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하여-11
그녀는 차에 타고는 핸들을 잡은 손을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그녀에게 닥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용기란 그런 것이 아닌가. 두려움을 느끼지도 감지하지도 알지도 못한 채 나아 가는 것은 만용이다. 그 두려움을 알고 견디며 그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다짐하며 차를 그가 늘 말해주었던 그의 고향 죽변으로 향했다.
그녀가 죽변에 도착하여 그가 예전에 말해주었던 그 서낭당 길 건너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서낭당 뒤 공동묘지로 올라갔다. 찾기는 쉬웠다. 그가 함께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해준 그곳에서는 조그만 포구가 내려다보였다. 바람 없는 바다는 고요하였다. 아름다운 포구였다. 작은 동산을 이룬 공동묘지의 앞에서 두 번째에 작은 묘지가 있었고 그 묘 앞에는 작고 검은 대리석 묘비가 반석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 묘비에는 리 대식이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었다. 반석 위에는 금방 둔 듯한 반쯤 찬 콜라 병과 담배 꽁초가 있었다. 그의 흔적이었다. 그가 먼저 이곳에 다녀갔음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작은 동네를 헤매었다. 바로 앞에 있을 것 같았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그를 만날 것 같았다. 미정은 그가 그리워 울며 말하던 등대와 방파제 그리고 사람 바위를 다 헤매었으나 그를 찾지 못하였다. 그녀는 왜 이렇게 그가 그립고 보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와의 관계는 그저 그럴 수가 있었다. 캐나다 여행을 갔을 때 곤경에 처한 동포를 도와준 아름다운 사람으로 그녀를 만나러 고국에 왔을 때 답례로 잠깐의 여행이지만 함께해 준 사이. 그가 계기가 되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혼. 어디 한 곳이라도 그녀 스스로 크게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끌려 따라갔었다. 오히려 그를 원망해야 할 것인데도 그가 그리웠다. 그와의 관계는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진솔한 사랑의 감정을 품도록 하였다. 그의 영혼은 그의 행적과는 달리 진솔하였다. 서로의 몸이 관계를 가지기에는 생각이 맑고 깊었다. 그녀는 다시 그가 결국은 돌아올 곳을 떠났다. 그는 여행 중이었다. 여행은 결국 떠난 곳을 돌아오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체이스는 죽변을 떠나 강릉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여행을 할 것이다. 여행은 출발지에서 떠나 마지막 도착지를 돌아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진정한 여행은 거치고 거쳐 그리고 겪고 겪은 후 마침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미정은 그의 책을 샀다. 추리소설이었다. 제목은 ‘블루웜(BlumWorm)’이었다. 언젠가 그가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미정은 책의 앞 뒤를 살폈다. 그가 속해있는 출판사를 찾아야 했다.
“여보세요. 파랑새 출판사이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사람을 찾고 있어요. ‘블루웜’ 이란 제목의 소설을 쓰신 체이스 리 작가님을 찾고 있어요.”
미정이 다급하게 물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절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었다. 학생과 학부모들과 대화 할 줄도 알고 있었다. 절대 그렇게 조급하게 묻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상황을 잊어버렸다. 속히 그의 위치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상대편은 원하는 바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는다.
“누구신데 이곳에서 사람을 찾습니까?"
거부 반응이 담긴 무뚝뚝한 톤으로 변했다. 시작이 잘못되었음을 빨리 감지했다.
“아~ 죄송해요. 너무 마음이 급해서… 저는 시인 조미정입니다. 파랑새 출판사에서‘블루웜’을 출간한 소설가 체이스 리를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전화드렸어요. 도와주세요.”
이제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왔다. 맑고 청량한 그 목소리가. 전혀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호감을 금방 느끼게 되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그인들 어쩌랴. 무뚝뚝이 그 음성을 듣자 곧 부드러워졌다.
“아~ 조미정 시인님. 많이 듣고 알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목소리가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예. 됐어요. 어서 전화번호나 제가 만날 수 있는 정보를 좀 주세요.”
“저는 파랑새 출판사 편집장 김이현입니다. 만나서 아주 반갑습니다. 지금 체이스님께서는 한국에 없습니다.”
‘김이현. 너는 나에게 밉보였어. 알아!’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부탁했다.
“김이현 편집장님. 어떻게 하면 체이스리와 연락될까요?”
그는 주저함이 없이 바로 대답해 주었다.
“토론토. 벤쿠버. 시드니 혹은 브리스벤 등으로 옮기며 글을 쓰시고 있기에 지금은 당장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님께서 연락이 먼저 와야 저희가 필요한 것을 말씀드립니다. 현재는 호주의 타스메니아에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화번호를 주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
태어나서 자라난 조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어느 나라에서든 이민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들을 폐부 깊이 느끼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남자가 혼자되어 생활한다는 것. 그것 또한 인내와 싸움이다. 특히 그런 사람이 조국이 같은 사람들의 커뮤니티 속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 절망을 먹고 사는 것이다. 억지로든 자연스럽게 든 동화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체이스는 그 점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 다녀온 후 밴쿠버를 거쳐 테즈메니아에 머물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얼마 전부터 다운타운의 영+블루의 빌딩 지하 1층에서 구두 닦는 사업을 시작했다. 헬퍼 두 사람을 두었지만 때로는 그도 길게 늘어 기다리고 있는 라인들을 줄이기 위하여 함께 일을 하였다. 그가 속해있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으며, 그 또한 그들과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충분한 수입과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아침 9시에 작업을 시작하고 오후 5시면 퇴근하는 비교적 적당한 근무시간과 주말이면 쉬게 되므로 그 시간들 속에서 충분히 생각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었다. 그는 그래서 그 직업을 좋아하였다. 매일 새로운 고객들을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일이 특별히 기술을 요하거나 조심을 요하거나 긴장을 요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는 사랑과 늦게서야 또 하나의 혼신을 다해 할 수 있는 소설만 생각하면 되었다. 그 두 개만으로도 그는 심신이 바뻣다. 그에게는 그 일이 비교적 단순하였다. 더 사실에 가깝게 말해도 된다면, 수입도 좋았다. 중상급의 소득자이다. 그러나 그가 속해 있어야 하는 커뮤니티의 대부분 사람들은 굶어도 그 짓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구두 닦으러 이민 왔나? 고 반문할 것이었다. 안다. 그 말은 맞다. 장차를 도모하기에는 너무 단순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그 일을 사랑하며 열심을 다하여 일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희망을 만들 수 없다면, 희망을 만들더라도 그 희망을 실현할 가치가 없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는 가끔 조미정을 만난 것이 인연(人連)을 넘어 운명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잠시 스쳐 지나간 것 같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그는 틈나면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작정 없이 타스메니아나 벤쿠버 아슌션 등으로 랩톱컴퓨터 하나만 들고 훌쩍 떠나서 글을 쓰곤 돌아왔다. 그의 영혼의 방황은 소설 속에서 새로운 그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그의 영혼을 불쌍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정 받을 곳도 정을 줄 곳도 없었던 그의 황폐하고 피폐해진 영혼의 방황은 소설을 씀으로써 삶의 가치를 보상받을 수 있다 생각하였다. 그는 문학을 공부한 적도 없었고,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수출사업을 해 오면서 얻은 결과(結果)들 중 하나로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소비자 없는 생산품은 존재가치가 활동을 잃고 편협한 곳에서 썩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비자들이 즐겨읽을 글을 써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에 남은 삶을 쏟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글과 사랑. 얼마나 멋진 말인가. 얼마나 낭만적인 노후인가.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함을. 그 지불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땀과 눈물과 고통과 인내와 피마저 다 바쳐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
“조미정 시인님. 오늘 저녁 ‘시인과의 대화’모임에 참석하실 거지요?”
출판사에서 연결해 준 스폰서 회사 ‘늘 푸른 소나무’의 기획실장이었다.
“예. 알고 있어요. 오후 7시 까페 ‘르 브리앙’이 맞지요?
미정은 젖은 머리칼을 매만지며 확인하였다. 시인 조미정에게는 그 사이 스폰서가 붙었다. 그녀의 책을 출판하여 판매까지 그리고 광고 기타 광고 이벤트를 책임져주는 스폰서이며 종합 매니저까지 담당해 주고 있었다. 그 기획회사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양건설이 친소비자 환경 조성 사업의 하나로 문화. 예술사업을 하고 있는 드러나지 않은 후면 지원 회사였다. 토목과 아파트 건축. 분양을 하는 남양건설로서는 친소비자 환경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으며 문화와 예술 분야에 형식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다. 스폰서 계약을 하던 첫날 조미정은 남양건설의 정한구 사장을 만났으며 자연스럽게 축하연에도 함께하였었다.
“박 실장! 오늘부터 여류시인 조미정 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하도록 해. 조미정 님의 사랑시와 사랑글의 감동을 건조한 토목공사와 아파트에 융합시켜 사랑의 향기가 넘치도록 만들어! 우리 남양건설을 위하여 큰일을 해 주실 분이야. 알겠나?”
그는 멋진 남자였다. 60이 좀 넘었지만, 건실하게 회사를 경영하여 왔고 흔한 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하였고 국내의 유명 건설회사에서 실무를 닦은 바른 내공이 충실한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생각들과는 괘를 달리하는 건설회사의 경영자였다. 폴라이트하였다. 미정에게는 우연으로만 돌릴 수 없는 중년의 기회였다. 그러나 미정, 그 자신도 50대 중년이었다. 돈과 명예를 얻으려 발버둥 치기에는 원초적으로 성격이 맞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쓴 사랑시와 사랑글이 스폰서의 도움으로 활발히 움직여많은 독자들과 조우하고 그들이 공감하는 것을 보는 것이 지금 그녀가 생각하는 가치였다. 두 사람의 생각은 내면에서 달랐다. 어떻든, 정한구 사장은 그녀 조미정 시인을 흠모하게 되었고 그 흠모가 바탕이 되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여기에는 보편타당성이 충분했다.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따진다면 중년의 한 여류시인을 위하여 무엇을 그렇게 대대적으로 지원할 것이 있다는 말인가. 억지로 독자들에게 책을 사서 읽고 공감하고 사랑하라고 해서 될 일인가. 시라는 것은 건축이나 토목같이 계획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잖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독자들 가슴에 담겨야 하는 것이 시라는 문학적 감성이 아닌가. 그런데도 환경과 분위기는 믿을 수 없는 쪽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그녀의 사랑시가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광고라는 바람을 타니 폭풍 같은 감동의 비 내림을 독자들에게 느끼게 하였다. 광고를 잘 이용하면 다이아몬드 곁에 묻은 흙을 광고가 벗기고 닦아 실체를 빛나게 해 준다. 일단 조미정 시인은 다이아몬드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