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에서 자다 (지리산 190차 - 블로그 기록 기준)
1. 일자: 2017. 07. 22 ~ 23 / 10:10 ~ 익일19:50 / 17-19차
2. 날씨: 대체로 흐림
3. 대상: 지리산 중봉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소재
4. 코스: 순두류-마야계곡-중봉-써레봉-황금능선분기점-물가름재-느진목재-국수재-중산리
5. 주요지점 통과 시각
[첫날]
10:00 중산리 - 셔틀버스
10:15 순두류 - 산행시작
10:32 순두류아지트 - 휴식, 아지트 내부 탐방
12:20 합수점(1,350m) - 점심식사 2시간 40분
17:10 중봉샘 - 야영 및 익일 산행용 식수 취수, 샘 상태 양호, 수량 풍부
17:45 중봉 - 야영
[다음날]
11:45 중봉 떠남 - 7월 정기산행 중인 [지산] 회원들과 조우
12:40 써레봉 - 휴식
13:20 황금능선 분기점 직전 전망바위 - 휴식
14:10 물가름재 - 점심식사 1시간 30분
16:10 느진목재
17:08 전망바위 - 휴식
17:45 국수재
18:10 계곡 건넘
17:50 중산리 안내소 - 산행종료
6. 궤적
약 14.7㎞ / 하늘색 실선
황금능선 국수재 - 순두류계곡 간 트랙
순두류와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천왕봉 남, 북쪽은 한결같이 경사가 급하다. 그러나 천왕봉 중봉 써레봉에서 급경사가 쏟아지듯 흘러 내리다가 뜻밖에도 순탄한 평원을 이룬 곳이 있다. 약 3만평에 이르는 이 평원을 순두류라고 한다. 두류산이 순하게 흘러 평지가 되었다고 붙은 이름이다. ‘신선너덜’로도 불리는데 예부터 이곳의 경관이 수려했음을 말해준다.
순두류 중심에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 이 땅은 덕산 사람 곽병철씨의 소유였다. 그는 광활한 순두류 초원에 염소를 방목하고 약초와 고냉지 채소 등을 재배하고 있었다. ‘순두류의 황금 땅’을 호시탐탐 노리던 경상남도는 곽씨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증해줄 것을 권고했다. 도내 전체 청소년을 비롯한 도민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건전한 심신수련과 정서함양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요즘 같으면 씨도 먹히지 않을 얘기지만 곽씨는 순두류 자신의 땅 1만 5천 평을 기꺼이 희사했다. 그 대가는 자연학습원 매점운영권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부지를 기증받은 경남도는 1981년 자연학습원 조성계획을 확정하고 이듬해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86년 9월 ‘경상남도 자연학습원’ 초대 원장(주재명)을 취임시켰다. 2006년 2월에는 원장의 직급을 상향 조정(지방행정사무관 -> 지방행정서기관)하였으며, 2011년 1월 환경교육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제14대 원장(허호성)을 앉혔다. 그리고 2014년 자연환경 해설사 양성기관, 2015년 경남 환경교육센터로 지정하였다. 지금은 금년 1월 부임한 제22대 강차석 원장이 교육원을 이끌고 있다.
순두류 경상남도 환경교육원(2017년 6월 촬영). 우측 봉우리가 황금능선 상의 국수봉(국사봉)이다.
한편 중산리의 일반차량 통행 한계점은 탐방안내소 앞 주차장이다. 하지만 법계사 셔틀버스와 환경교육원 이용 차량은 꼬불꼬불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라 3.1㎞ 떨어진 순두류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도로는 군사작전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환경교육원과 법계사가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법계사를 찾는 신도보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등산객이 셔틀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 이 도로 끝 지점이 순두류 등산구이다.
나는 이 등산구를 폐쇄하고 순두류계곡 따라 난 옛길을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법계사 셔틀버스는 없어져야 하고 환경교육원은 이전해야 한다. 다음은 1989년 최화수 기자가 지리산 일대를 취재할 당시 중산리 한 주민의 주장이다. “자연학습원이 연수생들을 수용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것보다 동식물 연구소로 그 역할을 바꾸고 수련원은 중산리 마을 쪽으로 내려온 곳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늦지 않다.
* 자료: <지리산 365일> 최화수, 교육원 홈페이지 등
이번 산행은 [영랑재] 아우들과 중봉에서 야영하며 ‘밀린 산정’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다. 첫날은 순두류아지트에 들렀다가 마야계곡을 거쳐 숙영지에 이르는 것이며, 다음 일정은 숙영지에서 정하기로 하였다. 모로가나 도로가나 결국 그 끝은 중산리일테지만.
첫날
10시 15분, 순두류 위령비를 뒤로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중산리에서 순두류옛길을 따라 순두류아지트에 진입하는 것도 고려하였으나 하산 길과 겹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버스를 이용했다. 8개월 만에 복귀한 <영랑>아우의 밝은 모습이 참 좋고, 나의 배낭은 평소보다 가벼워 발걸음이 경쾌하다. 아지트 입구 너럭바위에서 첫 쉼을 갖고 계곡 건너 20미터 지점의 아지트도 둘러본다. 안내판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고 바위틈의 좁은 출입구를 들어서니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인 내부공간은 제법 널찍하다. 뒤쪽에도 출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그 밖은 너덜과 바위라 탈출용으로 이용한 듯하다.
아지트를 나와 다시 산길에 복귀한다. 박짐을 멘 채 초반부터 계곡치기는 무리라고 판단, 계곡 좌측으로 난 산길을 최대한 따른다. 나는 달포 전보다 부쩍 늘어난 수량으로 곳곳에서 나의 알몸을 유혹하는 마야계곡을 아랑곳 않고 오름짓에 열중한다. 그러나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석문골’ 지나 고도 1,350m지점의 합수점에서 결국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순두류를 떠난 지 두 시간만이자 점심상을 차릴 곳이다.
순두류아지트. 나무 사이에 내부로 통하는 출입구가 보인다.
싱싱한 한치와 덕산에서 구입한 생고기 그리고 한산 소곡주가 오찬의 으뜸 메뉴다. 오랜만에 ‘코펠 밥’을 짓는다. 압력솥을 빠트린 탓이다. 공동장비를 배분하면서 누락시킨 책임을 지고 내가 옛날 실력을 발휘하였으나 결과는 낙제점을 겨우 면했다. 그래도 향수는 느낄 수 있었다.
알탕의 유혹에 넘어갈 뻔 했던 곳.
점심 후,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계곡치기에 돌입한다. 이 골짝 최고(?)의 폭포는 좌측으로 우회한다. 폭포를 올라서자 우측에 열린 지계곡 사태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탐스럽게 익은 산딸기를 따 먹으며 암반과 암벽을 타고 오르는데 일행이 당귀 하나를 발견한다. 이 녀석은 내일 산행을 마칠 때까지 물로, 술로, 차로, 생으로 우리에게 충성한다.
오후 4시 40분, 바위지대가 끝나고 천왕봉이 보이는 사태지역 상단(1,640m)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아래로는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올라온 마야계곡을 비롯해 이 골짜기를 품은 써레봉능선과 황금능선, 천왕봉 동릉이 좌우에서 뻗어 내렸는데 써레봉능선의 석문 옆 암봉과 천왕봉 동릉의 1569봉은 청룡과 백호처럼 든든하고 황금능선 뒤로 한일자의 치밭목능선은 안산 같이 편안하다.
마야계곡 최고(?)의 폭포.
당귀.
꿀맛 같은 휴식을 뒤로 한 채 마지막 급경사 지대를 힘들게 올라 한달 전에 청소했던 중봉샘과 마주한다. 정월 대보름 달을 보는 기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이런 상태로만 유지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 초록 공터에 배낭을 두고 이후 산행에 필요한 물을 물통에 담는다. 내가 취수한 물은 4.3리터다.
중봉샘터에서 용을 한 번 쓰면 중봉 안부에 올라서고, 거기서 10여분이면 이번 산행의 최고점인 중봉이다. 산행에 나선 지 7시간 30분만에 올라선 중봉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로 등정의 기쁨을 만끽하고 ‘밀린 산정’을 나눌 구상나무 숲 속에 도착한다. 곧바로 영랑재 한 동을 세우고 해먹을 설치한다. 바로 옆의 전망대에 가보니 노을은 신통찮고 내일 일출도 기대하기 어려운 하늘이다. 영랑대는 누가 있는 듯하다. 차를 끓여 속부터 달래면서 일찍 시작된 만찬은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파한다.
암반 및 암벽지대.
중봉샘.
사태지대 상단.
중봉.
야영지.
노을.
영랑대.
다음날
모처럼 스스로 눈을 뜬다. 7시다. 아우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다. 농도 짙은 안개가 물방울이 되어 타프 위에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 정신도 몸도 말짱하다. 명당의 기운을 제대로 받은 걸까. 물 한 통 들고 밖으로 나간다. 구실을 못하는 전망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호흡을 한다. 눈을 감는다. 어제 본 영랑대가 안개 속에 또렷하다. 눈을 뜬다. 영랑대는 오간 데 없고 안개만 그대로다. 바람이 불고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한기를 느낀다. 삼복더위에 여기는 분명 춥다. 빵모자를 눌러쓴다. 헬기장을 가로질러 중봉 정상으로 간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자고 넘어온 세 분이 배낭을 맨 채 쉬고 있다. 일출을 못 본 서운함이 엿보인다. 얼마 후 대원사로 내려간다며 그들은 떠나고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안 받는다. 분명 요 밑에 있을 터인데. 또 다른 이도 마찬가지다. <슬기난> 형님과 연결된다. 여기서 점심 먹을 거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내가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응답한다. 다시 숲 속으로 돌아온다.
아침을 먹으면서 하산코스를 결정한다. ①황금능선~중산리, ②여리재날등~중산리 팽팽한 접전 끝에 전자가 결정된다. 황금능선 탈출은 국수재로 하되, 물가름재나 느진목재도 배제하지 않는다. 차와 반주로 시작한 조찬이 꽤 길어져 11시가 다 되어 철수준비에 들어간다. 배낭 패킹이 마무리될 즈음 <새들처럼> 아우가 새소리를 내며 찾아왔다가 헬기장으로 돌아가고, 뒤 이어 <슬기난> 형님이 방문한다. 헬기장에서 뵐 수 있을 텐데 배낭도 벗지 않은 채 손수 걸음해준 것이다. 형님은 [지산] 7월 중봉~써레봉 정기산행에 참가해 어제 우리가 온 길을 되짚어왔다. 하산코스도 비슷하다.
아침.
11시 50분, 헬기장에서 점심준비에 한창인 [지산] 회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중봉을 떠난다. 써레봉으로 가는 비탈에 목재계단이 새로 설치되어 있다. 산길이 날로 진화(?)하는 것 같다. ‘진화’란 발전적인 것인데, 그럼 거꾸로 진화한다고 해야 하나.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것만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지난 5월 영남알프스에서 야영한 산행기 일부 내용이다. “멀쩡한 산길에 이런 건 왜 필요할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건암사~신불재 간 등로 대부분이 이와 같은 시설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게 상책이다. 이 등산로에 안전시설이 필요한 곳은 딱 한 군데 있더라. 그런데 그곳엔 자연 그대로더라.”
써레봉에서 배낭을 내린다. 천왕봉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하산할 때까진 몇 군데 전망대가 있고 시간도 많으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결국 알현하지 못 하지만. 대신 천도복숭아를 먹고 구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수밖에. 발 아래는 세존봉까지만 조망을 허용한다.
써레봉.
황금능선 진입 직전 써레봉능선 조망바위.
오후 1시 45분, 황금능선 분기점 직전 전망대에서 한숨 돌리고 금줄을 넘는다. 초반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 길은 1529봉 부근에서 고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하여 물가름재에서 멎는다. 그늘사초가 양탄자처럼 깔린 약간 후미진 곳에서 점심을 지어먹는데 [지산] 회원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그들은 느진목재에서 하산한다고 한다.
물가름재를 지나자 황금능선의 상징인 키 큰 산죽이 서서히 나타나면서 그 속에서 유영해야 하는 곳도 더러 있다. 이 능선은 추색이 완연한 가을이면 석양에 비친 능선의 모습이 온통 누런빛으로 물든다고 하여 황금능선으로 불린다. 써레봉능선에서 분기하여 갈지자를 그리며 구곡산으로 이어진다. 산죽으로 가득한 느진목재는 통과하고 잠시 후 나타나는 전망대(?)에서 목을 축인다. 이곳은 장구목 방면을 조망할 수 있지만 이미 구름이 덮어버렸다. 내원능선 분기봉(1,101m)은 생략하고 물레방아골 갈림길을 지나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황금능선 최고의 전망대다. 천왕봉 동남면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헛방이다. 반대편 내원골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시 기다려 보지만 하늘이 열릴 기미는 없다. 내가 너무 큰 걸 기대했나. 쑥스럽다.
국수봉 직전 황금능선 최고의 전망대. 세존봉 위에 붉은 빛이 감돈다.
황금능선 중간쯤에 위치한 국수봉에 올라서니 삼각점과 돌 표석만 무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날엔 덕산에서 이 봉우리를 거쳐 천왕봉으로 갔지만 요즘은 찾는 이도 별로 없는 듯 쓸쓸해 보인다.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 듯 두 아우가 표석을 들고 인증샷을 남긴다. 국수봉은 국사봉에서 온 이름 같은데 도로 국사봉으로 돌려줘야 할 것 같다.
국수봉(국사봉) 정상석.
국수재에서 순두류로 이어진 옛길은 제법 묵었다. 나도 이 길을 네댓 번 오르내렸지만 갈수록 이 모양이니 안타깝다. 중산리에서 이 길로 올라 황금능선 타고 천왕봉에 오른다면 상봉도 체면이 설 터. 치밭목에 들러 하룻밤 묵고 상봉으로 향하면 더 좋고.
능선 길(?)이 교육원 방면의 우측 사면으로 확 꺾기는 지점에서 계속 능선을 고집하고 내려가는데 잠시 후 나타나는 키 큰 산죽이 장난이 아니다. 지형도의 등고선 간격만 생각하고 답사 겸 들어선 것이다. 절반쯤 내려가자 산죽의 키가 조금 작아졌지만 지나온 산죽만으로 이미 답사한 것으로 간주하고 왼쪽 지계곡으로 내려가 목마름을 해결한다. 이후 지계곡 왼쪽 사면의 비교적 편한 곳을 따라 내려가다 합수점 부근에서 우측으로 건너서 바로 본류를 횡단했다. 이어 순두류옛길에 진입하여 편백나무 숲에서 잠시 쉬었다가 중산리계곡에서 산행 흔적을 지운 뒤 우천 선생 추모비에 묵념하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중봉에서 하룻밤은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이었고 동행한 아우들에게 이 글로 고마움을 대신한다.
세부 사진
위령비.
순두류아지트 입구.
아지트 내부. 뒷문이 보인다.
써레봉골 합수부 아래.
점심 터 옆 알탕소.
중봉골 중, 상단.
산딸기 따는 아우.
바위채송화.
노루오즘.
바위지대 상단을 오르는 아우.
중봉 안부로 올라서고 있다.
중봉 안부.
중봉.
중봉에서 내려다본 풍경. 써레봉능선과 황금능선, 치밭목산장이 보인다.
야영지 주변 풍경.
치밭목능선에서 본 천왕봉 동릉.
비둘기봉과 치밭목산장.
써레봉능선 1.
써레봉능선 2.
돌양지꽃.
마야계곡(중봉골).
써레봉능선 석문 부근 암봉.
써레봉능선 길.
황금능선 진입 후 전망대에서 본 써레봉능선.
물가름재 점심 터.
느진목재 지나 장구목이 보이는 전망대. 구름으로 장구목은 보이지 않는다.
순두류계곡 횡단지점.
중산리계곡 알탕소. [끝]
첫댓글 상세한설명과 사진 잘보았습니다~^^
작년 우리40기 산행코스와 겹쳐서 도 좋으네요~~
동기들 산행으로 지리산 마야계곡(중봉골) 들기가 쉽지 않은데 <칠성>님이 리드했나 봅니다.
우리 기수도 하반기 동기산행을 생각하고 있는데 잘 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