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조선인에게 한은 차라리 꿈이었다. 한이 그대로 소모되면 그저 한일 따름이지만, 한이 새로운 가치로 질적으로 승화될 때 꿈이고 희망이다. 한은 척박한 만주 공간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 낸 조선인들에게는 그저 소모되어야 할 한이 아니다. 한은 미래에 대한 꿈으로 전환되어 민족의 보편적 정서로 형성되어야 할 민족의 뿌리요, 꿈의 토양이다. 물론 병자호란으로 거슬러 올라가 노예의 신세로 강제적으로 끌려가야만 했던 조선인의 이주사(移住史)를 제외한다면, 일제강점 이후 가난을 피하든 망국의 한을 품고 떠났든 만주는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조국해방이라는 꿈을 실현하려 했던 곳이었다.
‘만주’라는 역사적 공간은 중국인에게도 산하이관 남쪽관 내(關內)가 아닌 북쪽관 외(關外)로 주변화 되어 왔던 곳이다. 중국 관내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는 병풍이었다. 만주는 만리장성 이북의 중국 동북 변방으로 중국 관내를 지키기 위한 만리장성의 외곽지이다. 만주는 만주사변 이후 중국인에게는 국치(國恥)의 공간이며 낙후되고 야만적인 가장자리였다. 하지만 조선인에게 만주는 관외 만주인으로부터도 주변화되어 ‘관외(關外) 속의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던 이중적 수난의 공간이었다. 만주는 민족의 수난사가 가장 깊게 침전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조국 해방의 희망의 한이 다층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곳이기도하다. ‘만주’라 불렸던 중국동북3성은 중국역사의 아픈 상처를 곳곳에 간직한 곳이다. 조선인 디아스포라에게 만주는 이주자(移住者)로서 이중 삼중으로 수난을 겪어야 했던 한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도시는 인간의 존재가 장소화되는 장(場)이다. ‘만주’는 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살아온 한의 공간이다. 조선인의 한의 공간학적 의미는 다양하게 읽혀져야 한다. ‘만주’는 조선인의 지배와 탈지배의 실천이 함의된 민족적 트라우마가 생성된 곳이면서, 그 트라우마를 미래지향적으로 승화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만주는 한민족의 한의 위상학적 좌표를 읽을 수 있는 그 뿌리가 되는 원형 공간이다. 현재 중국 지도에 ‘만주’라는 곳은 없다.의 본향인 만주가 일제에 의해 침탈당하자 토착민이었던 만주족에게
는 치욕과 수난의 공간으로만 기억된 채로이다. 만주족에게는 중국 역사상 비한족(非漢族)으로서 중원에 왕조를 세웠던 만주족의 자존심이 침탈당했던 치욕의 공간이었다. 유일하게 중국 지도에 남아 있는 ‘만주리(滿洲里)’는 중국 한족중심주의의 주변으로 소외되고 있는 희미한 옛청조의 고토로 기억될 뿐이다. 내몽고자치구에 ‘만주리(滿洲里)’ 한군데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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