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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이민을 온 지 삼십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1995년 6월 30일, 긴장과 설렘을 안고 포틀랜드 공항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화창한 여름 날씨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반겨 준 것은 밝은 햇살과 상쾌한 공기였습니다. 첫 만남이 이색적인 기후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여름 날씨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진 만남은 먼저 정착한 한국 교민들이었습니다. 세탁업을 하는 분, 소박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 한국 식품점을 운영하는 분들이었는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출신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족이라는 동심원 안에서 가족처럼 가까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오리건 주립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들도 종종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국 식품점에서 60대의 미국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유난히 밝은 미소를 띠면서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웨인입니다. 한국 분이지요?”
의외의 인사에 깜짝 놀랐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한 후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웨인은 자신이 19세때 한국 전쟁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겨울 날씨가 너무 추워서 지금도 겨울이 오면 몸이 움츠려진다고 했습니다. 전쟁 중에 추위에 떨고 있던 한국의 어린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오리건주에서 파병된 미군들은 함경도 북단 지역에 투입되어 혹한과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함께 파병되었던 동료 군인 하나는 그때 입은 동상으로 평생 고생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분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십 대 후반 또는 이십 대 초반 나이에 전투현장에 투입돼 생사를 넘나들었던 경험을 한 것입니다. 한국 전쟁은 끝났지만 후유증은 이곳 젊은이들에게 큰 상처로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한국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방문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습니다. 마음이 먹먹해 졌습니다. 이분들이 안고있는 한 부분의 상처라도 감싸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분을 통해 그동안 무관심했던 조국에서 일어났던 육이오 전쟁, 수많은 군인의 희생, 고아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듬해 유월이 왔습니다. 뜻있는 교포분들과 의논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우리나라를 공산화의 위험에서 지켜 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자고 의논했습니다. 한국 음식을 준비하여 파티를 개최하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우리 동네의 윌라멧 강변에 위치한 공원 안에 오리건주 출신으로 외국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비석에는 세계 제1, 2차 전쟁 희생자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 그리고 월남전에서 희생된 전몰자들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앞에 놓인 테이블에 음식을 차리고 참전 용사들을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그 날이 왔습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세우고, 테이블에는 갈비, 불고기, 잡체, 김치 등 한국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부채춤을 가르쳐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부인들은 장롱 속에 보관했던 한복을 다림질해 곱게 차려입었습니다. 초청을 받고 참석한 분들은 약 백여명이나 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을 테이블에 앉히고, 젊은 시절 우리나라를 지켜 준 일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참석한 분들 중에는 부인을 대동한 분들도 있었지만 홀로 된 분들도 많았습니다. 70대에 접어든 노인들이었지만 얼굴들은 상기되어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전쟁터로 달려 온 씩씩한 용사들 같이 보였습니다.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귀염둥이 칠공주의 부채춤 공연이 끝나자 일제히 기립 박수를 해주었습니다. 한 참전 용사는 무대로 올라와 머리를 꾸벅 숙이며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연신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또 한 분은 옆에 서 있던 저를 찾아와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가슴까지 전달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이곳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말들 하는 데, 여러분이 우리를 기억해 주니 너무나 기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 노인은 끝내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주름진 두 눈가를 눈물로 적셨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둘러섰던 교포들도 조용히 울었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헌신해 주신 여러분을 일찍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늦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헌신이 오늘의 한국을 이렇게 발전된 나라로 성장하게 했음을 기억하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하도록 힘쓰겠습니다.”
한인회장의 음성은 떨렸습니다. 그는 조용히 서 있는 한 참전용사의 구부러진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동안 흐느꼈습니다. 그날의 감동은 두고두고 우리들을 감격하게 했습니다.
만남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전 참전 용사와의 만남은 우리의 어제를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내일을 내다 보게해 주었습니다. 이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미국은 태평양 건너편의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여름날 입니다. 이 아름다운 만남이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마음속에서 빌었습니다.
미국 오레곤주 유진시에서
수필가, 시인,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1995년 미국 오레곤주 유진시로 이민
2023년 상록수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수상
2023년 서북미문인협회 주최, 제19회 뿌리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2023년 제4회 타고르문학상 공모전, 시부분 우수상, 수필부문 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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