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맛이야기 33 곳
대부도는, 지금이야 연륙도가 되었지만 시화방조제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염전이 많은 조용한 섬이었다. 염전은 특히 송산만에 많았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쌀보다 소금이 흔하고, 소금만큼 바지락이 흔했다. 대부도에서는 다 같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도록 음식마련을 ...
제철 정보:5월, 6월
1946년에 만들어진 물왕저수지는 시흥은 물론 부천의 농지에까지 물을 대줄 만큼 크고, 수심도 7미터나 된다. 이 저수지에는 낚시꾼부터 갈대밭 사이의 수변을 산책하려는 연인까지 몰려들었는데, 그 가운데는 간혹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 강화의 한 사찰에 ...
제철 정보:8월
수원은 갈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수원이 갈비의 고장이 된 것은 1940년대까지 수원에 있던 전국 최대의 우시장 덕분이다. 수원의 우시장이 이렇듯 컸던 이유는 정조가 시행했던 화성 축성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은 농업을 매우 중시했기에 농사에 없어선 안 될 소의 도축을 ...
제철 정보:연중
지금이야 말끔한 대로가 들어섰지만 삼십 년 전 남한산성 아래에는 민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산성 아래 반듯하고 높은 터에 기대어 집짓기가 좋았고, 숲이며 냇가가 있어 먹을거리를 구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산나물로 나물밥을 지어 먹고, 닭을 놓아 길러 그 닭이 낳은 ...
소설가 양귀자의 작품 「원미동 사람들」의 무대인 원미동에 1985년 원미종합시장이 들어섰는데, 한두 해 사이에 이곳이 장사가 잘 되는 장터란 소문이 전국으로 퍼졌단다. 당연히 돈을 벌려는 외지인도 많이 들어왔고, 이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도 줄지어 들어섰다. 시장의 서 ...
동두천 떡갈비의 역사는 6.25 전쟁이 끝나고, 전주 태생의 강씨 소녀가 동두천에 시집을 오면서 시작된다. 650여 년 전부터 이미 떡갈비를 즐겼던 전주의 전통음식이 동두천으로 함께 ‘시집을 온 것’이다. 전주댁은 전주식 떡갈비 만드는 방법에 경기도만의 방법을 접목시켰 ...
남양주는 전체의 3분의 2 정도가 산이라 예로부터 부식이 귀한 고을이었다. 게다가 서울에 인접하고, 경기 서북부, 강원도, 경기 이남을 잇는 요충지여서 역사적으로 유난히 수탈이 잦고 접전이 많았다. 근대에는 의병투쟁이 치열했는데, 이를 토벌하려는 일본 순사대의 침탈과 ...
사찰 음식 중 최고는 단연 연잎밥이었다. 연꽃이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청정의 표상으로서 극락세계를 상징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보다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물론 불자들도 귀한 손님이나 정성을 들여야 하는 날에는 연잎밥을 빼놓지 않고 내놓았 ...
군포(軍浦). ‘군의 나루’라는 이름에는 아름다운 사연이 있다. 지금의 군포 옆을 흐르는 하천의 이름인 군포천(軍浦川)에서 고을이름이 비롯된 것이 정설로 알려졌지만, 군포 토박이들 사이에서는 ‘군사가 배부르다’는 뜻의 ‘군포(軍飽)’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
태조 이성계는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좋은 묏자리를 많이 보러 다녔다. 터 좋은 구리 역시 태조의 발길이 닿았는데, 좋은 자리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어느 냇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그는 훗날 구리 동구릉 가운데 하나인 건원릉에 영면하게 ...
1970년대 중반. 곤지암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어렵사리 살아가던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유난히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은 남편을 위해 없는 살림에도 늘 사골이며 한약을 고아 돌봤다. 그런 그녀의 정성을 눈여겨 본 한 이웃이 근처 도축장에서 일을 보던 다른 이웃에게 ...
광명시 하안동 도덕산 아래에는 갠이불, 금뎅이, 밤일, 벌말, 술청거리, 안현, 안터 등으로 불리며 민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 많았다. 갠이불과 벌말은 빽빽한 아파트 단지가, 안현은 큰 공설운동장과 공원이 들어서는 등 광명시의 발전에 맞추어 옛 모습을 잃어갔다 ...
여우가 자주 출몰해 여우고개라 불렸던 남태령을 넘어 고향으로 향했던 파직 관리나 은퇴한 벼슬아치들은 과천에서 잠시 쉬어가곤 했다. 더불어 갓 부임하는 관리, 도성의 권문세가를 찾아가는 사람들, 장사꾼들이 이곳을 지나가면서 과천은 자연히 재화가 모이는 길목이 됐다. 이를 ...
옛날부터 고양의 논에는 ‘논 반 미꾸라지 반’이라고 할 정도로 미꾸라지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미꾸라지가 특히 많은 곳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는 계단식 논. 수심이 얕고 깨끗한 물에서 산란을 하는 미꾸라지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습성이 있는데, 계단식 논은 이런 미꾸 ...
홍천강과 북한강으로 둘러싸인 물의 고을 가평. 계곡마다 물이 흐르고 시냇가에는 고기가 넘쳐나는 이곳에 메기매운탕이 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가평 마장리 밤벌의 한 농부가 아침 일찍 논물을 보러 가다가 논두렁에서 큰 구렁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
횡성은 예부터 ‘한우의 고장’으로 불렸다. 논농사가 발달한 덕에 겨울철 소의 주식인 볏짚이 풍부해 소를 많이 키웠고, 또한 해발 600m의 고랭지라 겨울이 춥고 일교차가 뚜렷해 소의 육질이 부드럽고 향미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부터 횡성 우시장은 ‘동대문 ...
겨울이면 워낙 추워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던 강원도 화천군. 겨울에도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축제를 궁리하던 끝에 묘안을 떠올렸다. 오히려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용해 지역 축제를 여는 것은 어떨까? 결국 군에서는 화천의 하천이 ‘전국에서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언다 ...
제철 정보:1월, 2월, 12월
태백산 줄기에 자리 잡은 홍천은 물이 맑기로 유명했다. 맥주공장이 홍천에 자리 잡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덕분에 홍천에서는 맥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맥주박’을 먹여 소를 기르는데, 이 알코올 발효사료를 먹인 쇠고기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이렇게 독특한 사료를 ...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는 허생원과 동이, 조선달이 대화 장에 가기 위해 팔십 리 길을 밤새 걸어가는 정경이 펼쳐진다. ‘산허리가 모두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는 그 유명한 대목처럼 평창은 예로부터 ...
제철 정보:9월, 10월
태백에 가면 유난히 덩치가 큰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태백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온 운동선수들이다. 지대가 높아(해발 평균 700미터) 서늘한데다, 물 맑고 공기 좋아 전지훈련지로 각광받아 왔다. 태백에 온 선수들은 고된 훈련에도 불구하고 싱글벙글 웃는 일이 많 ...
1960년대 초, 춘천 중앙로의 한 판잣집에 주로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팔던 김씨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돼지고기를 구하지 못한 부부는 닭 2마리를 사서 돼지갈비처럼 손질해 요리를 만들었다. 닭고기를 돼지갈비처럼 넓게 펴 덩어리째 불에 구워 잘라 먹으니 색다른 맛이 ...
강원도 철원, 그 중에도 한탄강 중류의 고석정은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과 인연이 깊다. 임꺽정의 본래 이름은 임거정(林巨正). 타고난 기골이 장대하고 재주가 비상했지만, 신분이 천출이라 과거를 볼 엄두도 못 내었다. 때는 바야흐로 외척이 발호하는 학정의 시대였고, ...
강원도 정선은 대한민국 두메산골의 대명사. 오죽했으면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빨랫줄을 걸어도 되겠다’라는 이야기가 생겼을까? 이렇게 깊은 산에 첩첩이 둘러싸여 있어 논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쌀이 너무 귀해 사람들은 산에 나는 나물을 구해 허기를 달래기 일쑤였다. ...
제철 정보:3월, 4월, 5월
황태는 식탁에 오르기까지 서른세 번 손이 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최상품의 황태는 ‘하늘과 손을 잡아야 나온다’고 전해질 만큼 자연의 도움 없이는 진품을 얻기가 쉽지 않다. 바람과 눈, 햇볕, 기온 네 박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한에 ...
높고 험한 치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원주는 저수지와 도랑이 많아, 미꾸라지를 흔하게 잡을 수 있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30여 년 전, 원주의 한 아낙은 남편이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한 바구니씩 잡아오면 푹 끓여 남편의 친구들에게 대접했다고 한다. 미꾸라지를 ...
영월은 산이 주위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그 안으로 동강과 서강이 유유히 흐르는 산중마을이다. 이렇게 산이 많으니, 흉년이 들어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으레 지게를 짊어지고 산으로 갔다. 그리고는 도토리, 칡, 산채 등 허기를 채울 만한 것은 무조건 집으로 가 ...
매년 10월이 되면 전국의 미식가들은 양양으로 몰려든다. 어떤 음식에든 한 조각만 넣어도 그윽한 향기가 진동하는 ‘송이’를 맛보기 위해서다. ‘송이’란 소나무 아래에서만 자라는 송이버섯의 특성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다른 버섯들은 죽은 나무에 붙어서 살기도 하지만, 송 ...
추운 산골마을은 고기가 귀하다 보니, 닭 한 마리도 그냥 먹는 법이 없었다. 양구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사람들은 모처럼 닭을 잡으면 정성껏 살을 발라내서 갖은 양념에 무쳐 숯불에 구워 먹었다. 때문에 양구에는 곳곳에 ‘닭고기 숯불구이’를 파는 음식점들이 많다. 그런데 ...
6.25전쟁 당시 함경도를 떠나온 사람들이 터를 잡은 속초 청호동, 일명 아바이 마을. 이곳은 고향을 그리는 함경도 실향민들이 지금도 모여 산다. 곧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고향 가까이 정착한 이들이, 한 해 두 해 갈수록 멀어지는 고향을 그리며 먹기 시작한 것이 바 ...
50여 년 전, 동해안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바다 속을 휘젓고 다니는 거무스레한 물고기를 발견했다. 몸길이가 1미터 정도 되고, 퉁퉁하고 거무스레한 이 물고기의 모습이 마치 곰처럼 생겼다고 해서 ‘곰치’ 또는 ‘물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곰치가 식탁에 오른 지 ...
묵호항 앞바다는 주문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오징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일본으로 석탄을 수출하던 무역항의 구실도 했었지만, 석탄산업이 쇠퇴하면서 묵호항은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독차지했다. 조선 순조 때 어느 관리가 바다 색깔이 마치 먹을 풀어놓은 것처럼 ...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조정에 충정어린 상소를 올렸다가 좌천되어 강릉부사로 내려왔다. 그는 나라 걱정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근심도 달래고 머리도 식힐 겸 관청 뜰에 있는 우물물을 떠다 마시곤 했는데, 그 물맛이 너무나 좋아 ...
기나긴 겨울밤, 배가 출출해질 때 먹는 살얼음 살짝 얹힌 동치미 막국수는 추운 겨울에 움츠러든 입맛을 돋워주는 별미였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동치미 막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강원도 고성이다. 고성의 동치미 막국수는 ‘이북식 막국수’에서 나왔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