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막13:24-37, 167.168.446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파수꾼은 남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홀로 깨어서 지킵니다. 깨어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교회와 그 가정과 그 민족은 소망이 있습니다. 개인도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생동안 비몽사몽간에 잠에 취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평생토록 세상일에 취해서 죄 짓는 일에 취해서 그리고 세상 쾌락에 취해서 아까운 세월을 다 허비하고 하나님 앞에 부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갈림길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가? 영적으로 자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는 축복의 삶을 살 것이나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은 일생동안 헛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역자의 사명 곧 설교자의 사명은 잠자는 영혼을 깨워서,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깨우고 국가를 깨우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어야 참 역사를 이룰 수 있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말세를 당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막13장에서 예수님은 상당히 길고 자세하게 말세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대 환난 직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직전에 있을 징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징조는 너무나도 인상적일 뿐 아니라 신비스런 비유입니다. 24, 25절에 보면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때에 저가 천사(天使)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니라. 고 했습니다.
이 본문(本文)의 말씀은 비유나 상징(象徵)이 아니고 실제적(實際的) 상황인데다 그것은 구약(사13:10, 사24:20-23, 렘4:23-25, 겔32:7-8, 욜2:30,31, 암5:20)이 뒷받침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인 마24:29절과 눅21:25-27절에도 꼭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도 여러 차례(次例)에 걸쳐서 거의 비슷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본문에는 그때 에란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종말의 때, 심판의 때, 주의 날을 의미합니다.
구약 사35:5절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때에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한다면 오늘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에는 바로 재림의 때 곧 주의 날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종말은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대 종말이 완성될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이 문자대로 이루어졌듯이 예수님의 예언도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사실 실례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실제로 우주와 천체와 자연의 변화가 온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에서 빚어진 환경 파괴는 지금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오고 있음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산불로 몇 달째 태양을 볼 수 없고 질병과 기후 변화로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예언을 몸으로 체험하는 듯할 것입니다.
오존층의 파괴로 기상은 엉망진창이 되어 이른바 엘리뇨 현상으로 기상예보가 먹혀들지 않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때 아닌 우박이 내리는가 하면,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나고 우기에도 불구하고 가물어서 땅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빛을 잃어버리겠다는 것은 단순히 상징적 교훈이 아니라 그것은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베드로의 예언대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벧후3:10)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豫言)의 말씀도 단순히 상징(象徵)이나 교훈성의 예언(豫言)이 아니라 실제적(實際的)입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 즉, 우리가 늘상 바라보는 하늘도 하나님께서 창조 때 부터 적절한 기압과 적절한 공기와 그리고 태양으로부터 오는 뜨거운 열을 적절히 조정해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28절에 말씀하신 대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야 합니다. 무화과 나뭇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세상을 보고도 아무 깨달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잠자는 사람입니다. 잠자는 사람은 생각이 없습니다.
의식이 없습니다. 미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잠자는 사람은 감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읽을 줄 아는 눈이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적으로 예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상징적인 것을 보여주십니다. 때로는 괴로운 시험도 있고, 우리 가족과 주변에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모두가 영적으로 깨었다면 그 의미를 깨달을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한 이유도 그것을 통해서 영적인 깨달음을 받을 뿐 아니라 인생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흐름과 사건 그리고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서 주님의 섭리와 간섭을 볼 줄 아는 영적인 예민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말은 없어지지 아니 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31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한한 세상과 영원한 주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 첫 번 하늘과 첫 번 땅은 심판과 변화를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믿는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말씀대로의 신앙이 능력있는 신앙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 중에는 성경에 있는 윤리적, 도덕적 또는 실존적 교훈 정도는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신앙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이 오실 메시야를 내다보고 믿었다면 오늘의 성도들은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신앙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천지의 주재이며 우리의 구주입니다. 말씀 중심의 신앙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 능히 죄와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33절에 말씀하신 대로 주의 하라 깨어 있으라 했습니다.
말세에 처한 우리들은 영적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네 차례에 걸쳐서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말세에 처한 사람들에게 깨어있을 것을 강조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주의 재림(再臨)의 때를 알지 못하기에 항상 영적(靈的)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본문 35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主人)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사실(事實) 재림의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깨어 경성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늘 깨어 있다는 것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주님과 더불어 걷는 기쁨과 확신과 감격이 동반됩니다. 깨어 있음은 하나님과 더불어 걷는, 아브라함과 애녹과 같은 삶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 시간을 모르고 있는 것을 도리어 감사하면서 깨어 봉사하며 깨어 감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이 땅에서 성화(聖化)의 삶을 살기 위해서 늘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사탄이 매설한 지뢰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대개 순간적인 졸음에 빠질 때 생기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영적인, 잠에서도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애가 땅위에서 다하는 그날까지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지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 할지라…(살전5:5-6)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 근신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전15:34절에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즉 깨어 있는 사람만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잠자는 베드로를 향해서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엡 6:28)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했습니다. 대개 신앙의 질병은 영적으로 잠잘 때 생깁니다.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해야 할 이유는 영적 전쟁에서 이길 뿐 아니라 자기를 쳐서 복종케 하고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지금은 말세 중에서도 말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 되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지금 주께서 예언한 말씀들이 하나 둘 사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힘 있게 붙들고 깨어 기도하면서 승리합시다.
깨어있는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을 깨울 수 있고 새 역사를 이루는데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어 있어서 사탄의 무차별하게 공격하는 일을 차단하고 복음이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쓰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박봉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