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 신앙
(마 16:24-28)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자기 부인과 십자가' 이 두 가지는 제자가 되려하는 이들의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사랑하며 편안한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이런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표현되어지는 기준과 가치를 역전시키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변해야 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서 높아지고 부유해지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이 세대의 풍조를 본 받지 말고, 더 중요한 기준과 가치인 '생명'을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얻고자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따라가던 우리의 발걸음을 역전시켜 '하늘'의 것을 얻고자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완전히 변화되어야 하는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신앙, 임마누엘 신앙, 십자가 신앙, 부활신앙을 신앙의 4기둥이라고 하는데 이 네 기둥을 말씀이라는 시멘트로 곤고히 세운다음 자신을 중심에 놓고,이 상태를 세상에서 잘 유지할려고 하는 신자의 도리, 즉 이것을 제자도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통전적이어야 합니다. 숲과 나무,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 붙들고 나무가 엄청 크니까 이것을 숲이라고 말하면 시야가 좁은 삶이지요? 또 울창한 숲만 보고 그 안에 가지각색의 나무를 모른다면 이것또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4 기둥의 신앙은 유기적입니다. 서로 깊은 연관이 되어져 있습니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생물체와 같이 조직이나 구성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떼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쓴 책이 있었습니다. “제자입니까?” 카일 아이들먼 목사의 책, “팬인가? 제자인가?”도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포츠나 연예계의 스타들은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닙니다. 팬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옷에도 스타의 얼굴이 있고, 온 몸에 스타를 기념하는 장식품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 사람의 싸인하나 받을려고 그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나 호텔입구에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수가 싸인한 옷을 입거나 자동차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스티커를 붙이고 다닙니다. 집에는 스타의 브로마이드(대형 사진)도 있고 달마다 그분의 사진으로 된 달력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이라는 축구팀이 와서 온 나라가 열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선수가 땀 흘리고 경기할 때, 본인은 달리거나 경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며 노래하거나 운동장에 뛰는 것을 보고 있는 구경꾼입니다. 팬은 선수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잘 압니다. 그의 생일도 알고. 좋아하는 음식도 압니다. 그가 잘하면 함성을 지르며 응원합니다. 그러나 선수와 함께 땀 흘리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예수님을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새벽부터 기도하고, 철야하며, 때로는 금식도 합니다. 봉사하며 헌금하며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눈물도 흘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일상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고. 방탄소년단이나 손흥민 선수, 헤리케인 같은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을 대하듯이 그저 열광할 뿐입니다,
팬은 마음이 바뀔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선수가 나타나면 응원하는 선수가 바뀔수 있습니다, 좋아하던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간이라도 다 빼줄 것같이 응원하던 팀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을 믿고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고 조금 힘든 일이 생기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런 예수를 안 믿겠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하나님을 왜 믿느냐 차라리 보이는 우상이 더 좋게 보여 볼교나 천주교로 옮깁니다. 마치 시내산에 올라가 40일간 생명을 걸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있는 모세가 소식이 없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알 수 없으니 우리가 애굽에서 믿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해 신이라고 하면서 그 앞에서 춤추며 뛰어놀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리들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팬인가? 아니면 제자인가?”
팬처럼 신앙을 한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신앙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자기를 내세우길 좋아하고 자기를 은근히 높이고자 언행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기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 앞에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내 인생의 주인이 온전하게 예수님이 됩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기도 하고, 예수님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적인 모임에서는 주님이 간곳이 없고 자기만 드러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누구보다 신앙인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온전하게 성령의 사람이 될 때만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500여 형제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사람들이 500명 정도였습니다. 그 예수님이 당부하신 것은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 500명이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120 명뿐입니다. 놀랍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았고,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다시사신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는데,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을 들었는데, 380명은 성령을 받는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보고 그 음성을 들은 500명중 120 즉 24%만 모여 기도했습니다, 우리교회 수요예배, 금요예배 나오는 것을 보면 딱 24%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 남자만 5000명이 모였습니다. 벳세다 들녘에서 놀라운 기적의 만찬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많은 무리들은 자기 겉옷을 펼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벤 감람나무 가지를 길에 펼치기도 하고 흔들면서.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면서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그런데 빌라도의 뜰에서 그 허다한 무리가 돌변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악다구니를 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가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마 10:1).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빌라도 뜰에서 심문을 받을 때,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실 때에서 제자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직 여인들, 예수님의 어머니,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연약한 여자들만, 십자가 근처에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없이는 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워지거나 졸지에 부자가 되어도 예수님과 다니던 교회를 버리는 것을 많이 봅니다. 성령이 없이는 가라지나 쭉정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나로 살지 않고, 오직 예수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며 왕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나를 기쁘게 하기보다, 예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매 순간 결정하는 원칙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물으면서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교인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면 됩니다. 그러나 제자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가 되려면 어떻게 합니까? 의과대학에 들어갑니다. 의과대학 6년입니다. 의료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과정이 6년입니다. 예과 2년 본과 4년. 본과 3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학병원에 실습을 나갑니다. 그리고 국가고시에 응시하여 합격해야 합니다.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인턴(1년), 레지던트(4년), 과정을 거친 후 전문의 시험을 치루어 합격해야 드디어 의사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됩니다. 한명의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과정을 경험하는데, 훈련받지 않고 좋은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3년 반 동안 하신 일이 훈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3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첫 번째가 가르치는 일입니다(teaching)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잘 배워야 합니다. 가르치는 것도 기술입니다. 어떤 분은 쏙쏙 알아듣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징은 현장교육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 비유, 밭에 감추인 진주 비유, 그물의 비유 등. 제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잘 가르치려고 하면 잘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것을 멈추면 안 됩니다.
두 번째가 전파하는 것입니다(preaching). 외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치유사역입니다(healing). 치유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의 치유는 성령 충만, 마음의 치유는 기쁨 평안 행복 만족 감사 은혜, 육의 치유는 건강입니다. 환경의 치유도 필요합니다. 치유사역에서 중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대부분 회개를 통해 병이 고침 받고 악한 영들이 떠납니다. 치유는 믿음의 선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손을 얹어야 합니다.
예배도 훈련입니다. 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거룩한 시간, 값진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나를 위해 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쓰기 때문입니다. 교회 봉사도, 이웃사랑도, 또 헌금도 훈련을 받은 사람이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제자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의 모습에는 항상 예수님의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를 보세요. 초기에는 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잘 견디어 냈습니다. 독립선언서 33명중 15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때 기독교인구가 50만 명이 채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애국할려면 기독교이니 되라는 말이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 암암리애 퍼졌다고 합니다. 그런 기독교가 한참 부흥할 때는 1200만 명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 숫자는 오히려 감소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들과 장로님의 모습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욕심의 악취, 고집과 교만의 악취가 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2020) 여론조사를 발표했습니다. 개신교의 신뢰도는 19%, 카톨릭은 31.2%, 불교는 28%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신뢰감이 가지 못하는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이단사이비들의 집단수용, 가정파괴와 같은 일들이 종종 뉴스로 방영되어, 같은 기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영향도 있겠지만, 대체로 교회들을 보면 똑똑한 교인들은 많은데 주님을 닮아가는 성도는 적기 때문인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이웃을 섬기는 교회와 겸손한 성도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삶으로 신앙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예수님을 높여 드립니다. 자신을 절대 높이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향해 말합니다. “나는 전에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 이었습니다.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만삭되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가 내게 넘쳐 내가 변화 받았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와 십자가만을 자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팬입니까? 아니면 제자입니까? 제자라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쫓아 살아야 내 삶의 주인이 바뀝니다. 제자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나를 바꾸어 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로 사시는 성도들이 되어 주님 앞에 서는 날,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너에게 큰 것을 주겠다"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소유된백성
첫댓글 지난달 통신료와 공과금도 못내고 있습니다
카페운영이 어렵네요 통신료도 못냅니다
카페지기가 드리는 부탁의 말씀.....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작은 나눔으로 카페지기에게 용기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한분이라도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카페를 계속해서 운영하려면 회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통신료 공과금 30만원과,치료비,임대료,난방비.먹을것을 마련해야합니다...
카페지기는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이 되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도와주신 분을 위해서 집사람 박경옥 전도사가 매일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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