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둘러봐도, 둘러봐도 천둥지기 민낯이다. 지나새나 소
태 씹는, 성에 안 찬 하루
허우적 시詩가 구쁜 날, 잇몸 개방 허기 달랠까?
2024년 6월 10일
금초시마재에서 윤금초
바다 인문학
모래톱 베고 재주넘는 파도의 하얀 포말. ‘엎치락’하
면 잇따라 ‘뒤치락’ 몸을 틀고, 때때로 수미상관首尾想關의
손바닥 소설 쓰고 있나?
냉이꽃 신명
냉이꽃 하얀 봄이 옥상 터앝 퍼질러 앉아
토란잎 부추 따위 신생新生의 아침을 밀고, 해 설핏 소
꿉놀이 신명도 겨운 짬에
까르륵 꽃 봉인封印 뜯네.
소름 돋는 이 전율!
할㿣
죽음 앞둔 숨탄것들 미친 듯 정사를 한다.
치명의 상처 위로 침을 가끔 발라가며
죽살이 파정의 절정
할! 소리도 사치인가?
콤포지션 10
한 치 혀로 나불대는 게거품 자리 성채라,
하루가 천 년토록 부둥켜안은 슬픈 성채라,
저마다 정금精金을 움키는 불퇴전의 도반이라.
구멍 숭숭 울 엄니
현무암 마주할 땐 구멍 난 가슴 떠오른다.
걱정과 격정 앞에서 속엣 것 다 태우느라
울 엄니 천야만야 헉, 무너져 내린 앙가슴이.
더불살이 조개
거북손 아기작 걸음
은실비단조개 뒤따라
납작 바위 옴팍 틈새
곁방살이 몸 비집는다
전세도,
월세도,
똥줄 타는
3040 대명사로.
어처구니없는 날의 삽화
콩꽃 피고
꼬투리가
맺을 무렵 내리는 그
두화수豆花水
해코지에 그만
억장 죄 무너지고
하, 그적
잔해殘駭만 남은
매미 허물 되작이네.
대흥사 나들목
색의 거장 납시었나?
하늘 가린
십리 숲길.
렘브란트 붓질 같은
초록 차양
십리 숲길.
잎과 잎사이 비집고틈입하는빛의 난장이닷!
나리, 나리, 낄끼빠빠*
하늘 가녘
야브로시,
야브로시 걸터앉은
뭇 별자리 등 너머로
핏대 세운 ‘핏대장관’
거꾸로
소용돌이친다,
가납사니
이안류離岸流로,
* ‘낄 때 끼고 빠질 대 빠지다ㅁ’를 줄여 쓴 말.
아를의 밤*
북쪽 하늘 삼켜버린
큰곰자리 너볏하다.
꼼꼼한 필촉 너머로
타는 듯한 색채 분할,
무서리
살 떨리는 강
싸라기 별 침잠한다.
*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말한다.
신운神韻
- 겸재의 「어웅도」
물보다 훨 시원한 붓 맛 절로 절로 풀어낸다.
엷고 짙은 청청 먹빛 조촐하게 포치布置한 날
예굽은 서너 자 낚대
물음표를긋고 있다.
병丙의 놉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인 헐레벌떡 틈바구니
갑도 을도 곁눈 거둔 병의 자리 놉이던가?
어디에 발을 디딜까, 가위눌린 이 하루도.
아다다, 아다다
팔랑귀 파라르 떠는 그날 아침 신문 1면. 이리 궁싯,저리 궁싯, 눈을 씻고 톱아봐도 탄핵 바람 맞불 놓는 썰렁한 군소리뿐!
아다다
부아가 끓네,
트라우마 골이 깊네.
해거름 콧바람
해거름 한갓진 데 손때 먹은 헌책 같은 낙장落張 볕뉘
물려 놓고 花들짝 트인 강안 콧바람 쐬고 있다.
우린 참 늙는 게 아니라 싸목, 싸목 익어간다.
논다니 되는규
놀랠 노자 위뜸쯤에 깜짝 깜자 얹어 놓고
네 미룩 내 미룩하다 해넘이에 왜장친다구.
아 글쎄, 내 장 뭐랬나? 사정 봐주다 논다니 되는규.
비폭력 테러
- 박상희 조각
벼리고 벼린 도끼날에 금빛 석가 앉아 있다.
박격포 탄피 풀고 야훼의 꽃 펑펑 터치고, 녹슨 철모정수리에 모로 누운 법당이라니….
세상에,
총 들지 않은
테러집단 거기 있다.
북악산 먼발치
검은 복면 어릿광대
북악산 자락 어정댄다
문고리 권세 치마폭에 반쯤 몸통 가려 놓고, 날 잡아봐라 엉너리치다
배 째라…배 째라, 배 째!
막무가내 버팅긴다.
ㅡㅡㅡㅡ윤금초ㅡㅡㅡㅡㅡㅡ
1996년 공보부 신인예술상 및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앉은뱅이꽃 한나절』, 『큰기러기 필법』, 『독의 계보』,
사설시조집 『뜬금없는 소리』, 장편 서사 시조집 『만적, 일어서다』
등.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한국시조대상, 조운문학상 등
수상.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조선일보사 방일영문화재단
저술·출판지원금 받음. 현재 《정형시학》발행인.
- 윤금초 단형시조집 『바다 인문학』(2024.6.동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