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아홉은 틀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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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술과 관련된 말
∇ 술이든 밥이든 찐하게 사지 말고, 한턱 쏘지도 마라
우리가 쓰는 말에는 ‘입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평소의 대화체에서 많이 쓰는 말이 입말입니다. 이런 입말은 귀에는 익지만 표기상으로는 바른말이 아닌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평소 “내가 찐하게 살게, 얼굴 한번 보자” 따위로 말하는 ‘찐하다’도 그런 입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도 술이나 음식을 찐하게 사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고맙다는 말 대신 눈총을 받기 십상입니다. 왜냐고요? 우리말에서 ‘찐하다’는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언짢고 아픈 마음으로 산다’면 얻어먹은 사람도 탈이 날 게 분명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찐하다’를 쓸 때는 “무엇이 보통보다 세거나 강하다”를 뜻하는 ‘진하다’를 세게 소리 낸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찐하다’는 바른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크게 한턱내다”라는 의미의 말로는 뭐를 써야 할까요? “아주 넉넉하다”를 뜻하는 ‘건하다’입니다. “일을 끝내고 술 한잔 건하게 얻어먹었다” 따위처럼 쓰는 거죠. ‘건하다’는 “아주 넉넉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술 따위에 취한 정도가 어지간하다”를 의미하는 ‘거나하다’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이때 문득 “오늘 내가 거하게 산다” 따위처럼 ‘거하다’를 쓰면 안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정답은 ‘(아직은) 안 된다’입니다. 순우리말인 ‘거하다’는 “나무나 풀 따위가 우거지다” “지형이 깊어 으슥하다” 등의 뜻을 지닌 말로, 술이나 음식과는 눈꼽만큼도 관계가 없는 말이거든요. 일부 사전에서 ‘거하다’의 뜻으로 “(주로 ‘거하게’의 꼴로 쓰여) 수나 양이 많고 풍부하다”를 덧붙여 놓기도 했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아직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한편 어떤 값을 치르는 의미로 ‘쏘다’를 쓰는 일도 아주 흔합니다. 하지만 ‘한턱 쏘다’라는 표현 속의 ‘쏘다’는 바른 쓰임이 아니고, 표준어가 되기도 어려운 말입니다. “셈을 치르다”를 뜻할 때도 쓰는 영어 ‘shot’의 대표적 의미인 ‘쏘다’를 아무 생각 없이 끌어다 쓴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쏘다’에는 돈을 낸다는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뜻으로 쓰려면 ‘한턱 쏘다’가 아니라 ‘한턱 쓰다’로 해야 합니다. 다만 일부 사전이 “(속된 말로)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고 값을 치르다”라는 뜻을 다루고 있는 만큼 앞으로 ‘한턱 쏘다’가 바른 표현이 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다고 봅니다.
∇ 깡소주도 없고 데낄라도 없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술과 관련해 잘못 쓰는 말이 참 많거든요.
우선 술 종류부터 살펴보면, 흔히 잘못 쓰는 술 이름에는 ‘빼갈’과 ‘빼주’가 있습니다. 중국의 고량주(高粱酒)를 이르는 말은 ‘빼갈’이나 ‘빼주’가 아니라 ‘배갈’입니다. 또 “용설란의 즙으로 만든 멕시코 원산의 독한 술”을 일컬어 ‘데낄라’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 술의 바른 이름은 ‘테킬라’입니다. 에스파냐어인 이 술의 원이름이 ‘tequila’이거든요.
많은 사람이 흔히 “오늘 탁배기 한잔 어때?” 하며 쓰는 ‘탁배기’도 현재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국어사전들이 이 말을 아예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막걸리’의 사투리로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탁배기’는 우리 언중이 너나없이 쓰고, 특히 북한에서는 문화어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표준어로 다루고 있는 지금의 국어 현실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깡술’도 참 많이 틀리는 말입니다. 흔히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을 일컬을 때 ‘깡술’을 씁니다. 술을 안주 없이 먹으니까, ‘깡다구 있게 술을 마신다’는 의미쯤으로 생각해 그렇게 쓰는 듯합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안주를 못 시키는 것과 깡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연히 ‘깡술’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깡술’은 ‘강술’로 써야 하는 말입니다. 이때의 ‘강’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여러분이 좋아하는 ‘강된장’에도 ‘강’이 붙어 있습니다. ‘깡술’이 없으므로 ‘깡소주’도 없습니다. 이 말 역시 ‘강소주’로 써야 합니다.
이 밖에 ‘사또 고띠에’ 따위처럼 와인 등의 이름에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를 적는 일이 흔한데, 이들 말은 모두 거센소리(ㅊ, ㅋ, ㅌ, ㅍ)나 예삿소리로 적어야 합니다. 그게 지금의 외래어표기법입니다.
∇ 술은 권커니 잡거니 하면서 적당하게…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그 말의 뜻을 살펴보면 ‘피식~’ 하고 웃음이 나는 표현이 더러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별 생각 없이 쓰는 ‘술이 취했다’는 표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 술이 취해 헛소리를 많이 한다” 같은 예문에서 보듯이 ‘술이 취하다’는 아주 널리 쓰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벌써 눈치챘겠지만, 사람이 술에 취하는 것이지, 술 자체가 취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위기에 취하다’를 ‘어떤 분위기가 취하다’로 쓸 수 없듯이, 술이 취할 수 는 없습니다. 술에 취하는 것이죠.
〈표준국어대사전〉도 ‘취하다’의 풀이에서 “(‘…에’ 뒤에 쓰이어) 어떤 기운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다”라고 하면서 ‘술에 취하다’ ‘뜨거운 열기에 취하다’ ‘잠에 취하다’ 등의 예문을 들어놓고 있습니다.
술을 마실 때의 모습을 일컫는 표현 중에서 ‘권커니 자커니’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쓰실 듯합니다. 하지만 ‘권커니 자커니’는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권커니 잣거니’와 ‘권커니 잡거니’를 바른 관용구로 보고 있거든요.
그러나 ‘잣거니’는 어딘가 어색합니다. ‘잣’이 어디에서 왔는지 도통 그 뿌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잡거니’는 “술잔을 잡는다”는 의미가 있으니 조금 이해가 가지만, ‘잣거니’는 정말 이상합니다.
반면 ‘자커니’는 “자! 하거니”의 준말 꼴로 보면 술을 마시는 모습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어찌 된 까닭인지 국립국어원은 뚱딴지같이 ‘잣거니’를 바른 표현으로 삼고 있습니다.
술과 관련해 ‘고주망태’도 잘못 쓰이는 사례가 많은 말입니다. ‘고주망태’는 “술에 몹시 취해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합니다. 즉 ‘고주망태’는 ‘지금’ 술에 잔뜩 취해 사단을 일으킬 상태이거나 그런 사람인 거죠. 따라서 “몸도 못 가눌 만큼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거나 “엄 기자 그 녀석, 어제 소주 몇 잔에 고주망태가 됐더라고” 같은 문장은 ‘고주망태’를 제대로 쓴 사례입니다.
그러나 “야, 이 고주망태야. 오늘은 제발 술 마시지 말고 집에 일찍 좀 가라”라는 표현의 ‘고주망태’는 바르게 쓰인 말로 보기 어렵습니다. 어제는 ‘고주망태’였을지 몰라도 오늘 지금은 ‘고주망태’가 아니니까요. 이때는 ‘모주망태’가 바른말입니다. ‘모주망태’는 “술을 대중없이 많이 마시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입니다. ‘모주꾼’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모주망태’나 ‘모주꾼’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의 고주망태 뜻풀이에 모주망태의 뜻풀이를 덧대어 놓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국립국어원이 그렇게 해 주기 전까지 여러분은 ‘모주망태’를 대신 ‘술고래’를 쓰길 권해 드립니다. 술고래 역시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거든요. <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어휘편(엄민용, EBS BOOKS,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6.24. 화룡이) >
첫댓글 술에 관한 용어도 아주 많습니다
우리말의 묘미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듯 황홀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