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그 이상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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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독후감 쓰기부터 잘했으면 좋겠어요
맨 처음 강사 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강의 대상을 성인으로 잡았다. 성인을 위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등단을 꿈꾸거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나의 경험과 노하우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어느 날 초등학생 학부모에게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자녀가 독후감 쓰는 것을 지도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 수업을 맡아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수업을 늘릴 수 있다면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닌가!
초등학생들과의 수업은 걱정과는 달리 금방 적응됐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언맨 이야기를 해주거나 요즘 유행하는 롤업젤리에 싸 먹는 메로나를 사가는 날이면 평소에는 산만하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히 수업을 들었던 것이다.
한 번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좀 어려울 것 같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바로 “글을 왜 쓰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의외로 초등학생들은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좋아했다. 평소에 질문이 없던 학생들도 손을 들어가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했다. 성인 학생들에게 들려주던 글쓰기에 대한 사유도 신기할 정도로 척척 알아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는 이런 질문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선생님이 쓴 글 중에 최고의 작품은 뭐였어요?”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면 돼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예요?”
그날 이후 초등학생 수업에 대한 부담감은 점점 사라져갔다.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똑똑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유일하게 그룹 수업을 하는 두 명의 학생이 있다. 서울 해누리초중이음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홍예지 양과 서예지 양이 그 주인공이이다. (꼭 실명을 밝혀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둘은 이름이 같아서 친구가 됐다. ‘예지들’은 내 학생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다. 교재에서 지루한 부분이 나와도 한 문장 한 문장 소리내서 읽으며 재미있게 수업하려고 노력한다. 그 모습을 보고 찐한 감동을 먹었다.
수업은 송파구에 있는 홍예지 양의 집에서 진행된다. 베이킹이 취미인 어머님이 수업 때마다 직접 구운 빵을 대접해주신다. 미리 읽어온 읽기 자료를 가지고 독후감 쓰기 30분, 어휘 공부 30분, 글쓰기 공부 30분을 하고 나면 수업이 끝난다.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독후감 쓰기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님들은 수업을 의뢰하면서 대부분 이런 말씀을 하신다.
“독후감 쓰기부터 잘했으면 좋겠어요.”
독후감 쓰기에 대한 부모의 근심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아이들은 느낀 점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독후감 숙제가 있었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느라 방학 숙제로 썼던 일기만큼 애를 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학부모님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렇게 말한다.
“감상을 길게 써야 하는데 우리 아이가 줄거리를 더 길게 써요.”
“느낀 점은 한 줄밖에 안 쓰는데 제가 보기에 문장이 너무 유치해요.”
왜 학생들은 유독 줄거리를 길게 쓸까? 요약 능력과 감상을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분량이 많고 복잡한 책은 요약하기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더욱 쉽고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어휘력이 부족한 경우 문장이 유치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똑같이 ‘재밌다’를 써도 어떻게 재미있는지가 표현돼야 한다. ‘긴장감이 넘쳐서 재밌다’, ‘주인공이 위기에 빠져서 재밌다’처럼 구체적으로 써줘야 한다. 그냥 ‘재밌다’라고 쓰는 것은 ‘존잼’만 못하다. 초등학생의 글이 유독 ‘초딩스러운’ 이유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묘사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예지들’은 글을 참 잘 쓰는 학생들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장점이 확실하다. 서예지 양은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이나 인물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논리적인 글을 쓴다. 반면 홍예지 양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해 소설이나 시를 쓰며 글쓰기를 하나의 놀이처럼 받아들인다.
어느 날 둘에게 오 헨리의 단편 「되찾은 양심」을 보여주었다. 출소 후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던 절도범 지미 발렌타인이 금고에 갇힌 약혼자의 가족을 꺼내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는 이야기다. 서예지 양은 이런 이야기를 잘 파악해 줄거리를 논리적으로 잘 써내려갔다. 반면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홍예지 양은 ‘지미 발렌타인은 사랑 앞에서는 온순해진다’라는 표현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동화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를 보여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예지 양은 이번에도 시간 순서대로 줄거리를 잘 요약했다.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강요에 혼란스러워 하는 중학생 소녀 셀레나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이다. 반면 홍예지 양은 셀레나의 부모님을 보며 ‘마치 꽃을 피우지 못하도록 흙을 짓밟는 모습 같다’고 표현했다.
나는 종종 두 학생이 글을 바꿔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다른 곳에서 발견함으로써 균형 잡힌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지들’은 이제 공동 작업으로 직접 소설을 써보는 수업을 앞두고 있다. 글쓰기 실력이 계속 성장하고 있어서 선생님으로서도 큰 보람을 느낀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지만 동료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때로는 이러한 깨달음을 어린 학생들에게서 얻는다. < ‘잘 쓰겠습니다, 일탈 강사 김연준이 들려주는 솔직담백 글쓰기 라이프(김연준, 서교출판사, 2024.)’에서 옮겨 적음. (2024. 7. 1. 화룡이) >
첫댓글 글을 바꿔 읽는 것도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 되지요..
의초 시인님은 부부가 함께 글을 쓰시니
최애 독자가 가장 가까이 계시네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