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리데, 아니 이제 라미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공주조차 멍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본데 마법의 본질은 환상. 마력을 통해 생물의 의식에 접근해서 교묘히 감각을 조종해, 환상이나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나 마물처럼 자의식이 강한 것들에게는 그것이 강하게 나타나 현실에서도 환상이 실현되게 되고, 시현하는 자의 마력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게 된다.
“과연, 마계의 상급 기사. 하하하.”
“아부아거구러.”
라미엘조차 제법 길게 떠들었다. 별 것 아니었다. 암두시아스는 그저 발을 한번 굴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막은 마치 개미지옥이라도 된 듯이, 바실리스크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대한 모래 괴물의 환상에 바실리스크가 지레 겁먹고 도망친 거였지만.
“진작에 좀 그러지. 가자, 망아지.”
마왕은 가뿐한 몸놀림으로 다시 올라탔다.
“가자, 암두시아스여. 천사를 위한 별빛이 기다리고 있나니.”
“쓸데없는 대사로 폼잡지 마쇼, 주인 나리.”
… 그의 바람과는 별개로, 암두시아스의 말투는 이미 고쳐질 가망이 없는 듯하다. 마왕은 웃으며 떠났다.
“캬아아아.”
제법 땅속 깊숙이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암두시아스는 분명 뛰어난 마법사이며, 기사였지만, 혼자다.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다가 다른 괴물들이 나오면 귀찮기에 일시적으로 쫓아낸 것일 뿐. 하지만 이 뱀들은 의외로 제법 끈질겼다.
아자젤은 목걸이에 달린 커다란 검은 진주를 매만졌다. 검은, 한없이 검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매혹적인 흑진주를.
“열려라, 흑혈(黑穴).”
아자젤은 암두시아스도, 라미엘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시끄럽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완전히.
* * *
난리법석은 제국의 황궁이나, 마계, 그리고 한창 요란하게 싸우고 있는 검은 사막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계에 필적할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반대로 숭상과 존경을 받는 자들의 집단. 그래서인지 마계가 질투와 증오를 서슴지 않으며, 동류이면서도 꽤나 상성이 나쁜 집단.
선계!
“샨의 보고가 왔다네.”
원시천존. 선계의 지배자이자, 태상노군, 신공표등과 함께 신격화 되는 가장 유명한 선인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도 화제는 마왕의 말썽이었다. 하지만 황궁이나 마계와는 다른 차원으로 심각했다. 사실 마왕이 조금 설친 정도를 가지고 선계가 전면 개입할 필요는 없었다. 샨이 비록 곤륜산에 머물며 보패를 받아갔지만, 그런 정도의 인연을 가지고 선계 전체가 시끄러울 이유는 없었다.
라미엘. 몇 번을 썼다 지웠는지, 먹으로 범벅이 된 이번 대 회의의 의제였다. 결국 제일 쉽고 간단한 한자를 고른다고 고른듯 하지만, 저처럼 지저분해서야. 게다가 이런 중대 의제를 여지껏 모르고 있을만한 자는 없었다.
“어찌할 겁니까, 천존.”
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신비한 안개가 시계에 절묘하게 끼어 있는 영산, 곤륜산. 선인들 티낸다고 제법 때 빼고 광낸 새하얀 순백의 도복을 입고 있는 원시천존과 12선인과는 달리 거무튀튀한 옷을 입고 있는 사내였다. 분위기 모르고 배실배실 웃고 있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왕따가 틀림없었다.
“염라대왕의 사자여, 조금 더 기다리게나.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네.”
실실거리고 있는 입매와 달리 이마에는 핏줄이 아주 빠득빠득 서 있었다. 성질은 충분히 느긋해 보이는데, 저렇게 열을 내는 걸 보면 역시 선인들의 느긋함이 한 수 위였나 보다.
“그게 지금 몇 시진 째인지 알고나 하는 소린겨? 앙! 무려어어어어! 스물하고도 넷이 막 지난 참! 풀어 말하면, 댁들 지금 꼬박 이틀 동안 침묵일관! 회의 중이냐, 명상 중이냐! 앙!”
“허허, 염라대왕을 똑 닮았구려.”
“시끄러, 망할 영감탱이들!”
염라대왕의 사자, 저승사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사실 정말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한다거나 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저승은 엄연히 분리된 다른 세계. 육신을 지닌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는 선계의 재판관의 심부름꾼.
그들이 언젠가부터 ‘저승사자’가 되어버린 이유는 염라대왕의 99.99%에 달하는 사형 판결 때문이었다. 물론 염라대왕 앞에 설 정도면 대개 대역죄인 쯤 되긴 하지만, 어찌 두려워 않을 소냐.
첫댓글 와,고 3인데도 열심히 연재하시네요! 수능 준비도 열심히 하고 계시죠? ㅋㅋㅋ 그런데 말이에요, 암두아시는 말이죠?? 마법사, 기사, 하니까 자꾸 사람같이 느껴져서요. -_-;;; 스케일이 큰 소설, 저 좋아해요! >_<
영광이옵니다. 냐하하~_~ 암두시아스는 늘 그랬듯, 망아집니다. 뿔달린 흰색 망아지 - 라는 표현을 쓸 날을 기대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