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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설산, 푸른 동해를 한눈에 담았네
2024.2.17
남봉희(버디)
나이가 더 들어 산행이 어려워지기 전에 겨울산의 매력인 하얀 눈 세상 산행을 하기 위해, 지난 11년간 좋은 곳 함께 다닌 산들애 카페에서 공지한 대관령 능경봉 고루포기 산행을 신청하였다.
처음엔 용관님(큰별), 용선님, 기환님(중화), 나 버디 네명이었는데 겁을먹고 취소한 산행 초보 유쾌님을 살살 꼬셔 함께 다녀온 겨울 눈꽃산행은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
일기예보를 통해 영하10도가 넘어가는 날씨는 아니라는 점도 다시 신청해서 동행한 이유이다. 예전 선자령, 계방산 눈산행을 했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영하 10도에 세찬 바람이 불면 체감 영하 20도 되는것은 잠깐인 체험으로 익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차가 옛대관령 휴계소로 들어가니 온통 눈으로 뒤덮힌 겨울왕국을 보니 마음이 설레인다. 수많은 차량과 속속 들어오는 관광버스들을 보니 역시 사람 마음은 거기서 거기 비슷한 것이다. 구정 연휴 지나 많은 눈이 내려 이 겨울이 지나기 전에 대관령에서 마지막 눈 산행의 묘미를 느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많이 분다. 아이젠 착용하고 모자끈 단단하게 묶고 출발하는데, 바람은 세게 불었지만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볼을 에이는 칼바람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능경봉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겨울 왕국으로 들어가 본다. 약 1키로 걸어 동해고속도로 완공기념비를 지나 제왕산가는 길과 능경봉 가는 갈래 길에서 본격적으로 숲길로 들어서는데 앞에 간사람 발자욱만 따라 가야지 자칫 옆으로 빠지는 순간 약 7-80센치 깊이 눈속으로 빠질수가 있어 눈길을 조심 조심 걸어나갔다.
눈 쌓인 산길을 나무와 바위를 피해 돌고 돌며 앞서간 사람의 발자욱이 오늘 우리의 길라잡이가 된다. 머리 속에서는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가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위정자들이 본 받아야 할 글귀가 요새 정치 상황과 대비되어 조금 답답하기도 하였지만 눈덮힌 산길은 이내 맑은 곳으로 내 마음을 옮겨준다.
이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세찬 바람이 큰 파도 소리를 내며 숲을 흔든다. 용선님이 씩씩하게 선두를 서고 맛난 라면을 끓여준다고 모든 장비를 넣느라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온 용관님이 천천히 올라가고 나는 그 뒤를 따르고, 내 뒤에 유쾌님이 다람쥐같이 잘 따라오고, 후미에 기환님이 잘 오나 싶었는데 초장부터 힘들다고 어기적 거리며 아우성이다.
이윽고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하고 숨도 차서 빵 한쪽이라도 먹자고 쉬어야 할 곳을 찾는데 그만한 공간도 찾기가 어렵다. 잔설위에 있는 앞 선 사람들의 발자욱을 조금만 벗어나도 스틱이 70센티는 빠진다. 간신히 한조각 공간을 찾아 물 한 모금, 빵 한조각이 기환님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기력을 회복하게 하였다.
16핀 아이젠을 신었어도 허공인 듯 미끌어지는 가파른 깔딱고개를 지나 마지막 힘을 내어 1,123M의 능경봉에 올라서니 구비 구비 호랑이 등가죽같은 산 그리매와 강릉시내 뒤에 푸르고 넓은 동해바다가 한눈에 가득 들어온다. 역시 이런 맛에 내려갈 길이지만 힘들게 산을 올라오는 것 이리라.
건너편 선자령도 보이고 하얀 풍력발전기 바람개비는 선풍기 날개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하긴 건너편 선자령도 1,157미터, 능경봉과 선자령은 높이는 별반 차이가 없다. 800미터 고지의 대관령 휴게소부터 올라왔으니 약 300미터 고도를 올라온 것 뿐인데 눈길을 헤쳐 올라오니 더 힘든 것이다. 정상에는 여러 팀의 산객들이 겨울산 정상을 즐기고 있다. 우리도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산행식으로 중식을 하기위해 100M 정도를 내려와 다소 넓은 공간에서 자리를 잡았다.
용선님이 잘 지어준 일명 맨션 텐트아래서 용관님이 Jetboil 장비를 조립하고 불을 피워 만두, 오뎅, 떡국을 넣고 끓여준 따뜻한 라면에 기환님이 가져온 지평 막걸리를 곁들이니 모든 수고로움이 일시에 날라간다.
"아 참 좋다, 국물 맛이 끝내줘요". 감탄이 연발. 용선님이 "이런 거 집에서는 별 것도 아니고 맛도 안 나지. 그러나 여기서는 이거 해 먹으려 이렇게 가지고 올라오는 거지 뭐" 란 말에 우리 모두 급 공감한다. 용선님이 미군 PX에서 사왔다는 독특한 찜봉투에 사케, 카레, 군고구마를 덮히고 불판에 훈제오리를 데우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텐트는 흙땅에 단단히 앵커 박아 바람을 대비하는데 앵커 박은 곳이 눈덩이라 개스버너 켜고 코펠에 라면 끓일 때 집이 날라가면 여러 위험이 도미노같이 닥치건만 식사 다 하고 커피 한잔 들고 많이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뒷정리할 때 기어이 바람에 훌쩍 집이 저 만큼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보고 유쾌님이 숨 넘어가게 웃어서 우리도 함께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웃고 또 웃고 도란도란 이야기는 끝이 없고...
행복이 별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좋은 곳에 와서 맛있게 함께 음식을 나누며 많이 웃는 것이 행복인 것을.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이렇게 푹푹 빠지는 눈속을, 폭신폭신한 눈길을 마음껏 걸어볼수 있어 행복이라 여긴다. 눈을 보면서, 눈길을 걸으면서, 한겨울에 춥지 않은 것도 참 다행이었다. 거기에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풍력발전기의 하얀 바람개비와 하얀설산과 강릉 동해바다의 조화가 참으로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영상물이나 글이나 이런 것들이 대체해주지 못하는 많은 감동을 안겨준다. 순백의 눈이 이것 저것 다 덮어버렸듯이 내 근심과 걱정거리도 함께 덮혀버린 듯 유괘상쾌하다.
대관령 휴게소를 거쳐 횡계리 대관령 라마다호텔 주차장에서 능경봉에서 험난한 고루포기산 코스를 다녀온 나머지 일행들을 기다려 진부 방아다리 약수 근처의 유명한 맛집인 감자네로 이동하여 닭도리탕과 곤드레 솥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잠실역에 9시경 도착했다. 우리 위례동팀은 동네 사랑방인 이자카야에 가서 맥주와 막걸리에 명란 아보카도 구이와 명란 계란탕 그리고 오늘 산행 뒷담화를 안주로 해서 해단식을 마쳤다.
눈꽃산행으로 힘든 하루였지만 눈에 담아온 하얀눈, 파란하늘, 동해바다, 힘찬 대관령 바람, 풍력발전기, 즐거운 산행식, 맛있는 닭복음탕과 함께 대관령 눈산행 능경봉을 기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기분좋은 피로감으로 다시한번 그려본다. 함께 동행하신 5060산들애 산우님들과 고대73 산우님들께 감사드린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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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버디님, 글솜씨가 대단하십니다.
대관령 능경봉을 다시 걷는 듯한 느낌입니다. 서산대사님의 詩도 새롭게 읽네요. 고맙습니다 💕
버디님 생생한 후기글 감동입니다.
수필같은 글솜씨에 감탄하며 잘 읽었습니다
처음뵙지만 푸근한 인상도 좋으시고 함께 힘들게 오른 능경봉 좋은추억이 되었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버디님의 글을 보니 능경봉의 즐겁고 행복했던 설경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네요. 한줄한줄 맛갈나게 써내려간 글솜씨...잘읽고 갑니다
좋은한주되시구여.
오랫만에 함께 한 겨울 산행에 너무 천천히 올라가서 정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직도 산행 초보 딱지를 못 떼었어요 ㅎㅎ 햇살총 무님과 함께 셀파지기님, 대장님들 함께 한 산우님들 모두 모두 수고하셨고 다시 뵙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