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6(목) 07시 50분 ~ 19시 30분
욱수 성당 천주의 성모 Cu.
단장 - 박해주<바실리오> 外 82명
총 친목회 성지순례
(우곡 성지, 도산 서원)
안동 도산서원(安東 陶山書院)
사적 제170호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림의 발의로 1574년 도산서당 뒤편에 세우기 시작하여
1575년 낙성이 되자 선조(1567-1608 재위)로부터 한석봉이 쓴
'陶山書院'의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576년에는 퇴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792년에는 정조(1776-1800 재위)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향사에 필요한 물품을 친히 내리고 특별 과거인 별시를 도산서원에서 열기도 하였다.
그 후 도산서원은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도 영남 유학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중요성을 인정받아 철거되지 않았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비롯하여 퇴계 사후에 만든 전교당, 상덕사, 전사창이 있다.
그리고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박약재와 홍의재, 서원에서 만든
목판을 장관하던 장판각, 서원 관리인의 숙소 등 여러 부속 건물들이 있다.
도산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서원은 조선 사회에 성리학1이 정착하면서 사림2 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인재를 교육하는 강당이 있는 강학 공간,
존경하는 스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 있는 제향 공간,
그리고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도 벌이며 휴식하고 교류하는 휴식공간3으로 구성되었다.
주변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인격을 갈고닦는 인성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조선시대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의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이들은 한국 서원의 총체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한국의 서원'은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련되면서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세계유산 등제기준(!!!!)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이 되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 걸쳐 건립된 이들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교육과 사회 활동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또 이 서원들은 전국 각지의 지식인들이 제향을 올리고 강학을 하여
성리학 교육 체계를 만들고, 그것에 꼭 맞는 건물을 지어,
성리학 가치가 담긴 독특한 역사 전통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었다.
1 性理學 : 중국 송나라 때에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
2 士林: 조선시대 성리학적 가치를 중시하던 지식인을 일컫는 말
3 遊息空間 : 자연 속에서 수양하고 휴식하는 일을 성리학을 배우는 과정의 하나로 보고,
자연과 더불어 수양할 수 있도록 서원 내외부에 조성한 공간
천연대(天然臺)
도산서원 양편 산기슭에는 절벽이 있는데,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하던 곳이다.
퇴계는 동쪽 절벽을 천연대, 서쪽 절벽을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라고 불렀다.
천연대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鳶飛戾天 漁躍于淵].’라는
구절에서 하늘 천(天)과 연못 연(淵)을 따서 지었다.
천광운영대는 주자(朱子)가 지은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에 나오는
‘하늘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도는구나[天光雲影共排徊].’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지었다. 두 이름 모두 주변의 절경을 나타내고,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 삼아
학문을 성취하려던 뜻을 담고 있다.
목판 인출 체험
퇴계 선생식의 좌우명, 우리도 체험했어요.
더 잘 살겠습니다.
도산 서당
도산 서당은 퇴계가 만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
1560년에 완성되었으며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원래 부엌, 온돌방, 마루로 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부엌과 마루를 확장하였으며 확장한 마루 위에는 덧지붕을 달았다.
퇴계가 머물던 방의 이름은 완락제인데, '완상하며 즐긴다.'의 의미이다.
제자를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한으로 '바위에 깃들어 작은 효험을 바란다.'라는 뜻을 포함한다.
두 이름 모두 朱子의 글에서 따온 것으로, 학문의 즐거움과 겸손한 마음을 담았다.
정우당(淨友塘)
도산서당에 있는 작은 연못 속에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글자 뜻대로 한다면 '깨끗한 벗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므로,
퇴계는 절의를 지키는 정결한 군자의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마당에 회양목
울 너머엔 매화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보물 제210호
전교당은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1574년에 세웠다.
강당은 유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전교당은 대청과 서쪽에 한존재라는 온돌방이 있다.
도산서원의 원장이 머물렀던 한존재의 문을 들어 올리면
대청까지 트인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
정면에 걸린 '도산서원'현판은 1575년 선조가 내려주었으며,
글씨는 한석봉이 썼다.
전교당 서쪽 계단 옆에는 높게 만든 돌기둥 위에
반원 모양의 돌기둥을 받쳐놓았는데, 이것은 밤에 행사를 할 때
불을 밝히던 정료대이다.
전교당 동쪽 뒤편 높은 곳에 사당인 상덕사가 있다.
동제와 서제
동제와 서제는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기숙사.
상급생들이 사용했던 동재의 이름은 박약제(博約齋),
서재의 이름은 홍의제(弘䝘齊).
퇴계(退溪)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
옥진각에는 퇴계 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퇴계 선생 관련 유품과 저서,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도산서원도
작가 - 강세황
무이구곡도
작가 - 이성길
퇴계 선생의 과거 급제
퇴계 이황의 생애
퇴계 선생의 공직 생활
퇴계 선생의 사상
퇴계 선생과 율곡 선생의 관계
퇴계 선생의 교육관
퇴계 선생의 活人心方
養生之法 / 中和湯
병을 없애는 장수 비결
너무 많이 입력된 퇴계 사상
잠시 쉬며 되새겨 정리 중입니다.
역락 서재
농운정사와 같이 도산서당의 기숙사.
1561년 정사성이 퇴계의 제자가 될 때
정사성의 아버지 정두가 제자들과 협력하여 지었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가 직접 썼다.
2호 차
1호 차
다 함께
돌아오는 길
숨겨둔 끼
애창곡 방출
단장님 마무리 인사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귀가하게 되어
주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