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 제 나이 칠순이라니 옛말에 <인생칠십고래회,人生七十古來稀>란 말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은 칠십을 넘기기가 어렵다는 말이지요
제 생각엔 인생이란 두갈래길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말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나 봅니다,
팔구십 노인들 앞에서는 말못할 내용이겠지만 여러분들에게 자그마하나마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진심어린 마음에서 몇자 적어 보고자 합니다,
인생은 병마와 세파 두갈래길에서 몸부림 치다가 세파에 힙쓸려 생을 마감 하기도 하지만
몹쓸 병에 걸려서 제명까지 못살고 생을 마감 하기도 합니다,
저는 양가 3대독신으로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로 호강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버릇이 없는 편입니다,
우선 어머니를 두고 말하자면 임실군 둔남면(현재 오수면)자래울이란 마을의 천석부자 박씨댁(외조부 박봉래)에서 막내딸로 태어나 남원에서 저희 부친을 만나 결혼하여 저를 낳았습니다,
저는 태어나자 마자 설사로 자랐다 들었습니다,4살적 홍역을 치렸는데 남원읍 천거리 살때 일이였습니다,
당시 홍역이 퍼져 마을에서 아기들이 저하고 누군가가 두명만 살고 모두 사망했답니다,
저 역시 틀린인생으로 간주하고 웃목에 방치상태인데 부친께서 너무 안타까움에 병원 의사에게 매달렸답니다,
"어떻게 좀 살릴수 없냐?"
그래서 방안에 세탁물들을 물에적셔 장판방에 깔아 불을지펴 수증기를 쐰 결과 제가 소생했답니다,
그때 심한 홍역알이를 하는 바람에 중이염에 걸려 군생활(부선망독자로 면제대상이지만 지원입대)후 만기제대,
2~3년 경과후 급속히 청력이 나빠지기 시작을 해서 [중이염 근치술]을 받아 지금은 보청기로(청각장애3급) 생활 합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돐때와 백일기념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가진 노인이 더물지요
우량아 선발대회 입후보자 깜입니다,
자라면서 결핵에 걸려 또 고생해야 했습니다,
당시만 하드라도 병의원이 귀했고 약도 그리 많지 않았을때 입니다,
다행히 보건소에서 무료로 주는 약을 복용했고 노력 한 탓에 결국 결핵에서 해방되었고,
19세때 아령을 잘못가지고 노는 바람에 좌측늑막이 찢어져서 농이 입으로 터져 죽을 지경인데 다행히 마을에 남원의료원원장분이 와 계셔서 가정집에서 급히 수술후 가까스로 살아났었습니다,그러다가 수술후 급성폐렴이 발병하여 또 사경을 헤메게 되었지요
영국수상 처칠이 폐렴에 걸려 땅속의 "페니실린 노다슨"이란 일종의 곰팡이에서 추출한 약"페니실린"주사맞고 거짓말 처렴 나았습니다,
이때 나이 19살이므로 한창 젊음을 구가하며 살아야 할 입장이였지만 전 그렇지 못했습니다,
죽마고우인 제 친구가 있었는데(예비역 상사)둘도없는 짝꿍이였습니다,그 친구 역시 저때문에 한동안 맘고생이 심했었습니다,
친구와 함께...서 있는 사람이 필자
병마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기운은 천하장사급이였지요
이는 부친이 진주 씨름판에서 이름을 날리신 분이라 부친의 체격을 닮아서 그러나 봅니다,
키도크고 몸도 날랬고,우선 힘이 장사였습니다,
운동이란것은 닥치는대로 했습죠
한참때 테니스에 미쳐같고 새벽마다 미친개마냥 코트장으로 달려 갔었습니다,
새벽운동 끝나고 찰칵
좀 잠잠 할란가 하고 생각했던 시절인데 이때가 저에겐 전성시대인듯 싶습니다,
마을에 어쩜 한두대 있을까 말까 한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빈 시절이 이때입니다,
당시엔 차같은거 지나가봐야 쳐다보질 않았지만 오토바이가 "다다다"하고 지나가면 일하던 손 멈추고 바라보곤 했지요
이쁜 아내의 물방울 부라우스가 바람에 팔랑거리며 신나게 달리던 때가 좋았습니다,
제가 운이 좋아서인지 20여년 경력에 오토바이 사고는 단 한차례도 없었습니다,말하자면 "오토바이 한대팔면 과부가 한명는다"는 것이 오토바인데 저는 왜그런지 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편하고 안전 했습니다,좁은길도 요리조리 잘 피했고,위험한 고비도 잘 극복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포장길로 바뀌기가 바쁘게 승용차로 바꿨는데 오토바이처럼 신나는(?)는 드라이브는 없었습니다,
한마을에서 처녀총각이 결혼을 했는데 군입대후에 결혼했고 휴가 나와서 어떻게 한게 속도위반(?)이 뽀록나게 생겨서 군복입고 결혼식을 초고속으로 올렸슴다,히히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내뱃속의 자식놈과도 맞절을 한 셈이지요,
군복입고 매월휴가를 나왔는데(챠-트병으로 매월 위로휴가,포상휴가,외박등)첫아이가 테어나자 외아들에게서 아들손자가 나왔다고 어찌나 모친께서 좋아 하시던지...
모친과 기념사진을 촬영 했는데 보기 좋군요,
아래 사진은 세월이 흘려 어느덧 나이가 30대가 되고보니 슬슬 아내와 여행을 1년이면 4~5차례씩 다녀 옵니다,
오토바이로 가서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할적의 사진입니다,
배난간에서 음료수와 맥주병을 들고 아내와 부라보오~
이제 모친도 저 세상을 가셨고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한번 못해봤지만 속상하게 하진 않은것만 다행으로 생각 했습니다,
이제 종사에 참여하라고 집안 어르신들의 권유로 제관봉무를 수없이 했었습니다,
맨 뒷줄 가운데 키큰이가 필자
종사참여다 산악회 모임이다 돌아 다니다 보니까 건강이 나빠져서 검진을 받아 보는데 불행하게도 C형바이러스성 간염에 걸렸습니다,
이 C형바이러스성 간염은 현재 지구상에 치료제가 없습니다,물론 백신도 개발되지 않아 한번 걸리면 계속해서 진행을 하므로 적절한 치료없이는 절대로 생맹유지가 어려운 골치아픈 병입니다,그래서 독일 뮌헨대에 근무하시는 세계적인 간박사인 이종수씨가 펴낸 "간 다스리는 법(동아일보)을 구해서 필독하고 간에대한 전문지식을 쌓아 나갔습니다,왜 그려냐 하면 우선 병을 낫게 하려면 손자병법의 <적을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말과 같이 우선 내 몸속의 병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병원 의사는 진찰하고 처방만 내 주면 끝입니다,
환자 스스로가 원인제공을 멀리하고 관리 하는것은 환자 본인인 것입니다,
병관리를 잘 해서인지 인터페론 알파투비(항 바이러스 주사제)를 맞기 시작 했습니다,이 주사제는 부작용이 심해 첫주사때는 열이 40도에 육박하고 몸이 피로감이 엄청나고 항암주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모진고난을 극복하니 결국 C형바이러스성 간염도 못 이길거라 생각 했음인지 말끔히 나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오목가슴이 답답하고 목에 가래가 심하고 부랄밑에서 냄새가 고약하기에 또 진찰을 해 보니까 이번엔 위암이라카네요,그래서 죽을때가 되었나 보다하고 수술을 받지 않으려 하니까 가족들과 주변에서 극구 말리므로 수술을 받을 결정을 하고보니 또 고생할것이 두려웠습니다,위내시경하고 장내시경을 검사하니 장은 깨끗한데 유문부부근에 좁살같은게 돋아 조직검사결과 진행성 위암이라고 합니다,그래서 2004년 음력 설을 전후하여 수술을 받고,수술후 1주일만에 퇴원을 했는데 계속 운동을 하라기에 병원 7층계단을 연거푸 20회를 왕복 하니까 주변사람들이 보구서 미친줄 안 모양입니다,
다행히 초기암이라 원래 위 전체의 3분의2가량을 절제한다했는데 위가 워낙커서 꺼꾸로 3분의1만 잘랐답니다,
회복이 빨라 수술후 1주일만에 퇴원했고,퇴원 하는날 오후 전주 모악산을 올랐습니다,그리고 다음날 서울 월산악회를 인솔하고 남원 주생면의 삿갓봉을 올랐었지요
대각선 친 부분은 잘라 냄
위암수술후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데 처음엔 약물중독으로 오해를 했었는데 뒤에 알고보니 뇌출혈이였습니다,
그날따라 전주 기린봉을 오후늦게 올랐는데 시간대가 등산객이 하산후라 별반 안보일때였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 하기에 반듯한 바위에 비스듬이 누워 있었드니 어지러움이 가시므로 때를 놓칠세라 하산 하기가 바쁘게 택시를 타고 병원응급실로 갔드니 담당의가 와서 보구선 ct촬영을 권하더군요,뇌사진을 보드니만 혈전에 의해 출혈이 왔다는겁니다,바로 입원후 혈액개선제를 맞고 약1주일 입원뒤에 퇴원 했는데 담당의 말씀이 마침 일찍 병원을 오는 바람에 석화(피가 굳는것)가 안되어 결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뒤 뇌경색의 호전을 위해 혈관조형술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5개월뒤 또 구토증세와 함께 컨디션이 안좋고 고통이 심하기에 딸아이가 빨리 병원을 가보자고 합니다,그래서 승용차로 병원을 찾아 갔는데 딸아이의 친구가 응급실 간호원이였으므로 "아버님 그러고 계시면 힘드니까 응급실로 가셔서 접수부터 하세요"한다,
그래서 접수하고 여의사가 오드니 "한번 걸어 보세요"한다,
아닌게 아니라 내 의도대로 걷지 못했다,외발로 서 보라는데 어려웠습니다,그래서 입원결정이 났고 결국 2차 뇌출혈이 온 것입니다,
입원후 한달만에 퇴원을 했는데 퇴원후에도 어지럽고 걷는데 힘들었습니다,다행히 후유증없이 걷는것 자체만으로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막동이가 직장생활을 하는 서울부근으로 이사후 천마산을 자주 오르면서 요양을 했는데 이번은 회복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년쯤 지나니까 정상적인 체력으로 돌아 와 지금 현재까지 약물복용(3알씩1일1회)만 하고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생을 했습니다만 담당의 말씀이 "건강관리를 아주 잘 했다"고 하시네요,
옛말에 [백병만약]이라 했습니다,
병이 백가지면 약은 만가지란 뜻이지요
인간이 몰라서 그렇지 사는길이 다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노력만 있으면 살아납니다만 죽으려고 모든걸 포기하면 별수없이 일찍 죽습니다,
세상만사가 귀찮타고 생각하면 자살하게 되지요
병들었다고 해서 다 죽는것은 아니니까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 자신만 죽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내 주변의 가족과 이웃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게 웃음을 잃지말고 힘써 노력하면 장수하게 돼 있습니다,
알량하나마 제 투병기를 간단하게 소개 올립니다,투병하시는 분 모두에게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첫댓글 안녕 하세요...선배님 그런 어려움이 있는데도 극복 하시고 건강하시니 얼마나 행복 하십니까...
모든것이 선배님의 의지가 강하여 오늘도 건강하신것입니다...고마워요...
투병기 잘읽어읍니다...늘 ~ 건강하세요..._()_...
지나온날들을 생각하면 기적 같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은게 옳은 선택이였나 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많은 질병을 이겨내 셨습니다.
완치를 축하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막상 질병의 상태를 경험 했을때는 사실 비관적이였습니다만
강한 의지와 결심이 결국 결과가 좋게 나온듯 싶습니다,
한마디로 병주거리...종합병원ㅎㅎㅎ.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장 큰 덕을본것은 부친의 타고난 건강을 물려받으셨네요
몸이 약했더라면 홍역하다 가셨을겁니다. 본인의 의지도 훌륭했지만 어머님의 맘고생 죽지않고 살았으니 효도는 하셨군요
병날때마다 얼마나 애간장이 타셨을까... 글 내용이 병이날때마다 고치고 또 고치고... 그런 내용만...
그보다 병이 났을때 이렇게 저렇게... 해서 고쳤고 어떤 맘 상태였었다는 의지이야기들... 듣고싶습니다. 선물로...
부인이 미인이시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겪었던 당시의 심정과 고통의 표현등을 기술코자 했으나 워낙 장문이 될것 같아서 대략적인 개념아래 표기하다 보니까 좀 부족하기 마련이군요,이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