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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밥의 일상 스크랩 멍 때려도 출판사는 돌아간다
더불어밥 추천 1 조회 75 11.08.12 10:1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멍 때려도 출판사는 돌아간다

모든 일에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법… 잔뼈 굵은 프로들이 포진한 외주업체와 친구가 돼라

 

 

1인 출판. 단어 자체에서 고독감과 외로움이 넘치지만 사실 출판이란 굉장히 많은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일이다.

대형 출판사의 편집자가 작가, 삽화가, 사진작가, 교정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과 함께 일한다면 1인 출판사의 편집자 겸 대표는 덧붙여 출력소, 인쇄소, 제본소 등 제작처 담당자, 서점 MD, 정산담당자와 주기적으로 연락해야 한다.

편집 외에 제작, 영업, 경리 업무를 혼자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규모 출판창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기획, 편집능력보다 오히려 타인과의 소통 능력일지 모른다.

 

 

잡지기자였던 1990년대 중반, 회사 내에 있던 사진팀, 미술팀이 회사에서 분리되어 나갔다.

워크아웃 바람이 거셀 때였고 선후배, 동기가 갑자기 외주업체의 직원이 됐다.

그러다보니 일 진행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선배랑 다시 얘기해 봐야겠네.’라는 생각을 하는 것과 달리 이 시기가 지나 입사한 후배들은 “어차피 우리가 클라이언트잖아요.”라는 불만을 쉽게 입에 올렸다.

클라이언트? 낯선 단어다.

 

 

지난 몇 년 사이 1인출판이 활성화된 바탕에는 외주 제작 시스템의 정착이 한 몫을 했다.

예전처럼 제작부서가 전부 회사 내부에 있고, 회사 총판 조직을 통해 영업을 하는 시절이라면 1인출판사가 감히 출사표를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소규모 출판사에게 축복과 같은 외주제작 시스템에서 출판사는 외주업체의 클라이언트가 되기보다 가늘고 길게 함께 가는 동지가 되어야 한다.

창업을 결심한 후 첫 책을 내기까지 2년 동안 많은 외주업체를 만나고 다녔다.

견적도 받고 우리 회사의 목표도 전했다.

견적은 대체로 비슷하게 나왔고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곳은 아웃시켰다.

이렇게 초기에 갖춘 제작라인이 대부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 출판사의 가장 큰 재산이다.

언젠가 1인 출판 예비 창업자들을 상대로 내 경험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주제도 ‘사람이 소중하다.’였다.

 

 

외주 시스템이 고마운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들과 가난한 출판사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자는 부자들끼리만 놀고 가난뱅이도 기왕이면 부자랑 친구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건만!

내가 보답하는 방법은 그저 힘닿는 대로 꼬박꼬박 현금으로 제작비를 입금하는 것뿐이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내지 디자인이나 교정을 혼자서 하는 1인 출판사도 있다. 하지만 멀티태스킹과는 거리가 먼 능력부족자인 나로서는 그 시간에 기획과 편집에 공을 들이는 편이다.

선택과 집중! 전문적인 일은 프로에게 맡겨야 완성도가 높아지고 그래야 독자의 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창업 전 만난 한 영업자는 기본적인 출판 용어조차 못 알아듣고 ‘멍 때리고’ 있는 나를 보고 혀를 찼다.

하지만 기자일 때도 지금도 “나는 전문가가 아니야. 일 잘하는 전문가랑 일하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모르면 배우고 일의 흐름이 끊이지 않게 중간에서 조절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외주업체 사람들에게 늘 우리 출판사가 ‘가난한 출판사, 동물 전문 출판사, 재생지를 고집하는 출판사’라는 것을 주입한다.

출판사 정신만 공유해도 제작 과정의 마찰은 줄일 수 있다. 디자이너는 가난한 출판사에게 무리한 후가공을 고집하지 않고, 저작권 에이전시는 외국 출판사를 설득해 선인세를 깎고, 재생지 사용으로 인쇄소는 불만이 많지만 그러려니 한다.

외주업체들을 출판사의 지원군으로 만드는 비결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체 않고 전문가인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외주업체끼리 가격경쟁이 있지만 적은 돈 아끼려다가 함께 일할 좋은 파트너를 잃지 않는 것 정도이다.

 

 

부자 출판사야 뛰어난 외주업체 여럿과 함께 일하니 언제라도 대체 업체가 있지만 가난한 출판사가 출판사 정신까지 나누며 오래 일한 외주업체를 잃으면 그보다 큰 손실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외주업체 직원에게 이렇게 혼나고도 바보처럼 벙긋거린다.

 

“책공장 대표님, 이제는 아실 때도 됐잖아요.”

 

 

-------------

<한겨레21>의 '출판창업 절대로 하지 마라' 연재에 실었던 글이다.

문학동네, 마음산책 등 대형 출판사 대표들의 글을 내가 이어 받았다.

쟁쟁한 그들의 뒤에서 글을 이으려니 무지하게 부담됐지만 아마도 이제 막 출판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막 창업의 길을 걸은 생생한 내 글이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그런데 내 글을 끝으로 이 연재는 없어졌다.

내 글이 그렇게 후졌나? 나는 연재 말아먹는 글쟁이인가?...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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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8.12 14:51

    첫댓글 푸하하하하하하하. 말아먹는 글쟁이...ㅎㅎㅎㅎㅎ. 파이팅. ㅎㅎㅎㅎㅎ

  • 11.08.12 15:15

    그래도 책공장출판사는 잘 돌아갈꺼야요..홧팅!!

  • 11.08.12 18:29

    항상 응원합니다

  • 11.08.13 01:22

    글쟁이.. 단어끝에 무슨쟁이라고 붙으면 왠지 더 정감이가요.. 사업마인드가 정말 맘에 드네요
    특히 재생지 사용.. 번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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