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용서 강병국 목사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사야 59:1,2 1968년 12월 17일, 발바라 맥클과 그녀의 어머니는 플로리다를 향하여 여행하는 도중에 죠지아 주 아틀란트시에 있는 한 호텔에서 하루밤 묵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새벽 4시 쯤 갑자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깊은 잠에서 깬 발바라의 어머니가 문을 열려고 하자 딸이 말했다.“어머니 지금 새벽이예요! 아무에게나 문열어 주지 마셔요!” 그때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는 경찰이고, 조금 전에 발바라의 남자 친구가 큰 자동차 사고가 났기 때문에 발바라를 데리고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거짓말이예요! 저 사람은 경찰이 아닌것 같아요! 문열어 주지 마세요!” 그러나 황급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에 설득된 어머니는 문을 열어 주게 되었고, 그러자 밖에 서 있던 여자 복장을 한 두 남자는 그 어머니를 마취제로 기절 시킨후 발바라를 끌고서 새벽 어두움 속으로 사라졌다. 납치범들은 발바라의 입을 틀어막고서는 꽁꽁 묶어서 자동차 뒤 트렁크에 밀어쳐 넣고 죠지아에 있는 한 산등성이 언덕까지 차를 몰았다. 발바라는 플로리다에 살고있는 백만장자인 프랭크 맥클씨의 딸이었다. 범인들은 어떤 특정한 나무로부터 20발자국을 계산한 후에 그곳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나무로 만든 관 속에다 그녀를 넣고는 물과 음식을 조금 주었고, 공기가 통하도록 하기 위해서 축전기로 움직이는 작은 선풍기를 달고, 그리고 약간의 온기와 빛을 제공하기 위한 등불을 달아주고는 땅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발바라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열린 무덤 속으로 내리워졌고, 나의 관 위로 흙을 퍼붓는 삽질 소리들을 들었습니다. 처음에 삽질하는 소리는 크게 들렸는데, 점점 소리가 희미해 지더군요. 나는 비명을 지르다가 가만히 귀를 기우려 무엇인가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납치범들이 다 가버린 것 같았습니다. 나는 관 뚜껑을 밀쳐 내 보려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밀어 보았으나 헛수고 였습니다. 나는 광적으로 소리를 쳐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고 죽음의 침묵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나는 산채로 매장된 것이었어요!” 납치범들은 그녀의 아버지인 프랭크 맥클씨에게 한 신부를 통하여 접촉을 하였고 몸 값으로 백만불을 요구하였다. “당신의 딸은 무사합니다. 좀 불편하기는 해도 ... 충전된 선풍기와 등불은 48시간 정도 갈 것이오. 그 후에는 산소가 끊기어 질식하여 죽을 것이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딸을 다시 보기를 원한다면 백만불을 몸값으로 내시오. 현금이 준비되는 대로 마이아미 비행장에 있는 라커 박스에 갖다놓고 신문에 이렇게 광고를 내시오. ‘사랑하는 이여, 오소서, 와서 X 박스에 있는 것을 가지고 나의 소중한 것을 돌려주시요’라고 ... 만일 경찰에 알리거나 돈을 놓아둔 장소를 감시하면 당신은 당신의 딸을 영원히 못보게 될 줄 아시오!” 아버지는 즉시로 돈을 은행에서 꺼내어 지정된 장소에 갖다 놓았고 범인들에게서 받은 은닉 장소를 그 당시 FBI 책임자였던 에드거 후버씨에게 알려주자 경찰들은 쏜살같이 달려가 납치범들이 말해준 그 나무밑의 땅을 파 헤쳤다. 나흘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그 딸이 살아있을지가 문제였다. 관 뚜껑을 열어젖힌 경찰관을 향하여 발바라는 이렇게 소리를 쳤다. “오! 당신은 내가 본 인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 기쁜 소식이 아버지에게 알려졌고 그 딸은 플로리다 주까지 호송되었다. 아버지와 딸의 감격적인 재회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문밖을 달려 나와 얼싸안는 아버지와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딸의 모습을! 그 이후로부터 그 딸은 자기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만불이라는 몸값이 그 아버지로 하여금 자기 딸을 더욱 사랑하도록 만들었는가? 아니면 그 백만불의 몸값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의 일부를 표현해 주는 것에 불과 했는가? 대답은 물론 후자이다. 그 치룬 몸값은 이미 아버지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던 딸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주는 계기가 되어 준 것 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귀하를 그렇게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만약 귀하가 그렇게 납치돼 있다면 당신을 위하여 그러한 몸값을 치루고라도 귀하를 도로 찾아줄 사람이 있는가? 무슨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그대를 구해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무릅 쓸 그러한 친구를 그대는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 그대에게도 바로 그러한 귀한 친구 한 분이 계시다. 성경은 죄에 팔려 납치되어간 인간들을 다시 사기 위하여 엄청난 몸값을 치루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이야기로 그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베드로 전서 1:18,1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성경에서 “구속”(Redeem)이란 단어의 뜻은 “값을 치루고서 사거나 물러 주었다”는 뜻이다. 귀하는 자신이 값을 주고 구속된 사람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살고 있는가? 백만불이 아니라, 고귀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로 그 값을 치룬 사실을 귀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귀하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처럼 사랑하고 있는 한 분이 계시다. 귀하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시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면서 까지 귀하를 구원하기 위한 값을 치루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도저히 희망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죄는 무서운 질병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면 그 율법은 인간에게 사망을 선고 한다. 불속에 들어 가면 죽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자연계의 법칙을 어겨도 사망이 이르러 온다. 하물며 이 우주를 평화와 질서 하에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기고 반역하여 사는 죄인은, 자기 자신을 악하게 만들어 죽게 할 뿐더러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지대한 해를 끼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온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파괴시키는 악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귀하에게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사야 59:1,2.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간단하게 하나님께서 당신과 인간 사이를 막고 있는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시는 그러한 죄를 반복하지 아니할, 다시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지 아니할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시는 일 또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에는 과거에 지은 죄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는 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러한 죄의 노예로 부터 해방되어 살 수 있게 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가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의 눈을 쳐다 보시면서, 그들이 순종하기만 했더라면 누렸을 완전한 행복과 고귀한 생명의 완성을 보셨다. 또한 영원토록 계속되어졌을 성장과 즐거움을 보셨다. 그래서 범죄한 죄인이 그대로 희망없이 죽도록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어떠한 값을 치루어서라도 다시 두번째의 은혜의 기회를 주어서 진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용서 받고 영생을 얻을 기회를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해와에게 두번째의 기회를 주실 때에는 죄의 결과가 이 세상에 들어와 인류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되는 일을 동시에 허용하셔야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후손들 즉 귀하와 같은 인간들이 태어나 복음을 듣고 영생에 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결과인 고통과 슬픔이 지구를 휩쓸지라도 인류를 용서하시고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이번에 인류가 받은 두번째 기회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에덴 동산 안에서가 아니라 죄로 물들여지고 타락한 이 세상 속에서 받게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인내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이해하고 받아드리면 다시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잠간 태어나 살게되는 유일한 이유는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발견케 하려 하심이”다 (사도행전 17:27). 귀하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귀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치루신 엄청난 몸값에 대하여 깨닫게 되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발견하여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죄를 자복해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살게 되어 있다. 십자가에는 용서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치료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 음성은 지금도 귀하의 고막을 울리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용서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구원의 잔치가 이미 배설되어 있다. 당신은 어떠한 죄의 짐에 눌리어 낙담하여 있는가? 어떠한 죄책감에 휩싸여 자포자기한채 살아가고 있는가? 귀하는 어떠한 크고 작은 죄들의 노예가 되어 즐거움과 평화없이 매일매일 질질 끌려가면서 살고 있는가? 아직도 그대에게 희망이 있다. 십자가에서 베풀어진 큰 용서는 당신을 위한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리 강한 죄의 사슬도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십자가로 나아 오시오! 하나님의 따뜻한 품으로! 귀하를 위하여 그렇게 큰 몸값을 치루어 주신 하늘 아버지께로!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