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山房閑談
별과 반딧불이의 궤적. 이 한 장의 사진을 담기 위해 일주일 동안 밤마다 찾아갔다.
장마철을 앞두고 맑은 날 밤이면 은하수가 떠오르고, 청정지역 개울가엔 반딧불이가 날아올랐다. 돌이켜보니 어느새 지리산 입산 만 20년이 지났다.
처음 3년 동안은 간절한 소망 그대로 돈 안 벌고 안 쓰며, 못 벌고 못 쓰며 한 마리 고라니나 산토끼처럼 살아봤다. 돈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에 3년 동안 120만 원으로 견뎌봤으니 돈에 대한 공포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지리산에 살아남아 미안하고 미안했으니 더불어 환경단체와 생명평화 단체, 지리산학교를 만들고, 7개 종교계와 더불어 지리산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지리산과 섬진강 도보순례를 비롯해 4대강 순례, 새만금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등 3만 리를 걸었다.
노랑 풍등처럼 떠오르는 애반딧불이들.
지리산 입산 20년째, 가장 오래 산 곳
아스팔트 위에서 천막을 치고 자다가 건강이 무너지자 한 10년 가까이 야생화와 별 사진에 미쳤다. 야생화와 별이 나의 건강을 되찾아주었다. 그리고 지리산에 와서만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 20바퀴 거리 이상을 달렸다. 8번 이사하며 지리산 예저기 살다 보니 어느새 만 20년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고향과 대구·서울 등의 도시생활을 했지만 이제 지리산은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오래 살아본 곳이 됐다.
그동안 도보순례,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의 사전답사를 하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미리 가보는 지리산 둘레길 320km를 월간<산>에 연재하면서 야생화에 깊이 중독되었다. 안개와 구름 속의 야생화에 빠져 미친 듯이 살다가 급기야 밤마다 별을 찾아 헤매는 ‘별사냥꾼’이 되었다. 11년 만의 신작시집도 정리하고 밀린 숙제 같은 산문집도 내야겠지만,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별똥별처럼 한 획을 그을 때가 온 것만은 분명하다.
모처럼 하도 별빛이 좋아 5일 동안 밤을 지새며 너무 많은 별을 보았더니 몸살이 났다. 목구멍 속에서 별똥별이 튀어 나올 것 같은 기침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병든 폐 속에도 은하수가 흐르는지 가래가 나오고 온몸이 출렁거렸다. 고맙게도 부산의 이청산 형이 기침약을 보내왔다. 일본 약인데, 기이하게도 큰 기침 없이 아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몸살도 슬슬 물러가는 것 같다. 단식 후의 보식처럼 몸살도 꼭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밤새 너무 많이 본 별들이 주는 통증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고 감당하는 게 마땅한 이치일 것이다. ‘별나무’처럼 다시 내 몸속에 별들을 내장할 때가 다가왔다.
저 하늘엔 별들이 반짝이고 이 땅 어디에선가 반딧불이들이 날아올랐다. 우리 말로 쓴 시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딧불이처럼 반짝인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오랫동안 별빛에 깊이 중독되었다가 요즘엔 반딧불이에 마음이 깊이 홀렸다.
사실 ‘반딧불이’라는 긴 이름보다 그냥 반디라는 어감이 더 좋다. 사람도 짐승도 지상의 별이겠지만 그래도 초여름과 늦여름의 가장 아름다운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인 반딧불이를 찾아 나섰다. 어쩌다보니 부산에서 배를 타고 난생 처음 대마도(쓰시마)까지 가봤다.
대마도(쓰시마) 청정계곡에서 반딧불이 떼를 만났다.
‘조선 통신사의 길’을 따라 대마도에 정착한 고광용-윤단경 부부의 초대로 얼떨결에 2박3일 동안 다녀왔다. 히타카츠항구 바로 근처에서 숙소와 식당인 토키세키TOKISEKI를 운영하고 있다. ‘토끼새끼’는 우리말 그대로 아기 토끼를 의미하며 세키SEKI는 일본 말로 관문이라는 뜻이다.
고광용씨의 안내로 찾아간 어느 골짜기에서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를 보았다. 마치 숲의 정령을 보는 듯, 누군가의 혼불을 보는 듯했다.
대마도는 일본도, 한국도 아닌 참 묘한 곳이다. 백제시대 왕인 박사가 대마도로 들어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힐링센터를 구상하고 있는 고광용씨의 안내로 대마도 구석구석 오지를 돌아다녔다. 밤길 임도에서 꽃사슴 100여 마리 이상을 마주쳤고, 승용차로 돌진하는 멧돼지 두 마리도 만났다.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대마도는 야생 동식물들의 천국이자 별유천지비인간의 섬이었다.
이틀 밤 내내 반딧불이 수색을 다녔는데, 운이 좋게도 수천 마리가 동시에 날아오르는 서식지를 찾았다. 말 그대로 황홀경 그 자체였다. 이렇게 많은 개체수를 한꺼번에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반딧불이를 사진으로 담은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반딧불이를 사진으로 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별 사진을 찍는 것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대마도의 반디는 어두워지는 저녁 8시부터 날기 시작해 밤 9시에 절정을 이루다가 마침내 짝을 찾으면 나뭇잎에 깃들어 신방을 차렸다. 이틀 밤 내내 신열 앓듯이 흥분하며 찍은 사진들 중에서 남길 만한 네 장의 사진을 깊이 저장했다.
반딧불이 축제를 하는 우리나라 제주도와 전북, 충북 등에도 장마가 오기 전에 슬슬 반딧불이들이 연초록, 연노랑의 등불을 켜고 밤마다 짝을 찾아 날아다니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주도의 어느 곶자왈이 반딧불이를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사진꾼들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어 직접 가보지 않고도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우리 집에도 몇 마리 찾아오는데 아직은 보이지 않았다.
‘자체발광’ 반딧불이의 다른 이름은 개똥벌레, 불벌레, 불파리firefly, 형화螢火다. 대중적인 노래인 ‘개똥벌레’와 한자어 형화螢火는 익숙한데 우리말 불벌레는 좀 낯설다. 파리의 영어명이 ‘fly’라고 하듯이 firefly, 즉 ‘불파리’ 또한 재미있다. 우리나라에는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이 있다. 6월 초중순에는 애반딧불이가 나오고, 8월 중순부터는 늦반딧불이가 나온다. 대마도의 반딧불이는 반짝 반짝 빛을 내는 것과 길게 불을 켜는 반딧불이, 그리고 서치라이트처럼 빛을 쏘는 반딧불이가 있다고 한다. 6월의 우리나라 애반디는 반짝 반짝 빛을 내며 날아가고, 대마도 반디는 길게 빛의 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반딧불이가 날아올랐다.
한반도가 자체발광 할 날 머지않아
반딧불은 냉광冷光이다. 99%가 빛이고 겨우 1% 정도가 열로 빠져나가므로 뜨겁지 않은 차가운 빛이다. 반딧불이의 형광螢光과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 무덤가에서 혼불처럼 날아다니는 인광燐光이 모두 냉광이다.
자체발광이란 한자어가 너무 정겨워졌다. 그 누구나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빛나는 누군가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삶이란 그 얼마나 비주체적이며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태양과 별처럼 빛나는 지구상의 유일한 곤충인 반딧불이에 대한 동경심을 어찌 억누를 수 있겠는가. 그것도 달빛처럼 차가운, 그러면서도 빛을 반사하는 달이 아니라 스스로 차가운 빛을 내며 끝끝내 온몸 불타지 않는 정열이라니!
대마도에서 밤새 반딧불이의 군무를 보고는 한국전망대에서 한반도 방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왕인박사가 배를 타고 대마도에 도착하는 모습이 꿈결처럼 그려졌다. 머지않아 남한은 대륙의 입구이자 종점이 될 것이다. 비록 종전 평화협상에서 미국이 칼자루를 쥐고, 북한이 칼끝을 잡고, 남한은 칼의 중간을 어정쩡하게 잡고 있는 형국이지만 마침내 평화협정의 순간 이 칼은 폐기될 것이다. 자체발광으로 빛나는 한반도가 섬이 아닌 대륙의 시작이자 끝으로 거듭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반딧불이처럼 온몸 불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최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7일, 우리나라가 국제철도협력기구의 정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찬성표로 남한이 ‘대륙철도’ 국제노선 운영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는 것이다. 한반도 종단열차가 연결되면 목포에서 서울이 천리 길, 서울에서 신의주가 다시 천리(429km), 동해선인 부산-강릉-원산-청진-하산이 4,600리(1,856km) 길이다. 경원선에 만포선까지 연결된다면 한반도는 완벽한 대륙이 된다.
중국횡단, 만주횡단, 시베리아횡단 철도가 연결되는 것이다. 남북한 철도 연결 비용이 3조 원 이하며, 현대화 비용 모두 합쳐도 7조 원 이하라고 한다. 4대강을 망치는 비용이 최소 25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마침내 자체발광의 한반도 시대가 다가온다. 그 구성원의 일부로서 모두 불춤을 추는 반딧불이들의 군무, 그 향연을 간절히 기다릴 뿐이다.
대마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치 무병이라도 들린 듯이 지리산 계곡을 찾아다녔다. 밤마다 반딧불이 서식지를 찾아다녔다. 20년 동안 살아온 지리산 골골을 수색하며 옛 기억들을 떠올렸다. 길 위에 천막을 치고 자면서 보았던 반딧불이의 추억을 되살렸다.
하동 평사리 부부소나무 위로 은하수가 떠올랐다. 바이크를 세워두고 포즈를 잡았다.
지리산 남부능선서 반딧불이 서식지 찾아
닷새 뒤에 마침내 지리산 남부능선 어느 골짜기에서 반딧불이 서식지를 찾아냈다. 축제다 뭐다 다 망쳐질지 모르니 아직은 나 혼자만의 ‘비밀의 숲’ 하나 생긴 것이다. 대마도에서 보았던 수천 마리의 반디가 여전히 부럽지만 내겐 아직 살아남은 지리산 반딧불이가 더 소중했다. 마구 농약을 치던 관행농법에서 그나마 저농약이나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하면서 메뚜기와 반딧불이 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생태적인 마을 곳곳에 귀환하는 반딧불이들이 더더욱 반가운 것은 인간 또한 그만큼 살 만해졌다는 뜻이다.
잘 보존된 대마도의 자연을 보면서 마구 파헤쳐지고 여전히 난개발 공사가 진행 중인 우리의 제주도와 남해안 바닷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농어촌이나 섬이나 해안가가 쓸데없이 너무 밝다는 것을 절감했다. 필요한 만큼만 밝아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지 밤이 대낮처럼 밝았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야행성이지만 어두운 곳의 부적응자들이 아닌가.
도대체 반딧불이가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곤충 박멸, 멸공 박멸의 시대가 있었듯이 공존과 상생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따금 페이스북 등의 SNS를 들여다보아도 자기반성 없는 ‘내로남불’의 척결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자연적인 공존과 다양성의 시대, 남북 평화의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날아다니는 별, 살아 춤을 추는 지상의 별, 자체발광의 반딧불이들이 먼저 알고 축하와 응원의 군무를 보여 주었다. 내가 먼저 꽃을 피워야 그대 또한 꽃을 피우듯이 내가 먼저 빛나야 그대 또한 빛나지 않겠는가.
북미회담이 있던 날 이른 새벽에 벌떡 일어나 만사 제쳐놓고 하루 종일 뉴스 속보를 봤다. 아직 갈 길이 멀다지만 70년 만에 한반도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문득 반딧불이가 보고 싶었다. 나의 흑마와 함께 지리산 그 골짜기로 달려갔다. 행여 반딧불이들이 놀랄까봐 서식지 근처에서 시동을 끄고 바이크를 살살 끌고 갔다.
며칠 동안 반딧불이의 길, 반딧불이의 행로를 지켜봐 왔기에 이들의 동선에 맞춰 바이크를 세워놓고 기다렸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기다리니 밤 10시30분쯤부터 한 마리, 두 마리 자체발광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처음 보는 바이크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내 머리 위로도 날기 시작했다. 함께 춤을 추고 싶었으나 반딧불이들이 달아날까 싶어 제대로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첫 북미회담과 지방선거에 맞춰 난생 처음의 반딧불이 기념 샷 하나를 얻었다. 지긋지긋한 전쟁의 악몽에서 겨우 빠져나오는 듯했다. 거대한 파도가 두 번 겹쳐 지나갔다. 죽임의 파도가 아니라 살림의 파도였다. 세상이, 한반도가, 조국이, 남한과 북한이 이제야 겨우 제 정신을 차리고 상식의 경계 안으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이런 날이 언제 또 다시 오랴. 우리 집 강아지 이름들을 불렀다. 얼씨구, 지화자, 좋다 몽!!!
그리고 이틀 뒤에 다시 반딧불이들이 날아올랐다. 그냥 날아오른 게 아니라 별빛과 함께 날아오른 것이었다. 나만의 비밀의 계곡, 그 대숲에서 반딧불이가 날아오르고 밤하늘에는 북두칠성 등의 별들이 북극성을 따라 돌고 있었다. 지상의 별과 천상의 별이 만난 것이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가. 먼저 상상하고 예측하고 꿈을 꾸며 기다리던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별 궤적과 반디의 춤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오랫동안 홀로 숨죽이며 꿈꾸던 사진이었다.
반딧불이의 군무가 보여 주는 ‘오래된 미래’가 눈물겨웠다. 분노조절 장애의 시대, 두 눈 부릅뜨고 세상을 지켜보되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제 각자 자신의 내공을 쌓을 때가 왔다. 격변의 시대에 부응하려면 더 깊은 눈이 필요할 것이다. 무등산국립공원(화순)에 강연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