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후 피해를 보상하는 농업재해보상법이 필요한 이유
복숭아 농사를 짓는 필자 이영수 농부는 탄저병과 싸운지 한참이다. 필자는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에도 실질적인 영농비가 보장되는 재해보상법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이영수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농부가 글을 보내왔다. 진주에서 단감 농사를 지었던 친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드러난 사건은 화재로 인한 안타까운 피해지만, 실은 '탄저병'과 고군분투하는 농부의 사정이다. 여기저기서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전 지구적 책임을 논하는 시대. 그러나 농촌은 기후위기가 미래가 아닌 현실이고 농부들은 개인별로 고군분투 중이다. 필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꽃이 일찍 피고 그로 인해 봄철 서리피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제아무리 농사 기술이 좋고 시설이 잘되어 있어도 결실이 안 되면 헛농사인데, 지금 농촌은 이미 그 상황을 겪은 지 한참이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16년 짓던 살구 농사를 접기로 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에도 실질적인 영농비가 보장되는 재해보상법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농부 정치가를 꿈꾸는 필자가 전하는 농촌 현실을 멀리 받아들인다면, 우리 정치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헛정치일 것이다. [편집자 주]
추석 이후 체증이 오래간다. 과일 농사 짓는 농부에게 추석이 더 이상 대목이 되지 못하니 슈퍼문에도 내 마음은 쪼그라드는 것도 있지만 더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슬픔과 무력감에 몸도 마음도 가라앉기 때문이다. 친구 잃은 상실감이 생각보다 오래간다.
멋진 농부 친구가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경남에서 농민회 상근자로 오래 활동하다가 진짜 농사꾼이 되겠다며 10년 전쯤 진주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귀농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만 농업과 농민을 옆에서 돕는 곁자리에서 농업을 본업 삼아 현장투신했다고 볼 만한 인생의 결단이었다.
직업 활동가가 손에 쥔 돈이 많았을 리 없다. 초기에는 영농비 마련이 힘들어서 농민회 형님들 밭에 풀 깎아주며 품팔고 소작하며 농촌 생활에 몸을 익혀갔다. 농사 전공은 과일로 잡았다. 나름 복숭아 농사로 자리를 잡고 있던 내게 몇 차례 찾아와 일도 익히고 묻기도 했다. 자리잡은 지역이 단감으로 유명한 곳이라 결국 주종목은 단감농사가 되었다.
젊음과 성실함은 배신하지 않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경남에서도 알아주는 단감농사꾼이 되더니 친환경기준을 통과해 한살림 생산자가 되었다. 깐깐한 한실림 직원들도 인정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농사를 지었다. 농민운동도 접지 않았다. 농민회, 작목반 조직으로 보수적 농촌 이웃을 신규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는 조직가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대화할 때 보면 범 같은 선배들 앞에서도 짝다리를 짚고 퉁명스럽게 말하는데 희한하게 밉지 않고 어느 순간 고개 끄덕이며 듣게 하는 힘이 있었다. 누구 한 사람 가벼이 여기지 않는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나는 농부이면서 경북 영천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정치하려는 사람이다. 이 나라 정치에 농민 목소리도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 사실 농촌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는 민주당보다 진보당이 더 가깝다. 친구는 내가 민주당으로 출마한다고 했을 때 도긴개긴인 당에서 뭐 할 거냐며 욕을 한 바가지는 쏟아놓았다. 그러고는 어려운 형편에 제법 큰 금액의 후원금을 몰래 보내는 경상도 사내였다.
그 친구를 추석날 잃었다.
그는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자마자 단감밭에 올라가 혼자 일을 하다 농막에서 지쳐 잠들었다고 한다. 그 농막에 불이 났고 피곤함에 지친 친구는 그렇게 애정하던 단감밭 농막에서 화마에 삼켜졌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믿고 싶지 않았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다.
장례식장에서 그의 두 아들 중학생 가온과 초등생 해온을 만났다. 친구가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던 ‘해가온농장’이 두 아들의 이름에서 왔음을 그때야 알았다. 오열하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엄마의 손을 더 꼭 잡던 해온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졌다. 농민의 아들들이었다. 농민가가 흘러나오자 가온이 해온이가 울먹이면서도 힘차게 팔뚝질을 할 때에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친구는 왜 남들 다 놀고먹는 추석 당일에도 감나무밭에 나가야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리 만들었을까?
탄저병 때문이었다. 탄저병은 과일 일부분에 까만 점이 생겨 점차 썩어 들어가는 병으로 올해처럼 이상기후로 비가 많은 해는 급속히 확산된다. 일단 탄저병이 발병하면 아무리 약을 쳐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번져 한 해 농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다. 특히 올해는 이상기후로 수확기에 비가 지속적으로 내려 자두, 복숭아, 사과 할 것 없이 노지 과수들은 탄저병에 막대한 피해를 받았다.
자두 농가들은 이상기후로 꽃이 일찍 피는 바람에 개화기 서리 피해로 결실 자체가 되지 않아 열매 없는 빈 나무가 많아 ‘한 해 농사 쉬었다’고 할 정도다. 복숭아도 봄철 개화기 결실피해 이후 수확기 내리는 비로 당도저하는 물론 탄저병이 번져 수확할 게 없었다. 사과의 경우는 지속적인 비로 탄저병이 창궐해 수확한 것보다 내다버린 사과가 더 많을 정도였다. 잎이 떨어지는 갈반현상까지 겹쳐 사과농가도 울상이다.
국내 연도별 이상기후로 인한 농업 재해 피해 면적. / 자료=관계부처 합동 『이상기후 보고서』 각 연도.
귀농·귀촌 그룹에 젊은이들도 제법 오고 있지만 농촌에서 오래 살아남기가 쉽지는 않다. 농사꾼의 삶은 경험해 보면 생각보다 매력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 생활은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이곳에서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귀농자의 많은 수가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안 그래도 사고 며칠 전 친구와 주고받은 카톡에선 마을에 자리 잡았던 젊은 농사꾼의 농사 포기 소식이 있었다. 고인을 삼촌이라 부르는 청년은 복숭아 농사꾼이 되는 게 꿈이라며 친구와 몇 번 함께 왔던 젊은이였다. 그 젊은 농사 후배도 탄저병에 올해 농사를 망친 후 고인과 부모님에게 더 이상 농사 못 짓겠다고 선언을 했다고 한다.
친구의 단감밭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친구는 추석날까지 단감을 지켜보려 했단다. 올해 이상기후로 개화기 단감 결실이 적어 소득은 줄어들 것이 뻔한데 애들 밑으로 들어갈 돈은 점점 많아지고 그 밭 산다고 농협에 빌린 돈은 이자까지 늘어나 몇억 원은 됐을 테다. 원금과 이자 상환도 버거웠을 테고 하루하루 농자재비와 인건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애지중지 키운 단감이 수확을 앞두고 무시무시한 탄저병이 들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친구는 추석 전날에도 명절에 귀향한 대학 후배까지 불러와 단감밭에서 탄저병 확산을 막아볼 요량으로 병든 단감을 따냈다고 한다. 추석날은 혼자라도 일해야 했을 것이다.
탄저병으로 농작물이 피해를 입는 정도가 심해진지 오래다. 적어도 농촌에서 기후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닌 이미 벌어진 과거다. 사진은 경북 안동시 사과밭에서 탄저병에 걸린 사과가 나무에 달린 채 썩어 가고 있는 모습과 탄저균에 감염된 고추. / 사진=연합뉴스
그 죽음의 배후는 척박한 농촌 현실과 이상기후다.
탄저병도 서리도 모두 이상기후 때문이다. 사실 농민들이야말로 이상기후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최대 피해자들이다. 우리 농민들에게 기후위기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꽃이 일찍 피고 그로 인해 봄철 서리피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제아무리 농사기술이 좋고 시설이 잘되어 있어도 결실이 안 되면 헛수고, 헛농사다.
기후위기는 내 농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부터 16년간 해왔던 살구농사를 내년부터 그만두기로 했다. 나의 농사 동지 아내와 오랫동안 상의해 내린 결론이다. 도대체 서리피해로 결실이 안 되니 불안해서 더 이상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뭄으로 인한 농지 피해 면적(2012~2019). 2012~2015년은 논과 밭 자료가 없어 전체 면적만 표시. / 자료=관계부처 합동 『국가가뭄정보통계집』 각 연도.
개화기 결실 피해를 다행히 빗겨도 어느 순간부터 매년 5~6월 우박피해가 연례행사가 되고 있고, 또 수확시기 잦은 비와 국지성 호우로 노지과수 농가는 한 해 한 해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잦은 비로 인해 세균병과 탄저병이 극성을 부리고 그로 인해 생산량은 평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농민의 힘만으로는 버겁다.
우리 농민들의 바람은 단순하다. 부자는 안 되어도 좋으니 그저 마음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게끔 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재해보험법이 있어도 안전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마을 이장들이 면사무소 직원들과 피해조사를 나온다. 초창기에는 피해율을 조금이라도 더 잡기 위해서 서로 얼굴도 붉혔지만 지금은 그다지 신경을 안 쓴다. 피해율을 많이 잡아도 가을철에 기껏 농약 몇 병 영양제 몇 병 값이 전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있으나 마나 한 피해보상이다.
농가가 개별로 가입하는 과수 보험도 실효성이 떨어지기 마찬가지다. 농협이 담당하다 보니 이윤 발생이 적을 수밖에 없는 과수보험 특성상 손해 보지 않기 위해 피해보상금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자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기본 존재 이유가 아닌가?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아닌가? 국가 예산이 600조가 넘는데 기후위기로 인한 농가피해에 대해서 국가가 나서 경영비 정도는 보장해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에도 실질적인 영농비가 보장되는 재해보상법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도 내 친구도 추석 명절 하루쯤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글쓴이 이영수는 복숭아 농사꾼이면서 정치 지망생이다.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졸업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 효1리 이장 3선, 천시농민회 정책실장, 영천시농민수당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전국정당위원회 부위원장, 22대 총선 경북 영천시 더불어민주당 출마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