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긴 글이 될 듯 합니다. 여유내어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시고 어디까지나 제 경험과 생각에 의해 쓰여진
부분이니 오해없었으면 하며, 지극히 일부 도움이 될까 싶어 씁니다.-
*귀촌을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마흔중반.. 객지생활 23년만에 귀촌을 결심한것이 벌써 6년입니다.
고향으로 되돌아 온 셈이고 제가 앞에 쓴 글을 보신분이라면 어느정도 이해하시려나...
제가 살고 있는 현재 이곳을 다녀가신 분들의 반응은 모두 세가지입니다.
1>부럽고 좋다! 2>의외로 별거 없다! 3?실망이다!- 이부분은 결과에 구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귀촌하기까지 사연 참 긴데 구질할것같고..
제가 귀촌하기전 상황을 대략 정리하면 여러가지의 직업을 전전하다 제 성격과 제가 원하는 삶을 추종하며 살기에
알맞은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데, 한달 수입이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300-500 정도에서 오락가락 했습니다.
남 밑에선 죽어도 일을 못해! 가 아니라 워낙 돌아치는것을 좋아하고 자유로운것을 좋아하다보니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시스템 자체를 내가 알아서 해나가는 것을 선택했네요.
처음 귀촌할당시 날 사람들은 요상하게 바라보았죠. 아직 젊디 젊은 나이에 그 좋은 벌이를 두고 산으로 간다고 하니
모두 미친놈쯤으로 보더군요.
특히 양가 어머니들의 반대가 심했는데 처자식 있는 놈이 아직 살날이 구만리인데 왜 그 좋은 벌이를 걷어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결사 반대하더군요.
'자식키워달라 안해요. 처자식 안 굶겨요. 돌 빌려달라 안할거니 걱정붙들어매요.'
결론적으로 귀촌하며 아이들을 교육문제로 서울 처갓집에 우격다짐으로 맡기게 되고...
2011년 6월 부평 빌라를 매매처분하고 이삿짐 대부분을 모두 고향 어머니 집으로 옮겨놓은 어느날...
몸만가면 되는 쯤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귀촌하며 어머니와 함께 살려는 목적으로 어머니집을 개보수하고 증측해서
살림집을 넓히고 창고와 저온저장고까지 마련해 두었는데,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숫가락 하나 건지지 못하고 소실
되는 사건이 발생햇습니다.
충격이었죠. 도착했을때는 집터 흔적만 남았고 어머니의 수십년 세월이 묻은 모든것이 사라졌고 나또한 어머니집
하켠에 따로 마련한 살림집이 온데간데없이 검게 변해 버려 있더군요.
어찌할바를 몰랏는데 앞으로의 삶을 가늠하기조차 힘들더군요.
당시 제 수중엔 사오천만원 가량이 남아 있었죠. 사업처분하고 부평빌라를 매매하며 빚갚고 아이들 학자금을 남기고
난 귀촌자금이었는데... 막막하더군요.
수습하기 시작하고 나니 건질것이 하나 남아있지 않앗습니다. 경찰서 소방서등에 사건처리를 마무리하고 무더운
여름날씨를 피해 살것이 막막했는데.. 인근에 큰 누님댁에서 형님 동생과 막내누님 어머니 우리내외가 눈치밥을
먹으며 사나흘을 보내고 나니 이건 사람할 짓 아니다 싶어 아내를 데리고 야반도주하다시피하여 산속 계곡진곳에
임시천막을 치고 눌러 앉아 버리려 했죠.
며칠이 지나 어머니와 만나 상의한 결과 어머니 집앞 텃밭에 약 열평평짜리 비닐하우스 한동이 있었는데, 이차저차 도움을
받아 하우스안에 마루를 깔고 하우스지붕에 햇빛가리개를 씌워 몇가족이 들어앉게 되는 이상한 생활이 시작되었네요.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다행인가 불행인가.. 여름이어서 더운것빼면 힘들게 없었는데 문제는 여자들...
씻는것부터 옷입는것부터 좁아터진곳에서 음식장만하는것부터 이게 보통일이 아니더군요.
"있는 돈 다 까봐!"
가족회의가 소집되고 형님이 다짜고짜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반강제적인...
저마다 우물쭈물.. 눈치보는게 마치 드라마? 헐...
제 의견은 이랫는데... 어머니 자금 일부가 있고 어머니와 새집을 마련할 일이 아니라면 어머니에게 일부 자금을 드리고
분가 및 독자적인 생활쪽으로 갈 것이다.
형님은 부천이 집이었고 당시 하던일이 꼬여 어머니집에 잠시 들러 있던 상태라 오갈것 걱정은 없었고 바로 아래 동생은
아직 총각이라 그닥 신경도 안쓰고 막내누님도 국제결혼 후 이혼하여 혼자 몸이라 멀뚱히...
결국 나와 어머니의 문제로 귀결되더군요.
고민의 고민이 이어지고 난 어찌해야 할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장모님에게 맡긴 돈이 떠올랐는데, 그 돈을
다시 달라고 하면 능히 땅얻어 대충 집짓는데는 문제가 없을것 같은데.. 이게 또 할짓이 아니라서.. 아이들도 걸리고..
귀촌하자마자 집이 홀라당 타버려 오갈데 없다고 하면 면목도 없고..
끙끙 거리는데 어머니는 하나도 걱정 안하시네요. 오랜 추억이 묵은 물건들이 소실되고 집이 사라진게 아쉽지만 노친네
가 금새 평정심을 회복하셨는지 오히려 우릴 걱정하시는데...
*귀촌 정착시 허명과 화려함을 버려야한다.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당시 난 깊은 골짜기 안에 임시움막을 얻어 이걸 개보수해서 살 고민을 하고 매일 출퇴근
하고 있었는데 도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 겨울이면 완전 세속과 멀어진 그런곳이어서 내맘에는 쏙 들었지만 아내가
결사반대..그래도 난 자연에 살자고 뚝딱거리며 소일하고 있던차에 여기저기서 도움이 옵니다.
전세집 두채, 년세집 한채, 펜션을 겸한 가정집 한 채..를 선택할 기회가 찾아 옵니다.
지금은 찾으려해도 없는 빈집이 왜 당시에는 한번에 네채나 돌아다녔는지 요상하데요.
직접 찾아가보고 이것저것 따져 아내와 의논합니다.
시골에서 살아야 하니 너른 마당에 기본적으로 100여평 이상은 달린 텃밭이 있어야 하고 산골로 들어오는것이니
민가가 비교적 적은곳이어야 하고 교통은 뭐 차가 있으니 상관없고... 조건은 그랬습니다.
이곳에 오게되니 모든 가정집이 펜션과 민박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어 처음엔 좀 비싸더라도 펜션을 얻으려 했는데
아내가 뜨악해 합니다. 방 여덟개 짜리 펜션인데 건평이 장난이 아니네요.. 딱 봐도 너무 커서 저도 정나미가 떨어지고
년 800만원을 달라하고 유지비가 장난 아니겠더군요. 그래서 펜션은 패스~
전세집 두채를 보기로 하고 그 중 한채는 도로가와 너무 인접해 있어 패스~ 다른 한채는 우리 두 내외 혹은 손님이 오면
내어줄 집으로 봐도 딱 좋은데 관정을 파야하고 개보수할곳이 한두곳이 아니네요.
따져보니 2-3천 이상 들어가야 살림집이 되겠더군요. 그래서 일단 보류...
사실 월세는 지긋지긋한바가 있어 다달이 내는 돈은 지금도 자동이체시켜놓고 살 정도인데 마지막 한채는 뭐 보고싶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결론... 지금 살고 있습니다.
작은계곡이 있는 작고 아늑한 산골마을... 마을전체 가구수가 60호도 안되는 조용한 곳.. 뒤로 해발 700에 이르는 산과
앞에 고여 휘도는 작은 하천이 있는...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터더군요.
그런데........... 사람이 떠난지 5-6년동안 제대로 관리가 안되어서 엉망~ 심야보일러에 관정을 파놓아 난방과 물걱정은
조금 덜한편이었는데.. 개보수 투자비가 얼마나 될지 걱정이 들더군요.
다행이라면 제가 웬만한 손재주는 있어 자제만 있으면 건물정도는 지을 줄 안다는거...
딸린경사진 밭이 800평을 끼고 있는 집인데, 지금 앉아 있는 컴방과 소박한 크기의 주방과 안방 뒷방 세개, 화장실겸
샤월실 하나, 작은 세탁실 하나.. 그럭저럭 꾸미면 살겠더군요.
요걸 가지고 주인과 전세 및 년세로 계약하자고 하니 아.. 노인네가 왜 저리 깐깐한지...
차라리 사겠다고 하니 죽어도 월세를 받겠다고 합니다. 원래는 이집을 사서 고쳐 살겠다고 했죠.
주위 시세와 바로 옆 땅 시세를 따져보니 충분히 살것 같더군요. 물론 돈을 일부 융통해야 할듯 싶었는데...
저처럼 확고한 생각으로 특정지역을 잘알아 터를 잡고 살 요량이 아니시면, 막연하게 턱하고 땅을 매입해 집터를 닦고
집을 짓는 멍청한 짓 하면 절대 안됩니다!! 이건 그냥 자살골입니다.
내가 살 터전은 나와 죽이 맞아야하고 궁합은 따로 있다 할 정도로 조심스러운데, 이게 샤머니즘 정도로 치부하다간
고생만 죽어라하다가 다 털어먹고 나가떨어지는것을 비일비재하게 보았습니다.
*귀촌은 새로운 삶, 나를 내려놓아야산다. 조화를 중요시해야...
익숙하지 않은곳을 피하려하는 사람의 심리상 낮선곳에 들어앉을 요량이시면 반드시 조화가 필요합니다.
그땅에 나를 조화시키고 그 지역민에게 나를 조화 시키고 그곳 자연에 나를 조화시키고.... 그런 연휴에 마음이 동해지고
몸이 큰 거부반응을 느끼지 않을때에 고민해야 합니다.
어찌 어찌 제가 지금 사는 집을 얻게 되고 급히 짐을 싸들고 들어앉고나서 두달여를 집을 손보기 시작했는데...
식사 중간참을 제외하면 하루 두끼에서 세끼는 반드시 인근 식당을 이용해서 해결했습니다. 이건 꼭 필요합니다.
나를 알리고 상대를 알고 동네 동향을 살피며 곧 나도 이곳의 주민임을 선포하는 신고식이니까요...
시골답지 않게 제법 규모가 좀 되는 큰 마트가 두군데, 자제를 파는 철물상회가 두군데가 있고 식당이 왜 그리 많은지..
한동안 이곳들을 공평하게 이용했습니다. 음식이 맛없어도 맛나게 먹고 음식뒤에 느긋하게 커피에 잡담까지 해가며
느릿하게 움직였고 가는곳마다 건네주는 음료며 커피 마다안했고 넉살좋게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님 누님 소리 주저
안했고 이참에 운동하자며 목과 허리 부지런히 움직이니 머지않아 동생소리 듣고 술잔 건네주더군요.
요즘 귀촌하면서 가장 많이 따지는것이 인심이고 텃새인데, 이것을 구분하는 잣대의 자세는 본인에게 있습니다.
사람사는 곳이니 별의별 사람 다 있고, 십인이 모이니 열가지 본성이라 십인십색이라 칭하지만, 사람의 기본정서상
웃는얼굴에 침뱉기 힘들고 일부러 싸우자 댓거리하는 자 없는 법입니다.
요즘 외지에서 흘러들어와 십년정도 살며 마치 터줏대감인양 하는 분들 계시고, 그분들 사회서 한가락 하며 살았던
과거전력을 마치 훈장처럼 달고 사니 다툼과 사람간의 벽이 생기는데.. 그렇게 할거면 강남가시지 뭐하러 산골짜기로
시골로 가시는지... 물론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조화를 거부하다보니 생기는 폐해에 대해 되돌아 봐야 합니다.
고향인근이나 그래도 낮설지 않고 형님의 오랜 친구분이 동네서 웬만한 사업도 하시며 먼저 자리도 잡아 저에겐
매우 유리한 상황도 많았죠. 그런데 아시나요? 귀촌귀농시엔 절대 외부인사의 도움을 멀리하셔야 한다는것을?
그 도움이란것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는데, 제가 말하는 도움이란 대전제적으로 보는 자립의 반대말입니다.
농삿일을 해야하는데 모르니 도움을 요청할수밖에 없지만 이건 도움이 아닌 예외에 해당합니다.
제가 말하는 도움의 요청의 깊은 뜻은 반복적인것에 있습니다. 무지하여 계속하여 동네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보면 이게 품앗이가되다가 나중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실지로 그런분들 많고요. 시골의 정서엔 사람간의 나눔이란 정서 시스템이 있는데, '형님 저 이거좀 시간내서 도와주세요.
술한잔 사겠습니다' 이런 개념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멋모르고 일당쟁이 고용한것 마냥 돈을 내미는 사람 많이 봤어요.
실지로 제가 사는 집 바로 옆집 분이 그러셨는데, 서울에서 큰 포목사업을 하시는 분인데, 땅을 사고 비닐하우스를 쳐놓고
컨테이너 임시 움막을 지어놓고 수백평 땅을 놀릴 수 없어 엄나무며 옻나무를 심었는데, 처음 이분 그 일 하실때 제가 많이
도와드렸는데 그때마다 돈봉투를 건네는데, 시골생활의 개념을 모르시다보니 일당을 얼마줄지 몰라 봉투에 현금으로
삼십만원씩 넣어 건네주더군요. 일체 받지 않고 칠순인 분을 앉혀놓고 많이 대화를 하다보니 역시나 몰라서 하는 행동
이더군요.
*귀촌, 먹고사는 문제에직면하다. 환상을 쫓기보다 실리를 추구하고 틈나는대로 투자해야...
터를 잡았으니 먹고 살 문제가 당면해 있는데, 실은 귀농귀촌하면 이 문제가 가장 큽니다. 거의 이 단계에서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후퇴내지는 파산을 신청하게 됩니다. 혹은 야반도주까지 감행합니다.
저요? 있는돈 일부 사용하는데 꽤 출혈이 심했는데, 되도록 안쓰려고 노력합니다.
귀촌할당시 아내에게 돈을 저금하며 살지 못해도 빚내지 않고 곡식 떨어지게 하지 않겠다 약속했는데, 여지껏 그 약속
만큼은 철저합니다.
오미자 블루베리 약용수 식용수 가축업 펜션 숙박업... 이런것을 많이 서택하게 되는데 이는 반쯤 강요와 떠밀린 선택에
의한 행위가 됩니다.
남이 심어 가꾸는 약용 식용수들 보니, 숙박업보니 모두 저절로 잘 되는것 같죠? 속내를 들여다 보고 직접 채험하게
되는 순간 눈물만 흐르게 되는데 이는 무지에서 비롯되는겁니다.
귀촌하려면 철저한 대비와 준비를 해도 모자랍니다. 저희 동네에 귀촌하여 사시는 60대 부부 형님이 계시는데, 젊은
시절 크게 성공했고 원채 있는 집 재물을 이어받아 11년 전 이곳에 들어올 당시 15억 현찰을 가지고 왔답니다.
땅구입하고 이층집 지어 아랫채는 펜션 위층은 가정집을 꾸리는데,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몇년전부터 경기가 안좋고
웰빙바람이 불어대고 자연체험이 유행하다보니 캠핑카에 질좋은 야외숙식도구를 구비하여 먹거리는 집에서 죄다 준비
해오니 지역경제가 예전만 못하고 한때 유행하던 펜션이나 민박인 숙박업이 사양길에 놓여 그 형님 내외 손님받는것도
보통일이 아니다하여 아예 펜션업을 중단하셨는데 동네 가구수의 85%에 해당하는 숙박업 하는 모든 이들이 거의 같은
상황입니다. 이형님처럼 막강한 현잘을 앞세운 경우가 아닌 우린 대부분 아류에 속하게 됩니다.
귀촌도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일부 맞는 말인듯 합니다.
전 귀촌할것을 결심하며 무려 12년가량을 틈나는대로 투자했는데, 하나가 임산물이고 둘째가 약용수이며 셋째가
자급가능한 자연이었는데, 다행이 남들보다 산에대해 잘 알고 지역에 나는 약초에 관해서는 제게 일부러 물어 올 정도로
통달(?)해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죠.
약초카폐등을 통해 많은 약초 판매가 이루어지는데 이것도 보통일은 아니죠. 전 아예 십여년 전부터 같이 산행하던
형님에게 약초관련 사업을 권유하게 하고 그 형님이 그쪽으로 관심이 있어 창업에 도전하며 저와 상부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는데, 제가 채취하는 약초 전량은 그 형님을 통해 소진되고 있을 정도죠.
*귀촌, 돈을벌려는 욕심은 과욕이다. 귀촌의 의의는 육신과 정신을 바로 살리는 길이다...
왜곡된 귀촌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돈을 벌려면 귀촌하지 마세요.
절대 지켜야 합니다. 촌(村)이라함은 도시가 아닌 마을입니다. 귀촌... 마을로 되돌아간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더 풀이하자면 산으로 간다.. 즉 자연으로 되돌아 간다라는 말입니다.
자연에서 태어난 몸을 자연으로 되돌린다는 것인데, 자연은 태초이고 태초는 무이며 그 무는 곧 근본입니다.
근본의 속성을 지닌 무에서 유를 얻자고 욕심을 부리니 얼마나 무지한 짓입니까? 아무것도 아닌 무의 상태인 육신
덩어리를 지닌 인간이 자꾸 가지려 하니 이게 탈이 나게 됩니다.
요즘 종편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를 추종하여 쫓는 분들 많으신데, 종편 혹은 본방에서 방영되는 자연관련 방송은
최대 20%만 믿으면 됩니다. 종편방송을 보며 약초 어떻다 저떻다하고 산이 어떠고 저떠고 하는데... 보고 있자면
짜증나고 답답하고 때론 리모컨도 집어던지는 고수분들 많을 겁니다.
상업에 치중하다보니 기본을 무시하고 진실을 호도하게 되는데 이를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 또한
상업질이되고 유행이 되어 너도나도 망가지는 대열에 함류하게 됩니다.
돈을 벌자고 하는게 아니라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게 귀촌의 참입니다. 귀촌을 하는 이들을 보면 중년을 훌쩍
넘거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용자들인데 이들은 이미 어느정도 귀촌실패에 대해 방어할 준비가 된 이들이어서 돈을
벌자는 목적보다는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니 돈을 벌자가 아니라 새로운것을 추종하고자 하는 분들
이니 예외가 되겠습니다.
다시 되질문하여, 그럼 뭐를 하며 귀촌해서 먹고 살까?
이 질문에 세상 어떤 사람도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을겁니다. 이건 생존의 문제이고 객관적인 문제인데 이 문제를
나라는 입장에서 설명한다해도 절대 해답일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 고향이고, 지인들이많고 형제들고 있고 이미 오래전부터 산과 들 혹은 농촌의 현실에대해 잘 조화된 사람
이어서 유리한 부분이 많지만 대부분 나와 같은 입장이라도 치열함과 부단함, 뚝심이 결여된 상태라면 실패를 거듭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어느 통계에서 보았는데 귀촌하는 이들의 평균 정착 자금이 3억인가 되더군요. 그 기사를 보고 조금 놀랐는데, 왜 그런가
하고 보니 전혀 준비된 입장이 아닌 현실의 삶에서 탈피한 이들이 모아둔 자금을 들고 귀촌하는 이들의 직업군과 자금을
따져보니 이해가 가게되더군요.
정년퇴직후의 삶, 사업을 접고 노년의 삶을 택한 이들을 대부분한 중심으로 낸 평균치였는데 아마 그보다 자금이 더 많을
듯하다는 생각이...
<저의 경우 농사는 절대 안된다는 결론하에 미래투자개념으로 앞으로 가능성 있는 약용수에 관해 집중하고 잇습니다.>
지금 귀촌을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귀촌한다. 귀촌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기시는 분들은 어린아이가 어른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 해당합니다.
서두르면 망합니다. 조급하면 실패합니다. 물질로 해결하려하면 상처가 큽니다.
귀촌의 삶은 온리 육신의 댓가를 요구하는 삶입니다. 물론 귀촌하여 예술적 측면이나 그에 준하는 일을 하는 분들도
계시나 통상적으로 우리가 그리는 귀촌의 삶은 그러합니다.
저는 귀촌 첫해에 차를 한대 폐차하고 다음해에 또 한대를 폐차 후 여지껏 차가 없습니다. 이륜 오토바이 한대가 제
애마입니다.
줄일것은 줄이고 낭비할것은 버려라! 이걸 첫번째 귀촌 규칙에 넣지 못하면 낭비의 벽에 가로막혀 숨조차 쉬기 힘들어
집니다. 저희 동네 아침점심저녁으로 버스 세대 오갑니다.
시내까지 4킬로미터 걸어 4- 50여분정도.. 노인분들 운동삼아 두세번 오가는 거립니다. 귀촌해서 사는주제에 승용차가
무에 필요하고 번쩍거리는 구두가 무에 필요하며 가르마 잘 가른 머리털이 소용있나?
6천원하는 장화 일년 두켤레가 전부고 남이입다 안입는 거친 옷 얻어 일년 내내 입어도 다음해 멀쩡하고...
이웃간 정이 있으니 반찬거리 걱정없이 나눠먹고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하니 돈 크게 들 일 없어 건강에도 좋고...
트럭쓸일 있으면 인근 동네형님 차 빌려쓰고 기름채워드리고.. 동네서 내 사정 뻔히 아니 위선떨일 없고 허욕의 바다에
나를 가둘필요 없으니 이것이 곧 진생이라...
그렇지만 이렇게 되기까지가 너무 힘든것 또한 사실이니 대체 귀촌의 삶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겠죠.
여기서 예를 하나 들어봅니다.
올해나이 51세 노총각/ 전직 서울 대형우유대리점주/ 고향 경기 이천..
저와 십수년째 잘 알고 지내는 형입니다. 웬만큼 살만한 정도 되는데 이 형이 재작년 숫하게 오가던 이곳으로 귀촌을
결심하고 8월에 정착하게 되고, 그 이듬해 봄까지 민박을 얻어 사시다가 현재는 약간 오지에 해당하는 곳과 비슷한 곳에
땅을 사 집터를 닦아놓은 상태입니다.
600평의 땅을 사고 정리하고 아로니아 400주를 가식해놓은 상태인데, 이 형님이 처음 귀촌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절,
롤모델로 햇다고 합니다. 전 극구 말렸죠. 제가 귀촌해서 살아가는것이 신기했답니다.
돈도 별로 구애받지 않고 약초채약해서 잘도 파니 그렇게 쉽게 느껴졌고 직접 그 자신도 관여해서 쏠쏠하게 재미도 보니
만만하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생활수단이 된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저희 집사람 아직까지 가계부 빼놓지 않습니다. 거의 매일 씁니다. 일년에 두세개정도 갈아치우는 통장을 매년 연말에
정산을 해보면 입출금된 돈의 흐름을 알게 되는데 희한한것은 최소 수천만원이 입금된 돈이 허전하다는거죠.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수단이니 거기로 갔을것인데 너무 과하다는 생각으로 한해를 줄이다보니..
이것저것 다 쓰고 천만원가량이 남더군요. 육년차 귀촌인... 재작년 벌이가 좋아 처음으로 한 해 1천오백만원을 남겼는데
이정도면 많을까요? 적을까요?
시골살다보니 돈 들어가는 일이 가장 많은것이 남의 가정에 벌어지는 찬조금이더군요. 이게 만만치가 않아요.
동네서 벌이는 사업마다 죄다 발을 담그고 있다보니 사둔에 팔촌까지 가셔도 쫓아다녀야하고 듣보잡이신 분의 일에도
움직여야하더군요. 뭐 투자개념인데.. 이건 나중에 거의 찾아먹지 못하는거니 찬조금이 박해도 어쩔수 없는...
일정한 벌이가 없다보니 지출의 크기가 장난 아닌경우가 많아요. 원래 외상을 잘 안하는데 희한하게 시골오니 외상질이
잦아지네요. 마트나 철물자재점에 들르게되면 나도 모르게 오바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날 외상질 잔치를 하다보면
속이 쓰릴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각설하고.. 이 형님 이삼일에 한번 집에 들러 요즘 물을 길러다 드시는데, 사람이 호인입니다. 저와 어울리다보니 낮선
이곳에 들어와 비교적 빨리 적응한 케이스인데, 지금은 동네 사람들과 거의 매일 어울리며 술추렴합니다.
처음 2억정도를 가지고 들어와 1억넘게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직 집을 짓지는 않은 상태인데, 집을 짓게되는 올 봄부터는
저와 동네 분들이 통나무흙집을 지어주기로 했네요.
이년차.. 이형님 걱정 장난 아닙니다. 저처럼 생존의 수단으로 산에 다니는 사람은 거의 반 미치광이입니다.
겨울산행에 한댓잠을 재워보니 도저히 견디지 못하더군요. 대개 겨우살이 산행하면 4-50킬로 이상의 겨우살이 마대를
짊어지고 오육킬로는 걷는데 이걸 안해본 사람은 시도조차 힘이 들 정도로 어려운데, 저보다 덩치가 배는 큰 이형님은
요령을 몰라 기운으로 덤벼들다가 먼 겨우살이 산행은 죽어도 안합니다.
자신나름대로 약초에 대해 잘안다고 하는데.. 혼자 산행을 다녀오면 약초가방이 허전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산에가면 지천인 약초? 누가 그러던가요? 산에가면 약초가 지천이다? 참 어이없죠?
제가 사는 지역 인근 산을 이십년넘게 다녔는데도 아직 절반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초심자들은 너무 쉬워요.
이 형님의 경우가 그런데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면서도 되돌리지 못하고 세월만 죽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젠 많이도 기가죽고 겸손해져 현재는 많은 질문을 해오고 조언을 구하는데, 아직 저도 다 피지 못했는데 감히 누굴
가르칠까요.. 10년은 멀엇는데...
*귀촌이 쉽다? 쉽지만 정작 어려운 귀촌의 바른자세는 허욕을 허무러뜨리는 진실함...
근면성실함은 배를 굶기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서.. 귀촌의 어려움은 뻔한데 귀촌은 하고싶고 어찌 살면 될까...
진정 듣고 싶다면.... 돈 있으면돼요!!
대량재배 대량생산 직접가공 시장형성.... 이 시스템은 돈이 잇으면 가능합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오미자가 포화상태고 블루베리또한 그 조짐이 포화단계에 이르고 있고 예전 유행하던 과실수를
이젠 뽑아치우는 농가가 많죠? 기후도 예전과 다르게 이상징후가 보여 농가또한 대처해야 하는 입장이고요.
전 수년전 나름 생각이 있어 수백주의 아로니아를 심어 재배하고 있고 재작년부터 제법 과실을 따고 있어요. 미래에
대한 일부 투자인데, 이는 아주 미약한 대처방안이고 저도 요즘 생각과 고민이 깊어집니다.
내게 자본이 있다면 성공을 장담할 결과가 있는데 이또한 쉽지 않은 길이어서 가족 중 형제가 같이 하자고 해도 전
혼자 해보겠다고 아직 고집을 부리고 있고 아직, 덜 배고프고 덜 아파서인지 버티는 중입니다.
아, 여기서 잠깐 제 안사람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는데... 안사람은 저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라 동네에 제법 유명합니다.
농사철이 되면 서로 데려다 쓰지못해 안달이 날 정도여서 이맘쯤이며 밥사주고 술사주고 여행데리고 다니며 미리 찜(?)
해버리는게 이게 시골에선 굉장한 광경이고 경쟁이 치열합니다.
한해 농사 품앗이가 결정한다고 할 정도이니 아무리 농사가 대풍이라도 일손이 없으면 모두 허사이니 틀린말이 아닙니다.
집마다 품앗이값이 조금은 차이가 있으나 거의 굳어진 품앗이세가 보통 6-8만원정도 하는데...
아침 6부터 저녁 5-6시까지 꼬박 12시간 땡볕에서 일하고 저정도 임금받으면 박하다 하는데,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노동의 댓가로 보면 6만원 기준 12시간이면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수준일지라도 저것이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는데,
놀면 뭐하나.. 이걸해도 저걸해도 매한가지로 흐르는 시간인데...
이심정으로 뜨거운 땡볕아래 먼지와 벌레와 다투며 몇개월 일하다보면 이삼백만원쯤 돈이 모아지는데 저희 집사람은
틈틈히 모은돈으로 여행계를들어 농사철이 끝나는 철이면 전국여행을 다닙니다.
여자, 아내의 그 모진 노동의 댓가를 어찌 쓸까... 그렇게 못난 놈 아니다 싶어 고집을 부리며 남의 일하며 모은 돈이 그리
많을 줄 몰랐죠. 그러고도 남은돈 힘든 겨울나기에 보태니 이것이 사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적응을 못해 동네서 일명 왕따내지는 무시당하는 분들이 많아요. 남자나 여자나 노동을 멀리하고 질색하
며 힘겨워하고 부정하게되니 그분들의 삶이 참 재미없어 나중엔 외롭게까지 보여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몇가구 그런 집에
들러 동네일에 나서라고 종용하게하니 그런대로 적응하더군요.
사람보다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 몇이나 될까요.. 동물로 치자면 고양이 정도라는데...
시골에 오게되면 의외로 일자리가 많아요. 틈날때마다 토목공사일에도 나가고 동네 누군가의 집수리에도 동원되고
농삿일에 운전까지하고 낭비되는 시간을 최대한 쓰려고 한다면 한도없어요.
도시보다 낭비가 상대적으로 덜 들고 물가비싸다는 이유로 덜 사게되고.. 또한 크게 필요한것이 점점 줄어드니 나만
제대로 개념을 장착하고 있다면 사실 귀촌하여 정착하게되면 큰 어려움이 덜하다 보네요.
*귀촌, 생활이 나아졌다고 또다른 삶의 도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민끝에 내 능력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판단..
사람들이 저보고 사업확장(?)을 왜 안하느냐고 묻곤 합니다. 개인이 임산물등 판매 가공업에 필요한 조건은 어느정도
구비해 놓았는데 왜 그걸 써먹지 않는냐고 합니다.
전 압니다.1+1의 공식을요.. 하나를 가지거나 얻으면 그 상위에것을 욕심내게 됩니다. 이건 제가 어린나이부터
산전수전 겪은 23년간의 사회에서 얻은 경험입니다.
전 잘살려고 귀촌했지 화려하게 살려고 귀촌한게 아닙니다. 제가 많은 분들이 찾아오실때마다 그분들은 외제승용차에
한벌 수십수백만원짜리 옷을 걸치고 찾아 오십니다.
동네에서 손님많기로 소문이 나있을 정도인데 그런 차들과 그런 사람들의 왕래로 말미암아 한때는 오해도 많았고
지금도 그런 경험을 하곤 합니다. 제가 버린 삶이고 제가 더이상 동경하는 삶이 아니며 모습도 아닙니다.
그분들에겐 그저 호기심이고 자신들 삶에서 잠시 일탈을 원함에 저를 찾아오고 다녀가시는데, 그런 분들을 대할때마다
전 입맛이 씁니다.
어떤 분들은 산골의 거친밥에 풀때기 반찬을 내어드려도 기꺼워하시며 잘 드시는데 반해 어떤 분들은 성에 차지 않아
대면대면하다 맙니다. 이분법적이며 배타적인 세상이 인간의 세상인듯합니다.
사실 제가 귀촌하는데 한몫을 단단히 한데에는 세속의 삶에 지쳐 있기도 했습니다. 귀촌을 했으나 여전히 전 세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사를 살고 있으니 세속을 조금 멀리 하고 있다고해도 인간사에 귀속된 삶은 버릴 수 없겠죠.
*귀촌, 자연에서 살다보니 건강해지더라... 귀촌의 삶은 건강하게 잘사는데 의미가 큽니다.
우리 어릴적 환경은 지금보다 더 열악하고 후진적이었는데 세균성 전염병을 죄외하면 이렇다할 병치레는 거의 하지
않고 살았음을 떠올릴 겁니다.
우리가 현재 앓고 있는 질병 대부분은 현대병입니다. 인위적인 구조물속에 갇혀살다보니 스스로 질병을 양산해내고
있는 꼴이 되고 있지요.
우리 어릴적 집들 대대분은 산에서 나무를 해와 열을 가해 집을 덥히고 음식을 해먹는 단순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과정은 실은 놀라운 과학이 숨겨져 있고 이것이야말로 현대가 말하는 웰빙의 참의미가 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며 건사하다보니 쭈구려앉아 가랑이를 벌리게 되는데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열기에 남자고 여자고
사타구니를 저절로 소독하게 되는 효과를 보게 되는데 성인병에 거의 걸릴일이 없게 됩니다.
여름에 쑥불을 태워 모기, 잡벌레를 쫓고 몸에 두루 소독효과를내니 육체에서 기생하는 세균이 현저히 낮았던 잇점도
있죠. 한겨울엔 우물을 퍼다 뜨겁게 데워먹고 한여름엔 지표수로 흐르는 샘물을 떠다 먹으니 이게 바로 보약이 됩니다.
노동을 해야 먹고사는 시절이니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고 배가 고플만큼 노동을 해야하니 이것저것 아무거나 잘먹게
됩니다. 요즘 흰쌀밥은 해롭다라고 말합니다. 그 흰쌀밥을 여과없이 무작정 먹어대니 독이된다는 것인데, 과거 우리네는
이 흰쌀밥을 조화롭게 먹었습니다. 자연식인 된장 고추장 집간장 산과들에 가득한 푸성귀가 주 반찬이었고, 고기를 먹게
되더라도 들에 놓아 기르는 닭이며 소, 돼지는 귀한 반찬이었고 음식이었는데 현대에서 대량 생산해내는 먹거리와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죠. 방부제 항산제등 화약 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쌀밥의 경우도 지금처럼 농약을 마구
잡이로 쳐가며 재배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당시 우린 순수한 식품을 먹으며 살았던 셈입니다.
따라서 당시엔 당뇨병이라 불리던 소갈병이나 혈압이 낮거나 높은 질병에 쉬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 편하게 살았지만 위장병에 고생하던 내 사소한 병은 어느새 절로 나아졌고 아내의 불면증 고혈압 변비가
말끔하게 고쳐졌고 어릴적부터 아비의 고집대로 키운 아이들이 잔병키레 안하며 잘도 자라는데에는 내가 혹은
우리가 자연으로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갖게된데 큰 영향이 있습니다.
귀촌하며 새로운 정착을 시작하는 이들이 보기좋은 집을 짓게 되는데 전 그런 그들을 볼때마다 뜨악해하며 될 수
있으면 만류합니다.
도시에서 시멘트더미와 화학재료에 지친 몸뚱이였는데 왜 시골로 와서는 또 그런 감옥속에 갇혀 살려 하는지...
통나무집? 요즘 통나무집이라 말하며 새로짓는 집들을 보면 모두 화학약물에 중독된 이른바, 독소재료들에 불과
합니다. 썩지말고 벌레끼지 말라고 모두 방부처리, 화학약품처리해버리며 모양새가 보기좋게 꾸며 현대화 시켰는데
이런 모양새가 좋은 집 안에 며칠만 살아보면 두통이 생기고 설잠을 자게되고 공기순환이 안되고 잔병치레에 고생을
하게 됩니다.
실지로 그렇습니다. 귀촌귀농.. 잘살아보겠다고 건강하게 살아보겠다고 선택한 길에서 우린 또 악순환의 반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귀촌을 순전히 돈으로 잣대하게되니 이는 매우 멍청하고 무지한 행위라 안 할 수가 없지요.
최소한의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되도록 자연상태 그대로가 좋습니다. 우리 어릴적 시절처럼 황토벽에 산에 지천인
나무로 뼈대를 세운 그런 집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생활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귀촌, 가장중요한것은 사람입니다. 귀촌정착에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역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정착에 성공했습니다. 사람이 곧 재산이 됩니다.
돌아가서... 귀촌하면 조하가 필요하다고 위에 설명을 하였는데 더 구체적인 경험담이 필요할듯하고 이론적인 부분또한
필요할듯 싶군요.
저희 지역엔 모두 총 4개의 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 이년째 2리 반장질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2리엔 모두 아홉가구가 있는데 지역민이라 확정할 수 있는 가구는 총 7가구입니다. 이 중 원주민은 4가구이고
나머지는 외지에서 흘러들어와 정착한 분들이며 또 나머지 2가구는 땅구입 후 집지어놓고 휴가철 휴양지 목적으로 사용
하고 있죠.
마을 전체로 따져도 전 가장 젊습니다. 즉 막내입니다. 당연히 마을에 일이 생기면 가장먼저 뛰어다녀야 하고 눈치봐야
하는 입장인데, 처음엔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이장님 노인회장님 이하 모든 분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젊은 몸뚱아리를
죽어라 놀리며 솔선수범하고 있습니다.
뭔 모임이 그리많고 잔치가 많은지... 열흘멀다하고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들을 해먹는데 이게 손이 보통 많이 가는게
아니죠. 제 집사람도 막내뻘이고 부녀회에 든 입장이라 당연 부름이 심합니다.
지금이야 형님 어르신, 언니 이모하고 지내지만 처음엔 굳은 얼굴로 까라면 까라는식으로 억지 시늉으로 그들을 대하곤
했는데 그게 진심일리 없겠죠. 힘들었고 피곤했고 거리감도 있었는데, 그게 내안의 벽이더군요.
'이번에 저기 이사온 젊은 친굽니다' '이사람 부친이고 큰아버지고 다 이쪽이 본이여' '어디에 살았다고?'
'어머니가**에 사셨다고?' '자네 아무개 아들 아니여?'
대충 아시는 분도 계시고 관심가져주는 분도 계셨고... 점점 나아지더군요. 약초에 능통하다 보니 채약한 약초를 들고
아픈 분들 찾아다니며 직접 약초달여 드시라하니 당뇨수치가 떨어졌다. 혈압이 좋아졌다 변비가... 관절아픈것이...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다보니 이게 곧 재산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대부분 숙박업을 하고 외지에서 흘러들어와 정착하신 분들이며, 저마다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위치에 서 계시던 분들이다
보니 인맥이 크고작고 다양했는데 그들에게 있어 난 또다른 재미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가족들이나 친지 친구분.. 지인들이 불편하거나 크고작은 질병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아픈데
필요한 약초를 구입해가는 현상이 벌어지다보니 생활에 큰 보탬이 되고 이게 곧 재산이 되더군요.
한번은 폐질환으로 식수년을 고생하신 50대분이 계셨는데 소개로 만나고보니 곧 죽을듯 안색이 파리하고 숨을 거칠게
내쉬며 휴대용인공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마냥 약초를 고집할게 아니라 살려면 도시를 버려라 설득하고, 두어달 후 지역으로 내려온 그분을 살리려 무작정 산으로
들로 하천으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엉망이었죠.
빈약하고 허접해진 몸뚱아리를 쓰려니 제대로 될 리 만무한데 처음 일주일은 죽어라 하더니 다음 일주일은 누워 꼼짝안하
려 하는 쇠고집이더군요.
지나치게 갑자기 소진해버린 체력때문에 병원에 가려 준비하는 분을 무작정 주저앉히고 거의 질질 끌고 다니다시피
했습니다.
결론요? 지금 그 분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착하여 블루베리와 오미자농사 하고 계십니다.
173센티에 체중 51킬로였던 분이 지금은 80킬로대의 거구가 되어 있습니다. 왜 저렇게 변했을까요?
그게 귀촌하여 제대로 산 사람들의 저력입니다.
요는 사람을 제대로 사귀게 되면 득이 되고 재산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느 티비에서 보니 여러명에서 귀농하여 멋들어진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글쎄요...
*귀촌, 완벽한것은 없다. 귀촌의 긍극은 부지런함이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네요.. 거의 결말에 다가가는데요...
위에서 잠시 언급도 했지만, 귀촌귀농에서의 가장 큰 무기는 뭘까? 라고 묻는다면 건강한 몸뚱아리입니다.
이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수단을 부리면 반은 성공합니다.
전 아직도 5시간이상을 안잡니다. 하루중 빠르면 8시에 잠듭니다. 그러면 다음날 1-2시에 깹니다. 그시간에
뭘 하죠? 물으시면 대답할게 너무 많습니다.
한여름엔 이른아침 4시면 날이 뿌옇게 밝기 시작해 5시면 완전 날이 밝습니다. 대개 시골에서 아침 6시면 전쟁이
터집니다. 도로마다 트럭과 트랙터가 내달리고 집집마다 일터로 나가기 위해 소란스럽습니다.
한겨울에 비교적 한산하다못해 거의 정막에 가까운데 이 부분이 유일하게 귀농귀촌한 분들의 답답증을 유발시키는
원인을 제공하죠. 그래도 할일은 많습니다. 그 남아나는 시간동안 저마다 생각이라는 깊은 노동을 거듭하게 되는데
지난 한해를 살았던 것을 되짚고 또 되짚으며 다음 한해를 어찌 살아야 하는지 무려 석달을 되뇌이게 됩니다.
낮이되면 화목용 땔감을 하러 산을 누비게되고 동네마실을 다니며 일부러 일을 벌립니다.
또는 외지로 나가 서너달동안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쉬울수도 있고 어려울수도 있는데 이는 선택과 기회의 문제가
되겠죠.
시골 한동네 살면 어느집 밥숫가락이 어찌 생겼고 몇벌인지 죄다 꾀게 되는데 좁은 동네에 살며 허물을 무너뜨리고
왕래하다보니 생긴 현상입니다. 그래서 허욕과 허물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게 됩니다.
누구네집 농사 잘 되었더라~ 그사람 참 대단해 비가 이리 오는데도 밭에 나가 있어~ 눈코뜰새도 없어 속옷도 목 갈아
입어...
경쟁이 벌어집니다. 저사람은 저렇게 대단히 일을 하는데 나는... 묘한 경쟁심리가 생기고 때론 게으른 내가 된듯하여
육체를 가열차게 체찍질하게 됩니다.
움직인만큼 보상이 되돌아온다.. 이는 논리입니다. 한낮 해가 중천인데 방구석을 붙잡고 뒹구는 사람치고 시골에서
인정받는 이 없듯이.. 날이 새기 무섭게 동네를 오가며 분주하게 사는 사람은 어른이고 젊은이고 할 것 없이 존중해
주는곳이 시골입니다.
위에서 언근한, 근면성실함은 배를 굶기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세계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시골에서의 삶은 더 치열합니다. 곡식은 재배하는 자의 정성으로
키워진다라고 합니다. 부지런한 자의 농토는 풍성하고 게으른자의 농토는 빈약함이 그 증거가 됩니다.
바쁜 농사철에 각 가정을 방문하게 되면 속되게말해 돼지우리가 따로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어지러운데 날이 새고
날이 저물도록 죽어라 일만하다보니 가정을 채 돌보기 힘들어지게 되니 모든 가정이 죄다 같은 현상입니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고개를 가로젖지 않는것은 풍토탓이고 그 가정의 현실을 잘 반영해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시골생활하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몇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쁜 농사철에 손님찾아드는 일입니다.
'바빠 죽겠는데.. 왜 온다는거야'
묘하게도 도시와 시골의 삶의 패턴은 정반대라 바쁜철에 도시의 삶은 한가함을 추종하게 되니 산으로 들로 시골로 가게
되고 거기에 정착하여 사는 이들을 찾게 되는데 애석하게도 그럴시기엔 시골사람들은 바빠서 혼을 두개 빼놓고 일을한다
할 정도로 시간이 부족하게 됩니다. 당연히 반가울리 없죠.
우리 어머니 별병이 땡벌이었는데 그 지독한 부지런함에 동네분들이 붙혀준 별명입니다.
7칠순이 넘은 노구로 삼년전까지 지역의 밭 3만여평을 얻어 콩농사를 이십년이 넘도록 지으셨으니 얼마나 독하셨을까요?
실지로 지역에서 알만한 이들에겐 콩박사로 불렸습니다. 같은 콩농사를 짓게되더라고 어머니의 절반도 못한 농가가 수두룩
했는데 농사철 콩농사를 선택한 이들이 어머니를 찾아 조언을 구할정도였죠.
그 연약한 노구로 어머니가 콩농사를 고집그럽게 연명하셨던것은 온전히 부지런함이란 단하나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우리 형제 8남매중 어머니의 부지런함을 따라간 이가 저하나
밖에 없음은 같은 피를 가지고 태어나도 부지런함의 본성을 지니고 난자만이 가능한 일이지 싶습니다.
왜 부지런하면 편리한가. 나의 직접적인 삶속에 그 해답이 있는데 내 스스로의 일도 그렇거니와 타인의 시선으로 볼때에도
그자는 부지런하니 굶어죽지 아니할 것이며 필요한 순간 그를 데려다 쓰고 싶다는 관념이 자리하게 되니 이는 또다른
재산이 되는 셈이죠.
위에서 언급한것은 어쩌면 제 인생의 전반에 걸친 경험일수 있고 귀촌후의 또다른 깨들음일 수 있습니다.
언급된 모든 것은 제 자신이 겪은바이며 주관적 객관적인 부분에서 다뤄진 내용입니다.
제가 귀촌한 모습을 보고 이르길...
부럽다...
별거없다...
실망이다...
이렇게 평가가 갈리는데.. 첫번째 좋고 부럽다 한 이들은 나와 같은 동일선상에서 꿈을 꾸었지만 실행을 못한 이들의
추상적 바람에서 평가된 부분인데 이런 분들은 대게 순수한 분들입니다.
자신도 언젠가는 나와같은 삶을 꿈꾸고 있는데 나는 실행중이니 그들 입장에서 부러울밖에 없겠죠.
별거없다 하는 두번째 부분에서는, 뭔가 색다른.. 그러니까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이론만 가지고 귀촌을 대입한 분들
입니다. 산속에 멋들어진 집.. 싱그러운 자연속에서의 풍족한 생활....
그게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그건 살아생전 스티브잡스도 못했고 세계부호 1위인 빌게이츠도 불가능한 삶입니다.
세계최강국 지도자인 오바마는 물론 사회주의의 절대권력자 블라디미르부틴조차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마, 침팬치나 오랑우탄의 정글속 삶에 인간의 영혼과 지적 능력이 잇다면 가능할까?
왜 그럴까요? 귀촌을 전제로 할때 이미 세속의 삶에 찌들어 보았고 자연의 삶을 반성해 보지 않은 자가 감히 저런
순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십니까? 삼일 즐거움도 고통이 된다하죠?
하루 이틀은 즐겁겠죠. 결국 그 화려한 삶도 정체되어 지겨워지고 평범해져 버릴테니까요...
제가 귀촌해서 사는모습을 어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나 어떤 지인들이 평가하길 그러더군요.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데?' '티비보니까 멋진 집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던데...'
훗... 금으로된 쟁기는 사용못하는 법이고 철로된 쟁기가 재산이 되는 이치인데 그걸 깨우치지 못한 이들은 귀촌의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실망이다...세번째!
언놈이 어느날 귀촌해 잘 살고 있는 내게 오더니 내 삶의 터전을 둘러보곤 술자리에서 그리 말하더군요.
거친 산골생활이 어눌하고 거칠고 때론 지저분하고 정돈안되어 있으니 그가 생각하는 내 삶과는 전혀 달랐던
모양이더군요.
뭐가 실망이었을까? 이는 두번째 부분과 맞닿아 있는 것인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미안하게도 전 웃음보가 터져
한참을 대소했더랬습니다.
송파구의 40평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탄탄한 기업의 과장이며 연봉 기천만원대에 수입산 승용차를 굴리며 사는 친구인데
달랑 오토바이 한대에 스믈댓평짜리 허름한집을 수리해서 살고 있는 나와 대비되겠지요.
거칠어진 손을 맞잡아 악수할때 느낀 그의 감정이 어떠했고 날벌레가 수두룩하게 날아다니고 개며 고양이가 서너마리
나 되고 흙바닥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환경이 싫어셔였을까요?
그 친구의 자식이 딸이 둘이었는데 젖먹이때부터 아토피가 심해 제가 고쳐주었는데 그런 사소함의 소중함은 전혀
고려하지않고 번듯한 별장같은 집에 넓직한 잔디밭같은 마당을 떠올렸나 봅니다.
통장잔고가 한 천만원되나 하니... 불안해서 어찌 사느냐고 반문합니다. 대체 뭐가 불안할까요?
털썩 죽을병이라도 걸렸는데 돈이없어 그걸 치료하지 못할까 불안할까요? 남보다 못한 재물이 부끄러워 불안할까요?
허리어름으로 길게 자라 멋대로 바람에 나붓기는 날 보고 도인같더랍니다. 과거의 내모습이 사라져 어색하고 바보가
되버린듯했다더군요.
피부는 더 팽팽해지고 눈빛은 더 밝아졌고 굳어버린 입가의 근육은 멋대로 너울거리며 춤을 추게 되었는데 대체 그친구는
뭐가 실망이었는지 전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친구는 삼일을 머물다 갔는데, 의외로 그 아내되는 이와 딸아이 둘은 너무 좋아하더군요.
말하자면 이 친구는 성공가도의 삶을 죽어라 달리다보니 인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도시에서의 뻔한 삶에
억눌려 있던 현직 가정주부와 밤 열시가 넘도록 학원에 지친 아이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건 순전히 관점과 생활방식의 차이입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51세의 형님... 이 형님 일주일에 한두번은 서울행을 합니다.
전 디스하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귀촌하길 과거의 삶을 70%이상 버리지 못하고 귀촌한다면 분명 파탄이 날 것이고
새길을 가는데 익숙해지지 않고 과거로의 길을 계속 쫓다보면 어느덧 귀촌이 아니라 피촌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죠.
그 형이 그러고 있으니까요.. 과거를 버리라는게 아닙니다. 인연을 단절하라는게 아닙니다.
빈번한 과거로의 삶을 지속적으로 가까이하다보면 결국 어느 한쪽의 균형추는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럴경우 즐겁고 마냥 신나고 허전하지 않은쪽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거의 본능적인겁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서울 지인들을 만나 밤새 즐겁게 지내다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 생활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되다보니 정작 자신의 터전이 어디인지 분간을 못하게 되고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을 점점 잃어가는 학습을 하게
되고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게 곧 혼란을 초래하게 되며 최초 귀촌당시의 초심이 무너지게되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열명중 다수는
후회하게 되며 정체성마저 상실하게 되는 아찔한 현실을 대면하게 됩니다.
귀촌을 대개 지금 생활을 포기후의 새로운 생활이라 말하는 분들이 많으신대, 그게 아닙니다.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귀소행위인데 그것을 억지로 포장하려다 보니 저런 변명이 생기는 겁니다.
잃어버리고 버려졌던 내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고 태초에 그랬던 바른 길을 가게 됨을 아셔야 합니다.
이 부분을 깊게 고민하시고 성찰하시게 되었다면 당신은 귀촌하셔도 좋을 준비가 되신 겁니다.
자연속에서의 화려함 안빈낙도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십니까? 우리는 달랑 몸뚱이 하나 가지고 태어나 갈때도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가는 것을?
도시삶에서 귀촌의 삶전환은 이와 같은 겁니다. 막연하게 귀촌을 꿈꾸고 계신 여러분은 지금 다시 생각을 정리하셔야
합니다.
전 제 주민등록증을 본지 오래되었고 지갑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도시의 그 전반적인 모든것에 커다란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 처갓집을 일년 두어번 가게되면 전 그 순간부터 두려움에 떨게 되고 갑갑증에 아내를
보채게 되는데 이것도 옳은 현상은 아니지만 마치 자연에 살던 동물이 우리에 갖히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니 전
천상 이제 흙에 살아야 하지 싶습니다.
막연하게 귀촌을 꿈꾸고 산골생활을 동경하는 분들, 준비가 되셨다면 최소 삼년은 예행연습을 하셔야하며 지금 당신의
성격을 개조해야 합니다. 나를 버리는 훈련을 하시고 입을 무겁게 사용함을 미덕으로 알며 주위 사람이 떠드는 허접한
말이라도 두귀로 경청할줄 아는 저자세를 갖추셔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내안에 가득찬 물질의 그릇을 비우셔야합니다. 인간의 처음 삶이 그러했듯이 온전한 육신을 부지런히
놀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자연을 나와 대입시켜 올바르게 직관적으로 관조하는 비세속적인 삶이 바로 자연으로 회귀하는 자들의 바람입니다.
귀촌은 꿈이 아니고 현실가능한 일이지만 그 현실을 내것으로 만드는 이들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이 현재
지닌 능력을 가지고 귀촌을 하시려 한다면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치셔야 할겁니다.
끝으로 내게 아들 둘 딸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다음생에서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습니다.
전 부자입니다. 털털거리는 중고 오토바이에 아내를 태우고 시골길을 내달리고 산이며 강으로 나가 아내와 그 자연을
공유할 수 있고 점점 커가는 자식들이 내게 부던히도 채찍질을 하게 하고 나태한 삶을 꾸짖게 합니다.
내겐 그들이 스승이고 곧 자산입니다. 난 세계인도 부러워 할만한 너른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발 1천미터가 넘는 고지대 정원부터 소사한 한켠의 낮은 정원까지...
내겐 남들이 감히 꿈도 못꿀 엄청난 보물이 있습니다. 작년에 보아두고 남이 볼까 누가 가져갈까 정성을 들여 나만이
몰래 감쳐두고 즐기는 보물들은 온산에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누가 감히 나와같은 보물을 가지고 잇을까...
나는 희망을 모릅니다. 희망이란 미래지향적인 거라 전 오늘을 충실하게 살며 거기에 만족하려 최선을 다하려 나름의
노력을 합니다. 어제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내일이라는 희망은 꿈꾸지 않습니다. 오지 않은 내일을 먼저 그리기 보다는
곧 내가 지금 살고 잇는 현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여 전 희망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한번도 내가 선택한 귀촌에서 후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전 행복하다
여깁니다.
저는 남들보다 부족한 생활이지만 그들보다 여유롭습니다. 작은것에 만족하는 것 때문이 아니고 그 작은것 때문에
난 큰것을 바라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단단하니 여유로울 밖에요...
-글이 거칩니다. 쓰는 중간 손님이 찾아와 나갔다 오고 고양이 강아지들 밥을 주고 부러진 다리로 절룩거리며 집을
돌아보다 들어와 털썩 주저앉아 마구 써대다보니.. 그런데 반듯하게 정리하고 싶지 않네요..
정리하다보면 이게 구라가 끼게되고 미사여구를 동원하게 될 게 뻔해서 거칠고 떨어지는 필력으로 종결하렵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글이지 싶어요. 너무 객관적인쪽에 몰입된듯한듯도 싶구요.
뭐, 크게 개의치 않으렵니다. 열분 중 한분이 만족하시려나요?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꾸벅~
2016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가진것 없는 부자 홀로산애가!
첫댓글 귀촌을 꿈꾸는 사람이라 단숨에 읽어내려갔네요
진솔하게 써내려간 글에서 시골생활이 리얼하게 느껴지며 한편 부럽기도 하고 한편 엄두도 안나고 그런 양면적인 마음이 교차하네요
어쨌거나 시골생활은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인데 언제나 가능할지... 온산에 지천으로 깔린 보물들 잘 보살펴서 좋게 쓰여지길 기원합니다~~~
어려운 측면으로 접근하면 더더욱 어려습니다. 귀촌은 제생각인데 젊을수록 빨리 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년에 돈모아 귀촌하면 기력이 쇄하여 원하는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없는맹점이있어요. 고민해 보셔요~ㅎ
좋은글 감사해요 ^^*따듯한 말씀 감사햇습니다
876천사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귀촌에 관한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향후 귀촌 귀농인이 점차적으로 늘어나 발품팔이와 자농(과수,축산 ,약재 ,농사 ,임업 등등) 생산자가 많아 기학수적으로 늘어나 생산 과잉공급으로 인하여 수익성이 떨어져 투자와 노동력에 비해 매리트가 없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의구심을 떨쳐버릴수 없고 완전 귀농보다 세컨하우스처럼 귀농 생활이 좋을듯 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귀촌은 안됩니다. 위험하죠. 촌으로 회귀한다하여 모든이들이 귀촌인이 되는것이 아닙니다. 귀촌시 똑같은 벌이수단으로 어떤것을 재배 생산한다해도 그것은 그나름대로의 경쟁력에 있습니다.
같은 오미자를 재배하여 수확 후 시장에 내어 놓아도 노력여하에 따라 남들보다 뛰어난 상품성을 갖출수 잇다는 생각이 드네요.세컨하우스같은 대체적 발상전환도 좋지만.. 제경우엔 조금 꺼려지는 바가 있습니다.
일단 여유롭지 못하면 두 살림을 감당해야 하는 조건이 생기므로 힘에 겨울듯 하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부평에서~~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이천형님 까지 일고 다시
읽어야 겟어여~~많은공감이고
점심 먹고 다시 ㅋㅋㅋ
어느동네나 다 하나씩은 잇는 그런 사람
본토박이 사람보다 들어온 돌이 더 텃세아닌텃세
이느므 산골짝서도 본인은 사모소리 듣고살아서 아줌소리
거슬리는 웃기지여 ㅋㅋㅋ
갇은 조건의 삶을 살아서도 마음의 정서가 엇갈립니다
그래도 그동네는 품값이~
울동네는 갇은조건에 5만원~~
그래도 산골짝서 현금을 만질수 잇는 유일한 농사철 아니면 ㅋㅋ
귀촌:::은 도시나 산골짝이나 현실이지여
전 현금은 공과금 외에 교통비 병원비
대외비(경조사)먹는것이야 조금씩 심어 자급자족
편하게 나하고싶은거 다하고 살려면
귀촌은 다시생각홰야 겟지여~~
@별마중 사람의 심리가 우위에 잇으려하는것이 있나봐요. 무에 그리 잘난게 맞고 가진게 많은지 경쟁의식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듭니다. 벗겨놓으면 매한가지 몸땡이 가지고선... ㅎ
많은생각 을 하게되는 글이네요
작은 농가나 지상권주택등 우선일이년
살아보시고 결정하는것이 좋겠.죠
무작정전원 생활에환상 만 가지면 금방
실망 하고 실패 하더군요 화이팅 입니다
네, 천천히 느리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선택을 해야
상처가 덜합니다. 환상은 금물이고요~ 건강하세요^^
좋은 말씀입니다
기본 생활이 되어야 하고 돈 벌려는 욕심은 아니라는데 공감합니다
먼저 실천하신 선배님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귀농 귀촌해도 늦지 않지요
자연과 사람과의 어울림. 몸의 건강 마음의평화가 먼저이구요^^
말은 정작 그리 하지만 정말 힘들더군요. 어떨땐 불안함이 엄습하기도 하고
이렇게 살다 더 힘들어지면 그때는 어찌하나라는 생각도 했는데 잘 극복했죠.
산들나그네님은 이미 자연인이시죠?ㅎㅎ
@홀로산애(임현주) 아직 아니예요
저의 글들을 보시면 아실듯
홀로산애님처럼 그립고 부러운.
다시 좋은글 감사드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려나 모르겠어요.
그저 참고만 하세여.. 건강하시구요^^
고맙습니다 귀한 글 ..
꾸벅~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귀촌선배로써 좋은글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또다른 거처를 옮긴다는것 많이 배우고 갑니다.
작으나마 도움이 되엇으면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배우고 노력해야 할듯하네요.
건강하세요~ㅎㅎ
소중한 경험을 내주어 감사합니다~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소중한 조언에 감사합니다.
홍천이나 인제쪽에 나홀로 산행을 많이 가는 편입니다.
갈때마다 뚝뚝 떨어져있는 농촌가옥들을 보연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아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촌. 더 심사숙고 해야하는 일임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저녁상 물리고 댓글뵈니 돗보기너머 눈이침침 마음을 고처 다잡고 한해를 시작해야 겟네요 장문글 열정으로 올려주심 감사요 ♩♪
잘보고갑니다
너무 길어서 듬성듬성읽었읍니다
그래도 접수는 다 했읍니다
귀농 귀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되겠읍니다
참 좋은글 2번이나 읽어보았네요
너무감사드리고 귀촌다시한번 생각하게드네요 저도정년마치고 귀촌생각중인게 ㅠㅠㅠ이글읽고나니 생각이 확~~~ 아무것도모르고 그냥나이먹어
편안여생보낼려고 귀촌할려고했는데
직장생활37년마치고 ㅠㅠ생각많이해야겠네요 하옇튼 홀로산애 (잉현주님) 글잘읽었습니다 감사하고요 항상건강하시고 하시는일 잘되시길 바랄께요
말씀하신것처럼 미사어구는 없지만 투박함 속에 진실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개개인의 잣대로 홀로산애님의 삶을 어찌 평가 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움도 많으셨을텐데도 잘 극복하시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지금은 접었지만 5년을 제 의지와 상관없이 펜션을 운영하며 시골 생활을 힘들게 했었는데 채 1년도 안되었는데 벌써 가끔은 그립기도 한 요즘입니다 내내 행복하세요~
2-3년후 인제로 귀촌 하려고 해요..토지 매입부터 해 놓고 애 아빠는 하루 종일 컴에 붙어 귀촌 열공 중인데!
저는 사실 무척 겁나거든요.. 사귐성도 없고 건강도 별로여서요...
홀로산애님의 글이 제게 닥치게 될 현실을 깨우쳐 주네요.... 절실하게요 ~~ 좋은 글 감사해요 꾸벅!!!
정말 대단 하십니다
젊은 나이에 어려운 결단으로 실천을 옴기고 화재에 가산을 잿더미로 변해 있었지만 현실을 안주 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결단력 대단 하십니다
존경 합니다
저는 당장 혼천에 임야를 마련 해 둔 상태이며 들어가서 곤드레 심고 약초 재배 할려고 준비는 하고어 있지만 집짓고 산에서 일을 할려고 생각으로 하나하나 준비를 하고 있읍니다
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히 준비하면서 2019년~21년도에 완전 귀촌을 할려고 준비를 하고 있읍니다
뜨거운 용기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면서 존경의 마음을 표 합니다
현실에 안주 하지 않코 준바하며 주민들과의 마찰 없이 생활하는 모습 눈에 선 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가장 궁금한점,,,,, 아니들 교육은 어찌 하시는지요?
도움이 많이되는글 잘읽고 갑니다
시골로 가고싶지만 망설어지는 사람도많지요
현실에와닿는 내용이여서 많은도움이됩니다
감사합니다
글 일다가 중간까지만.....시간날때 다시 볼께요.
생생한 경험담을 진솔하게
올려주셔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도시에 살다보면 막연하게 귀촌을
꿈꾸지만 이제까지의 삶들을 다
내려 놓고 낮설고 물설은곳에서의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할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에 선뜻 실행 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듯합니다
비쁜 시간에 틈을 내시어
귀향을 꿈꾸는 분들에게 참
좋은 글입니다
긴글 고맙습니다^^
정성스럽게 올리신 글 잘 보았습니다
조만간 시골에 가서 살려고 인터넷 뒤집고 다니다 보니 싸고 괜찬은 집이 있어서
내일 보려 갈려고 했는데
잠시 생각을 한번 더 하게 하는군요
시골 생활이 모두가 다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힘든가요?
설마하는 의구심도가고 겁도 나고 그렇네요
시골에 살아보세요 "참"좋습니다.
좋은공기 마을사람 ~넘 넘 좋아요
저희 부부 부산태생인데 전라도 해남 귀촌 했어요
아무 연고도 없는 곳 남편이 따뜻한 해남 가자고 해
땅끝마을 왔어요
9개월 되었는데 이웃주민분들 덕분에 매일매일 즐겁습니다.
된장 다 만들어주지요 김치 담아주지요 채소 갖다줘 풍족해 즐거움에 노래불러요
오늘도 마을회관에서 점심먹자고 불러 놀다왔어요
가족같고 천사같은 주민분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해남으로 귀촌하세요 ^^
해남쪽도 생각한답니다.
참으로 좋은곳에 살고계신 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귀촌을 생각한지 이제 3개월정도 ~~~ 인터넷공간에 들어와 싼 임야를 찾곤하였답니다.
지금 살고있는 집을 팔아 그돈으로 ~ 아직 언제일지는 가늠할수도 없지만 마음만 굳혀가네요 ~~~~ ㅎ
주변에선 만류하지만 ~ 그래도 잘 선택하였고 사람들을 더 뫃아 여럿이 같이가면 도 좋지 않겠는냐 ~ 이렇게 말하는 선배도 있답니다.
58년 개띠 ~ 얼마있으면 한갑자살게되는데 ~ 너무 늦게 결심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도 더 늦기전에 생각하는것보다는 빠르다는것이 제 생각입니다.
좋은경험이 담긴 진솔한 내용 ~ 제생각을 보다 넓고 깊게 해주네요 ~ 감사합니다.
58년 개띠 저랑 같군요 ^^
귀농은 소득을 올려그 돈으로 살려고 하지만
귀촌은 말 그대로 촌에서 좋은공기 마시며 본인건강하게 사는 것 입니다.
조그만 텃밭 20평정도 먹고 남습니다.상추,파,...
저는 그것도 많아 나무를 심으려 합니다만,ㅎ
처음부터 여럿이 들어오는것 은 스트레스를 만들수있어 피 하시는것 좋습니다.
주민들하고 어울리고 주민들 편에서 대화하면 연세와 관계없이 친구가 됩니다.
경제적인 것 은 해결이 된다면 (연금등,....)귀촌 하세요
해남은 땅좋고 가격이 타지역보다 저렴합니다.^^이웃에서 고사리,조개 캐 주더군요.
함께 고사리,두릅 캐러가자해 기분 매우 좋습니다.
정성드려 쓰신 사실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꿈이 아닌 현실을 말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