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실제이야기(치료진으로 근무)
장우석 사회복지사 경험과 임상
최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드라마가 방영된 것으로 압니다.
이 드라마를 중간중간 숏츠로 보며 참 잘 만든 드라마라 느낍니다.
저(장우석사회복지사)는 당사자ㆍ가족ㆍ치료진 3가지 입장이 되어본 흔치않는 사람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에서 일하며(2011~2018.12)
정신건강의학과에 정식사원으로 입사했을때 가슴이 정말 뛰었습니다.
20대초반 저는 폐쇄병동에 갇힌 난폭한 환자였기에요.
그후 결혼도 하고 일반 일자리도 구하고
과거 질병을 숨기고 20대 이후 일반회사를 다녔습니다.
대인기술과 소통력이 생기면서 가능했고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치료진으로의 일은 과거 병이 회복되어도 만일 정신과환자출신이면 무조건 입사가 안 되고요. 들통나면 바로 짤립니다.
정신과 폐쇄병동의 구조는 특히 치료진과 환자의 격차가 하늘과 땅입니다. 인정하고 싶지않지만요. 현실은 슬픈 일입니다.
과거 정신과 폐쇄병동은 수용소수준에서 발전해왔고, 마치 인생 막장인
교도소나 탄광이나 뱃사람 일같은 수준이라 볼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환자의 인권이 많이 회복되고 나아졌지만요.
1990년대전후까지도 한번 폐쇄병동 들어오면 강박은 5~7일 기본이고 인권은 제로, 폭력이 난무하기도 했고요. 장기입원이 권장되던 시절이었죠.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부터 시작해서 인간이 사는곳이자, 치료공간으로 변화되고 나아져왔습니다.
이런 특수한 환경의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 관행상
환자가 환자를 치료해. 라고 치료진입장에서는 아주 편견이 심했고 낙인화도 컸습니다.
왜냐하면 정신과영역은 다른분야일보다 뇌와 정신건강 분야기에 더욱 전문성과 강인하고 탁월한 멘탈관리와 자기관리가 가장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무장과 담대함을 가지고 용감하게 과거 병에 대한 일절 얘기없이 정직원으로 입사했습니다.
과거 15년전에 폐쇄병동에 같이 지낸 환자분 만날까봐 처음 폐쇄병동 병원사회복지사입사후 일시적 불안으로 아티반 1달 먹기도 했으나, 그후 편안해져서 8년간 병원3곳을 치료진으로 열일하며 병원 열쇠를 가지고 가슴뛰는 일을 했습니다.
의료사회복지사의 흰가운은 권위적이라 생각해서 한번도 입지않고 환자들과 같이 사복입고 일했습니다.
내 속으로는 이분들이 내 친구이고, 가족이라는 마음 가짐으로요.
힘들고 위험하고 응급상황이 매일 일어나고 지옥같은 업무량과 주중 교육프로그램과 다양한 프로그램들13개 진행과 자원봉사자 관리하고 하루에 환자상담과 기록지쓰기ㆍ행정일과 보호사관리일까지 끝도 없는 업무량과 하루11시간 고강도일과였습니다.
점심식사시간은 7분만에 밥을 퍼먹고 바로 스테이션에서 환자들을 관리하고 기록지를 쓰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하루2~3개씩 프로그램들을 진행합니다.
10분도 쉴 시간이 없습니다.
격리ㆍ강박시 생명 걸고 합니다.
물론 환자 안전이 늘 먼저입니다.
격리해놓으면 쌍욕을 계속 하거나 안정실 문과 벽을 발로 차고 주먹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담해 보기도 하고 약을 주기도 하고 안되면 주사제와 강박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치고 정형외과 치료받아도 방어적이고 환자안전이 우선인 태도만 하기 때문입니다.
주먹질ㆍ발길질ㆍ식판뒷통수치기ㆍ위해물로 다칠수없고 환자중 송곳ㆍ칼ㆍ망치 등을 들고 오기도 합니다.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 병원사회복지사로 교육프로그램들과 상담일ㆍ행정일과 보호사 업무까지 1인 3역을 하며 일했습니다.
환자들도 고통하고 힘들지만,
치료진도 그 분위기에 동화되며 함께 어우르고 소통하며 긍정의 힘으로 환자들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치료진은 늘 자기관리의 달인이 되어야 하며 멘탈갑이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응급상황ㆍ위기대처능력도 신속ㆍ정확하고 문제해결을 할수 있어야한다.
어설픈 간호사나 사회복지사나 보호사는 3개월도 못 버팁니다.
아침 출근하면 신환은 쌍욕을 하루종일 스테이션 방탄유리창 앞에서 눈을 부라리면서 쩨려 봅니다. 하루50번이상 찾아와서 말도 안되는 요구와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이겨내는 담력과 용기와 멘탈은 기본입니다.
증상이 올라오면 쌍욕이 남무하고 과격하고 어제까지 몇달간 저의 정신건강교육들을 듣고 팬이었던 환자분이 증상으로 액팅아웃해서 저에게 날라차기를 하고 침을 뱉습니다.
여자 환자들은 병동안 돈과 같은 가치의 과자들을 저에게 매일 아침 선물을 줍니다.
그러나 컨디션이 나빠지고 증상이 올라와서 저나 직원들에게 욕을 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또 화장실 변기물을 먹기도 하고 자기 똥을 먹거나 그것을 정수기입구에 묻히기도 합니다.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매일 다반사입니다. 우리의 일상입니다.
인생에 대한 이해력이 넓어지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집니다.
그 동물적인 본능들ㆍ진실한 감정ㆍ거짓에 쌓인 전두엽까지.
정신질환ㆍ은둔형외톨이ㆍ정신장애ㆍ지적장애ㆍ발달장애ㆍ알콜중독ㆍ약물중독ㆍ치매ㆍ성격장애ㆍ반사회성인격ㆍ노숙자ㆍ사기꾼ㆍ무당ㆍ사이비ㆍ목사ㆍ신부ㆍ스님ㆍ엘리트ㆍㆍ모범생ㆍ학구파ㆍ외국인ㆍ다양한직업군ㆍ동성애ㆍ에이즈ㆍ매독ㆍ양아치ㆍ깡패ㆍ날리리ㆍ6.25참전군인ㆍ월남전군인ㆍ삼청교육대출신ㆍ형제의집출신ㆍ범죄자들ㆍ살인자까지 만납니다.
병실 거실에서 옷을 홀딱 벗고 걷기도 하고,
환청으로 하루종일 자해하거나 벽을 차거나 주먹으로 벽을 칩니다. 연예인같이 생긴 20대 여환자는 안타깝게 환청으로 생니를 2개나 뽑기도 합니다.
망상으로 50명 중 6~7명은 자신이 우주의 신이거나 신의 계시자거나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라고 말합니다.
또 세계대통령이거나 갑부라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치료진으로 아주 진지하게 개인적으로 만나서 개인상담하며 라포형성을 해가면서 치료의 과정을 함께 합니다.
약물과 정신치료와 교육프로그램과 환경치료로 현실감을 찾아가게 돕습니다. 전문성과 영성을 발휘되는 과정입니다.
담당 목사님이 안 계시면 저가
예배인도도 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회진과 치료자회의로
정신과원장님과 수간호사샘과 복지샘인 저가 늘 회의 후 약물치료와 심리치료와 교육프로그램과 생활관리를 진행하고 결정합니다.
환자 개개인에 대한 세밀한 진단과 행동 분석과 치료경과과정을 의논합니다.
정보를 공유하며 일하고 컴퓨터로 네이트온 대화창으로 의료적인 모든 정보와 치료진으로 환자들 상태와 약물과 치료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보고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 스테이션에서 간호샘과 저(사회복지사)가 메인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보호사들이 보조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잡다한 일들을 하며 고생이 많은 보호사들입니다.
병동 안에서는 늘 경계하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뒤를 조심 해야하고 판단력이 빠르고 눈치도 빨라야 합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위기응급상황 시, 주먹이 날아오는 건 예사구요.
침 세례받거나 쌍욕에 폭력당하는 상태로 와이셔츠와 바지도 여러번 찢어졌습니다.
어떤 직원은 환자가 휘둘은 의자에 맞아 팔이 부러져서 안타깝게 퇴사했습니다.
환자들의
증상으로 인한 액팅아웃에는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그 충동성과 공격성과 폭력성에 잘 대응해야 합니다.
남자 환자들끼리 주먹질도 일어나고
여자 환자들끼리 머리채잡고 싸움도 일어나고 병실안 크고 작은 다툼과 갈등과 싸움이 매일 많고 그것을 중재하고 조율하고 때때로 통제해야합니다.
2~3일에 1번이상 환자의 응급상황으로 인해 격리ㆍ강박하며 폐쇄병동 병원일을 8년간 했습니다. 늘 뛰어다니면서 일했고 멀티태스킹은 기본이며 메모광ㆍ독서광으로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며 일했습니다.
매일 회진 다 돌고 치료자회의를 총1시간가량 했습니다.
가톨릭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생활10년간 하시고 임상을 40년간 하신
정신과의사분과 일해서 자부심이 대단하셨습니다~!
개인병원을 종합병원수준으로 하려니
직원들과 치료진이 하드트레이닝 했습니다.
원장님은 거구시고 100km마라톤을 뛰신 분이구요. 멘탈 역시 대단하셨습니다.
저도 총 5단 유단자지만 훈련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참 많이 혼나고 고생도 많았지만, 참 많이 배웠습니다.
지나니 참 감사할뿐입니다.
치료되고 회복된 환자들을 보면서 참 보람도 크고 뿌듯했습니다.
교육프로그램에 저는 참 열심히 했고 초발자들은 잘 치료되고 병식되어 퇴원후 취업해서 감사하다고 찾아온 환자들도 있었고 안산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연계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도 일자리연계도 하며 지역사회 연계일까지 제가 했습니다.
거기 샘들과 자주 교류하고 입ㆍ퇴원 필요한 환자도 도움 드리고요.
지역사회로 나아가고 복지카드와 기초생활수급자로 돕고 생활연계도요.
참 많은 일들을 맡아서 했습니다.
지금 계속하라면 그 박봉에 죽음걸고 그 많은 일들을 지치지않는 열정으로
최선다해 계속 더 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알콜중독있는 양아치 강박했다가 나 죽인다고 협박당하기도 했고요.
저는 죽일려면 죽여봐 담대하게 나갔고
나중에 원장님이 그 환자를 보호사 직원으로 고용했고요. 저와는 그전에 화해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젊은 혈기와 사명감으로
가슴뛰면서 무서운 줄 모르고 일했습니다.
알콜중독 깡패가 협박하기도 하고 온갖수난도 겪어보았습니다. 위기가 있었지만, 이것 또한 지나갑니다.
그래도 사악한 부류중에서도 가장 천사같고 순수하고 선량한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참 좋았고요.
환자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그래도
참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좋은 추억들입니다.^^
병원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장우석 심리상담사 글
2023.11.29저녁
첫댓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소중한 경험이 지금도 고통받는 수많은 환우들에게 큰 위안과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단하십니다 형님^^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