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자신에게 너그러워져라
네이버블로그/ #21.이제 그만 자신에게 너그러워져라.
아무것도 변명하지 말라. 아무것도 지우지 말라.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에게는 사실을 새롭게 조명해 주는 것들이 보일 것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영국의 철학자)
예전에 모 일간지에 ‘나의 이력서’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 일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주로 정치인, 기업인들이 많이 썼다. 먼저 연재한 이들의 글을 몇 개 읽어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들은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고 잘했다고 기록했는데 그들이 공직에 있었던 시기를 따져 보면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이력서대로라면 그 일들이 잘 처리되어야 했지만 비리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혼자만 잘했다고 떠드는 격이었다. 그런 이력서는 읽을 필요가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전 이화여대 총장 김옥길 선생에게 생전에 자서전을 써 볼 것을 권유한 적이 있다. 선생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일단 쓰게 되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다 무엇이든 보태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라도 자신을 좋게 포장하는 건 싫다고 했다. 자서전인데 조금 보태서 쓰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이 무색해졌다.
누구도 성공한 삶, 좋은 삶만을 살 수는 없다. 어떤 일도 연속해서 잘 되기는 어렵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그러다 간혹 한 번씩 잘될 뿐이다.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어떤 면을 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면과 잘한 것만을 기억한다. 특히 잘못이나 실패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란 쉽지 않다.
인생에서 한 번의 실수가 완전한 실패를 뜻하지 않듯, 한 번의 성공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공과 실패, 좋은 일과 나쁜 일, 이 모두가 인생을 이루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와 내 삶을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다. 잘못한 일, 틀린 생각, 오류, 엉터리 이론……. 이런 오점을 알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을 나는 존경한다. 자기의 치부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는 매우 용기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너그러움에는 나의 지난 잘못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포함된다. 나 자신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다면 진짜 제대로 나이를 먹은 것이다.
내 인생의 전반부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과 후반에 강의를 들은 학생은 전혀 다른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내 인생의 좋은 면, 성공 사례만을 주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실패 사례를 많이 이야기했다. 부끄러운 점, 감추고 싶은 점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 그런데 후반부에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의 호감도가 더 높았다. 학생들은 안도했다. ‘교수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구나’ 하며 동질감을 느끼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했던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사이버 대학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거기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선생님은 남들이 보기에 치부라고 할 수 있는 걸 어쩌면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나요. 정말 고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세 가지 일은 증오를 사랑으로 갚는 것, 버려진 자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 잡지에서 인상적인 기사를 읽었다. 자녀들이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자 장례식이 끝난 후 주위 사람들에게 뒤늦게 부고를 전했는데 그 내용이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생전에 크고 작은 잘못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던가 보다. 자녀들이 볼 때도 아버지의 잘못은 명백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잘못을 적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분들께 자녀들이 대신 사과의 말을 전하는 부고장이었다. 잘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 아버지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은 자녀들의 마음이 의미심장하다.
인생에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시점에 이르면 실수와 실패, 잘못된 일들을 돌아보면 좋겠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다. 후회 혹은 속죄의 고백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다. 그게 진짜 회고록이다. 어떻게 살았건 간에 살아온 모든 인생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멋있게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 앞에 설 수 있다. 나의 부족했던 삶을 통해 인생 후배들이 많은 것을 배운다면 그 또한 내가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 아닐까.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이근후, 갤리온, 2019.)’에서 옮겨 적음. (2024. 6.29. 화룡이) >
첫댓글 누구도 성공한 삶,
좋은 삶만을 살 수는 없다.
어떤 일도 연속해서 잘 되기는 어렵다.
저는 자서전을 4차 수정을 했습니다
5차 수정은 많이 해 볼 생각인데, 이근후 교수님의
조언을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의초 시인님!
자서전이 나오는 날을
내일처럼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