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7. 6. 토요일.
날씨 흐리다.
오후에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석촌호수 서호쉼터로 바람 쐬러 나갔으나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기에 이내 귀가를 서둘렀다.
요즘 나는 왜그리 지치는지. 조금만 걸어도 지친다. 등허리뼈가 더욱 굳어진 탓일 게다.
<한국국보문학> 2024년 8월호에 올릴 글을 골라야 한다.
밤중에 예전에 써둔 내 글에서 고르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껏 내 고향 이야기, 내 어머니 이야기 위주로 <한국국보문학> 수필방에 글 올리고 있다.
이번 호도 그럴 예정이다.
글 더 골라야겠다.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
최윤환
2005. 10. 15. 토요일.
오후 한 시 반쯤에서야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 2반에 있는 고향집에 도착.
어머니*는 새댁 시절에 직접 팠다는 샘 가생이에서 은행 겉껍질을 벗겨내고 계셨다.
내가 큰 함지박 안에 은행알을 쏟아부은 뒤 목이 긴 장화를 신은 채 통 안으로 들어가서 잘근잘근 밟아서 겉껍질을 으깼다. 장화발로 밟을 때마다 능정거리는 겉껍질을 벗겨냈다. 빗물로 몇 차례 우려내면서 겉껍질에서 배어 나오는 고약한 냄새, 옻냄새를 없앴다. 물을 자주 여러 번 갈아주어야만 냄새가 고약하고 독성이 다소 있는 옻이 가신다. 은행알 두 말 반을 앞마당에 멍석을 펴서 널어 가을햇볕에 말렸다.
해마다 몇 말(斗) 정도는 줍기에 서울로 가져온다.
은행나무도 옻나무처럼 옻을 풍긴다. 피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옻을 타며, 전신이 붓고, 살갗에 두드러기가 난다. 그래서 옻 오른 사람은 가려운 몸뚱이를 늘 긁적거렸다.
내 아내는 은행알을 만지다가 옻을 타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며, 은행열매를 아예 쳐다볼 생각조차 안 했다.
웅천읍 구룡리 장마(감나무골) 이모네 이종 큰 형님(남포 백 씨)이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는 은행나무. 은행열매가 동네 안에서 가장 굵다고 한다. 바깥마당 가생이에 있는 은행나무 이외에도 내 텃밭 사이로 낸 마을 안길 뚝 위에도 여러 그루가 있다. 마을 안길 바닥에 떨어진 은행알을 주워야 하는데도 제때에 줍지 못하면 오고 가는 차량과 사람 발길에 으깨어져서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올해에는 열매 굵기가 자잘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은행알이 바깥마당 땅바닥에 떨어지면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조금씩 주워서 함지박 안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물을 가득 채워 두면 열매껍질이 부패되고 썩는데 시간이 지나면 구린내가 더 많이 난다.
함석지붕 밑에 커다란 물통 여러 개를 놔두면 빗물이 가득 차 넘쳐흐르며, 빗물을 떠서 조금씩 붓고는 장화 신을 발로 은행알을 으깨여서 겉껍질을 벗겨낸다. 마지막으로 맑은 샘물을 퍼올려서 깨끗이 씻어낸다.
2005. 10. 16. 일요일.
아침밥을 먹은 뒤 어머니, 아내, 나 셋이서 웅천읍 관당리에 있는 무창포해수욕장*으로 갯바람 쐬러 나갔다.
'모세의 기적' 또는 '바다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진 해수욕장에는 외지에서 구경 온 여행객들이 갯가에 가득히 찼다.
음력 9월 보름사리는 오전 9시쯤에 바닷물이 가장 많이 쓰며, 무창포 앞바다에 있는 석대도(石台島 섬)까지 바닷물이 거의 빠져 물러났다. 어머니와 아내는 바닷물이 빠져 돌너덜이 드러난 곳까지 들어가 중간 크기의 박하지(게)를 잡았다. 아침 늦게서야 바닷가에 갔으니 갯것은 많이 잡지 못했다. 늙은 어머니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몸빼, 바지를 갯물에 적셨다고 한다.
나는 갯것을 잡지 않고는 무창포 제3공영주차장에서 자동차 주차 연습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은행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간 넝쿨 강낭콩을 긴 장대로 조금 걷어냈다.
아내는 텃밭에서 무 잎사귀를 뜯어냈고,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에 애호박을 땄고, 어린 호박잎을 추려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밤나무 아래에서 알밤을 줍고, 왕대나무 장대를 높이 쳐들어서 밤송이를 후려쳐 털었다는 어머니.
모래흙 속에 묻어 둔 알밤을 삽으로 퍼낸 뒤에 알밤 서너 되 덜어냈고, 나머지는 누이들 선물용으로 조금 남겼다. 또 모래 속에 알밤 열 개를 묻었으니 내년에 새싹이 돋아나오면, 묘목으로 키워서 텃밭에다 이식해야겠다.
은행알, 알밤, 애호박 몇 개, 호박잎, 냉동하여 얼린 무화과 풋열매, 넝쿨강낭콩 등을 비닐봉지에 넣은 뒤 차 트렁크 안에 밀어 넣었다.
서해안고속도를 따라 서울로 되올라오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차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서해바다가 멀리서 보이는 간척지(干拓地) 들녘에는 벼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추수한 논이 눈에 이따금씩 띄었으나 아직도 논에 벼가 그득히 남아 있어서 한 폭의 그림이었다. 평화롭고 아늑해서 가을들녘을 바라보기에도 좋았고, 풍성하고 풍요로운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은 10월 17일.
바닷물 달력으로는 7몰이니 오늘보다 40분 늦게 바다가 열리며, 바닷물은 더 많이 빠진단다. 그러나 내일은 월요일이기에 누가 갯것을 하랴? 무챙이(현지에서는 '무챙이'라고 발음) 주민들만이 신이 날 것이다.
나는 해마다 음력 10월 상달 초에 시향/시제를 지내려고 고향에 간다. 이때가 가장 적기라서 은행알을 잔뜩 줍는다.
어머니는 만 85세가 지났기에 노쇠현상으로 나날이 쇠약해지고 있었다. 이번 고향으로 내려가서, 홀로 사시는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했다.
2005. 10. 16. 일요일.
* 어머니 이천동(李賤童) :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용머리)에서 기미년 1919년 음력 12월 그믐생(양력 1920. 2. 19.) 태어나심
2015. 2. 25. 밤 11시 15분에 돌아가심(만 95세)
* 옻 : 옻나뭇과 식물로 인해 생기는 접촉성 피부병
* 은행(銀杏)은 동아시아 원산의 나무로 암수 딴 그루
* 은행알(잎사귀 포함) 냄새 : 똥냄새, 구토 냄새, 발냄새, 서양에서는 썩은 버터 냄새라고 하며, 냄새가 독해서 벌레조차 잘 끼지 않음
* 무창포해수욕장 : 일제강점기인 1928년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으로 해수욕과 갯벌체험이 함께 가능
은행(銀杏) 알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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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
용서해 주실 게다
오늘은 2024. 7. 6. 토요일.
요즘 아내는 은행알을 넣은 잡곡밥으로 밥상을 차린다.
나한테는 밥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