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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고구려 토론방 고구려 전욱 고양씨 출자설에 대하여
유곡 추천 0 조회 770 09.06.27 13:10 댓글 3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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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27 14:15

    첫댓글 전욱 고양씨건은 전에도 몇 번 논의 됐었고, 이번에도 유곡님께서 먼저 꺼내신 것은 아니고, 엄밀히 말해서 이번에 전욱고양씨건을 확대시킨 주범(?)은 저이니, 그렇게까지 죄송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튼 잘 읽었습니다.^^

  • 09.06.27 18:18

    고구려를 소수민족사를 넘어 자국사로 끌어 넣으려는 동북공정속에 있는 중국측 논고에 언급되는 식일뿐입니다.....국내에서 일부 이를 끌어 들이는 사람들도 있으나......중국의 시조도 한민족이다는 식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양자 모두 일고의 가치가 없습니다....왠만 하면...저는 일말의 가능성만 있어도.....어느정도 판단을 보류하고 눈여겨 보는 식으로 고대사를 이해하지만...이부분은 그 의도자체가 양자가 모두 정치적이기에 가치없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 09.06.28 20:06

    ^^ 고구려인들이 '자신들을 하늘의 후예 천손으로 여겼다'는 것이 기원을 삼황오제 시기에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천손은 '공허한 하늘의 자손'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이름자가 고금문, 갑골문을 비롯한 후대의 한자를 성립시키는 문자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고구려인들은 남근을 신좌에 놓고 제사를 지냈다는 겁니다. 神이라는 글자는 '天神'을 말하니까요. 허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피해의식을 갖지 말고,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침탈 당한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지요.

  • 09.06.28 20:12

    우리 역사의 판단기준을 종이쪼가리에 적은 것만으로 한정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처사입니다. 종이보다 청동기물, 갑골의 기록이 역사 실제시기에 훨씬 근접한 기록이며, 신뢰성도 종이쪼가리보다 높습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지요. 다시 강조드립니다만, 중국의 학자들이 고대기록을 해석한 것보다 해석하지 못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특히 이른 시기의 기록일수록 그 정도가 더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 09.06.29 08:19

    사실 천손이라는 단어도 금석문으로서는 광개토태왕비 보다 후대인 양원태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명판에 최초로 나오며 사료로는 속일본기가 최초입니다. 이것이 기준이 되기에는 아주 살짝 무리가 따르므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고구려 금석문은 광개토태왕비와 모도루 묘지명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것들은 종이 쪼가리가 아닙니다.^^;; 광개토태왕비에서 추모왕은 천제의 아들이라고도 했지만, 황천의 아들이라고도 했습니다. 또 동시에 비문에는 광개토태왕의 은택이 미친 곳 또한 황천입니다. 황천은 가야 건국신화나 중국고사에도 자주 나오는 용어로 하늘을 높이 이르는 말입니다.

  • 09.06.28 20:54

    광개토태왕비만 본다면 추모왕의 아버지는 천제=황천으로 공허한 하늘을 일컫는 동시에 하늘을 다스리는 신이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모두루 묘지명에 나온 일월까지 거론한다면 추모왕의 아버지는 '하늘을 다스리는 신'='공허한 하늘'='해, 달'이 되므로 용어선택면에서 일관성이 제대로 떨어집니다. 이는 곧 아직 추모왕 신화가 광개토태왕 대에는 덜 정리 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단 하나 저 용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가장 높은 것들을 나타내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수태왕 어느 시기에 오면서 추모왕 신화는 해모수라는 천자가 끼어들어가고 천자 해모수의 아들인 추모왕은 천손이 됨에 따라 계보가 정리 됩니다.

  • 09.06.28 20:59

    즉 고구려, 발해 왕실이 천손의 후예라 자처한 의미는 고구려 시조인 천손 추모왕의 후예라는 뜻입니다. 만일 고운일가 주장대로 고구려 왕실 출자가 전욱 고양씨라면 왜 고구려인들은 신라인들처럼 소호금천씨나 김일제를 뚝딱하고 적지 않고, 황천이니 일월이니 천제니 하면서 비일관적으로 남겼을까 하는 의문도 들며 어째서 고운일가가 자칭한 것 빼고는 현존하는 사료 중 고구려 왕실이 전욱고양씨라는 고구려 당대 기록이나 한국측 문헌은 물론 중국측 문헌에서 조차 단 한건도 안 나오는지 의문이며 전욱고양씨= 황천(공허한 하늘)=천제(하늘을 다스리는 신)=일월(해, 달)로 둘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 09.06.28 23:00

    최초의 天, 즉 하나님을 빼고는 그 후대는 다 천손이 되는 건 당연합니다. 거기에는 해모수 뿐 아니라, 明治好太王 도 포함되겠지요. 日月 역시 조선의 朝자에 들어있는 인칭입니다. 日月 로 표현된 이분들은 부부였습니다. 역시 금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天, 日, 月이라는 개념은 삼라만상 중에서 관련있는 것을 자신의 토템으로 삼은 겁니다. 원하시면 언제든지 금문출처를 알려드리지요. 또한 문자 사용 초창기는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개념을 적을 수 있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09.06.28 22:54

    최초의 기록으로부터 고구려까지는 25세기의 시차가 있는 셈이니 비문의 기록은 전해내려온 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을 것입니다. 결코 신비로운 수사가 아니란 것이죠. 따라서 황천이니 일월이니 천제는 자신들의 시조와 중시조를 나타낸 것으로 매우 일관성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석에 기록되었다고 종이쪼가리가 아니란 것은 제 취지가 아닙니다. 비석의 서체는 분명 오늘날의 번체로 기록된 것이니까요.^^ 일단 초기의 고금문 중 태반은 중국인들이 손놓고 해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고조선의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 09.06.28 23:01

    그렇다면 광개토태왕비문에 나온 태왕의 은택은 황천에 미쳤고 사해를 떨쳤다라는 구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종래에는 태왕의 은혜는 하늘에 미쳤고 세상에 떨쳤다라고 해석했습니다만... 또한 가야건국신화나 중국 고사에 나오는 황천도 거의다가 하늘로 쓰였는데, 이것들은 소르가이(?)님의 주장대로라면 어떻게 봐하는지 궁금하군요,그냥 하늘은 아니라는 말씀 같으신데...^^;

  • 09.06.29 00:13

    제가 설명드린 것은 본래의 의미를 알린 것입니다. 후대로 갈수록 본래의 의미가 추상화되어 가는 경우가 허다하니 광개토왕비문의 해석은 고구려 시대에도 본의를 간직하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고구려가 남근을 신좌에 모시고 제사를 지냈고, 광개토왕의 왕관에 알이 신라의 경우처럼 다수 달려있다는 것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심도있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삼국 이전의 잃어버린 역사에 관심이 더 많아서지요.

  • 09.06.29 00:11

    궁남지나 안압지의 남근을 자위용으로 해석하는 우리 학계의 천박한 수준으로 보건데 제 정신을 차리기는 요원할 것 같습니다. 또 차례, 아리랑, 삼족오, 솟대, 왕관의 형태...등등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풍속과 유물조차도 해석하지 못하는 지경이니 그냥 한숨만 짓지요.

  • 09.06.29 17:07

    5세기 고구려인들의 인식을 논하는데 굳이 본래의 의미를 말씀하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군요. 그리고 광개토태왕의 왕관이 출토된 바는 아직 없습니다.^^; 저는 sorgai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본래의 의미'가 5세기 고구려까지 갔을지는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어쨌든 이 부분은 sorgai님께서도 아직 심도있는 공부가 덜 되었다 하시니, 일단은 전욱고양씨건 토론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09.06.29 21:31

    본의를 말하는 것은 고구려시대에 남근을 신좌에 앉혀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과 고구려 스스로 천손이라고 하니 당연히 기원부터 알리는 겁니다. 자기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니까요. 神이란 글자는 본래 남근을 나타낸 것이고, 허신은 이를 '自持'라고 했지요. 그러니 天, 神, 神座 모두 맥락이 일정하지 않습니까? 고대기록의 天은 절대로 공허한 하늘을 나타낸 것이 아니고, 고구려인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신라도 마찬가지. / 광개토왕의 왕관이 아니라, 광개토왕릉 출토 관식을 말한 것인데 오타입니다.

  • 09.06.30 10:12

    고구려인들이 남근을 신좌에 앉혀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어디에 있는지요? 고구려인들은 광개토태왕비에 나온 태왕의 은택이 미쳤다는 皇天이나 추모왕이 황룡을 타고 올라갔다는 天 그리고 중원고구려비에 나온 守天 등에 나온 天은 모두 공허한 하늘을 의미합니다. 님이 주장하시는 天의 의미가 고구려 이전 시대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고구려 시대에는 통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야 건국 신화나 중국고사에 나오는 皇天도 공허한 하늘을 의미할 뿐입니다.

  • 09.06.30 21:41

    음... 허신이 神 을 自持 라 했다는 말이나 이 때의 自持 를 남자 성기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굉장히 당혹스럽네요. 이런 주장들의 근거는 <설문해자> 인 듯한데 설문해자에서 과연 어떻게 말하는지 잠시 살펴 봅시다. <설문해자> 의 글자 설명방식은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甲, A也. 從B. CD切. 이는 甲 이라는 글자의 뜻은 A 이고, 甲 글자의 형성 방식은 B로부터 비롯되며, 그 발음은 CD 를 반절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從 뒷부분은 글자의 '의미' 가 아니라 '모양' 을 설명한다는 점을 기억해 주세요. 그럼 문제의 神 자를 살펴 보면,

  • 09.06.30 21:50

    神, 天神,引出萬物者也。從示申。食鄰切。 "神 이란 천신이다(천신이란 만물을 끌어내 살게 하는 자이다). (이 글자는) 示 와 申 으로 형성된다. (발음은) '신'(식린절)이다." / 보시다시피 神 을 自持라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 神 이 自持 라는 말은 申 자와 관련되어 나온 오해인 듯합니다.

  • 09.06.30 21:50

    申, 神也。..... 從臼,自持也. .... 失人切。"申 이란 神을 뜻한다. ... (申 자는) 臼 로 형성된다(그리고 臼 란 自持 란 의미이다) ...(申의 발음은) '신'(실인절)이다" / 이 구절에서 보듯, '自持' 란 臼 의 뜻이라는 것이지 神의 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게다가 '自持' 를 남자성기로 읽어야 할 이유를 설문해자에서 찾을 수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 09.07.01 10:03

    미주가효/ 從이 무엇입니까? 형상을 따랐다는 말이죠. 님의 주장을 보면 정말 申이란 글자를 보고 하시는 건지 의문스럽습니다. 自持란 말은 臼의 상대개념인 │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발음이 나와있질 않습니까? 또 설문이 발음을 말한다고 해도 무관한 발음이 아니라, 가능한 상형에 가까운 개념으로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니 申은 '│과 臼'로 구성되었음을 알리는 겁니다. 丘자도 그 한예일 겁니다. "从北从一. 一,地也" 이것만 봐도 님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 09.07.01 10:05

    自持 를 남자 성기로 해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온 유물, 풍속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안압지, 궁남지는 물론 옹관묘, 전통묘의 망주석, 돌하루방 ...이 그것이죠. │이 님이 만족할만큼 '從臼ㅁ' 정도로 해야했는데 왜 '自持'라 한 것일까요? ^^ 自持로 설명한 것이 초기 고금문형성에 한민족이 개입되었다는 반증이며, 이것이 조선이라는 글자의 첫획을 차지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臼'는 '自持'을 잡은 형상으로 양성 표현으로 봅니다. 어쨌든 오해라는 말씀이 오해입니다.

  • 09.07.01 10:16

    《삼국지》에 등장하는 고구려 기사 중 ‘木隧神’즉, ‘나무로 만든 수’가 ‘남근’이라는 양주동 박사의 주장을 인용한 것입니다.(?국문학논고? 182p, 양주동, 을유문화사, 1952년). 이는 신라, 백제도 왕관이나 목제 남근 출토물을 보면 동일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사의 신뢰성 시비가 종종 있는 《삼국지》일지라도 이 표현은 믿을만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고대 유물에서 │이 '自持'라는 개념은 최상위 개념입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모계사회'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허신의 설명은 당시로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내용들이었을 겁니다.

  • 09.07.01 11:43

    글쎄요. 삼국지의 저 기록만으로는 나무로 만든 것이 남근상인지 전혀 파악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서에서는 나무로 만든 부여신(유화부인)과 등고신(추모왕)에게 제사한다는 기록이 있으니까요.

  • 09.07.01 14:17

    고대에 제사의 대상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천자는 3소3목, 제후는 2소2목이라 합니다. 거기다가 '벡세불천'의 대상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나라에서 가장 비중을 둔 '영구불천'의 인물이 누구냐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의 기원을 말하는거니까요.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한민족 나라들은 │을 자기의 기원으로 삼았습니다. (문제는 │을 불꽃으로 해놓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自持'의 등식을 알려주는 '舅'자도 살펴보시지요. 또 고대청동기물의 중앙에 │을 우뚝 세운 것이 적지 않습니다.

  • 09.07.01 14:32

    제가 추모왕과 유화를 거론한 이유는 나무로 만들어진 제사 대상이 남근만이 아니라는 것으로 삼국지의 기록만으로는 나무로 만들어진 신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전혀 파악할 수 없기에 남근을 신좌에 모셨다고 속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09.07.01 15:45

    그래요? 그렇다면 그들이 왜 '풍속이 음란하다'고 평했을까요? 그것이 아니더라도 광개토왕릉 출토 속관에 알이 많이 달려있는 것만으로도 고구려 왕실의 인식을 알 수 있지 않나요? '알(.)'을 어원으로 하는 단어가 '하나님'이고, 이것을 상형문자로 표현한 것이 '天'이죠. 天은 '천신'을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神 역시 '천신'을 말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天=神'의 개념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神의 始體字가 '│'이며, '自持'의 상형임을 설명할 수 있지 않나요? 神座라는 말 자체가 역시 '自持'를 놓은 자리일테니까요.

  • 09.07.01 21:02

    풍속이 음란하단 것도 반드시 남근숭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녀관계 등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위서에서는 밤에 남녀가 어울리며 논다고 방탕하다고 했지요. 그리고 속관의 장식도 알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라 금관의 모양이나 장식물인 곡옥만 해도 추정이 다양한데, 알이라고 단정하는 행위는 매우 성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광개토태왕비와 모두루 묘지명, 중원고구려비, 위서의 나온 문맥에 맞춰 있는 그대로 皇天, 日月 등을 해석하셨음 합니다.

  • 09.07.02 00:29

    미주가효/ 님이 잘 설명하셨군요. 허신이 왜 腎 과 같은 글자를 두고 뭐하러 '自持' 라는 한국어 단어로 남자성기를 표현했을까요? 다른 거 치우고 '自持'가 무슨 뜻인지 미주가효님이 설명주시기 바랍니다. 고대문자로 부터 4천년이 넘는 기간 내내 이 '自持'는 항상 존중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 09.07.02 00:34

    '自持'의 상대개념인 '保持'에 대해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子生母曰義 母生子曰保"《淮南子》「天文訓」뭐 어려운 문장 아닙니다. 性을 모르면 고대기록을 이해 못하기에 옮겨봅니다. 참고로 앞의 문장과 연결되는 고대상형기록은 '가제집고록 22'에 있습니다.

  • 09.07.02 00:39

    미주강효/ 우리 말과 풍속, 문헌, 출토유물에서 내내 일관되게 등장하는 것이 ○입니다. 님은 이 ○이 '알'이 아니라시니 님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근거와 함께 설명주시죠. 이유없는 댓글이라면 토론자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겁니다.

  • 09.07.02 00:41

    미주가효/ 제가 할 말을 하시는군요. 문장 그대로이고 그 근거까지 보였습니다. 그리고 상대되는 개념까지 문장을 제시했습니다. 읽는 그대로 일 뿐이며, 왜 허신이 다른 단어를 놔두고 굳이 그런 표현을 했겠느냐는 말입니다. 잘 생각하세요.

  • 09.07.02 00:45

    '自持'는 말 그대로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후에 각각 自의 발음과 持의 발음은 후대를 말하지요. 그래서 알자, 알지로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고대발음은 현재와 같지 않기에 유사한 발음으로도 기록됩니다. ㅅ, ㅈ 등으로 말입니다.

  • 09.07.02 00:57

    保는 다음 왕위를 이을 아기를 말합니다. 고대의 혼인규칙에 따라 "子生母曰義 母生子曰保"는 잉첩이 모급아이를 낳으면 의라하고, 모급처가 아들을 낳으면 보라 한다는 겁니다. 즉, 자지든, 보지든 혼인과 출산과 관련된 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겁니다.舅라는 말이 왜 장인/외삼촌/시아버지의 뜻을 동시에 갖게 되었는가 하는 것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기록은 고대인의 시각에서 해석해야 본뜻을 찾게 됩니다. 자기의 상식이나 오늘날의 잣대로 고대를 이해하려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이 되어버립니다.

  • 09.07.02 00:56

    丘 자에서 從北從一. 一,地也. 부분 역시 丘 가가 北 자와 一 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서의 一 이라는 단어가 땅이라는 부연설명이라고 하시니 참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 역시 직접적 설명입니다. 一는 신의 시체자인 │을 대칭시킨 글자입니다. 이는 조선의 두번째 획인데, │보다 늦은 세대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여자라는 말이지요. 이것은 고대금문기록 규칙대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 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린 고대글자가 辰입니다. 금문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09.07.02 02:00

    미주가효님, 솔개(?)님/ 꼬리말이 3개 이상 초과되었으니, 새로이 글 써주시는 게 어떨까요? ^^;

  • 09.07.02 01:59

    명치호태왕님// 시간이 늦어서 일단 꼬리말부터 올린다고 올린 것인데, 3개는 애시당초 넘은 듯하니.... 별로의 답글로 다는 것이 합당하겠지요. 조만간 별도 글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 09.07.02 02:00

    수고 부탁드립니다.^^;

  • 09.07.02 02:23

    sorgai// sorgai 님과의 의견교환 부분은 너무 길어진 듯하여 별도 글로 올리고 삭제하였으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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