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들이 부추겨 피비린내 나는 망국의 진영싸움 끝에 왕조시대 500년의 역사를 헌신짝같이 내던지고 나라를 들어다 이웃 왜국(倭國)에 바치더니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조국마저 좌우로 나뉘어 패싸움을 벌이는 사이 이 땅은 두 동강으로 잘려 수많은 젊은이의 피로 산하를 물들이고 이산(離散)의 한을 안고 살아야하는 민족이 아직도 진영싸움의 폐해를 알지 못한 듯 길거리에 나와 낮에는 태극기를 흔들고 밤이면 촛불을 치켜세우며 밤낮으로 편을 나뉘어 싸우고 밥상머리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고 회의실에서는 고용주와 고용인이 싸우고 죽은 자식의 관을 놓고는 명정(銘旌)은 씌우지 않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덮어 씌어 피눈물을 흘리면서 싸웠건만 누구 한사람 나서서 말리려하지 않고 방관자들만 있으니 이렇게 하여도 과연 되는 것인지 묻고 싶고 이 땅에 정작 필요한 지도자는 없고 위정자만 가득하니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을 우려하는 것이 늙은이의 기우(杞憂)인지도 묻고 싶으며 동족 간 입에 담기도 싫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이 밤이면 인공기를 흔들고 낮이면 태극기를 흔들어야했던 선친들의 심정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얼마 전 백세를 맞은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저서‘백세를 살아보니’라는 저서에서 교수님은 백세를 살고 보니 어렴풋이 삶을 알 것도 같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명쾌하게‘삶은 무엇이다’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일생동안 미완의 삶을 살다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음은 완성의 길로 향하는 관문인지도 모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미완의 삶이야말로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성되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의미 없는 삶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부족함에 대한 갈증이야말로 존재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며 노력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하여 복지정책으로 시행중인 우대용 교통카드와 지하철 무료승차제도는 자칫 은퇴이후 모든 것을 이루었다며 안락한 소파에 앉아 안주하기 쉬운 노인들에게 열심히 나다니며 건강도 유지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야하겠기에 미완의 삶을 위해 주어진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유명작가들이 남긴 명화나 명곡 중에 미완의 작품이 수세기를 거쳐 오면서 명화와 명곡으로 명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 미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비단장수‘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리자’부인을 모델로 그린‘모나리자’는 미완의 작품으로 작가 레오나르도가 4년간에 걸쳐 자신의 화실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보완하고 덧칠을 계속하다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하고 당시 프랑수아 왕의 초대를 받고 화실에 놓인 작품을 가져가 4,000에큐에를 받고서 팔았다고 합니다. 수년전 고국 이태리를 떠나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모나리자 초상화를 보기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결국 5~6미터 거리에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던 30인치 모니터 크기의 작품은 정작 진위 여부를 놓고 지금까지 설왕설래하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역시 1악장과 2악장만 작곡하였고 나머지는 완성을 보지 못한 미완의 교향곡으로 그가 남긴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뛰어난 곡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화와 명곡이 오랫동안 인류에 회자되는 이유는 명화와 명곡이 작가의 손을 벗어나기 전까지 미완의 작품으로 완성을 위해 끓임 없이 다듬어졌기 때문입니다.
남녀 간 사랑 또한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의 사랑이기에 더욱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당대(唐代) 유명한 여류시인 설도(薛濤)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기녀로 살아가면서 연하의 관원(官員) 원진(元鎭)을 만나 100여 편의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신분의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특히 시인의‘춘망사(春望詞)’라는 오언절구 시(詩)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김소월의 스승 김억 시인이 번역하고 작곡가 김성태씨가 곡을 붙여“동심초”라는 우리가곡으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완의 사랑은 노래로 남아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에도 애절한 미완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3~4공화국시절 밀실정치의 산실이었던 요정(料亭)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佛名 吉祥華)씨는 일제치하에서 일찍 아버님을 여의고 홀 어머님과 가계를 꾸려가다 남은 집마저 사기로 날려버리고 거리로 내몰리게 되어팔려가다시피 결혼을 하였으나 그마저 남편의 병사로 끝나고 기생이 되어 함흥 권번(券番)에 들어가 그곳에서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인 백석 백기행씨를 만나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마찬가지로 신분상 이유로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마저 전쟁으로 남과 북으로 헤어져 김영한씨는 일평생 연인을 그리워하며 대원각 요정을 경영하다 죽기 전 연인을 기리며“백석문학상”을 제정하였고 일천억 원대의 요정건물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길상사가 건립하게된 것입니다. 이처럼 미완의 사랑은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오랫동안 우리들 곁에 남아있습니다.
회갑을 맞았다며 소란을 피우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내일 모레면 고희를 앞둔 나이에 삶의 깊이와 향기를 느끼고 때때로 찾아오는 희로애락에 대한 감정의 기복(起伏)도 잘 조절하며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는 물론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구분하고 쉼 없이 고개를 치켜드는 부질없는 탐욕도 억누르며 성숙한 삶을 꾸려갈 나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여유로운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물(水)과 같은 삶을 누리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이치를 실천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미완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나만의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연륜이 연륜인 만큼 노련함과 원숙함의 경지를 벗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수년전 제작해 벽장에 보관중인 작품을 꺼내보면 제작 당시와는 달리 마음에 흡족한 작품은 한 점도 없습니다. 결국 채색을 다시하고 디자인을 바꿀 수 없는 작품은 공방을 떠돌다 어느 날 사라집니다. 그렇게 덧칠하고 다시 다듬어진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끓임 없이 변신해 나갑니다. 이렇게 모든 작품은 미완의 작품으로 작가에 의해 끊임없는 변신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미완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 또한 이러합니다. 한해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금년 상반기는 코로나 전염병에 쫓겨 다니다 지나가버렸습니다. 하반기에는 전염병으로부터 해방되어 과거의 일상으로 회복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