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8일) 정규 근무시간 후에도 야근을 좀 더하고는 20시가 되어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퇴근길에 나섰는데, 마침 눈발이 날리더라구요.
오늘(29일)은 어제보다 훨씬 추워진 날씨(오늘 아침 대전지방 기온이 -11.8℃였어요.)인데,
한동안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 지낼 만 하더니, 추위가 갑자기 찾아오니 더 견디기 힘들어요.
한겨울 정상기온을 되찾은 거라지만, 서민 심정으로는 추운 게 힘겨워요.
물론, 농촌에서 병충해 방제를 위해서는 한겨울에 추위가 있어야 한다죠.
“추울 때는 추워야 된다” 니까요.
농촌에서 월동하는 병해충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니까, 엄동설한(嚴冬雪寒)에 강추위도 필요합니다.
저는 엊저녁 사무실 옆에 있는 대전지하철 중구청역으로 가던 걸음에 그냥 지하통로를 지나
건너편쪽 860번 시내버스 승강장으로 갔어요.
저는 지하철을 타고 정부청사역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어서 집에 가려면 때마침 내리는
눈발에 걷기가 힘겹겠어서, 집 근처까지 직접 가는 860번 버스를 탄 거였어요.
그러면, 추워진 날에 고생을 덜하겠다는 생각에서였죠.
마침 별로 안 기다려서 바로 오는 860번을 탔어요.
빈 자리가 없어 저는 어차피 “월평동 종점”까지 가야기에 맨 뒤쪽 5인승 자리 앞으로 갔죠.
그 자리 앞에 서 있으며 빈자리가 나기만 기다렸어요.
그런데, 5인승 좌석 가운데에 앉은 남자분이 옆에 앉은 여대생으로 보이는 학생과 신사분
에게 자기가 보던 책에서 모르겠다는 글자(漢文)의 음과 의미를 묻더라구요.
정말 모르는 건 지 아니면, 알면서도 귀찮아서 그러는지 몰라도, 그분께 답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나중엔 자기 앞에 서있는 “저”에게도 묻더라구요.
“아저씨, 이 글자를 뭐라고 읽죠?”
그런데, 제가 보니 그 분이 궁금해 묻는 한자(漢字)가 아는 글자였어요. 다행이었죠?
(하하하)
흔히 쓰는 한자(漢字)는 아니라도, 제가 아는 거라 모르겠다는 “세 곳”을 모두 알려 줬죠.
그랬더니, “우와, 아저씨 한문 잘 아시네요?”
“아니, 저는 별로 한문(漢文)하고 안 친한데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도 이과(理科)였기에 한문을 많이 안 배웠두만...
그저 저 혼자 신문이나 책을 좀 더 봤을 뿐 인데... (ㅎㅎㅎ)
마침, 용문동에 이르러 자리가 나서 그 사람 옆에 앉았어요.
자기는 ’69년생이랬어요. 제가 60년생이니 9살 어린 동생뻘이었죠.
무슨 책을 열심히 보는 거냐니까, “풍수지리(風水地理)”책이랬어요.
“명당(明堂),신수(身數),운수(運數),작명(作名),운세(運勢),장례(葬禮),염습(殮襲)...” 같은 것 아시죠?
선화동에 있는 “철학관(?) 교육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더라구요.
같이 공부하는 교육생 중에는, 초로의 어르신, 가정주부, 젊은 학생에 불교 스님도 계시다던데...
저는 “한문을 잘 알려면 옥편(玉篇)을 같이 봐야한다”했는데, 어쨌거나 시내버스 타고 가면서도
책을 열심히 보는 노력이 가상(嘉賞)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기의 풍수지리 공부를 얘기하는 그분께, 흔들리는 시내버스에서 책을 보면
시력을 해친다고 말해 줬죠.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사람은 “개신교 신자”라 했어요.
저는 “어디 교회에 다니시나요? ” 물었더니, 용두동에 있는 조그만 개척교회(장로교회)라던데...
자신의 집이 월평동이지만, 그전부터 알고 있는 목사님과의 인연 때문에 용두동에 있는
예배당을 다닌다 했죠.
저는 가톨릭신자라고 소개하고, 젊은 분이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 힘든 걸 공부하신다고
격려 했어요.
저는 “이런 풍수지리 배우는 걸 교회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죠.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우상숭배니 미신이니 하며 공격하는 줄 아는데...
(물론, 우리 가톨릭에서도 미신은 배격하고, 대부분 점괘, 운수 따지는 데는 부정적이죠.)
“사실, 자기도 목사님이 뭐 하러 그런 걸 배우냐?”며 말씀해서 고민인데,
그래도 자기 생각엔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4개월 코스를 다니고 있다” 더라구요.
저는 어제 밤에 졸지에(?) 시내버스 탔다가 생소한 경험을 했어요.
사실, 저는 풍수지리나 운세ㆍ운수 따위를 믿지 않아요.
얼마든지 자기의 노력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사실, 정해진 운명대로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인생살이라면 별 재미없을 거여요.
안 그래요?
아고, 이제부터는 오늘 본론을 시작해야겠어요. (ㅠㅠㅠ)
금년의 마지막 글인데, 오늘은 그동안 미뤄졌던 최스테파노ㆍ안블란다 형제자매님 이야기를 꼭 해야죠.
제가 동두천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던 1971년 어느 날.
저희 집에 그전에 같은 집에서 셋방살이를 했던 아저씨 한 분이 저희 집에
오셔서 제 어머님을 보시더니, 막 우시는 거였어요.
“아주머니, 우리 이제 어떻게 살아야죠?”
갑작스런 아저씨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제 어머님이셨어요.
저는 그 때 단칸 셋방 안에 있는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이 아저씨와 어머님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이 아저씨는 전에 “한 지붕 사글세 집에서 여러 가족”이 살았을 때 저희와 가깝게 살았던 분이죠.
부엌이 한 가운데 있고 양옆으로 방이 하나씩 달려있는 집이었어요.
이때, 그분 댁과 저희는 부엌 하나를 같이 썼었죠.
요즘은 아무리 셋집이라도 이런 구조의 집은 보기 힘들 겁니다.
다 같이 여유가 별로 없이 사는 처지이다 보니, 이 분 댁(아들 이름이 최대일이라,
저희는 대일이네 라고 불렀어요.)
그러니까 이분은 최대일 아버님인데, 당연히 최씨겠지만 이분 성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몰랐어요.
어른 성함을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은 “저”였구요.
그분 댁과 같은 부엌을 쓰며 오랫동안 산 게 아니고 몇 달 있다 다른 집으로 서로 이사를 갔기에
헤어졌지만,
같은 동두천시내였기에 이사 하고도 한 동안은 서로 왕래하고 인연을 유지하며 즐겁게 지냈었어요.
저희가 동두천초등학교 옆에서 살았을 때 “대일이 형”(저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아서 형이라 했었죠.)네는
동두천중학교옆에서 살았었죠.
저도 어머님따라 그 집에 몇 번 가봤었어요.
그런데, 이사하고 나서 그분의 부인(婦人)께서 어느 개신교 예배당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곳이 정통 프로테스탄트도 아니고, 흔히 이단(異端)이라고 하는 어느 교파였어요.
그 교회 목회자들이 “이 세상에 있는 물건(재산)은 아무 덧없으니, 천국의 영생을 위해
자기가 가진 재산을 온전히 하느님(물론, 그들은 하나님이라 했겠죠.)께 바쳐야 한다“며,
강요하여
얼마 안 되는 재산이나마 거의 모두 교회에 바치고, 가정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했었다죠.
오죽하면 남편(최씨 아저씨)이 벌어온 월급마저 반(半)이상 헌금할 정도였는데...
그래서 연이어지는 부부싸움에 가슴을 답답해하시던 차에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찾고자
터놓고 잘 지내던 저희 집 어머님께 찾아와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상의하신 거였어요.
그 당시 저희는, 고향 동두천성당에서 가톨릭교리를 배우고 있는 “예비자” 였어요.
안상인 요셉 신부님과 수녀님께 열심히 배울 때였죠.
대일이형 네의 그런 사정을 알고는 최씨 아저씨와 제 모친이 예배당을 찾아가 목사님과
담판을 지었다죠.
거의 모든 헌금과 재산을 그 집 아주머니가 교회에 자기 임의로 바쳤다는데,
강요에 의한 거니 돌려달라는 거였죠.
그렇지만, 그 교회에서는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어요.
그래서, 몇 주 동안 수요일과 일요일마다 교회입구에서 두 분이 교대로 시위(示威)까지 하셨는데...
“경찰을 부르느니, 뭐니” 하며 협박하는 예배당 측과 맞서서 “그래 법으로라도 갈 때까지 가보자”며
싸운 끝에, 결국 교회목사로부터 봉헌한 재산의 절반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래도 반이라도 찾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는데,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깨달은 아주머니와 최씨아저씨가 저희의 권유로 성당에서 예비자교리를 같이 받고
가톨릭신자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1년 6개월간의 기나긴 교리공부 끝에 ’72년 성탄 때에야 영세(=세례성사)를 받았는데,
(사실, 제 어머님(박아가다)의 꿈은 제 아버님과 같이 주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셨거든요.)
그분들은 저희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6개월 교리 받고 저희보다 먼저 신자가 되셨어요.
제 선친 김요셉은 1989년 2월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대세(代洗)를 받았어요.
교리공부 하고 오시라고 하면, 성당에 갔다온다하고 집을 나서서 “주(主)님” 대신 주점(酒店)에서
“알코올 주(酒)”와 친해져 오셨었는데...
그래도 돌아가시기 직전에 대세 받고 영성체까지 하시고 운명하셨으니... 다행이었죠.
저희의 권유로 먼저 신자가 되셨던 그분들의 영세명이 “최 스테파노와 안 블란다”입니다.
지난 26일이 “스테파노성인 축일 이었죠.
블란다 성녀의 축일은 5월10일입니다.
저희가 동두천에서, 서울로, 대전으로 무려 51번의 이사를 전전하면서,
어느덧 35년이 지났는데, 그분들이 지금 생존해 계시면 80대 연세이시겠는데,
어디서 여생을 즐기시며 살고 계시려는지...?
제가 이제껏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아시면 기뻐하시려나...?
그분들의 아드님 최대일씨도 만나고 싶어요.
아드님도 같이 영세 받은 걸로 기억은 하는데, 본명은 모르겠어요.
오늘은 12월29일입니다.
2006년도 업무를 마감하는 종무식이 있는 날이죠.
지난 1년간에도 별로 재미없는 제 글을 봐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제 제 사무실 전화번호를 보시고, 멀리서 가까이서 전화주시고
반가운 인사말씀 해주신 님들이 몇분 계셨는데 감사했습니다.
특히, 수원에 계신 ○○○님과 어떤 님들... “이뽀이뽀”. (ㅎㅎㅎ)
저는 며칠 안 남았지만... 새해를 맞이하고,
내년(2007년) 1월 2일에 다시 글로써 찾아뵙겠습니다.
날마다 계속해 건강 행복 만땅하소서~!!!
“아듀~! 2006년~!!!”
첫댓글 예 / 년말이면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 건안 건필하세요
올한해도 좋은글 감사했습니다~ 새해엔 소망하시는 모든일 다질되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요~
한 해 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감사해요~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 음 ... 다복하시며 .. 건강하십시오 ~~!
네, 님들 감사합니다. 즐거운 년말에 건강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카페에 가입한지 몇일 안되여 여러분들을 잘알진 못하지만 여러분들께 인사드릴 께요 전 저기남쪽마산에서 살고 있어요 조그만 가게를 하고있어요 용화사랑님의 글을보면 참 잘살고 계시는분이라는게 느껴줘요 앞으로도 항상 변함없이 즐거움을 주시는분이되길 소원합니다*^^*
네, 연숙이님 반갑습니다. 님께서도 새해에는 원하시는대로 소원성취 하세요. 복 많이 받으시구요~!!! 샬롬~!!!
용화사랑님 늘 좋은글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변함없이 좋은 활동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