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 저미는 기억너머, 눈부신 그들 _ 몽니
일시 : 2007. 11. 6 (화) PM 3:20~6:30 장소 : 상상공장 사진촬영: 30분 인터뷰: 2시간 반 녹취타이핑: 김현정 사진: 신주희 인터뷰&정리: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몽니, 김기자, 류재현 감독(상상공장대표)
몽니의 라이브를 그 전에도 본적은 있었지만 2006년 5월 하이서울 록페스티벌 서브무대 공모를 통해 이들을 좀 더 알게 되었다. 단연 돋보이던 음원의 주인공인 몽니는 몇몇 팀들과 함께 운 좋게 메인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페스티벌 후 어째서 서브무대 출연진이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몰고 온 실력자들이기도 했다. 먼 기억속의 가슴 저미는 한 장면을 보여주는 이들의 음악은 이내 폭풍 속으로 듣는 이를 몰아세운다. 몰아치는 거센 비바람과 절규하는 목소리는 꾸밈이나 은유 없이 슬픔을 드러내는 이들의 말보다 먼저 마음에 젖어든다. (특히나 호소력 짙은 보컬의 보이스는 라이브에서 아주 빛난다.) 1집 앨범을 낸지 어느덧 2년, 꾸준히 라이브 활동을 하며 2집 준비를 하고 있는 몽니를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몽니: 김신의(기타&보컬), 이인경(베이스), 정훈태(드럼)
Intro
몽니: 안녕하세요. ^^ 반갑습니다. 류감독: 반가워요. 김기자 복귀 후 첫 인터뷰네요. 상상공장에는 처음 와보죠? 상상공장이 어떤 일하는 곳인지 아세요? 김신의(v): 상상공장이 하는 축제에도 참여했었는데 모를리가요. 축제와 공연기획 등을 하시잖아요. 류감독: 네. 좀 더 총제적인 의미로 문화기획을 하는 곳이죠. 요즘 공연기획이나 축제기획이 각광받고 있지만 보통 앉아서 듣는 강의가 많아요. 하지만 축제는 이론이 아닌 현장이고 여러 사람에게 공유될수록 의미를 갖거든요. 우리가 하는 기획 자체도 커다란 교육이에요. 상상공장에서는 작년부터 페스티벌의 시작부터(준비과정) 끝까지를 취재하고 기록해왔어요. 열정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겐 이 과정이 모두 오픈되었고, 책자로 나오면 좋은 자료가 되겠죠. 김기자: 상상공장이 소통하고 오픈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티스트와의 인터뷰에요. 서로가 대화를 통해 어떻게 꿈을 나눌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기획자의 할 일 중 하나니까요. 류감독: 보통 회를 거듭할수록 라인업 편성이 고민되고 비슷해지기 쉬운데. 저는 거꾸로 기획자와 출연진이 평생 갈 수 있는 페스티벌을 생각해 봤어요. 마음 맞는 팀이 늘면 얼마든지 규모가 커질 수 있는 거죠. 저는 이혁(내귀에 도청장치 보컬)씨에게 혁이 씨가 가진 꿈을 무대에서 펼치라고 말해요. 정형화 된 공연이 아니라 뮤지션들과 관객이 꿈꾸는 것을 실현하는 기획을 하는 거죠. 그것이 기획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인디 속 밴드 이야기’에 밴드 커뮤니티를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 꿈을 기획하고 싶답니다. 김기자 :저희 인터뷰는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에요. 편하게 얘기하시면 되요. 그렇게 따지면 술 먹는 자리가 더 좋겠지만 보통 술 먹을 땐 음악얘기 안하잖아요.(웃음) 쌍방향 인터뷰니 당황하지 마시고요.^^ 슬슬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1.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몽니로 활동하기까지 음악적 행보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 몽니 베이스 이인경 이인경(b):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피아노를 시작했고 바이올린도 잠깐 배웠어요. 악기 다루는 걸 좋아했거든요. 음악은 클래식이나 팝을 듣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너바나를 듣기 시작했어요. 나름 거기엔 사연이 있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 서점에서 핫뮤직이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됐거든요. 근데 표지모델이 너무 신기한거예요. 빨간 배경에 빨간 머리, 빨간 입술. 너무 예쁘고 특이하다는 생각에 무슨 잡지인지도 모르면서 샀죠. 심심할 때마다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록음악까지 듣게 됐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표지모델은 히데였고 당시는 X-JAPAN이 유명했던 때였답니다. 그렇게 록음악을 듣다보니 좋아졌고, 이런 음악에서 나오는 악기를 다루고 싶어졌어요. 처음엔 베이스가 4현이라 쉬워보여서(?) 시작했는데 할수록 어렵더군요. 하지만 참 매력 있는 악기예요. 대학에 가선 심리학과 사학을 전공했고 친구들과 취미밴드 하다가 졸업 후 친구 소개로 몽니를 만나게 됐어요.
김신의(v):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아버지께서 대학시절 밴드부에서 보컬과 기타를 하셔서 어린 절 앉혀놓고 노래를 많이 불러주셨거든요. 같이 노래도 많이 했는데 그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유치원 놀이터에서 친구들이 놀 때 전 한 쪽 구석에서 만화영화 주제가를 부르곤 했어요. 애들이 제 노래에 맞춰 뛰어노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고등학교 땐 교회 찬양팀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쳤었고 후에 일렉기타도 조금씩 쳤어요. 학교에선 밴드부에 있었는데 슬래시 메탈을 주로 했죠. 거친 목소리를 내려고 하루 종일 소리를 질렀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바로 군대를 갔는데 후임병들이 다 대학생이었어요. 제대하면 꼭 대학에 가리라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해서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재미가 없더라고요. 자꾸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3학년 1학기 때 진지하게 제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니?’ 고등학교 때 했던 음악이 떠오르더라고요. 바로 휴학계를 내고 2003년 4월 무작정 서울재즈아카데미에 들어갔어요.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1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기타 과를 6개월 정도 다녔는데 재즈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곳이다보니 저랑은 좀 안 맞았죠.
제가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를 좋아해서 밴드를 만들면 베이스는 무조건 여자로 하려고 했거든요. 마침 기타가 공석인 밴드를 소개받았는데 그 팀의 베이스가 인경이였어요. 첫인상이 마음에 들어서 제가 만든 음악을 보내주며 그 팀에서 나와서 같이 하자고 했죠. 인경이는 우정을 버릴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제가 빼냈어요.(웃음) 그래서 몽니가 시작됐죠. 당시에 제가 기타과 반장이었는데 드럼과 반장에게 드럼을 물색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랬더니 드럼과 애들을 다 데리고 나와 일렬로 세워놓는 거예요.(웃음) 마지막 애가 제일 실력이 좋다고 했는데 그 애가 주환이였죠. 햇빛도 못보고 연습만 하던. - 직접 만든 음악을 인경 씨에게 보내줬다고 했는데 곡 작업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김신의(v): 6개월 동안 아카데미를 다녔지만 수업보다는 외적으로 배운 게 많았어요. 당시에 알게 된 힙합 하는 친구가 제게 미디 가르쳐줬거든요. 1년 내에 승부를 내야했기 때문에 목숨 걸고 했죠. 뭔가 이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음악이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공부하면 30분도 못 앉아 있는데 음악을 하면 화장실도 잘 안 갔거든요. 그 6개월이 상당히 중요한 시기였고 이후 음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죠. 지금은 안하는 곡이지만 ‘어디야’와 앨범에 실린 ‘레미제라블’이 그때 만든 곡이에요.(웃음) 27살이면 늦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전 모든 게 새로웠고 계속 받아들였어요. 당시에 인경이가 뮤(mew)를 좋아했는데 북유럽 음악의 느낌도 너무 신선했고 그렇게 멤버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몽니가 커갔죠. - 그럼 이전에 있던 공태우 씨는(기타)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요? 김신의(v): 2003년 겨울부터 인경, 주환, 키보드까지 4명이 뭉쳐서 연습을 했고 2004년 1월 클럽 슬러거에서 오디션을 보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3~4개월 정도 공연을 하던 중 건반이 사정상 밴드를 그만두게 됐는데 때마침 펑크 밴드에 있던 태우를 알게 됐죠. 그 팀이 깨질 상황이라 같이 몽니를 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했어요. 저희 음악을 좋아하고 있었다지만 펑크를 하던 친구라 몽니를 위해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음악성도 그렇지만, 아침형 인간이라 저랑 생활패턴이 비슷하고 무척 성실한 친구예요.
- 그렇군요. 훈태 씨 얘기도 들어보죠.
* 몽니 막내, 드럼 정훈태
정훈태(d):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작곡가였거든요. 아버지께서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작곡을 하려면 비트부터 깨우치라며 드럼을 권하셨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드럼 학원에 다녔고 너무 재밌어서 계속 쳤죠. 친구들이랑 카피 밴드하는 정도였는데 교회에서 신의 형을 만났어요. 신의 형은 교회에서 스타거든요. 같이 음악을 하자고 해서 좋기도 했지만 두려운 마음도 있었죠. 김신의(v): 훈태가 들어온지는 3~4개월 정도 됐어요. 주환이가 군대에 갔거든요. 어차피 음악을 계속 해야하니 갈 때 같이 가라고 태우도 보냈고요. 자리잡아놓을 테니까 갔다오면 다시 하자고 말했어요. 군대 가기 하루 전까지 2집에 들어갈 기타 파트를 다 녹음하고 갔는데. 태우의 공백이 크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적당한 시기에 간 것 같아요. - 태우 씨를 많이 아끼시나봐요. 김신의(v): 네, 잘 맞기도 하고요. 원래 기타치는 사람들이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잘 안 듣거든요. 근데 제가 권유하면 다 수용하고 아예 플레이를 바꾸기도 했어요. 시간 약속도 잘 지키고, 작업할 때도 항상 열심이라 많이 힘이 됐죠. - 기타의 부재로 라이브에도 좀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신의(v): 지금은 일렉트로닉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3인조 체제로도 충분히 갈 수 있게 하고 있고. 태우가 제대하는 내후년쯤 다시 강력한 사운드를 선보일 예정이에요.(웃음)
2. 밴드가 결성되고 클럽 라이브를 시작하고 앨범을 내기까지 모든 게 착실하게 진행됐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2006년엔 쌈싸페 숨은 고수로 선정되기도 했죠? 김신의(v): 밴드를 만들 당시 주환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였고 태우는 실용음악과를 다니다가 휴학한 상태였어요. 인경이도 졸업한 후라 여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매일 2~3시간씩 합주를 했고 밴드를 하면서 모두 많이 늘었죠. 그리고 쌈싸페에 오르기 전에 ‘리페어샵’과 ‘클라우드 쿠쿠랜드’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슬러거에서 그 친구들이 공연을 하는 걸 봤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두 팀 다 저랑 동갑인데 서울예전 출신도 있고 쟁쟁하더라고요. 저희도 열심히 연습했죠. ‘클라우드 쿠쿠랜드’가 뽑힌 다음 해에 저희도 응모했었는데 최종에서 떨어지고 ‘리페어샵’은 숨은 고수가 됐어요. 그때 많이 속상했는데 교만했던 것 같아요. 이듬해인 2006년에 숨은 고수로 뽑혀서 기쁘긴 했지만 아쉬움도 있었어요. 그때까진 큰 무대 경험이 없어서 된 것 자체가 도움이 되긴 했죠.
* 몽니 1집, <One Day, Light> 2005년 12월 1일 발매 3. 2005년 12월에 1집 앨범이 나왔는데요. 앨범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김신의(v): 2004년 초부터 클럽 활동을 하던 중 그해 여름 신동우 형을 만났어요. 형이 밴드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회사가 모던 라이프였거든요. 대중가요 쪽이었는데 저도 가서 많이 배웠고 거기서 앨범도 내게 됐어요. - 타이틀이 <One Day, Light>인데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김신의(v): 성경구절에서 가져왔어요. 창세기 1장 1절부터 나오는 얘기죠.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첫째 날은 빛, 둘째 날은 하늘을 만드셨어요. 그러니까 2집 타이틀은 ‘둘째 날, 스카이’가 되겠죠. 몽니라는 이름으로 6집까지 낼 계획이고 ‘휴먼’이란 타이틀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에요. 그 정도까지 간다면 멤버들 각자의 역량도 생길거고 이후에는 자유롭게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겠죠. 지금은 준비 단계인 셈이에요. 전 나중에 CCM 쪽에 주력하고 싶거든요. 외국 같은 경우 유명한 세션들과 규모있게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요. 음악성도 뛰어나고 곡 자체도 좋고요. 그 땐 제가 6집까지 쌓아 온 역량을 다 쏟아 붓고 싶어요. - 독실한 크리스찬이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김신의(v): 그런가요?(웃음) 전엔 술, 담배를 비롯해서 방황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 군대를 갔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당시에 무장공비가 나타났던 때라 긴장감이 많이 도는 상황이었고 서울에서 음악하다 왔다는 이유로 고참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것들이 저를 많이 지치게 했죠. 그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이 교회였는데 가면 초코파이도 주고(웃음) 기도할 땐 아무도 뭐라고 안하니까요. 그때 믿음이 많이 생겼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같아요.
4. 종교와 예술은 공존하기 힘들어 보이는 부분도 있는데요. 특히 종교는 믿음이 바탕이 되는데 반해 예술은 기존의 가치에 대한 도전과 의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삶의 부조리를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신의(v): 적절한 대답인지는 모르겠는데 주변에 연예인 친구가 있어서 밴드 씬에서 잘 나가는 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정신세계나 그런 게 궁금했는데, 굉장히 위태로워 보이더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지나친 음주, 자살을 비롯한 위태로운 생각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에 호기심을 갖고, 멋있어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꼭 위태롭고 불안해야 하는 건가요? 평범함 속에도 좋은 것들이 많거든요.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신앙생활로 많은 힘을 얻는데 자연스럽게 담배를 끊게 된지 5~6년 정도 됐어요. 맥주는 맛있는 음식 먹을 때 조금 먹었는데, 그것도 자연스럽게 안마시게 되더라고요. 저희는 공연 끝나면 녹차 마시면서 얘기하고 그래요. (웃음) 이인경(b): 저는 술은 마시지만 일부러 망가질 필요는 없다고 봐요. 거기서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대중들이 우울한 생각이나 위태로운 모습에 대해 동경하는 면은 분명 있는 것 같고, 어느 정도는 그런 이미지가 예술가의 모습으로 굳어진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많은 뮤지션들이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우울해하거나 방황하는 것 아닐까요? 김신의(v): 제가 사는 아파트 앞에 63빌딩이 있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면 회사원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여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일종의 긍정적인 자극을 받죠. 그들에겐 회사 업무를 보는 게 일이고 우리에겐 음악이 일이잖아요. 굳이 밤낮을 바꿔서 작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일할 때 나도 일하는 거죠.
5. 곡 작업은 보통 어떻게 이뤄지나요? 앨범 가사를 보면 헤어짐에 관한 얘기가 많잖아요. ‘소나기’ 같은 경우는 죽음과 이별에 대한 얘긴데요.
김신의(v): 그 곡은 실화를 바탕으로 썼어요. 제가 좋아했던 친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때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 생각을 하면서 썼던 가사고, 보통 작업을 하면 기쁜 기억보단 슬픈 기억이 많이 떠올라요. 하지만 슬픔을 위한 슬픔이 아닌 건강한 상태의 감정이기 때문에 전자와는 다르죠. 작업실로 쓰는 제 방에서 곡 작업을 하는데 작곡은 인경이랑 같이 하기도하고 가사는 곡이 나온 뒤에 제가 써요. 기타로 할때도 있지만 미디로 많이 작업하는 편인데 악상이 떠오르면 바로 작업하죠. 요즘은 장비가 너무 좋아서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어떤 악기든 다룰 수 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음악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 가사나 곡도 그렇지만 몽니 음악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신의 씨의 보이스도 큰 장점인 데요. 김신의(v): 노래를 잘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노래를 잘 하는 것과 음악을 하는 건 아주 다른 문제잖아요. 막연하게 음악이 어려운 작업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작곡을 해서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 못했어요. 대학 때는 자격증을 여러 개 따서 회사를 다닐 생각도 했답니다.
6. 몽니는 상당히 대중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인경(b): 어렵지 않은 멜로디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사가 그렇죠.
김신의(v): 저희는 아직 수면위로 떠오른 단계가 아니니까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가요를 듣는 분들에게도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가급적이면 좀 더 대중적으로 말이죠. 류감독: 저는 77년도부터 가요를 듣기 시작했는데 그 때 음악들은 오래 기억에 남아있거든요. 요즘엔 그런 음악이 나오지 않아 아쉬운데 어떻게 생각해요?
김신의(v): 저도 그런 부분이 참 아쉬워요. ‘인디 속 밴드 이야기’ 카페는 김기자님이 자주 음악을 바꿔 주시잖아요. 배경음악을 들으려고 일부러 카페 문을 열어놓곤 하거든요. 그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너무 좋은데 이쪽 음악은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류감독: 보통 사람들이 인디 밴드는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마니아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강하던 감성적이던 좋은 음악이라면 공유되어야 하죠. 언젠가부터 대중문화의 그런 흐름들이 멈춰버린 것 같아요. 제가 기획을 하는 이유는 이 쪽 씬의 좋은 것들을 소개하기 위해서예요. 몽니의 ‘소나기’나 ‘눈물이 나’같은 곡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대중화 시킬지, 밴드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기획의 방향과 전략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좋은 음악을 잘 찾아내는 김기자가 굉장히 질투 나죠. 이 친구는 귀가 상당히 좋아요. 김기자: 제가 발견한 좋은 음악은 다른 분들도 많이들 좋다고 하세죠. 이 씬에선 진중하고 작가주의적인 담론은 있지만 그런 접근은 일반인들에겐 너무 어렵게 느껴지죠. 그런 담론도 물론 필요하지만 징검다리 앞쪽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사람들이 들어서 좋은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길잡이가 없다는 거예요. 관련된 매체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너무 어려운 얘기만 하는 경향도 있죠. ‘인디 속 밴드 이야기’는 배경 음악에 아주 신경을 많이 써요. 듣는 즉시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찾아 선곡하는 편인데 뮤지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배경음악을 좋아하세요. 하지만 밴드의 색깔과 대중적인 코드가 잘 어우러진 곡이 많지는 않죠.
- 신의 씨가 곡을 대중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는 어떤 건가요? 실제로 작업 시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하네요. 김신의(v): 주로 곡 구성, 사운드와 관련된 부분인데요. 옷을 좀 바꿔 입는다고 할까요. 구성을 깔끔하게 하고, 곡 길이부터 쓰는 악기까지 오버되지 않게 짜놓죠. 사운드의 경우도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쪽으로 색을 입혀요. 예를 들면 어떤 부분에선 강렬한 기타 사운드 보다 서정적인 스트링이 더 감성을 자극하고, 드럼도 필터링을 걸면 느낌이 또 다르거든요. 그리고 귀에 잘 들어오는 곡 쓰는 게 제일 힘든 일인지도 몰라요. 오히려 어려운 곡 쓰기가 더 쉽겠죠. 김기자: 형식, 사운드의 구성에선 대중적인 접근이라는 게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곡 자체로써의 대중성 획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대중적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해도 듣기엔 아닌 경우가 많고, 자칫하면 본인들의 색깔도 잃게 되고. 밴드의 색깔과 대중적인 코드가 잘 어우러지는 지점을 찾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겠죠. 드문 경우지만 대중적인 감각이 있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뮤지션도 있었어요. 그게 큰 능력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7. 밴드들과 대화해보면 사운드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신의(v):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아는 프로듀서 분과 클럽 공연을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인디 밴드는 튜닝이 안 좋아”라는 말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 음악을 듣는 또 다른 관점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아마도 연주전에 악기를 튜닝했겠지만 연주를 하다보면 피치가 나가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 귀가 예민하질 못한거죠. 음악에서 음정이라는 건 굉장히 기본적인 거잖아요. 또 페스티벌에서도 많이 느끼는 거지만 사운드의 밸런스와 톤이 듣기에 불편함이 많아요. 같은 상황에서도 좋은 사운드를 내는 팀이 있기 때문에 소리를 잡는 게 엔지니어라도 그 핑계만 댈 수는 없는 거죠. 제가 프로듀싱 해준 팀들이 좀 있는데 처음에 좀 당황스러웠어요. 기존 곡에 악기를 입힌다던지, 편곡하는 부분을 도와줬는데 자기 생각들이 강하니까 타협을 잘 안하더라고요. 그건 사운드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그냥 고집일 뿐이거든요. 근데 또 막상 작업해서 들려주면 결과물을 좋아해요. 김기자: 얘기하신대로 밴드들이 사운드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지만 앨범이나 라이브를 보면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왕왕 있잖아요. 라이브도 그렇지만 앨범의 경우는 좀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신의(v): 앨범의 경우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하면 좋지만 시간적 경제적 문제가 있을 수 있겠죠. 저 같은 경우에는 1집에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김기자: 글쎄요. 한 가지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같은 곡이 정규앨범과 컴필레이션에 실린 경우인데 녹음을 비롯해 기타 과정이 따로 진행 됐거든요. 공교롭게도 컴필레이션에 실린 곡이 훨씬 소리가 살아있었어요. 믹싱과 녹음의 문제인 것 같긴 했지만 굉장히 아이러니컬한거죠. 김신의(v): 그 살아 있다는 표현은 라이브 느낌에 가까운 생동감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게 참 잡기 힘든 부분이에요. 라이브 하면서 녹음을 해보기도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공교로운 경우들이 있긴 있죠. 김기자: 제가 ‘인디 속 밴드 이야기’ 배경음악 순서도 어떻게 하면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까하고 몇 시간씩 고민하거든요. 외국 뮤지션의 곡 앞뒤로는 왠만한 팀들도 곡을 넣을 수가 없어요. 공간감을 맞추기가 힘들거든요. 물론 엔지니어의 노하우라든지 기술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뮤지션들도 분명히 느낄 거예요. 앨범들을 들어보면 본인들이 직접 녹음과 믹싱을 해도 의도대로 안 나오는 경우도 있고 나오는 경우도 있고, 뮤지션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8. 근래 사이트에 새로운 곡들도 보이고 계속 곡 작업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근황은 어떠신가요? 김신의(v): 회사에서 나온 근래 6개월간은 정말 값진 시간이었어요. 세상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느꼈고 자신감이 좀 지나쳤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저희는 뮤지션이니까 음악으로 승부해야죠. 6개월 동안 거의 집에서 작업만 했어요. 지금까지 걸어온 거라면 이젠 치고 올라가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동안 좋은 곡들이 여럿 나왔고 2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12곡정도 넣을 예정인데 고르기만 하면 되고요. 전에 녹음을 많이 해놔서 50%는 진행 돼있는 상태예요. 내년 3월에는 인디 영화 찍으러 영국에 가게 될 거 같아요. 감독님이 지금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계신데 전에 방송국 PD셨고 영화를 굉장히 찍고 싶어 하셨데요. 인디영화 찍고 싶어서 밴드를 찾던 중에 어떤 분이 저희를 추천해주셨어요. 국내외 영화제를 대상으로 한 영화로 알고 있고, 영화 OST를 저희가 준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기자: 좋은 기회네요. 최근에도 ‘원스’라는 인디 음악 영화가 굉장히 많은 호응을 얻었잖아요. 좋은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9. 밴드들이 자체적으로 앨범을 내거나 직접 레이블 차리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몽니의 경우는 기획사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요. 김신의(v): 밴드들의 그런 움직임은 좋은 방법이라고 봐요. 저희도 입소문을 내기 위해서 사이트에 곡도 올리고 자체 뮤직 비디오도 올렸거든요. 어차피 음악은 저희가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만 홍보나 마케팅은 그런 차원이 아니잖아요. 집에 복합기를 갖고 있는데 자기 일을 잘못해요.(웃음) 그리고 음악적으로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과 차이가 나죠. 집에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 그런 측면에서 1집 활동의 서포트를 좀 더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김신의(v): 글쎄요. 어설프게 서포트 받으면 괜히 콧대만 높아지죠. 그런 경우 있잖아요. 비슷비슷한 팀들인데 어디 나갔다고 태도가 바뀌고. 저희가 첫 회에 출연한 ‘MBC 쇼! 음악 중심’의 경우도 작가한테 직접 전화가 왔었던 거였고요. 라이브 방송 프로그램에 많이 나가고 뮤직비디오도 방영되고 그러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못했던 것이 지금의 저희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 새 소속사를 알아보는 건 생각의 차이 때문인가요? 김신의(v): 기획사라기보다는 보다는 대중가요, 작곡 관련이 더 많아 색깔이 좀 안 맞았어요. 회사에 많은걸 바라진 않아요. 열심히 하다보면 음악 좋다는 얘기도 듣게 될 거고, 그럼 기회가 언젠가 오겠죠. 항상 열심히 하면서 준비해두려고요. - 전에 있던 소속사가 대중가요, 작곡 관련 회사라고 하셨는데 작곡도 했었는지. 김신의(v): 프로듀서 형이 가요도 한번 써보라고 해서 쓴 적이 있어요. ‘외눈박이 물고기’라는 곡인데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지현우 씨가 그 노래를 불렀죠. 그쪽 사장님이 저희 회사에 오셔서 제 곡을 듣고 괜찮다고 하셔서 곡을 주게 됐고 그때 처음으로 작곡가로 등록했어요. 그걸로 한동안 따뜻했죠.(웃음) 하지만 요즘 가요는 순환도 빠르고 계속 듣는 게 아니니까요.
10. 여러 가지 공연과 페스티벌에 많이 참여하셨을 텐데 아쉬운 점이나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
김신의(v): 저는 주최 측보다는 저를 비롯해 밴드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데요. 어차피 모두 음악 하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공연도 보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음악 쪽은 서로 견제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물론 저도 먼저 인사를 한다든지 그런 거 잘 못하고 공연을 항상 다 보는 것도 아니지만 같이 공연한 밴드들이 다 친하게 지내고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런 점들이 참 아쉬워요. 이인경(b): 저도 동감하고요. 리허설 할 때 음향, 조명 분들하고도 얘기가 잘 돼서 좀 더 디테일한 부분도 준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관객들도 더 감동하지 않을까요. 김기자: 페스티벌을 준비할 때도 뮤지션 분들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데 보통 별 말이 없어요. 일본 같은 경우엔 음향, 조명은 물론 음료수 종류까지 체크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까지는 안 되더라도 뭔가 소통을 해야하는데 말이죠. 모니터링이나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알아서 준비해 주면되지 뮤지션이 일일이 다 얘기해야 되냐는 반응도 있죠. 그렇게 알아서 준비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으면 좋겠지만 페스티벌이나 공연 쪽도 발전해나가는 와중이거든요.
김신의(v): 바라는 거 하나 생각났어요. 제가 구로 안양천에서 공연할 때 피크를 놓쳐서 다음 곡 ‘소나기’를 손톱으로 치다가 아파서 혼났어요. 피크 스탠드가 있으면 좋겠네요. ‘동경사변’ 아시죠? 공연할 때 스탠드에 피크가 착착 꽂혀있어요. 하다가 피크 던지고 빼고 던지고 하는데 멋지더라고요. 그리고 위치가 올라갈수록 대접 받잖아요. 저희는 열심히 해야 하는 입장이고 그런 자리에 나가는 것 자체가 좋아요. 준비된 상황에 맞춰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것이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갔을 때 요구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기자: 요구라기보다 소통이 필요한 거죠. 뮤지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무대를 꿈꾸는지 말이에요. 당장 페스티벌에서 실현할 수 없는 거라도 그런 꿈을 나눈다면 준비할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오거든요. 인터뷰를 하다보면 나이가 어리거나 연륜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자제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원활한 얘기들이 오고갔으면 해요.
11.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추천하고 싶은 팀이 있으신지? 김신의(v): 안녕 바다. 나이가 어린데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자극이 돼요. 그리고 우주히피! 우연히 홍대 놀이터에서 봤는데 너무 잘하더군요. 자세히 봤더니 아카데미 동기였던 베이스 과대가 콘트라베이스를 치고 있더라고요. 콘트라베이스, 어쿠스틱 기타& 보컬, 퍼커션으로 구성된 밥 말리 같은 레게 스타일이랍니다.
2007. 11. 15 김기자 |
첫댓글 좋은 정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