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울산시에서 울산에 관한 종합교양서적을 발간할 때 필자도 집필자로 참여하였다. 당시 책의 제목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집필자 회의 때 여러 의견이 올라왔다. 그 중 ‘반만년 울산 역사’ 비슷한 제목이 있어서 필자가 반대 의견을 제시한 기억이 있다. 결국 책 제목은 ‘울산을 한 권에 담다’ 라고 담백하게 결정되었다.
예전 필자가 어릴 때 ‘조국찬가’ 라는 노래가 tv에 자주 틀어지곤 했다. ‘동방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반만년 역사 위에 찬란하다 우리 문화~~~’ 이런 가사였다. 노래가 웅장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조국의 역사를 반만년에 묶어 버린 고약한 가사였다. 이 반만년은 기원전 2333년 단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건국한 이래 지금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고조선(사실 정확한 나라명은 조선이었다.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가 앞에 古자를 붙인 것이다) 건국이 지금으로부터 4357년 전이니 반만년에 가깝기는 하다.
반만년은 고조선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이지 절대 우리 조상들의 활동했던 기간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 때와 고조선의 건립 연대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을 의외로 많이 만났다. 최초 국가 설립 연대, 국가의 정의,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언제 건국되었는가를 얘기하자면 사실 너무 복잡하다. 그러기에는 이 지면이 너무 좁아 오늘은 생략하겠다.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지 연구자마다 견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구석기시대가 시작된 5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활동했다고 본다. 신석기시대가 기원전 1만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면 결국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구석기시대가 49만년으로 약 98%을 차지한다. 우리 역사는 구석기시대가 98%, 신석기시대가 1.9%, 청동기시대부터 지금까지가 0.1%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 존속한 기간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
구석기시대란 돌을 깨뜨려서 도구를 만드는 시대를 말한다. 즉 뗀석기가 사용되는 시기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때의 집자리나 무덤과 같이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고,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도구인 석기만이 출토된다. 동굴유적을 제외하면 집자리와 같이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정착보다는 이동생활을 주로 했으며 농사보다는 사냥이나 채집, 어로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은 1999년 무거동 옥현유적이 조사되기 전까지 구석기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된 사례가 없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이라면 일제강점기 때 조사된 신암리유적이나 현재의 해안선보다 아래쪽에서 조사된 황성동 세죽유적, 작살이 박힌 고래뼈가 발견된 황성동유적 등 학사적으로 유명한 곳이 많지만 구석기유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무거동 옥현유적은 청동기시대 집터와 쌀을 수확한 논유적으로 유명한데 청동기시대 집을 만들기 위해 굴착하였던 층에서 뜻밖에 구석기 유물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몸돌, 긁개, 톱니날, 찌르개, 밀개 등의 석기류이다. 옥현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는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못해 전문가라고 자청하는 우리가 보아도 석기인지 모를 때가 있다. 오로지 돌만으로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 구석기 연구자들의 그 지난한 활동에 항상 경외감을 가질 정도이다.
울산지역에서 본격적인 구석기유적 조사는 KTX 울산역 역세권 개발부지에 대한 발굴이 최초이다. 두 곳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한 곳은 현재 울산역 공용주차장 부지 동쪽의 도로구간이며 한 곳은 울산역 종합환승센터가 들어설 부지이다. 이곳에서 구석기유물이 무려 1천500여 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범서읍 입암리에 도로 확장공사 전에 유적의 분포여부를 확인하는 시굴조사에서 구석기 유물이 확인되어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몸돌, 돌날, 격지 등 200여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울산에서 구석기가 발견된 곳이 세 곳에 이르는 것으로 볼 때 앞으로도 구석기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돌을 손에 쥐고 석기를 만들 때 기본 원칙은 돌덩어리에서 작은 조각을 떼 내는 것이다. 이 때 원래의 돌덩어리를 몸돌(석핵), 떼 내어진 조각을 격지(박편)라고 한다. 구석기는 크게 몸돌석기와 격지석기로 구분할 수 있다. 떼어낸 격지를 다시 다듬어 정교한 석기를 만드는 것이 발달된 기술인데, 이 기술로 석기를 정밀하게 만들었던 때를 후기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지금부터 대략 4, 5만년 전에 후기구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울산지역에서 조사된 구석기 유적은 모두 후기구석기시대에 해당된다. 반만년이 아니라 적어도 3, 4만년 전 울산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다. 앞으로 더 이른 시기, 전기구석기시대까지 시기가 올라가는 구석기유적이 발굴되어 우리 울산의 역사가 50만년 전까지 더 깊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