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신앙 로마서 2:17~29
1~5절까지는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죄에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6~16절까지는 행한대로 보응을 바다고 율법과 양심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기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유대인의 위선적인 죄악과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의 죄악상을 통해 우리의 삶속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과연 나는 정말 예수 제대로 믿고 있는가? 나의 신앙은 진짜인가? 여러분 진실한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가짜로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짜인데 우리가 가짜라면 우리는 마지막날 예수님을 볼 면목이 없을 것입니다. 값비싼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얼마나 실망스럽습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신앙이 가짜라면 그것은 얼마나 심각한 것입니까? 이제 바울은 직접적으로 유대인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을 믿는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17절부터 20절까지를 보십시오!
유대인들의 최고의 프라이드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된 최고의 정체성은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받았으며 하나님과 사귄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만족에 빠져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알고 성경말씀도 웬만큼 알고 있고 자신이 인도자이고 교사도 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믿는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식적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말입니다.
2.우리의 위선적 행동이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습니다
21절부터 24절까지 보십시오.
유대인들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는 성물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전에 있는 물건을 훔쳤다는 것은 이방 군인들이 신전에서 훔친 물건들을 유대인들이 소장한 것 등을 문제삼고 있는 말씀입니다.
비단 이것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말한대로 살지 못하는 종교적 그리스도인들의 한계를 봅니다. 목회자로서 가장 절망적일 때는 나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면서 나 자신이 그렇게 살 때입니다. 우리 모두 이 부분에 예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배우려 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말라 하면서 자신들은 도적질하였다고 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능한데 자신들은 따라가지 못하는 모순을 봅니다.
우리가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우리의 가르침과 삶은 너무 달라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은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들 때문에 교회와 하나님의 권위가 실추되고 있습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바로 나입니다. 종교적인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욕되게 할 수 있습니다.
3.세례를 받았다면 세례받은 자 답게 사십시오!
25절뷰터 27절까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난지 8일만에 할레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언약 백성의 보증수표입니다. 할례는 구원의 확실한 보장이었습니다. 구원은 유대인의 것이며 사람을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은 할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할례 자체가 그들의 구원을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을 행할 때 그들의 할례는 유익하지만 그들이 율법을 범하면 그들이 행한 할례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이 율법을 범하면 그들이 받은 할례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나 할례받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무 의미가 없듯이 할례를 받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 그들의 무할례는 할례와 같이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할례를 받았다고 그것이 마치 거룩한 백성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못된다는 것입니다. 카톨릭 사람들 전도하면 영세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봅니다. 그러나 영세나 세례가 구원을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세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세례를 받고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 판단하게 됩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중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에 합당한 삶을 사느냐 안사느냐가 중요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할례를 안받았으면서도 이방인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지킨다면 지키지 아니한 너희들을 비판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세례를 안받았어도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전혀 하나님 말씀과는 상관없이 사는 우리를 보고 비판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 세례를 받았다면 세레의 가치를 안다면, 그 가치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4.명목상의 기독교인이 되지 말고 진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십시오!
28절, 29절을 보십시오.
형식적인 유대인이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고 표면적 할례가 할례가 아니듯 무늬만 크리스챤인 사람을 진정한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할례가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깨달은 진정한 변화, 진정한 거듭남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내면의 영적 변화로 됩니다. 유대인 부모에 의해 태어나고 할례받았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니듯이 기독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해서,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저절로 기독교인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례받았다고 크리스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24절의 말씀처럼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욕을 먹고 있다”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습니까!”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떵게 해야 합니까?
우리들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환자가 낫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알고 병원에 가야 합니다. 의사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인됨과 불순종과 말씀을 거스리는 우리의 본성에 대해 참회하고 가슴깊이 통회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받고 듣고 본 것에 대해,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 내가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안에 회개의 심령을 주시기를 기합시다. 우리가 찔림을 받고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와 우리의 관심사와 우리의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돌아봅시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죄악들을 지적하시고 다시 하나님을 위해 살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길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초점과 중심을 하나님 편에 서도록,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와 의지와 감정까지도 그 분 앞에 내려놓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