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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상주의 21세기 비전을 고민하는, 전국 출향 상주인들의 이야기
병풍산(屛風山)366 인터뷰 ⑪
열한번째 병풍산366 인터뷰 릴레이는 지난 5월 27일 오후 서울 청계 7가 헌책방거리에서 이어졌다. 선배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2층 창가에서 내려다보며 빙긋 웃는 모습으로 ‘여기야!’ 라며 손짓을 했다. 그의 옛날 모습을 금방 알아채고 부리나케 계단을 오르는 짧은 그 시간에 주마등처럼 스치는 선명한 수채화 장면들이 생생했다. “형은 하나도 안 변했네요”로 시작된 그날 저녁엔 아무 걱정과 근심이 없었다.
나무이야기꾼, 종로문인회원들과 상주문학기행을 다녀오다
石: 형은 그림을 계속 그리지 않았어요? 양묵이 형은 부산대학교 서양학과 교수라서 1977년 무렵 한번 만났었지만!”
- 그땐 그림 그려서 생활이 되는 시절이 아니었잖아요. 상주고등을 나와 1966년 서라벌예술대학을 들어갔는데, 이어 군 복무를 마치고 휴학을 하기도 하여 1976년 졸업할 때는 학교가 병합이 되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출신인 셈이네요.
문경에서 얼마간 교사생활도 했고요.
石: 사회생활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 사회 초년시절엔 새한신문을 거쳐 1982년부터 93년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 했어요. 과학부 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전문성이 필요하더군요. 우리는 촌사람이잖아요. 나는 나무와 풀에 대해서는 좀 알고 취미에도 맞고 해서 식물에 관한 기사를 즐겨 썼어요. 한국의 과학자라는 시리즈물을 연재했는데 그때 고 이창복(李昌福)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한국식물학의 최고 석학인 이 박사님을 따라 매월 전국의 산과 도서 벽지를 누비며 자생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익히고 사진기에 담았지요. 그러면서 북방계 식물을 공부하기 위해 중국의 백두산을 20여 차례 다녀왔고, 몽골, 알래스카, 중국 각지와 일본의 여러 산지를 답사하면서 식물 전문기자로 발돋움했어요. 지금까지 식물에 관한 책 20여 권을 펴냈고, 식물관련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충남 금산군과의 인연이 깊어요.
石: 금산은 인삼의 고장이 아닌가요?
- 금산군의 산림 관련 조사 의뢰가 들어와 관내 산 22개를 전부 돌아다니며 조사한 내용을 《금산군의 고품질 산림자원 실태조사 연구》, 《금산군 중장기 산림육성방안 연구》에 담아 보고서를 써 준 것이 인연이 되어 금산 행정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벌써 10여 년이 넘었네요. 상주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금산군 관계자들의 마케팅 전략을 보면 부러워요. 금산 사람들은 전국으로 퍼져 인삼농사를 짓고 다시 수확물을 금산으로 갖고 와 검수를 거쳐 ‘금산인삼’이란 브랜드로 팔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소비하고 수출하는 인삼 약초의 8할이 금산에서 거래되고 있어요. 그기에 비해 우리 상주 농산물은 중앙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石:▶ 어떤 특정 생산물에 대해서인가요?
- 전반적으로 상주의 농산물도 다 그런 것 같아요. 소고기만 해도 상주가 한우 입식수가 전국 1위인데 상주소고기는 횡성한우만큼 좋은 줄 모르잖아요.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상주한우’라고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천 년을 이어온 상주가 얼마나 유명한 브랜드인데 굳이 어렵게 ‘명실상감한우’라고 해서 둘러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네요. 천년의 역사를 버린 것 같아 두고두고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石: 고급 이미지 전략이었겠지요. 정상궤도 진입 시까지 지속적인 홍보가 이뤄졌으면 정착되었을지도 모르죠.
- 상주라는 이미지가 저급하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경주와 상주가 영남을 대표하는 고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천 년의 역사를 포기하고 ‘명실상감’이라는 생소한 말을 꺼내 들었을 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뜻이 없고 오랜 홍보기간이 걸리더라도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면 상주라는 브랜드로 돌아가야 해요. ‘상주한우’가 훨씬 신뢰성이 있거든요. 상주에서 생산되는 ‘명실상감한우’로는 소비자를 설득시키기 어렵습니다. 명실상감이라는 말이 어려운데 어떻게 대중이 수긍을 하겠어요. 다른 지자체에서는 지역농축산물을 팔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 고향에서는 그런 홍보활동이 약해 보여요. 서울에 있으면 다른 자치단체와 비교가 되거든요.
石: 서울 강서지역에는 ‘애상회’가 중심이 되어 상주농산물을 많이 홍보하고 판매도 잘 한답니다.
- 그분들이 고향 사랑을 실천하시는군요. 강서문화원 김병희 원장도 상주사람이라던데, 매년 허준박물관 행사 때마다 참석하여 내빈인사를 하는데 말씀을 잘 하시더라고요. 아무튼 방송 등 매스컴에서도 상주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내려야 해요. 상주를 소개하는 ‘병풍산’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石: 나무를 주제로 쓴 책은 어떤 게 있나요?
- 지난해에 펴낸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는 《열하일기》, 《산림경제》, 《삼국사기》 등 고전에 등장하는 마흔 네 가지 나무 이야기인데, 서울 곳곳에 역사가 깃든 오래된 나무들과 그 나무와 관련된 문화적 내용을 소개하는 동시에 나무의 생태와 쓰임까지 덧붙여 쓴 책입니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식물 교과서》《가정원예대백과 전10권》《꽃이 있는 삶 上下》《사람보다 아름다운 꽃 이야기》《서울나무도감》《1000개의 자연공원 이야기》등 나무 관련 책과 수필집으로는 《솔잎차를 마시며》《초록빛 찾기》《수필문학 이론과 실제》가 있고 인문학 도서로 《한국의 차그림(茶畵)》이 있어요.
石: 아이들 책도 많이 쓰셨지요?
- 주로 식물을 소재로 한 책으로 《호두와 땅콩, 팥》《호박》《민들레》《나팔꽃》《버섯》《해바라기》등과 주영하 작가와 공저인《감자와 고구마》《무궁화와 코스모스》등 몇 권이 있어요.
石: 한국수생식물연구회는 어떤 모임인가요?
- 일생 동안 한번은 물에 잠겨 생육하는 식물을 수생생식물이라고 해요. 수초 중에는 뭍에서 싹이 돋아나서 물로 들어가 수면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물밑 진흙에서 돋아나 물 밖으로 나오는 것도 있어요. 또 물속에 잠겨 자라거나 물에 떠다니는 것들도 있어요. 이러한 수초들은 물의 생산자들입니다. 육지에서 녹색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단백질을 합성하고 호흡활동으로 산소를 만들어 내듯이 물에서도 똑 같습니다. 그 역할을 수초들이 합니다. 수초만이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고 수서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셈이지요. 물을 살리기 위해서는 수초가 살 수 있는 수중 생태계를 복원해야 합니다. 도작(稻作) 문화권에 사는 우리로서는 벼 아닌 모든 수초는 잡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초제 때문에 급속도로 사라지는 수초의 표본만이라도 모아 연구자들에게 기초자료로 제공하자는 뜻에서 몇몇 학자들이 모였습니다. 한국수생식물연구소도 세웠지요. 무보수 연구직이라 인력과 예산도 미미한 편입니다. 앞으로 수질정화 차원에서 한국수생식물연구소의 역할은 크다고 봅니다.
石: 종로문인협회 회장에 피선되시고 문인들과 상주를 방문하셨지요.
- 한국문인협회 종로지회 회원은 300여 명이 됩니다. 종로는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같은 현대문인 500여 명이 활동한 서울의 중심으로 흔히 문학1번지라고 부르는 고장입니다. 조선 시대 이후 600년 동안 5대고궁이 있어 정치의 중심이었으며, 종로에는 육의전이 있어 경제가 활발했던 곳입니다. 또 종묘사직을 갖고 있고 골목마다 역사와 문화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문묘와 성균관이 있는 교육의 중심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에 힘입어 종로 곳곳에는 정몽주, 정도전, 윤선도를 비롯한 명현들의 시비가 있습니다. 현대문인으로는 한용운, 주요한, 이상화, 함석헌, 박목월, 유치환, 조병화, 김광균 시비를 비롯한 20여 기의 시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이, 신사임당, 염상섭, 정지용 같은 문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힘입어 종로문학인은 각 장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2014년 한국문인협회 지도부 선거에서 상주의 박찬선 시인이 부이사장으로 선출된 것은 상주의 자랑인 동시에 경북인의 자존심을 살려준 쾌거라 할 수 있습니다. 지방에서 시작활동을 하는 시인이 중앙무대에서 어깨를 겨루기는 어렵거든요. 그런데 박 시인은 해 냈습니다. 시인을 존경하는 후배 문인의 한 사람으로 ‘동시의 마을’ 상주문학기행을 계획하게 되었지요.
지난 4월 18일 상주학의 석학인 박 시인의 안내로 경천대에서 채우담 선생의 문학정신과 도남서원에서는 낙강범월시에 대한 것을 공부하고 남장사와 북천전적지에서는 상주의 유구한 문화와 충의 정신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상주문학기행의 결과는 《종로문학》지에 특집으로 꾸밀 것입니다.
石: 요즈음 맡으신 강의와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요.
- 토 일요일을 제외한 날을 모두 강의로 채우고 있습니다. 사회교육기관인 문화센터에서 수필쓰기와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지요. 휴일에는 주로 산과 들을 누비며 식물탐사를 하고요. 환경부에서 실시하는 서해 무인도 식생조사에 5년째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잡지에 연재하는 글을 쓰고요. 올해 두 권의 책을 펴내기 위해 원고를 준비하고 있지요. 또 한 달에 두 번씩 있는 한국식물연구회 자생지 답사도 벌써 30여 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꽃과 나무는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도 있습니다.
石 : 상주의 고고문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 상주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곳곳에 문화유적을 품고 있습니다. 선사유적도 역사유적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역주민들의 이기심과 당국의 무관심으로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인돌 유적만 해도 그렇습니다. 남장동의 많은 고인들이 경작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포크레인 삽날에 사라졌습니다. 석장승 맞은편에 있던 성혈바위도 도로확장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부원동 마을 입구의 고인돌 무더기도 회관 건립 때 거의 다 사라지고 겨우 두 개 정도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관내에 남아 있는 선사유적 중에서 고인돌이나 선돌 같은 석조물과 성황당, 소도, 장승, 성황림이나 신목 같은 민속 유적도 조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상주학의 기초가 되는 증거자료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지나고 보면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石 : (병풍산366의 의미를 전하고) 고향과 관련된 선배님의 역할(병풍)에 대해서 한마디.
- 상주는 땅이 넓습니다. 속리산을 비롯하여 청화산, 갑장산, 백화산, 제약산 같은 높은 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낙동강을 끼고 있어 산과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유산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소백산맥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어 남방계식물의 북방한계이고 북방계식물의 남방한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곰솔, 감태나무, 정금나무, 개비자나무, 꼬리진달래와 가침박달, 분꽃나무 같은 희귀식물이 자랍니다. 또 자란, 보춘화 같은 남방계 난초가 자라고 통발, 귀이개, 땅귀개, 끈끈이주걱 같은 식충식물도 자랍니다.
우리고장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더 자세한 식생조사가 뒤따라야 합니다. 관내에 무슨 약초와 이용가능한 자원이 있는지 알아야 보존 대책도 세울 수 있고 서식지에 알맞는 육림계획도 설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상주는 곶감의 고장입니다. 감나무의 유전자원을 철저히 조사하여 새로운 종을 육성해 내야 합니다. 몇 해 전에 후배 시청직원에게 건의를 한 일이 있습니다. 상주의 오래된 감나무를 모두 조사하여 품종, 수령, 수관폭, 높이, 흉고둘레를 측정하고 유전자원 확보를 위해 종자를 보존하고 석엽표본, 사진 기록, 환경조건, 토양산도까지 측정하여 연구의 기초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외남면의 감나무를 천년수를 지정했다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선 보존가치가 있는 품종을 모아야 합니다. 품종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이러한 감나무를 심어 교잡을 통해 상주의 기후와 환경조건에 맞는 새로운 품종을 길러내야 합니다. 대봉에 밀리고 있는 둥시를 더 크고 튼튼하며 꼭지가 빠지지 않는 신품종으로 길러내야 합니다. 그길만이 상주 곶감의 명성을 살리는 일이지요. 늙은 감나무는 과일이 작다고 계속 베어내고 있어요. 그나마 남은 것이라도 보호해야 합니다. 시급합니다.
상주 출신의 식물학자는 많습니다. 관내의 경북대학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를 해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식물공부를 한 저도 힘을 보태고 싶군요.
石 : 병풍산 릴레이 다음 순서를 추천하신다면.
- 상주출신의 농학자이신 김수인 박사를 모시고 싶습니다. 이 분은 건국대 농대 학장과 대학원장에서 정년을 맞으시고 지금은 평창에서 가시오갈피 농장을 하시는데 규모가 크고 경영도 성공적이라 미래 농업의 한 모델을 보는 것 같습니다. 농업 경영자이며 자랑스러운 상주인이라 생각됩니다.
또 한 분은 대구에서 활동하시는 서양화가 최돈정 선생님입니다. 이 분은 홍익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시전과 경북도전 심사위원, 원로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학들의 지도하고 있습니다.
오병훈(野丁 吳秉勳) 프로필/ 1947년생
○ 수필가 /《隨筆公苑》에 〈새벽을 여는 소리〉로 추천 완료 / 한국문인협회 숲문화개발위원/ (사)한국문인협회 종로지부 회장/ (사)한국문인협회 서울지회 이사/ 《문학청춘》《에세이문학》 신인상 심사위원/ 보령의사문학상, 항공문학상, 동서문학상 심사위원/ 계간 《난대림》《수생식물》 발행인 겸 편집인/ 중구문화원 문화센터, 마포문화센터, 한국여성문예원 수필반 강사 / 환경부장관 표창,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 식물학자 / 중앙대 예술대 졸 / 중등학교 교사 역임 / 한국일보 《학생과학》 편집장 / 한국식물연구회 명예회장 / 한국수생식물연구회 회장 / (사)한국자연보존협회 학술회원/ 한국난대림연구회, 한국동백학회 이사/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삼성프라자 문화센터 생태학 강사 역임 / (사)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 지도위원 / (사)세계녹화운동 이사/ 금산군 행정자문교수단 부단장 인삼농림분과위원장 / 환경부 환경영향평가위원
<취재 메모> 1962년 이맘때로 돌아가 보자! 이미 노오란 감꽃은 떨어지고 왕관 꽃대에는 단단한 풋감이 자릴 틀고 앉은 무렵이 아닐까?
남장사를 목표로 나선 사생(寫生) 길은 서보교를 지나 한참을 타박타박 걸어야 했을 거다. 비교적 키가 작은 편이었을 우리 둘에겐 둘러 맨 화구가 그리 녹녹치 않은 무게. 형은 그때 2학년이거나 3학년. 필자는 한해 후배였고 그를 따라 그 먼 길을 가면서 오로지 머릿속엔 그 형이 그려내던 투명 수채화의 구름 문양의 물번짐과 미류나무 그림들의 신비스러움은 지금도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미 세월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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