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칼럼. 김해귀 목사. 도토리 키제기
도토리들이 모여서 누가 더 큰 도토리인지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도토들은 모두 고만고만한데 큰 도토리 작은 도토리를 고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속담에도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을 보면 “도토리 키재기” 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큰 소리 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옴니다. 자신들이나 청문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비슷비슷한 도토리들이기 때문입니다.
“도토리 키재기” 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심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제자들은 근심하면서 “주님 나는 아니지요” 대답을 했습니다.
가롯 유다도 “선생님 나는 아지지요” 대답을 했습니다. 가롯 유다의 대답은 제자들의 대답보다 참 뻔뻔 스럽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처럼 “주님”으로 부르지도 않고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또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 주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니 가롯 유다는 현행범이고 다른 제자들은 아직은 범인은 아님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아님니다. 가롯 유다나 제자들이나 비슷한 도토리들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음모는 꾸미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경고를 듣고서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인을 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모두다
도망쳐 버렸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는 처형장에는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롯 유다나 베드로나 제자들이나 “도토리 키재기를 했습니다 거기서 거기고 오십 보 백보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도 예외 일 수 없습니다. 나도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물음에 “주님 나는 아니지요?” 라고 대답하지 말고
주님? 나를 도와 주세요? 주님을 배신하고 배반하지 않도록 나를 도와 주세요?
간구하면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인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