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관한 시모음 43)
4월, 그 주말의 풍경 /김용재
그래도 비루한 시침의 속도를 꺼놓고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벚꽃 축제 한다는
두메 산길 들어선다
기둥 하나 버티고, 눕는 듯 기운집 마당에
새소리도 떠나고
풀포기 성성한 것 눈에 찔린다
옛날 이방이 나와
궁벽한 청렴 읊조릴 듯
세월의 간격 참 멀기도 한데
곁눈질하며 4월은 빨리 왔을까
산벚꽃 아직 눈망울만 내밀고 있다
옆에선, 중국산 황사 바람 달라붙어
억세게 이 땅의 봄을 뒤집고
외팔이 포크레인이 자꾸만 세상을 까엎고 있다
4월 /심보선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지의 별빛과
제국 빌딩의 녹슨 첨탑과
꽃눈 그렁그렁한 목련 가지를
창밖으로 내민 손가락이 번갈아가며 어루만지던 봄날에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손가락 외에는 아무것도 어루만지지 않던 봄날에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너의 소식은 1월과 3월 사이의 침묵을 물수제비뜨며 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
5월에도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6월에도 천사가 위로차 내 방을 방문했다가
"내 차라리 악마가 되고 말지" 하고 고개를 흔들며 떠났다
심리상담사가 "오늘은 어때요?" 물으면 나는 양미간을 찌푸렸고
그러면 그녀는 아주 무서운 문장들을 노트 위에 적었다
나는 너의 소식을……
물론 7월에도……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
8월에는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았고
9월에는 그것이 상수리나무만큼 커져서 밤에 나는 그 아래서 잠들곤 했다
10월에 나는 옥상에서 뛰어 날아올랐고
11월에는 화성과 목성을 거쳐 토성에 도착했다
우주의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저 멀리 지구를 바라보니
내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 늙은 개처럼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월에 나는 돌아왔다
그때 나는 달력에 없는 뜨거운 겨울을 데리고 돌아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4월은 마지막 달이었고 다음해의 첫번째 달이었다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차아란
봄이 물결 따라 흐르고 있네요
정말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요
바람도 잠시 쉬었다 가면 좋겠어요
만발한 꽃나무와도 오랫동안 마주하고 싶어요
참 빨리 가 버리네요.
그대-4월
사월의 연가 /오애숙
새 생명 움트게 하는 봄비가
척박한 땅에 진액의 보약으로
대지에 소리쳐 생명을 깨운다
한 달 전만 해도 동토의 언 땅
북풍한설에 하얗게 깔린 설원
봄비로 녹아내려 춤추게 했다
담홍색으로 갈아 입고 사막 연
파피꽃 들판에 날아드는 향연
나비와 벌 봄비에 장단 맞춘다
척박한 대지에 봄비의 진액이
대자연의 교향곡에 춤을 추며
들녘에서 봄이 새마포 입는다
동행할 수 없는 사월 /권영안
호젓한 길 전봇대 위에 앉은
늙은 까마귀 외로운 까닭을 알 것 같다
산은 버거운 듯 푸르게 기울어지고
산 목숨들 침묵하는 산 아래
나는 너른 들판에 서서
동행할 수 없는 사월을 바라보고 있다
푸른 옷 입은 산더미 속
얇은 입술 잘금 씹고 있는 진달래
한적한 철길가로 무료히 조는 민들레
살금살금 잎을 피우는 목련
또 그렇게 슬며시 고개를 든 사월을 보고 있다
지워내도 다시 돌아오는 계절
죽음의 관 속에 갇힌 채 소리를 잃은 사월
무거운 정적 흐르는 거리
힘 잃은 한 무더기 봄만 나뒹굴고
지금은 살아있어도 지워진 시간일 뿐
봄의 전령으로 넘쳐나는 거리엔
혼절한 사월만 가득하다
4월, 둥지를 친 까치를 보고 /유금
윤씨 집 느티나무에 까치가 있어
4월 되자 둥지를 트네
네가 언제 일 시작했는지는 못 보았지만
차츰차츰 떨기 같은 게 생기지 뭔가
어디서 긴 가지를 물어오는지
나는 데 짐 되니 더디 날밖에
사람 손은 절대 안 빌려 하니
부리의 힘 참 대단도 하지
날아가는 곳 또한 그리 안 멀고
아직 부부 아니언만 암수가 같이 오네
한마음으로 고생 함께 하고
정이 지극해 울음소리 다정하여라
바람에 흔들려 가지가 떨어지자
놀라 깡충 내려가 도로 물어오네
옆 가지에 빈 둥지 없지 않건만
어째서 그것을 안 차지하는지
사람이 손수 집 짓는 걸 귀하게 여기듯
새도 역시 그런가 보지
저마다 자기 집이 있으니
주인이 아닌데 빼앗는 건 부끄러운 일
자식이 이미 늦었거늘
노력하여 얼른 집을 짓거라
다른 까치들 먼저 둥지 쳐
새끼들 태어나 곧 울어 대리니
4월. 하늘 꽃님이 /장수남
강변 옛 나루터
넌 언제 왔지.
꽃가락지 줄줄이 깍지 끼고
누가 볼까봐.
햇살 지긋이
눈감아주면 벚꽃 가지가지
수즙은 입맞춤
넌. 진짜 언제 왔어?
엊그제 네 옆에는
분홍빛 매화가 활짝 웃으며
널 기다리고 있었지.
보슬보슬 새벽 비 내려
잔뜩 움츠리고. 아이. 추워. 난
갈래야! 하늘 꽃님이 .
별무리 손잡고 떠났지.
그럼. 너도 갈래?
하늘은 푸른 숲. 세상 하얗게
불 지피고. 갈 거야. 오월
진달래 아기 철축 만나고 하늘
꽃님이 나도 따라 갈 거야.
4월 /조남명
4월과 꽃이
화촉을 밝힌다
주례는 봄이 서고
드넓은 대지에는
새들이
새싹들이
꽃들이
시냇물이 모여 축하한다
주례는 말없이 말한다
4월과 꽃은
사랑이 가득 피어남을 보여주고
그 씨를 세상에 뿌리라고
많은 꽃이 오래 못가고 지는 것을
서러워하지 말라고
꽃 진 자국엔 열매가 맺는 것
생기 솟구치는 신록의 누리 만들어가라고
사월의 어느 날 아침 /은파 오애숙
사월 창에 핀 봄이 노래해요
꽃이 피면 꽃이 피는 길섶에서
꽃 만큼 화사함 어디있으랴
사랑을 시로 말하고 싶다고
꽃이 진다 슬퍼하지 않음도
핍진한 꽃 뒤 열리는 열매보며
사랑도 익어가는 아름다움만
들숨과 날숨 사이 생각해요
어디 사랑이 사람에게만
국한 한지 이 세상 만물 속에
피어나는 향기가 사랑이라고
나 그대에게 시로 말하며
그리움도 어디 사람에게
국한 하여 그리워하는 건가
이 세상 모든 것 중 마음속에
살폿이 물결치는게 그리움
사윈맘속 시인의 마음에
시향의 날개 잡아 시 한 송이
곱옵게 빚으면서 그리움을
가슴으로 노래 합니다
사월은 가고 /최정원
삼월의 심술 바람
꽃향기 날리는 5월의 봄에
활짝 웃고 있습니다
흐르는 천변의 버들 강아지
초록으로 봄을 이야기하고
깍 마른 씨앗들
양지바른 곳에 꽃을 피우고
이름 모를 풀씨 푸릇푸릇
또다시 피어나 꽃들과 함께
웃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나고
연두 빗 사랑으로 곱게
꽃밭에 향기가 되어
날아 오르고 있습니다
사월 어느 날 /심경숙
꽃이 날 보라 하네
내린 눈에 덮여 오돌오돌 떨며
눈물도 얼어붙었었다고
꽃잎은 마음껏 예쁘게 피었다가
눈 벼락 맞아 지친 모습
고운 꽃 임에게 보여 주려 했건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가 봅니다
앵두 자두 살구나무에
친구 하던 참새들 달려와
안쓰러운 마음으로 달래 보며
나뭇가지 찬 얼음 흔들어 보지만
추위에 꽃잎은 얼어 버리고
봄꽃 설레며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그 모습
사진 속에 담아 봅니다
M-4월 /이현채
가로수마다 연둣빛 나뭇잎이 팔랑거리는 사월의 풍경 속에
허름하고 오래된 뒷골목이 안개로 가득 차오르고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필름 한 조각이
불면의 그림자로 다가와 앉는 밤
라일락 꽃 향기가 바람에 날린다
사월에 꾸는 꿈은 산자와 죽은 자의 통로
자신을 만나는 공간이다
망각의 심연 속에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것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사소한 장난처럼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은 우산처럼 되돌아와 거대한
바다를 뒤덮는 해일처럼
한 순간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어둠의 빛을 잠식하는 도심의 거리
인쇄소 골목에 있는 세시봉 라이브에서 통기타소리와 함께
아주 오래 전에 듣던 정훈희의 안개가 피어 오른다
나는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데 M을 떠날 수가 없다
무단 횡단을 하다 차에 치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들고양이나
도심을 떠돌다 소리 없이 죽어간 바람처럼 나의 영혼은
M의 주변을 떠돈다
소설 속을 떠도는 M
순수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짜릿짜릿한 에테르 속에서
순수하게 거듭나고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
용기와 아름다움을 얻는다
나 또한 M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M이 존재할 때 내가 존재한다
그가 곧 나의 에테르, 나의 시이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 상처가 있는데 아프지 않다
존재가 치유되어 간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죽은 자와 산자의 경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영혼의 그림자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빛과 어둠 속을 공존하며 그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돌계단을 밝고 내려가는 바람, 물소리를 따라 지금은 바퀴를 굴리지 못하는 추억 속의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고 드넓은 신록의 들판을 달린다 천막처럼 떠들어대는 여학생들의 수다와 모딜리니
아 미용실 골목을 벗어나 석양이 붉게 물드는 바다에서 나는 M의 손을 잡고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우주 정거장에서 만날 약속을 한다 엄지손가락으로 도장도 찍고 복사도 한다
M은 나의 뮤즈,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에테르
나는 M과 함께 잠이 든다
기울어진 4월이 아프다 /오혜정
4월은 자꾸 왼쪽으로 기울었다
수분기 없는 침묵이 수평선 아래로
뿌리를 내린다
나의 말들은 빛의 방향으로 자라나지 못하고
점점 말라갔다
봄은 정차하지 못한 채 지나갔다
계절을 잃은 4월은 운율을 잃는다
수분을 빼앗긴 기억들이, 템포 없이 멈춘 하루가
바짝 시들어간다
나의 봄은 안구건조증을 앓는다
아팠던 계절을 적는다
상처 입은 풍경들이
비로 내린다
4월의 그늘을 적시는 이야기들
기울어진 내 그림자의 왼쪽 다리가 저리다
피어나지 못한 우리의 문장들이
계절의 길목에서 봄의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바람의 날갯짓이
봄의 몸짓이었으면 한다
304송이의 꽃들이 노란 날개를 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