설은 하나의 설일 뿐입니다. 국어학계에서는 선조와 관련한 이야기보다는 ‘돌묵’이 변한 말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합니다. ‘묵’이라는 생선이 있고, 같은 종류의 생선에서 좀 맛이 빠지는 것이 ‘돌묵’이라는 주장이죠. 사과와 돌사과, 배와 돌배, 묵과 돌묵을 생각하면 어떤 것인지 느낌이 올 듯합니다. 그 맛없는 ‘돌묵’이 ‘도루묵’으로 변했다는 게 국어학계의 견해입니다.

그런데요. 국어학계의 그런 견해보다는 그냥 민간에 알려진 이야기가 ‘도루묵’을 더욱 맛나게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민간 유래담이 더 좋습니다.

∇ 음식 맛이 슴슴하면 안 된다

“맛이 조금 싱겁다”는 의미로 ‘슴슴하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슴슴하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뿐 아니라 신문과 방송에서도 무척 많이 쓰는 말입니다.

특히 방송의 음식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요리사들이 ‘음식은 조금 슴슴하게 먹는 것이 좋다’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슴슴하다’는 그 말맛이 ‘싱겁다’보다 더 감칠맛이 납니다. 순우리말에서 느껴지는 구수함도 팍팍 풍기죠.

그러나 우리나라 국어사전들은 죄다 ‘슴슴하다’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꼭 ‘심심하다’로 쓰라고 고집하는 거죠. 정말 심심하기 짝이 없는 국어사전들입니다.

그런데 이거 아세요? 북한에서는 ‘심심하다’ 대신 ‘슴슴하다’를 바른말로 삼고 있다는 것을요. 즉 ‘슴슴하다’는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써 온 말인 겁니다. 다만 ‘슴슴하다’는 북한 지역에서 많이 쓰고, ‘심심하다’는 남한 쪽에서 많이 써 왔던 거죠. 그래서 북한에서는 ‘슴슴하다’를, 남한에서는 ‘심심하다’를 표준어로 삼게 된 겁니다.

이런 말이 무척 많습니다. 글 꼴은 비슷한데, 남한과 북한이 표준어를 달리 보는 것이요. 그게 걱정입니다. 나라가 통일되려면 말부터 하나가 돼야 하는데, 북한과 남한의 말이 자꾸 달라지고 있습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여러분이 북한 친구에게 “내일 만나자”라고 했는데, 북한 친구가 “일 없다”라고 대답했다면 기분이 어떠실 것 같나요? 기분이 별로겠죠? 하지만 북한의 친구는 여러분에게 ‘그러자. 나 시간 있어’라는 의미로 말한 겁니다. 북한에서는 “괜찮다”는 의미로 ‘일 없다’라는 말을 쓰거든요.

또 북한에서는 ‘주스’를 ‘단물’로, ‘소풍’을 ‘들모임’으로, ‘수중발레’를 ‘예술헤엄’으로, ‘도시락’을 ‘곽밥’으로 씁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시겠죠?

그래서 걱정이라는 겁니다. 이래서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서로 만나도 얘기를 할 수가 없잖습니까. 따라서 남북의 언어가 더 이상 이질화하지 않도록 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말이 같아야 이념도 같아질 수 있고, 그래야 나라도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요.

∇ 닝닝한 말도 없다

방금 얘기한 ‘심심하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말 중에 ‘닝닝하다’도 있습니다.

“소금물을 쓰지 않고 그냥 물을 부어 반죽을 하면 면발을 씹을 때 닝닝한 게 밀가루 냄새가 느끼하게 배어나 입맛을 버릴 수 있다” “커피에 물을 부어 맛이 닝닝해졌다” 등처럼 ‘닝닝하다’는 그 쓰임새가 꽤 폭넓은 말입니다.

이 말은 “음식 따위가 싱겁다”를 뜻하거나 “본래의 맛과 느낌에서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 때”도 쓰이지요. 특히 설렁탕 같은 거 먹을 때 소금을 치기 전의 맛을 나타내면서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어느 국어사전에도 ‘닝닝하다’라는 말은 올라 있지 않습니다. 그런 뜻의 말로는 ‘밍밍하다’가 올라 있을 뿐입니다. ‘닝닝하다’는 ‘밍밍하다’로 써야 한다는 얘기죠. <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어휘편(엄민용, EBS BOOKS,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6.20. 화룡이) >

[의초 이정석]

슴슴하면 닝닝한
오랜만에 처음 들어 보는 말입니다

[화룡이(이창모)]

'말을 바로 알면
세상이 더 넓어 보인다'는 말씀을
죽비소리로 간직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