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이 심상치 않다. 아니 이미 쌀값 폭락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가을 수확을 앞둔 쌀 농민들은 벌써부터 MB정권의 급작스런 대북 쌀지원 중단에 따른 충격 때문에 발생했던 2009∼2010년과 같은 끔찍했던 쌀값 폭락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바짝바짝 입이 마르고, 시커멓게 가슴이 타들어가고 있다.
쌀의 수급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수확기 직전인 단경기에 쌀값이 오르는 현상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단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최근 산지 평균 쌀값은 정곡 80kg 기준으로 약 16만 원 정도를 기록하면서 쌀값이 회복세를 보인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가격으로 떨어졌다. 만약 이대로 가면 2009∼2010년과 같은 쌀값 폭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당시의 끔찍했던 쌀값 폭락 이후 쌀농사가 계속 흉년이 들면서 겨우 쌀값이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2년 연속 쌀농사가 풍년을 기록하면서 올해 초부터 쌀값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약 7만 7천 톤의 쌀을 추가로 수매하여 시중에서 격리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쌀값은 지금까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쌀농사가 풍년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쌀값 폭락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7월 3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밥상용 쌀 수입저지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규탄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후 행진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밥쌀 수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서 쌀값 폭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7월말 정부는 농민들의 강한 반발과 저항을 무시하고 미국산 및 중국산 밥쌀 3만 톤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정부 내부에서는 올해 밥쌀을 추가로 더 수입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쌀도 이미 잇따른 풍년으로 쌀값 폭락이 우려되고 있고, 올해부터는 의무적으로 밥쌀을 반드시 수입해야 한다는 부당한 족쇄도 없어졌기 때문에 굳이 미국산 및 중국산 밥쌀을 수입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쌀값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밥쌀 수입으로 쌀값 폭락을 더욱 부채질하는 정부의 행태는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농민들은 또 다시 생존권을 위해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풍년을 기록했지만 농민들은 그 기쁨을 만끽하기 보다는 시커멓게 멍든 가슴을 부여잡고 또 다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야 할 상황이다.
쌀값 폭락하는데 밥쌀 수입하는 정부
그러나 아직 정부에게도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다. 밥쌀 수입과 쌀값 폭락으로 멍든 농심을 달래고 농민에게 쌀값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대북 쌀 지원이다.
잇따른 풍년과 밥쌀 수입으로 이미 쌀 공급의 과잉이 예상되고, 쌀값 폭락이 관측되는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처방은 대규모의 쌀을 시중에서 완전히 격리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 보다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그리고 대규모 시중 격리의 가장 적절한 방법이 대북 쌀 지원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과거 대북 쌀 지원이 국내 쌀값 안정에 기여했던 효과도 이미 검증을 마쳤다.
때마침 극적인 8.25 합의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고강도 적대적 대결에서 상호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공존의 길로 나가겠다고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산가족 상봉까지 논의되고 있고, 5.24조치 해제 및 금강산관광 재개 등도 거론되고 있다. 과거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공존을 상징하던 조치들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고, 그동안 중단되었던 민간차원의 다양한 남북교류도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남북 교류협력의 또 다른 상징과도 같았던 대북 쌀 지원도 당연히 재개할 필요가 있다.
수구세력들은 대북 쌀 지원이 일방적인 퍼주기라고 비난했지만 그러한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며,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대북 쌀 지원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쌀값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가 매우 크며,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전체의 식량주권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올해 대북 쌀 지원이 재개될 경우 막대한 정부 재정부담을 절약할 수도 있다. 쌀값이 폭락할 경우 정부는 목표가격 대비 가격손실의 85% 수준을 변동 직접지불로 지출해야 한다. 수확기 산지 평균 쌀값이 대략 17만 원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 재정에서 변동 직접지불이 쌀 생산농민에게 지급된다. 올해 수확기 쌀값을 예상해 보면 이미 변동 직접지불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변동 직접지불의 규모이다. 쌀값이 하락하면 할수록 정부가 지불해야 한다는 변동 직접지불금액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증가한다. 어쩌면 쌀값 폭락 수준에 따라 변동 직접지불금액의 최대한도라 할 수 있는 약 1조 5천억 원 규모의 감축대상보조금(AMS) 한도를 초과할지도 모른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대북 쌀 지원과 같은 대규모 시중 격리 조치를 통해 쌀값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변동 직접지불을 아무리 쌀 생산농민에게 퍼부어도 그것은 가격손실의 85%까지만 보전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쌀 생산농민 입장에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수천억 원 혹은 1조원이 넘는 재정을 지출하고서도 농민은 농민대로 막대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쌀 생산농민의 입장에서는 변동 직접지불이 발동되지 않는 상황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발생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쌀값에 달려 있다. 이것은 현행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데, 여기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대규모 시중격리를 통해 쌀값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대북 쌀 지원 및 해외원조 등은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처방이다.
대북 지원은 퍼주기? 사실 왜곡과 마타도어
그리고 밥쌀 수입 강행으로 저지른 정부의 잘못도 대북 쌀 지원으로 일정하게 해소할 수 있다. 수입산 밥쌀을 대북 쌀 지원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다. 작년까지는 의무수입된 쌀을 반드시 국내에서 사용해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이러한 부당한 족쇄도 풀렸다. 국내 쌀 수급안정을 위해서는 의무 수입된 쌀도 대북 지원 및 해외 원조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굳이 수입할 필요가 없는 밥쌀 수입을 강행하는 정부 당국자들을 보면서 그 무능과 무기력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연민을 느낀 부분도 좀 있다. 미국 등 협상 상대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밥쌀을 수입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수입산 밥쌀에 대한 국내 수요 충당”, “세계무역기구(WTO) 내국민대우 위반” 등과 같은 궁색한 논리로 변명하는 모습에 일말의 안타까움도 느꼈던 것이다. 정부가 수입산 밥쌀을 대북 쌀 지원에 포함시켜 자신의 실책을 만회하길 바란다.
만약 이마저도 미국 등의 눈치를 보면서 실행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주권국가의 정부로 부르기조차 민망해진다. 내 돈을 주고 수입쌀을 사면서 밥쌀용이든 가공용이든 그 용도조차 자기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처지도 보기에 딱하지만 수입한 밥쌀을 국내용이든 원조용이든 그 사용조차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주권국가의 정부라 할 수 있을까.
전국농민회총연맹이 5월 31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통일쌀 경작지에서 '6.15 민족공동행사 성사와 통일농업실현을 위한 2015 통일쌀 모내기' 행사를 열고 있다.ⓒ민중의소리
밥쌀 수입에서 저지른 정부의 잘못을 만회하고, 쌀값 폭락을 방지할 수 있는 대북 쌀 지원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
한편, 대북 쌀 지원은 통일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조치의 첫 걸음과도 같다. 지금이야 북한이 부족한 쌀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나중에는 남한의 쌀과 북한의 곡물을 교환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농업협력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인 것이다. 소위 (가칭)남북공동식량계획으로 부르는 이러한 협력들은 남북이 힘을 합쳐 한반도 전체의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몇 사람이 모여서 북한의 붕괴를 대비하는 것이 ‘통일준비’가 아니다. 북한을 훕수하여 통일을 이루는 것이 ‘통일대박’도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대박이 아니라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대북 쌀 지원에서 출발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식량계획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조치들이 실질적인 통일준비이다.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공존을 통해 상호보완적인 농업협력을 이루어나가면 그 결과가 바로 대박이다. 미래에 농수산업이 대박산업이 되려면 수출이나 벤처에서 찾지 말고, 통일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박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