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위기, 재난이 우려된다: 행정망 장애 사태와 정부의 역할
✔ 디지털플랫폼정부? 시스템 유지를 운에 맡기는 현실
✔ 헌법 34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책무는 어디에?
✔ 민간 서비스도 대국민 사과를 하는데... 책임 회피의 달인 정부
✔ 지금 이시간 잠복해 있는 위기, 위험, 재난 총점검이 시급하다
수많은 일들에서 '국가란 무엇인지' '국가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묻게 되는 시대다. 2023년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특정 기관에 따라서는 22일까지) 대한민국 행정부가 운영하는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했다. 수많은 민원처리 업무들과 공적 처리가 필요한 일들이 며칠 동안 마비되는, 나름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왜 그런 것인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여전히 명확한 답이 없다(답이 없다기보다 답을 내놓으려는 의지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단지 전산망 마비가 아니라 더 많은 일상의 마비, 일상의 위기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위험 사회'임은 이미 명백하다.
책임을 지는 지도자는 문제 앞에서 호통을 치는 게 아니라 문제 전에 묻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잘 준비되고 있는 것이냐' '위험요소에 대한 대비책은 있느냐' 등등 물어볼 것을 물어보는 것만으로 사회가 마주하는 방향성이 달라진다. '디지털정부'와 '재난/참사'에 관심이 깊은 필자의 침착한 점검과 제안을 들어본다. 문제는, 언제나 기본에 있다. [편집자 주]
’정부혁신, 디지털플랫폼정부와 함께’는 11월 23일부터 3일간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의 슬로건이다. 최근 겪은 일련의 사태로 디지털플랫폼정부가 무엇인지, 우리 정부도 잘 모른다는 게 분명해졌다.
’정부혁신, 디지털플랫폼정부와 함께’.
11월 23일부터 3일간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의 슬로건이다. 한때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디지털플랫폼정부'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더이상 알고 싶지 않다. 우리 정부도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게 분명해졌다. 정부 혁신이 무엇인지도 다시 공부해야 할 처지다.
이태원 참사 이후, 일 잘하던 정부가 왜 움직이지 않았는지 추적하며 《정부가 없다》라는 책을 썼다. '정부란 무엇인지' 잊고 사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유능한 정부를 가지려면 정부가 원래 어떤 존재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번 행정망 장애 사고 역시, 정부의 다른 사고와 닮았다. 반복되지 않으려면 그 구멍을 인지했으면 한다.
일상 현안 점검의 구멍은 왜…
일단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상 업무 문제다. 헌법 34조는 정부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이야기한다. 이태원 참사 때, 대통령실이나 국정상황실 현안 회의에서 ‘코로나 이후 3년 만의 축제에 10만 명 넘게 올 텐데 대책은 세웠냐’고 한 마디만 물었어도 ‘물론입니다, 기동대를 배치해서 대비하기로 했습니다’, ‘경찰과 구청이 협조해서 현장 대응할 예정입니다’ 같은 대답과 준비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행정망 인증시스템 네트워크 장비를 업데이트해야 했다. 그런데 인증서버 백신 관련 업데이트 업무도 있고, 공무원 전용 새올 서버 업데이트 작업도 필요했다. 대전 통합데이터센터의 장비 배치 변경도 해야 했다.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이뤄졌다는 보도는 황망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책임자는 실무자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업데이트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 ‘이런저런 업데이트를 동시에 해도 괜찮으냐?’ ‘혹시 장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업무 외 시간에 하는 것은 어떠냐?’ ‘업데이트들은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유관 기관과 정보 공유는 된 거냐?’, ‘컨트롤타워는 행안부에서 맡고 다른 조직과 협업하는 것은 얘기가 됐느냐?’ 이렇게 윗사람이 물으면 아랫사람은 ‘다 챙겨서 진행했으니 염려 마시라’, ‘아, 그 부분은 다시 챙기겠다’, ‘상대방 조직이 제 선에서는 말이 안 통하니 위에서 정리해주면 좋겠다’ 등으로 대답한다. 이게 상명하복 공무원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참사와 사고는 이런 일상적 업무에 구멍이 생기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런 것들을 챙기라고 그 많은 회의를 하는 것이다. 실무자가 놓칠 수 있는 것을 책임자가 챙기고, 각 기관 책임자들 중에서 컨트롤타워를 분명히 하고 진행하는 게 기본이다. 네트워크 장비 교체나 업데이트는 매뉴얼 대로 하면 별로 탈날 게 없다. 정부도 지금껏 그렇게 해왔고, 민간에서도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
윗사람의 관심사는 어디에
책임져야 할 윗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여부는 많은 것을 바꾼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해외에 한국의 '디지털플랫폼정부'의 성과를 알리는 전도사다. 지난 12일부터 포르투갈과 미국에서 디지털정부 성과를 홍보했고, 이번 사태로 18일 잠시 귀국했다가 21일 다시 영국으로 출국했다. 이른바 ‘국제사회 전자정부 선도국가 위상 강화’ 사업 예산은 올해 77억 원에서 내년 86억 원으로 늘어났다. 디지털정부 협력이 포함된 ‘행정한류’ 예산도 7억 원에서 25억 원으로 확대됐다. 모바일 신분증 플랫폼 관련 예산은 올해 99억 원에서 내년 205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4일 오후(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 쉐라톤 리스보아 호텔에서 톰 리드 영국 디지털정부청장과 한-영 디지털정부 협력 MOU 체결 계기 양자협력 확대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기존 시스템을 유지·보수하고 보안을 강화하는 사업은 예산이 줄었다. 주요 정보통신 기반 시설 보호 예산은 20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정보시스템 소프트웨어 보안 체계 사업은 20억 원에서 9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는 기사가 있었다. 국외 소통은 좋은데 일상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는 신경을 덜 썼다. 자랑하고 생색내는 데만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다. 홍보 예산을 늘리는 데 장관이 결재했다면, 그만큼 줄어든 시스템 안정을 위한 예산은 괜찮은 것인지, 담당자에게 물어보기는 했을까?
위기 대응 매뉴얼은 어떨까
참사와 사고는 그 이후 대응이 더 중요하다. 골든타임에 사람을 더 구할 수 있도록, 혹은 국민 불안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는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부 행정망 먹통 사태는 해결되기까지 무려 56시간이 걸렸다. 네트워크 장비 업데이트로 인한 오류였다는 정부 설명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결과다. 일상 업무와 위기 대응은 완전히 다르다. 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대응에 필요한 자원을 배치해야 한다. 정부는 다행히(?) 장애 대응 경험이 풍부했다. 3월에는 법원 전산망이 마비됐고, 6월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올들어서만 세 번째다.
정부 행정망이 마비되는 장애 사태에 대한 매뉴얼은 진작 만들었어야 했다. 사실 매뉴얼대로 했으면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겠지만 그건 넘어가자. 이런 경우, 미리 정해놓은 대로 컨트롤타워가 가동되면서 정부 조직 중 관련 역량을 확보한 기관 혹은 민간 전문가들의 조력을 긴급하게 확보하는 프로세스도 돌리고, 불편과 피해 최소화를 위한 업무 안내 및 행정 문서 날짜 소급적용 방안 등 대국민 소통부터 했어야 한다. 실제 지난해 카카오톡 먹통 사태 때 정부는 안전안내문자 메시지로 국민을 안심시켰다. 카카오톡이나 카카오T, 내비게이션 등 서비스 복구 중이니 염려말라고 했다.
이번에 9시간 넘도록 침묵하다가 ‘금일 정부서비스 장애로 인한 불편처리 안내’라는 보도자료만 내놓은 행안부는 사실 재난문자 관리부처다. 행정 업무에 문제가 생겼으나 복구 중이니 송구하다는 메시지라도 보냈다면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른 국민들의 불편을 덜지는 못해도 화가 덜 났을 수는 있겠다. 잠시 곤란했겠지만 정부가 책임지고 행정 지원해준다고 하면 덜 불안하지 않았을까.
11월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 관련 복구 상황 등을 점검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책임지는 정부란 무엇인가
카카오톡 장애 사태 당시 공동대표 두 명이 대대적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정부는 장애 원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사과와 보상까지 압박했다. 백업시스템이 부족했다고 호통도 쳤다. 사실 카톡은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민간 서비스다. 영향력이 막강하기는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는 카톡이 아니라 정부 행정망이다. 민간 서비스 장애에 대해서도 중대재해에 준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봤던 정부는 이번 사태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이 중대재해를 일으켰을 때 처벌하는 것만큼 정부도 책임지면 된다. 정부가 설마 외주업체나 하급 실무자에게 책임을 미룰까 싶은데, 일단 여당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1일 “거듭되는 국가전산망 마비는 특정 정부의 잘못이라기보다 2004년 전자정부 도입 이후 역대 정부에서 누적된 결과”라며 “국가기관 전산망의 경우 기술력이 높은 대기업의 참여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에서도 사고가 없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언제까지 전 정부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이번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한 게 문제라고 떠넘길 것인가. 행정망 장애 사태의 책임자는 행안부 장관이다. 전 세계를 누비며 디지털플랫폼정부를 자랑하는 그가, 바로 이 사태의 책임자다.
반복되지 않으려면
민간 서비스가 장애 복구에 사흘씩 걸리면 이용자가 다 떠나갈 것이다. 그만큼 있을 수 없는 사태란 게 분명하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의 해명과 설명이다. 모든 전문가들이 정부가 설명한 장애라면 복구에 56시간씩 걸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고가 터졌는데 불투명한 해명만 내놓다니, 민간 기업이었다면 정부가 엄청나게 화냈을 일이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없다면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고와 재난이 반복되는 것은 실무자나 하위직들이 책임 회피에 급급하면서 진짜 원인을 묻어두기 때문이다. 국민이 다 알아듣기에 어려운 기술적 장애 문제지만, 전문가들은 머리를 맞댈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는 더 상세하게 원인을 공개하고, 이번 사태가 기술 탓인지 관리 부실인지 정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민과 관 모두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매뉴얼도 정비할 수 있다. 법원 행정망과 교육망의 장애 당시 문제점을 세밀하게 분석한 백서라도 내놓았다면,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가 그때 이뤄졌다면,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2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12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행정안전부
무엇보다 윗사람이 제대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장관과 차관, 국·실장급 등 윗사람이 책임지지 않고서 외부 업체나 실무를 맡은 아랫사람만 처벌하면 서로 책임 회피에만 전력을 다하게 된다. 대체 왜 전 세계 수많은 영역의 전문가들이 리더십을 떠드는지 정말 이 정부 사람들만 모르는 것인가? 책임지는 리더가 있어야 조직이 움직인다. 순식간에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참사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회피한 정부였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 따져 묻기라도
해야 하니 각자 열심히 떠들자.
디지털 정부의 실력이란
평화는 힘으로 유지된다. 사이버 안보에도 실력이 필요하다. 해킹이든 장애든 가상 세계에서 뚫리면 현실 세계가 마비된다. 인터넷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이나 일반 기업들도 보안에 애쓰는 것은 정부보다 덜하지 않다. 디지털플랫폼정부라면 다양한 관련 컨퍼런스에서 공공의 기술과 관리 능력을 공유하며 동반성장을 이끌어주면 좋겠다. 민간 전문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을 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은 곤란하다.
국정원은 마침 ‘사이버안보 업무규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대통령령이라서 국회 동의 없이 12월에 개정될 예정이다. 국정원이 앞으로 사이버 안보 상황에서 ‘공세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지만, ‘국가 안보와 국익에 반하는 활동에 악용될 만한 상당한 개연성’ 만으로도 정보통신기기와 소프트웨어를 검증하고 조치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국가·공공기관 이용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 영역도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는 활동 대상으로 명시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서비스에도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이게 디지털플랫폼정부의 실체인가?
일상적 전자정부의 ABC가 무너졌는데, 다른 한편에선 정부 일각의 사이버안보 권한 강화만 보게 되니 난감하다. 디지털플랫폼정부는 데이터와 AI까지 동원하는 담대한 구상이었다. 그러나 행정망 장애 사태는 최첨단 AI 기술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기본 매뉴얼이 없거나 지켜지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만들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더 심각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드론 등 첨단 디지털 역량을 적극 활용해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인파 관리) 기술을 개발하라”고 했지만, 그 참사는 드론이 없어서 일어난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은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당시에도 ‘AI 홍수 예보’ 등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대책을 요구했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장관에게 책임을 제대로 묻기만 해도 업무 태세가 달라진다. 제발 기본을 제대로 하는 정부를 갖고 싶다.
글쓴이 정혜승은
문화일보 기자, 다음 대외협력실장, 카카오 부사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으로 합류해 국민청원 등을 만들고 운영했다. 메디치포럼 프로그래머로서 인터뷰집 《힘의 역전 1, 2》를 냈고,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를 썼다. 최근 이태원참사에 대한 기록집 《정부가 없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