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일 (토) 촬영
강화 교동도에 있는 대룡시장입니다. 몇년 사이에 대룡시장이 많이 변했더라구요.
한가롭기만 했던 시장이 이제는 어딜가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서울의 맛집보다도 더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국수 한 그릇 먹었습니다. ㅎㅎㅎ
국수집은 내부가 온통 왔다갔다는 사연이 적힌 메모지들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미처 치우지도 못하고 있어서 우리가 들어가서 치우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기다림....
기다리는 동안 메모지를 살펴봅니다.
그래도 국수가 나오지 않아 우리도 메모지를 써 봤네요. ㅎㅎㅎ
뭐라고 쓰는거 얌...
아! 국수는 언제 나오남.
지기님 싸랑해요. 담이, 홍실, 초이, 바위솔, 빗방울, 보람이, 모나미 요기 왔다 가쓰요 ㅋㅋㅋ
대충 요렇게 써서 여기 저기 덕지덕지 붙였네용. 잘했쪙.
드뎌 나온 잔치국수입니다.
요건 잔치국수를 한 번 뒤집은 모양이구요.
요건 부자들이 드시는 1,000원 더 비싼 비빔국수야요.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둘 다 맛 있었어요.
국수먹고 시장 귀경 ㅎㅎㅎ
옛 추억의 물건 파는 집. 발디딜 틈이 없어서 통과...
어디에나 있는 벽화거리입니당, 요기에도 있네염.
돼지 앞다리, 뒷다리 다 걸려 있었어요(창문으로도 보이네요), 옛날 푸줏간 느낌 그대로 임당, 캄보디아 시장 생각도 났던 곳...
언제적 우편함일까요. 징말 요런거 보기 힘든 물건입니당.
수제빵 커피집입니다. 뒤에 나무가 있는 곳이 학교예요.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지도를 보러 왔다가 찾지도 못했습니다.
짜장이 맛있다는 조짜장집인데, 배가 하나밖에 읍써서 눈물을 머금고 그냥 통과 했습니다.
하! 공연도 하네요.
이곳에서 술꾼'''' 호호 술꾼 아닌가. 우쨌든 국수먹을 때 도주했던 친구들을 체포 했습니당.
연행하려고 했는데, 지기님께 뇌물 막걸리를 상납하는 바람에 훈방조치를, ㅋㅋㅋ
중년의 남자 가수가 노래를 불렀는데, 참 멋졌어요.
순무도 봤네요.
완전 한 패가 되어버린 지기님... 노골적으로 그러면 탄핵 당합니다요.
이발소도 오래전부터 음식점으로 변신했어요.
영탁이의 막걸리 한 잔. 한번 불러보세요.
사라져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사라진지 50년도 더 된 말타기 놀이.
엿장사. 고무신. 언제까지 우려먹을껴.
영심이네 추억카페, 수제쌍화차.
믿어야 복이 있다고 했는데...
막걸리
철물점도 카페로 변신.
그 이름도 대룡철물 카페.
전주한옥마을에서 먹어 봤던 찰떡이
이곳에도 등장했습니다.
항개 이찬원 ㅋㅋㅋ, 여기서 이찬원이 왜 나와
먹고 싶어도 줄이 너무 길어 살 수가 없었던 떡집.
강아지 떡.
미소가 아름다운 사장님.
빨래터.
실감나더라구요.
우물.
제가 어렸을 때 동네집에 있는 우물에 가서 시원한 물 먹으려고 10환 주고 물 한주전자 사오던 생각이 나네요.
교동향교 앞에 있는 홍살문입니다. 홍살문을 앞으로 옮겨 놓았네요.
홍살문 옆에다 비석군들도 옮겨 놓았습니다.
교동향교 전경입니다.
교동향교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
향교는 유교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지방 교육 기관이다.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처음 세워졌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 향교에 처음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있으며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 외삼문과 제기고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 - 현지 설명문 -
외삼문을 들어 서면 우측에 있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무가 보인다.
전면 화단에는 노룡암(老龍巖)이 새겨진 돌이 있다. 그 해석문이다.
노룡암 번역(老龍巖 飜譯)
이 노룡암은 원래 교동현 동헌 북쪽뜰 층계 아래에 있었는데, 위에는 울창한 숲속에 늙은 소나무가 있고 아래에는 축단이 있었다.
정유(丁酉) 1717년(숙종 43)에 충민공 이봉상이 노룡암이라고 3자를 지었는데,
그후 57년 계사(癸巳)1773년(영조 49)에 그의 손자 달해가그 고적에다 글지은 것을 새기었다.
경진(庚辰) 1820년 (순조 20)에 가서 통어사 이규서가
호거암장군쇄풍(虎距巖將軍灑風) - 호거암장군이 풍기를 깨끗이 하였다는 7자 글제를 새기었다.
신묘(辛卯) 1831년(순조 31) 봄에 석대로 쌓아 있었던것을, 정묘(丁卯) 1987년 (대한민국 40) 교동향교에 옮겨 놓았다.
우측 협문 앞에 있는 제기고.
대성전으로 들어 가는 협문.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
대성전 자측면에서 본 서무, 맞은편 건물은동무입니다.
내삼문 앞에서 대성전을 바라 보는 회원.
전면 5칸의 대성전 건물.
내부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제기고.
좌측 건물은 동무의 후면모습입니다.
'ㄱ'자 건물의 동재
동재 뒤에 있는 장독대.
동재의 후면.
동재의 후면과 우측면.
서재와 명륜당과 동재.
서재의 허물어진 굴뚝.
예전에 있던 홍살문 자리.
읍내리 비석군 /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조선시대 선정을 펼친 교동지역의 목민관인
수군절도사겸 삼도통어사 도호부사 방어사 등의 영세불망비 등 총 40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들은 교동면 관내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1년도부터 강화군 및 교동 유림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여 관리하고 있다.
교동향교 뒤 화개산 좌측에 모노레일 종착점에 세워 놓은 전망대가 보입니다.
오후 3시 25분 교동향교 출발, 5시 30분에 인천에 도착 했습니다.
인사나누고 헤어짐.
누구나 세번 씩 무료로 칠 수 있는 시민의 종이 있네요.
첫댓글 지기님의 뇌물(?)로
불체포..ㅋㅋㅋ
어디선가 본건지..
들어봤는지..당췌~
(요건 부자들이 드시는 1,000원 더 비싼 비빔국수야요)에 빵 터집니다
저는 **님 덕분에 부자의 호사를 누렸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미쳐 눈에담지 못했던 풍경들을 어느새 찾아내어 담으셨는지 항상감탄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바이솔님~~
저는 화개정원 입구쪽에있는 꽃밭풍경 올려봅니다ㅎ
대룡시장에서..
ㅋㅋㅋㅋ~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요.
난 우물도 못보고,
어딜 다닌 건지...ㅋㅋ
사람들 머리만 실컷 구경...ㅎㅎ
봐도 봐도 재미난 시장이었어요.
함께 한 시간,
참 즐겁고 좋았습니다.
바위솔님 사진으로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어제를 회상하며...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ㅎㅎ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밥 보다 국스를 더 좋아해서
국수 먹으러 또 가야하는 대룡시장입니다 ㅎ
국수와 찰떡
고맙습니다~^^
제가 못 보고 온곳도 있고~
바위솔님 고맙습니다.
국수 좋아하는데,
그 맛은 그곳밖에 없겠죠.ㅋ
기회를 놓쳤으니 언제 또 가 보나요~~ㅎ
대룡시장이 많이 변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